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 (180/214)
  • “별건 아니고. 네가 원래 알던 나는 어떤 인간이었나 궁금해서 말이지. 다른 두 사람에게도 물어봤는데 ‘안 친했다.’라든가 ‘관심 없었는데요.’라는 대답만 받았거든.”

    현규하가 관심 없었다는 건 사실이겠지만 공태성의 대답에는 조금 오류가 있었다.

    “저도 부장님을 직접 뵌 건 아니고 부장님이나 길드장님과 친하셨던 누님한테 들은 건데요, 아, 여기에는 안 계시더라고요. 아무튼……. 갓 각성하셨을 때부터 부장님이랑 알던 사이여서 흑역사도 빠삭하게 꿰고 있다 보니까 길드장님이 피해 다니셨대요.”

    흑역사라는 신조어를 이해할까 싶었는데 어떻게든 번역은 된 모양이다. 허정현이 소리 내어 웃었다.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은근히 꺼리던 눈치더라고.”

    “규하 씨는 원래 다른 사람들한테 별 관심이 없는 게 맞고요.”

    “관심 있는 사람은 너뿐이란 뜻이지”

    “……넴.”

    민망하긴 했지만 아니라는 대답은 하지 못한 인유신은 괜히 손부채로 얼굴을 파닥파닥 부쳤다.

    “좋을 때다.”

    그녀의 나이가 거의 어머니뻘이기 때문인지, 훈훈한 시선에 뺨이 간질간질했다. 인유신은 그간 보고 들었던 허정현1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현규하와 공태성의 뒤를 이어 랭킹 3위로 거론된다는 것, 민끝녀가 양사 그룹의 부회장으로서 산하 길드를 재정비할 때 삼고초려로 초빙했다는 것, 내부 정치에서는 발을 빼고 부길드장에 머물러 있다는 것, 등등.

    헌터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터라 깊은 사정까지 아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허정현은 흥미로워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접하는 듯한 표정으로 허정현1의 얘기를 들었다. ……다른 사람이 맞나 모르겠다. 헷갈렸다.

    “그쪽의 나도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있었구만. 결혼은 했어”

    “안 하셨어요.”

    “결혼 안 한 이유도 알아”

    “예전에 인터뷰를 하신 게 있는데요, 취향인 남자들이 유독 부장님 앞에서 쫄아 버린대요.”

    쫄아 버린다는 건 매체에서 순화한 표현이었다. 훨씬 적나라했던 원본 짤은 인터넷을 별로 안 하는 인유신도 알 정도로 넷상을 부유하고 있었다.

    허정현이 알 것 같다는 표정이 되었다.

    “애들이 듣기에는 조금 곤란한 표현이었구만”

    “그,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고요.”

    “어쨌든 그쪽에서도 결혼을 안 했다니 신기하네. 나도 결혼을 안 했거든. 앞으로도 안 할 거고, 아이도 안 가질 거야.”

    말을 잇는 그녀의 표정에 씁쓸함이 번졌다.

    “올리비아처럼 이런 세상이기에 자식으로부터 희망을 얻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아니었지.”

    “…….”

    “그렇다고 해서 당장 죽고 싶을 만큼 절망적인 건 아니야. 하지만 태어나게 했다고 과연 아이가 좋아할까 라는 고민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 나는 기왕 태어났으니 살아가고 있지만 내 자식이 태어나서 자랄 무렵에는 상황이 얼마나 더 악화될지 모르는 거니까. 내 욕심으로 태어나게 해서 삶이라는 고통을 주는 게, 부모로서 애한테 죄를 짓는 일이 아닌가 싶더라고.”

    잠시 머무는 여행자에 불과한 인유신으로서는 섣불리 대답하기 힘든 문제였다. 하지만 삶 자체가 죄책감이라는 건, 그에게도 낯선 얘기가 아니었다.

    그의 표정을 읽은 허정현이 인유신의 머리칼을 거칠게 쑤석거렸다.

    “22살밖에 안 된 애가 내 말에 공감을 하면 어쩌냐. 나는 네 나이 때 마수 때려잡는 거 말고는 뇌를 비우면서 살았어. 사는 게 많이 고단했었구나.”

    그녀의 손길이 스친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좀 꼰대 같은 말이긴 한데 네 나이 갑절은 되는 진짜 꼰대가 하는 얘기니까 그냥 들어 줘. 그러지 않길 바란다는 건 네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잖아”

    “…….”

    “누가 억지로 강요한 것도 아니고, 네 마음이 자연스럽게 변한 거라면 그 흐름을 따라 찬찬히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아. 그렇게 살다 보면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도 쓸 만한 구석이 있다는 걸 새롭게 느끼게 되거든.”

    “……부장님도 그러셨어요”

    “물론이지. 어차피 멸망해 버릴 이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하루에도 자살 생각을 열두 번씩 하던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 있어.”

    마수로부터 구해 준 것을 고마워하는 사람들. 지나가는 아이의 밝은 인사. 오늘따라 맛있는 식사. 기분 좋게 달성한 하루치 운동 목표. 사소한 일상의 조각이 하나씩 쌓여서 어떻게든 살아지고 있다며, 그녀는 말했다.

    “소박하지만 그런 게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간에.”

    분위기 전환을 하려는 듯 허정현은 씩 웃으며 일어났다.

    “네가 살던 곳의 허정현도 나랑 비슷한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왠지 홀가분해진 기분이야.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이대로 살아도 괜찮겠다 싶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얘기해 줘서 고맙다.”

    허정현은 한결 개운해진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곧은 등을 배웅하며 인유신은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했다.

    시스템으로부터 테이밍이라는 능력을 각성할 수 있게끔 자신에게 가호를 내렸다는 말의 의미는 간단하다.

    ‘……원래대로라면 테이밍 능력 없이 규하 씨랑 만났을 거란 뜻이잖아.’

    만약 테이밍 없이 현규하와 만났다면.

    의문에 대한 답은 뻔했다. 그냥 은행에서 헤어지고, 그 뒤로는 가끔 매스컴이나 인터넷을 통해 현규하를 접했을 테고, 현규하는 그를 기억조차 하지 못했겠지.

    딱히 부서를 옮길 이유도 없으니 민원실에서 계속 근무를 했을 테고, 헌터 라이선스 같은 걸 취득할 이유도 없고, 이혜연이나 다른 이들도 만날 일 없고, 평행 세계 같은 곳으로 넘어갈 이유도 없이, 계속, 계속, 계속.

    지금도 변함없이 민원실에서 민원인을 상대하고 있을 자신을 머릿속에서 그려 보았다. 고단한 몸을 끌고 퇴근한 뒤 6세와 놀아 주면서 혼자 저녁 식사를 하고, 가끔 박승기와 만나 스트레스를 풀고. 계약 만료가 되는 날짜를 떠올리며 구직 사이트도 찾아보고.

    단조롭고 평탄한 일상의 하루하루.

    현규하가 없던 그 전까지의 일상이 무의미하였느냐 물으면,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할 수 있다. 박승기도, 달가사의 다른 식구들도 자신에게는 과분할 만큼 좋은 인연이다.

    잘못된 것은 화마가 펜션과 부모님을 집어삼킨 8살의 그 순간에 머물러 있는, 자신 하나뿐이다.

    그리고 현규하는.

    현규하는…….

    “누구게요.”

    불명확하게 수런거리던 가슴 안의 울림이 온화하게 사르르 녹아든다. 그곳을 다시 채우는 건 기다림의 끝을 채색하는 반가움과 기쁨. 인유신은 제 눈을 가린 익숙한 가죽의 질감에 작게 웃었다.

    “규하 씨요.”

    “땡.”

    “아니에요 그럼 현규하 씨.”

    “땡.”

    여기서 ‘규하 형’이라는 대답을 했다가는 뒷일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음……. 바, 반려 쥐”

    “애완이요. 조금만 더 해 봐요.”

    “……제 애완쥐”

    “정답은 ‘주인님의 두 번째 사랑을 받는 애완쥐’입니다.”

    눈을 가린 손을 내린 현규하가 그의 머리 위에서 고개를 숙였다. 연한 색의 머리칼이 한 올, 한 올 흘러내렸다. 거꾸로 봐도 잘생겼다. 현규하라면 왜곡된 거울로 봐도 잘생기지 않았을까

    “안 들어가고 뭐 하고 있었어요”

    “산책하다가 허 부장님이랑 만나서 얘기를 좀 했어요.”

    “잔소리 들은 건 아니죠 그 인간이 좀 꼰대 기질이 있어서.”

    “저한테는 규하 씨보다 잔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이 없는데요.”

    “네에 그게 잔소리로 들렸어요 규하는 충격이에요.”

    “……!”

    겨우 1박 2일 다녀오면서 틈이 날 때마다 이런저런 참견을 퍼부었던 게, 잔소리가 아니라면 뭐지

    인유신이 짧은 혼란에 빠진 사이 현규하는 벤치의 등받이를 짚고 훌쩍 몸을 날려 옆자리에 앉았다.

    “잔소리가 아니라 뭐였는데요”

    “주인님을 걱정하는 애정 어린 조언에 더하여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식사를 할 때도 나를 떠올리라는 사심이죠.”

    결국 잔소리가 맞잖아. 인유신이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니 그가 괜히 기운 없는 척 눈썹을 늘어뜨리며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앉은자리에서 세계 일주를 하고 왔더니 너어무 피곤한 거 있죠.”

    “세계 일주요”

    “아버지 능력으로 온갖 곳을 다 둘러볼 수 있더라고요. 시간 끄느라고 관심도 없던 세계 구경이나 시켜 달라고 해서 그걸 보고 왔어요.”

    무엇을 보았는지, 인유신에게는 굳이 일일이 전하지 않았다. 그가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구에 비례하는 각성자의 총원보다 열리는 게이트가 월등히 많을 때 어떤 지옥이 펼쳐지는지. 수백만 명이 자연재해로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신들이 전전긍긍하는 ‘멸망’이 무엇인지.

    이 세계에, 인간의 희망은 없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