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4화 (194/214)
  • “우아아아!”

    비명에 가까운 기합성을 지르며 우리아쉬가 바닥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흡사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지표면이 갈라지고 아래에 묻혀 있던 마지막 반석이 쪼개졌다.

    동족들을 지독하게 공격하던 빛의 폭류가 간신히 사라졌다.

    - 응격 마법진 파훼.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상황을 전했으나 우리아쉬들의 귀에는 명확한 언어로 들려오지 않았다. 허공에 전개된 본부 전체의 홀로그램 맵 또한 현재의 전황을 알려 주고 있었으나 그 또한 우리아쉬들에게는 희뿌연 안개일 뿐이었다.

    “크윽.”

    우리아쉬는 이를 악물었다. 그들이 잠들어 있던 동안 인간들은 지나치게 발전했다. 마법은 물론이고 정체불명의 능력까지.

    이 마법진에서만 8명이나 되는 동족들이 죽었으며, 생존한 동족들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전부 죽여!”

    “뚫리게 놔둬서는 안 돼!”

    마법진이 파훼되는 여파가 가시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인간들이 달려왔다. 그와 동시에 모든 건물에 새겨진 마법 술식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구천현녀의 가호가 내립니다.]

    [페룬이 전장의 영광을 바랍니다.]

    [누아다가 승리를 기원합니다.]

    [키부카의 방패가 보호합니다.]

    아직 이아드에 애정을 기울이고 있던 전쟁의 신들이 사제를 통하여 인간들에게 가호를 부여했다. 전쟁의 신들의 가호는 곧 버프가 되었다.

    우리아쉬들은 더욱 분개했다.

    “우리의 목을 조른 신들이 이제 또 우리를 버리는구나!”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는 몸부림이요, 발버둥이다!”

    우리아쉬들은 알고 있다. 생존한 동족은 극소수다. 자신들만으로는 이 세계에 남은 모든 인간을 죽일 수 없다. 설사 죽이는 데 성공한다 하여도 살아 있는 시체에게 미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아쉬들은 사후의 안식까지 스스로 저버렸다. 신들이 애착하는 이 땅에 발자취를 남기기 위하여. 신들이 애정을 기울인 인간들을 죽이고 죽이고 죽여 길고 날카로운 상흔을 남기기 위하여.

    “우리는 인간의 포식자였으며 살해자였다!”

    둠네제울은 자신이 아끼던 모형 정원에 치명적인 금이 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바로 그가 신벌을 내려 멸망시킨 종족에 의하여.

    우리아쉬들은 길게 포효하며 인간들에게 증오를 불살랐다.

    인간들은 청동으로 무기를 만들어 사용했으나 우리아쉬들은 여전히 나무를 깎았다. 우리아쉬의 거구에 걸맞은 무기를 단조할 만한 야금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무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아쉬들이 무기로 사용하는 나무는 씨앗부터 축성하여 금속만큼 단단하게 성장한 영목이었다.

    거기에 둠네제울은 거인들이 거구를 지탱할 수 있게끔 육체를 강화하는 마법을 전해 주었다. 강화 마법은 맹수도 손으로 으깨어 터트릴 수 있는 완력 또한 선사했다.

    그 완력은 인간을 불신하게 된 우리아쉬들의 인간 사냥을 더욱 쉽게 해 주었다. 인간이 제아무리 떼 지어 몰려와 무기를 휘두른다 해도, 손을 한 번 크게 내저으며 입 안에서 으적으적 씹으면 그만이다. 마법이 그나마 타격을 주었지만 방심하지 않는 한 인간들에게 당할 일 따위는 없었다.

    분명히 그랬다.

    우리아쉬들이 인간을 사냥하고, 잡아먹어, 끝내 신의 재정이 향하기 전까지는.

    “으랴아아아!”

    올리비아는 거인들의 피로 범벅이 된 워해머를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후웅, 웅! 공기를 묵직하게 가르며 회전하는 워해머를 따라 작은 돌풍이 일어났다.

    까아앙!

    묵직한 힘이 실린 워해머는 그녀를 내려찍으려는 거인의 곤봉을 쳐 내는 데 성공했다.

    “큭!”

    압력을 버티지 못하여 몇 걸음이나 뒤로 밀려났고 발목까지 깊이 흙바닥에 박혔지만, 그만하면 아주 훌륭한 성과였다.

    ‘버프 끝내주는데.’

    마수를 사냥하며 서포터들의 온갖 버프를 다 받아 봤지만 신들의 가호로 인한 버프는 확실히 질이 달랐다. 이 정도라면 거인과도 싸워 볼 만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거기에 응격 마법진만큼의 위력은 없지만 후방에도 새로이 마법진들이 시동되고 있었다. 결정적인 타격은 아니어도 거인들의 발목을 붙잡기에는 충분했다.

    “버러지 같은 인간 주제에!”

    거인이 분노하며 다시 곤봉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올리비아도 받아 내지 않고 몸을 피했다.

    쿠웅! 곤봉이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옆을 강타했다. 타격을 버티지 못한 바닥이 으적으적 갈라졌다.

    식은땀이 죽 흘렀다. 싸워 볼 만하긴 하지만, 한 대라도 맞았다가는 바로 피곤죽이 될 것이다.

    올리비아는 곤봉을 찍느라 자세가 조금 흐트러진 거인의 발등을 워해머로 후려갈겼다.

    “하나!”

    꽤 묵직한 소리가 울렸음에도 거인은 하나도 아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올리비아는 쓴웃음을 삼켰다. 인간은 새끼발가락만 찧어도 온몸이 저릿저릿한데, 피지컬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불공평하다.

    그렇지만 처음의 공격이 통하리란 생각은 당연히 하지 않았다. 그녀의 능력은 중첩될수록 위력을 발휘한다.

    생지 정급의 헌터인 올리비아는 유명인이니만큼 능력 또한 잘 알려져 있었으나, 게이트 이후의 세계에 무지한 이 거인들은 각성 능력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두……!”

    “귀찮게 하지 마라!”

    다시 워해머를 들어 올리자, 거인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내뱉으며 곤봉을 옆으로 후려갈겼다. 무언가 빠각, 하고 으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으윽!”

    피하는 게 조금 늦었다. 간신히 직격당하는 건 면했으나 비껴 맞은 것만으로도 팔뼈가 으스러지고 머리가 깨졌다. 올리비아는 피를 쏟으며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건물에 부딪히기 전, 푹신푹신한 털을 지닌 거수(巨獸)가 그녀를 부드럽게 받아 냈다.

    “부, 부장님!”

    “크르르릉!”

    올리비아가 숨을 헐떡이며 감사 인사를 채 하기도 전에 야수화한 허정현이 외벽과 지붕을 박차며 거인을 향해 도약했다.

    우리아쉬가 코웃음을 쳤다.

    “이건 또 처음 보는 짐승이로군!”

    생전 우리아쉬가 살던 땅에는 호랑이가 없었다. 새로운 맹수라고 해 봤자 한입거리 짐승에 불과할 뿐이다. 체고(體高) 3미터가 넘는 거대한 백호도 우리아쉬 앞에서는 조금 큰 고양이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아쉬는 인간보다 살점이 쫄깃쫄깃했던 맹수의 육질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죽어라!”

    인간의 피와 살점이 묻은 곤봉이 흉흉한 기세로 날아들었다.

    [귀속 아티팩트 ‘얼룩둥이의 부름’을 일부 해방합니다.]

    훌쩍 뛰어 피한 백호는 날카로운 엄니를 드러내며 팔뚝을 사납게 베어 물었다. 마수의 숨통도 단번에 찢어발길 수 있는 백호의 엄니는 우리아쉬의 강화한 살갗도 관통했다.

    팔목의 뼈와 엄니가 까드득 부딪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끄읍……!”

    우리아쉬로서도 비명을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곤봉을 쿵 하고 떨어트려 버린 우리아쉬는 반대편 손으로 팔뚝에 이를 세운 백호를 노렸으나, 허정현은 재빨리 피하며 내려섰다.

    “카르르륵!”

    그러고는 다시 도약하여 허리를 연이어 공격했다. 육중한 무게와 살점을 잡아 뜯는 날카로운 이와 발톱을 이용한 타격은 우리아쉬의 분노를 돋우었다.

    허정현의 노림수였다. 흥분하여 자제심을 잃게 되면 필연적으로 평정이 흐트러지게 마련이다. 백호를 노리는 우리아쉬의 움직임이 커지고 틈이 생겼다.

    “두울!”

    으스러진 왼팔에 포션을 뿌려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만 회복한 올리비아가 이를 악물며 워해머를 들었다. 그녀는 움직일 때마다 끔찍한 고통이 올라오는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워해머를 처음 공격했던 발등에 내려쳤다.

    허정현을 상대하느라 신경이 쏠려 있던 우리아쉬는 나동그라진 인간 하나 따위를 기억에서 지운 지 오래였다.

    “뭣!”

    적어도 팔뼈가 으스러졌을 인간이 어떻게 금방 회복되었는지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다리에 과부하가 걸렸다. 자신의 의지로 제어되는 육체의 일부가 아니라, 묵직한 살덩이가 허리 아래에 붙은 듯한 기묘한 감각에 우리아쉬는 크게 당황했다.

    올리비아의 능력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다르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낯선 감각을 무시하고 시전자인 그녀를 죽였다면 해소되었을 테니. 그렇지만 우리아쉬는 게이트도, 인간들이 갖게 된 능력도 알지 못한다.

    당황한 우리아쉬는 허점을 노출했으며 올리비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셋! 넷! 다서엇!”

    마나를 쥐어짜며 연이어 휘두른 워해머가 발등을 가격했다. 우리아쉬는 움직이지 않게 된 다리가 말라붙은 흙덩이처럼 떨어져 나가는 듯한 감각에 몸을 크게 휘청거렸다.

    그 몸을 밟으면서 도약한 백호가 목덜미를 물어뜯을 때까지도, 우리아쉬는 자신이 무슨 공격을 받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뜯긴 경동맥에서 쏟아지는 피가 마치 폭우처럼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그 핏방울들이 지면에 흡수되기도 전에 우리아쉬의 육체는 먼지로 화했다.

    “끄아아악! 이, 씨바아아알!”

    그제야 올리비아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작은 뼛조각들이 박힌 붉은 속살까지 드러난 왼팔의 상처가 몹시도 참혹했다.

    야수화를 해제한 허정현이 아공간에서 포션을 꺼냈다가, 그냥 자신의 상처에 뿌렸다. 올리비아의 부상은 포션으로도 안 된다.

    “욕을 조선말로 하다니 조선 사람 다 됐구만. 치유술사들이 있는 후방으로 데려다줄까”

    “호, 혼자 갈 수 있으니까 부장님은 다른 놈이나 자, 잡으세요.”

    올리비아는 휘청거리면서도 워해머를 짚고서 쩔뚝쩔뚝 걸어갔다. 걱정스러운 눈길을 거둔 허정현은 허공의 홀로그램 맵을 올려다보았다. 맵에는 거인들과 헌터들의 상황이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당장 지원이 필요한 곳은…….’

    그녀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현장을 지휘 중인 헵타곤 만 국장의 명령을 오퍼레이터가 인 이어로 즉시 전달했다. 만 국장 또한 여러 개로 나뉜 중국의 나라 중 하나인 계주에서 이십수 년 전에 귀화한 사람이었다.

    - 11구역에 현재 지원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11구역에 있던 거인이 하늘로 높이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현규하다. 허정현이 실소하기도 전에 오퍼레이터가 헛기침을 한 뒤 말을 바꾸었다.

    - 8구역을 지원해 주십시오.

    “아이, 아이, 맴.”

    장난스러운 대꾸와는 달리 허정현은 다시 야수화하여 단숨에 8구역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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