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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튼 퓨리티 (2)화 (2/172)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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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애들은 돈 무서운 줄 모른다 하고, 공사판에 가서 막노동을 해 봐야 돈 버는 게 어려운 줄 알고 철든다고 한다.

그렇게 어른들의 조언 아닌 조언으로, 혹은 단기간에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방학 때마다 공사판으로 몰려온 대학생들은 두어 명을 제외하고 하루면 꽁무니를 빼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군 제대 후 복학하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왔다는 놈이 일주일 잘 나오나 싶더니 결국 한마디 인사도 없이 나오지 않은 것을 보고, 역시 젊은 놈들은 근성이 없다며 같이 일하던 아저씨들이 쯧쯧 혀를 차기도 했다.

글쎄, 그건 근성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돈이 절실한지의 문제가 아닐까.

당장 오늘 잘 곳이 없고, 내일 먹을 밥 한 그릇이 없다면 일의 고됨에 관계없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거다. 하루 일이 끝나고 받는 일당에 감사하고, 손발 움직일 수 있는 몸뚱이라도 가진 데에 감사하겠지.

반면에 몸 누일 곳이라도 있다면, 아니, 단 한 달이라도 먹고 자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나 역시도 이곳에서 건강 해쳐 가며 일하지는 않을 터다.

중장비가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하고, 인부들이 자재를 나르는 공사 현장은 먼지와 소음으로 가득했다. 건강에 해악을 끼치는 요인을 꼽으라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이다. 그럼에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곳보다 높은 보수를 일당으로 받는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체력과 건강을 깎아 먹는 일이지만, 내게 이곳을 제외한 다른 선택지는 몇 없었다.

며칠, 몇 주, 몇 달을 일해도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일, 그리고 매번 무겁기는 마찬가지이고 오히려 그 무거움을 알기 때문에 두렵기도 했다.

하루하루 눈을 뜨는 것이 두렵고, 공사 현장을 찾아오는 것도 두렵고, 지게 위에 자재가 겹겹이 쌓이는 것도 두려웠다. 그리고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이곳에나마 기어 나와 일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내일이었다.

“조금만 더 버텨. 곧 밥시간이니까.”

계단 한쪽으로 비켜서는 나를 지나쳐 오르며 최 씨 아저씨가 말했다. 콧잔등을 따라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내며 나는 다소 가벼워진 지게를 지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왔다.

아직도 옮겨야 할 자재는 많지만, 저것을 언제 다 옮기나 싶어도 오늘 하루가 끝나기 전에 저 지긋지긋한 것들이 위치해야 할 곳에 옮겨져 있으리라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결과를 이루어내고자 내가 또 얼마나 건물을 기어 올라가야 하는지도.

보기만 해도 치가 떨릴 정도로 쌓여 있는 자재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품 안에서 부르르 떨림을 느꼈다. 슬쩍 주변 눈치를 살피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액정을 확인했다.

반갑지 않은 전화였고, 그럼에도 받아야 하는 전화였다.

눈을 뜨면 일하러 나오고, 일이 끝나면 씻고 자는 데에 바빠 신경 쓰지 못한 잘못이 크다. 요 며칠의 나를 반성하며 근처에 슬쩍 지게를 내려놓고 화장실을 가는 척 걸음을 옮겼다.

“여보세요.”

관리자들의 눈을 피해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한참을 걸어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금빛 요양 병원입니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날짜를 꼽아 보았다.

―박찬숙 님의 이번 달 병원비가 아직 수납 전이라서 연락드렸습니다.

“……날짜가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 이번 주 안으로 입금하겠습니다.”

―잊어버리신 거라고 생각했어요. 요즘 다들 바쁘셔서 깜박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여자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재촉 전화가 아님을 은근히 표했지만, 실상은 재촉의 목적이 맞음을 여자도 나도 알고 있었다. 그저 서로가 기분 나쁘지 않을 선에서 둥글게 말할 뿐이지.

―요즘은 방문이 뜸하시네요. 어머님이 아드님을 많이 보고 싶어 하세요.

정신도 없는 사람이 참도 나를 보고 싶어 하겠다.

여자의 입에 발린 소리를 들으며 소리 없이 헛웃음을 삼켰다.

“……좀 바빠서요. 언제 시간 내서 가 보겠습니다.”

―어머님이 기뻐하시겠네요. 그럼 이번 주 안으로 수납하시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네.”

전화를 끊고 통장에 남은 돈을 떠올려 보았다. 모아 둔 돈을 생각하면 일주일 사이에 병원비를 마련하기란 어림도 없었다. 하루 일을 하고 일당을 받아 가는 일용직자 주제에 가불은 꿈같은 말이고, 저녁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나 싶어도 그 월급은 한 달이 지나야 받을 터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병원비 지급 기한을 조금만 미뤄 달라고 부탁해야 할까.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함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매번 느낄 때마다 죽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벌써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어느 것도 나아진 부분은 없었다. 어머니의 상태도, 통장의 사정도, 나의 생활도.

나아지기는커녕 나빠지고 있는 쪽에 가깝다. 모든 일들이 엉망이 되어 가고 있다. 어머니의 건강은 악화되고, 통장의 잔액은 바닥을 드러내고, 나는 가끔 잘 곳을 찾지 못해 길거리를 전전하기도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도 내 삶은 언제나 비틀려 있었다. 어머니는 여러모로 제정신이었던 적이 없었고, 나는 방치되거나 학대당하거나 비난당했다.

그리고 아버지.

아버지, 그래, 아버지. 어쩌면 아버지가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모질게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떠나던 아버지의 등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돌리고 인사 한마디 없이 떠나던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래, 모든 것은 아버지가 우리 모자를 버리고 떠났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액정 모서리가 깨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바지 주머니에 넣고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죽어 나자빠진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도,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도, 그 무엇도 지금의 상황에서 도움 되지는 않으니까.

전화를 받으려 한적한 곳을 찾은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는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말쑥한 정장에 안전모는 그리 어울리는 차림이 아니었다. 윗분이 현장 시찰이라도 나온 모양이다. 그리 유쾌한 통화는 아닌지, 휴대폰을 향해 말하고 있는 남자의 표정은 다소 화가 난 듯 보였다.

저런 상황에서는 괜히 옆을 지나가다 불똥을 맞기도 쉽지.

남자를 두고 멀찍이 돌아 걸음을 옮겼다. 화장실에 다녀왔다고 하기엔 시간이 지체된 탓에 자리를 비운 사실을 들켜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른다.

햇볕은 뜨겁고, 안전모 안쪽으로 고인 땀은 얼굴을 타고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먼지가 뽀얗게 피어오르는 땅이 열기를 받아 이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원망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다 돌린 시선의 끝에 뼈대를 갖춘 건물 상층의 난간으로 길게 나온 철근들이 보였다.

흔들흔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 서 있는…… 남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남자를 불렀다.

“저, 저기요.”

조심해요, 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 간질간질했다. 크게 소리 내어 부르면, 그 목소리에 흔들려 철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작게 흘러나온 부름은 남자에게 닿지 못하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저기요!”

나는 좀 더 힘주어 남자를 불렀다. 통화를 하고 있던 남자가 제 쪽으로 손을 뻗은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조심…….”

철근의 흔들림이 심해졌다. 저 상태라면 남자의 머리 위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남자에게 경고함과 동시에 뛰기 시작했다.

“조심해!”

나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 커진 듯도 하다.

걱정이 기우로 끝나면 좋았으련만,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철근이 추락하고 있었다. 안전모를 썼다곤 하나 저 높이에서 떨어지는 철근을 정통으로 맞았다가는 살아남기 어려워 보였다. 남자도, 그리고 나도.

이렇게 빠르게, 그리고 열심히 뛰어 본 적이 있을까 싶다. 남자를 향해 뛰어간 나는 그를 덮치듯 끌어안아 있는 힘껏 몸을 날렸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등 뒤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철근이 지면으로 떨어진다.

내 밑으로 깔리듯 누운 남자의 가슴 너머로 쿵쿵 요란하게 울리는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남자나 나나 적어도 죽지는 않았음을 확인하며 고개를 내렸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에서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모래 먼지가 내려앉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형의 얼굴에, 이 와중에도 잘난 본바탕은 흐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텁텁한 모래 냄새 속에서 남자가 뿌린 향수인지 옅은 풀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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