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9화 (209/214)

“삐얏! 삣!”

“개굴!”

“므아앙!”

“개굴! 개굴!”

“…….”

현규하는 말없이 미간을 눌렀다. 개구리 한 마리도 못 잡아서 사지를 허우적거리는 전직 햄스터, 전전직 칼리칸트자로스가 있었다.

발로 밟으려 해도 개구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주둥이로 깨물려 해도 점프하는 개구리를 쫓지 못했다.

‘……햄스터가 그러면 그렇지.’

칼리칸트자로스도 스토야의 품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던 종족이 아니었던가. 하얀 짐승으로 변이했다고 하여 전투 능력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애초에 유별날 정도로 소심한 놈이기도 했고.

“야.”

“……히잉.”

“인간 같은 소리 내지 말고. 넌 그냥 주변 휘저으면서 돌아다니기나 해. 유신 씨의 빛이 스미는 것만으로도 어둠이 깨지고 있으니까.”

“미우우…….”

“저기 새까만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거 같아.”

조금 풀이 죽긴 했으나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 어둠이 사라지는 걸 목격한 8세는 기운을 얻어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8세가 사방을 헤집고 다니는 것과 비례하여 종말의 징조들도 급격히 약화되었다.

이는 곧 어둠에 묻혀서 상처를 복구하고 있던 스토얀에게 악재라는 의미였다.

“하지점 태양을 고스란히 구현하는 크르스니크가 정말 다시 나타났다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불신하며 분개한 스토얀이 어둠의 깊은 곳에서 형체를 드러내자마자, 틈만 기다리던 현규하는 대뜸 8세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꿋!”

그리고 냅다 던졌다.

“삐에에에에에에!”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는 8세의 뒤로 빛의 궤적이 무지개처럼 번졌다. 인유신이 하지점 태양의 조각을 구현하여 휘광이 보다 찬연해진 빛이다. 정통으로 쬐었다가는 무사하지 못할 것임은 자명한 바.

스토얀은 얼굴을 굳히며 황급히 8세를 피했다. 하지만 그 경로는, 8세가 날아갈 방향을 계산하고 던졌던 현규하에게 처음부터 읽히고 있었다.

“무, 무슨……!”

피했다고 여긴 곳에는 이미 현규하가 도착해 있었다. 미처 방어 마법진을 전개할 틈도 없이 신력과 담피르의 마나를 두른 롱기누스의 창이 검은 짐승의 척추를 부수며 관통했다.

“크하아악!”

척추의 손상은 포유류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검은 짐승에게도 치명상이었다.

파드드득! 삽시간에 수십 마리로 변한 박쥐의 날갯짓 소리가 사방을 메웠다. 창을 휘둘렀으나 워낙 쪼개져 있기에 타격을 입힐 수 있던 건 몇 마리뿐이었다.

“야, 뛰어.”

“후이이…….”

바람보다 빠르게 날려 온 여파로 눈이 팽글팽글 돌고 있던 8세가 흐느적거리면서 일어났다. 되는 대로 사방을 휘저으며 돌아다니는 행동에 불과했으나 어둠을 정화하기에는 충분했다.

상공으로 날갯짓하여 도주하면 현규하가 사이코키네시스를 운용하여 압력을 걸었고, 지상으로 내려오면 롱기누스의 창이 내리꽂혔다. 그사이에도 어둠이 사라지면서 운신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자신의 무기이자 보호막이며 치유 수단인 어둠이 정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말의 징조들까지 힘을 상실하는 중이다.

마음이 급해진 스토얀은 제 것이 될 육체를 가급적 손상하지 않기 위해 직접 공격을 가하지 않던 어둠을 움직였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실시간으로 사라지는 어둠은 현규하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헌터들이 마지막 종말의 징조를 제거했을 무렵, 타들어 가고 부상을 입은 살점을 연이어 떼어 내야 했던 검은 짐승은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아져 있었다.

짐승의 형태가 무너졌다. 이를 유지할 수도 없어진 스토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왔고, 거의 동시에 현규하의 주먹이 그의 쇄골을 박살 냈다.

“끄윽!”

휘청하며 균형을 잃는 스토얀의 뒤로 공중에 뜬 롱기누스의 창이 경추를 노리고 쇄도했다. 스토얀은 몸을 굴러 가까스로 참격을 피했다. 그에게 허용되는, 얼마 안 남은 어둠이었다.

현규하가 사이코키네시스를 써서 롱기누스의 창을 손안에 다시 쥐었다. 창의 무게감이 손바닥에 익숙하게 감겼다. 한 번.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이면 전부 끝날 것이다.

“인간의 몸일 때는 상처 부위 잘라 내는 거 안 되나 봐요 더 살고 싶다고 추하게 도망치지 말고 자살을 추천합니다. 그만큼 오래 살았으면 후세를 위해 뒤질 때도 되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네가 무엇을 알아!”

이젠 도망칠 곳도 그의 몸을 강탈할 방법도 없다. 오직 자신 하나만이 남게 된 스토얀은 끝내 억누르지 못하고 격앙한 감정을 내질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진심은, 한편으로는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었던 진심일지도 모른다.

“신에게 지음 받은 세계의 왕 그딴 건 그럴듯하게 치장한 허울일 뿐이야! 억지로 인생이 농락당하고, 세계에 얽매인 채로 영원히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단 하루를 살더라도, 평범한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

“내 의지로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잘못되었나!”

“그, 뭐……. 객관적으로 불쌍하긴 하죠.”

현규하가 롱기누스의 창을 쥔 팔을 가볍게 허공에서 돌렸다.

“체념인지 만족인지 모호한 고모와는 달리 아버지는 내내 운명을 격렬하게 거부했으니까요. 아마 다른 방향에서 아버지와 만나게 되었다면 이아드에서 도망치는 데 조력을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나도 신들이 하는 짓들은 마음에 안 들거든요. 근데…….”

그를 겨냥하는 창끝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 말을 엄마 아들인 나한테 하면 안 되죠. 할머니와 싸우긴 했어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던 엄마 인생을 망가트린 게 누구였더라”

불현듯 언급된 현소라의 존재는 스토얀을 멈칫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현규하가 그로 인해 인생이 망가졌다며 소리를 높였다면 스토얀에게는 조금도 닿지 않았을 터다. 처음부터 그가 이용하기 위해 잉태하고 탄생하게 한 도구였으므로.

하나 현소라는. 그가 아이를 낳게 한 여자는.

이 순간에 이르러서도, 그녀의 표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그 심정을 알고 있는 것처럼 현규하는 무심히 읊조렸다.

“저번에 어머니의 표정이 어땠냐고 물은 적이 있잖아요. 그때는 아버지가 왜 그런 개소리를 나한테 하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

“아버지가 살아온 삶에 비해서 어머니와 만났던 기간이 터무니없이 짧았다는, 그딴 단순한 이유가 아니야. 만약 어머니와 수백 년을 살았다고 해도 아버지는 절대 떠올리지 못했을걸.”

“왜…….”

스토얀은 지금이 어떠한 상황이라는 것마저 망각하고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왜……. 어째서지 어째서, 소라만 기억나지 않는 거지”

“하하.”

현규하는 작게 웃었다. 조소나 냉소가 아닌, 그냥 웃음이었다.

스토얀의 현혹. 인유신의 테이밍.

사람의 감정을 강제로 재단하여 영혼을 속박하는 그 수단은 비슷한 엔딩에 달할 수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도달점과 자신의 도달점이 다른 이유.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명백하지 않던가.

〈제, 제가 인질이 대, 대신 될게요.〉

어린 시절에 이어 화마가 치솟던 펜션을 지나고, 마침내 그 은행에서 조우한 순간부터. 표정을 비롯한 인유신의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 인유신 또한 저의 모든 걸 기억하리란 걸 안다.

스토얀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것. 인유신에게는 당연했던 것. 그리고 이 결정적 차이는 어머니에게 최고의 복수가 될 것이다.

현규하는 자신을 붙잡듯이 올려다보는 스토얀에게 제법 유쾌한 빛으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높이 올린 창날이 크르스니크의 빛을 받아 순백의 색으로 빛났다.

“내가 그걸 왜 알려 줘야 하죠”

스토얀은 눈을 크게 홉떴다.

‘……소라.’

스토얀은 신의 숨결이 닿는 그늘에서 서서히 기지개를 켜던 인간 문명의 여명기에 태어났다. 커프크니와 우리아쉬, 피티치가 ‘인간’이라는 틀 안에 어울리던 시절을 알고 있다.

아득한 과거로부터 시작되는 그의 기억은 시간의 흐름이라는 개념조차 잊었다. 그가 살아온 영겁에 가까운 시간에 비한다면 조각조차 되지 않을 티끌. 그 정도의 짧은 찰나. 현소라.

신이 없는 세계 출신. 파계 스킬 보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여성. 그뿐이었을 존재.

무엇이 아이를 낳고 쓸모없어진 도구의 주검을 거두어 곁에 두게 했나. 무엇이 그녀가 좋아하던 음식과 의복과 집을 수십 년간 변함없이 유지하게 했나.

〈저번에 갔었던 세계는 말이야.〉

고향을 비롯하여 반평생 여행한 세계를 이야기하던 그녀의 표정은 어떠했는가. 기억나지 않는다.

〈사랑해.〉

사랑을 속삭이던 모습만이 선연하다. 비정상적인 열기에 들떠, 초점이 잡히지 않는 흐린 눈동자에 기광을 번들거리며, 꼭두각시 인형처럼 반복하던 고백.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가 만들지 않은 그녀의 진짜 표정과, 감정과, 목소리는 어떠했을까.

눈앞에 그 증명이 있었다.

스토얀은 선연히 맺힌 여름의 태양 빛이 가슴을 꿰뚫고 심장을 파괴하는 것을 느끼며 작게 입술을 달싹거렸다.

‘저 애는 정말 네 아이였구나, 소라.’

아스라이 잦아들던 의식이 암전하는 최후의 박명까지도, 현소라의 표정은 끝내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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