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5화 (205/214)

만월대 기념품 숍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친 후 친구들과 저녁을 먹던 그는 불현듯 시선을 들었다.

“왜 그래”

“하늘이 좀 이상하지 않아”

그 말에 하늘을 올려다본 친구들이 낮은 신음성을 뱉었다. 그들만이 아니라 근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들도 하나둘 북쪽 하늘을 응시했다.

나직한 웅성거림이 번졌다. 어둠이 저 먼 곳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가라앉은 시간이었으니 어두운 건 당연하지만, 날마다 보았던 밤하늘이 아니었다.

어둠의 질감이 다르다. 누가 설명해 준 게 아닌데도 평범한 어둠이 아니라는 걸 모두가 바로 인식했다.

급히 검색해 보았지만 이상 현상에 대응하는 정부의 발표는 기상 이변이란 내용이 전부였다.

“……저거, 멸망이 시작되는 징조는 아니겠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묻는 친구의 말에 그는 짐짓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아닐 거야. 자연재해 같은 게 발생하지는 않을 거라고 신탁도 내렸었잖아.”

“그렇겠지”

불안해하는 친구에게 힘 있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으나 그도 마음 한구석이 조마조마한 건 매한가지였다. 그는 올여름 휴가 때 찍은 가족사진을 휴대폰으로 보며 불안감을 달랬다.

‘과제 때문에 시간이 안 나서 빠지려고 했는데……. 내일 한양 할머니 댁에 엄마랑 아빠랑 같이 가야겠다.’

할머니의 건강한 모습을 봐야 안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과제는 벼락치기로라도 하면 되는 것이고.

“우리 오늘은 저녁만 먹고 일찍 찢어지자.”

“어.”

“그게 좋겠다.”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빨리 먹고 집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굳히며 그는 남은 식사를 입으로 옮겼다.

“백두산과는 여전히 연결이 안 된다던가”

“네, 폐하. 스토얀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마지막입니다.”

이호는 묵직한 탄식을 뱉으며 얼굴을 문질렀다. 스토얀, 스토얀이라……. 설마 스토얀과 관련이 있는 건가. 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백두산으로부터 시작된 불길한 어둠은 조선만이 아니라 가까운 일본이나 대척점인 남아메리카까지, 지구의 모든 곳에서 목격되고 있었다.

인간의 힘이나 마법으로 발현할 수 있는 현상이 절대 아니었다. 제 능력으로는 이를 관측조차 할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그녀는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다만 한 가지 희망을 걸어 볼 만한 징조라면.

“…….”

이호는 드론이 촬영한 방어 본부의 영상을 훑었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번져 나가는 불길한 어둠을 등불처럼 밝히는 한 줄기 빛살이 있었다.

“크르스니크의 신력이 맞다던가”

“페룬의 사제들이 재차 확인했습니다.”

“어째서 이 땅을 떠난 크르스니크의 신력이 느껴지는지 통 영문을 모르겠지만…….”

저 빛이 진실로 희망이 되어 주기만을, 이호는 기원했다.

  

흉조를 두른 불길한 검은 짐승을 무엇이라 묘사하면 좋을까.

사람보다 두 배 이상 큰 그것은 모든 짐승을 닮은 것 같기도 했으며, 모든 짐승을 닮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저건…….”

소년이 낮게 신음했다.

“이 시대에는 멸망한 짐승들의 모습이야.”

인간에게 기생하며 살아가는 뱀파이어는 멸종한 종들의 형상들을 갖추고 있었다. 저 가운데 인간에 의해 멸종한 짐승은 얼마나 될지.

“하지만……. 진조보다 더 흉흉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검은 짐승으로 화한 스토얀은 크르스니크의 빛이 비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으르렁거리며 도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종말의 기운은 사위를 난도질하며 혼탁하게 휘저었다.

인유신은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의식을 집중했다. 난자하는 종말의 기운이 실상 빛 아래에서 매우 약화된 상태라는 걸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의 의식이 흐트러진다면 그 기운은 여기마저 거침없이 점령하여 하늘을 추락시키고, 땅을 찢어 놓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쪽은 아까부터 자꾸 옛날 옛적에 뒤, 아니 죽은 뱀파이어랑 비교를 하는데요. 아버지는 진조에게 없던 힘을 갖고 있잖아요. 저 양반은 세계의 왕이랍시고 침식 게이트와 비슷한 종말의 힘을 다룰 수 있다고요. 그렇다면 다른 방향으로 공략해야죠.”

“마, 맞아.”

소년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넋이 나간 이아드의 헌터들과는 달리 공태성과 장범은 그럭저럭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스토얀을 막아서다 입은 중상도 대강 치유한 뒤라 평소와 다름없는 언행이었다.

“인유신이 처음 보는 능력을 쓰는 건 그렇다 쳐도, 아까부터 누구와 얘기를 하는 거지”

“유령.”

또 개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는지 공태성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아무튼 네놈 아빠가 인유신의 빛 안으로는 절대 안 들어올 작정인 듯한데 어떻게 유인할 건가”

“이대로 시간만 끌면 우리가 필패할걸.”

장범의 판단은 정확했다. 헌터들이 제정신을 차린다고 해도 상황이 나빴다. 장기전을 대비한 곳이 아니라 물자도 한정적이며, 무엇보다 인유신의 마나도 마냥 무한하지는 않다.

“안 오면 부르면 되죠.”

현규하가 이쪽을 노려보는 스토얀에게 무표정한 얼굴로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아빠아♡ 깜깜해서 규하는 너어무 무서워요오옹. 여기 와서 규하 손 잡아 주면 좋겠는데에♡”

“…….”

“쫄”

“…….”

당연히 반응은 없었다.

“미친놈이라는 건 진즉 알고 있었지만 볼 때마다 새롭군.”

“닥쳐, 매형.”

공태성에게 싸늘하게 대꾸한 현규하가 인유신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했다.

“그렇게 되었으니까, 갈게요.”

여유를 되찾은 표정은 산책이라도 다녀오겠다는 것처럼 가볍기만 하다. 하지만 그 앞에 있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의 친아버지.

친아버지를 대적하고, 어쩌면 죽이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괜찮을까. 걱정스럽게 올려다본 인유신은 현규하의 표정을 읽고는 애써 엷게 웃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처럼.

스토얀이 무엇을 했더라도 신경 쓰지 않겠다던 현규하는 이미 결심을 굳혔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은 괜한 말을 꺼내는 게 아니라 믿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규하는 이미 인유신의 염려를 읽은 것처럼 허리를 굽혀 귓가에 속삭였다.

“음, 스토얀에 대해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몇 가지 있지만 나는 괜찮습니다. 일부러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괜찮아요.”

현규하에게 있어서 아버지라는 인식은 차라리 강석우가 더 가깝다. 강석우를 죽일 때는 그토록 고독하고 괴로웠던 심장의 울림이 지금은 그를 몰아세우지 않는다.

버리고 간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울던 아이는 이제 더 이상 고독하지 않다.

“그럼, 유신 씨. 다녀오겠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말고 규하 씨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오세요.”

인유신은 마지막으로 그의 손을 잡고 자신으로서 가능한 최선의 힐과 버프를 걸어 주었다. 스토얀이 도사리고 있는 어둠 너머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시리게 박혔다.

‘괜찮아. 규하 씨는 괜찮을 거야.’

인유신은 걱정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양손을 꼭 쥐었다.

그리고 검은 짐승은, 재차 종말의 상징을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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