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1화 (171/214)

알림창이 사라지지 않았다. 공간이 왜곡되어 있는지 밖에서 관찰했던 것보다 스토얀은 그를 더욱 안쪽으로 안내했다.

마침내 스토얀은 가장 깊숙한 곳에 있던 방의 문을 열었다. 문살에 창호지가 발린 평범한 문을 열자 시간을 건너뛰기라도 한 것처럼 광경이 일변했다. 스토얀이 인간이었을 시절에 살았을 법한, 아주 오래된 기억 속의 낡은 가옥.

그곳에 현소라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엄마.”

신음에 가까운 낮은 부름이 힘없이 입술 사이로 흘렀다. 그를 버리고 갔을 때로부터 전혀 변하지 않은 어머니의 모습이 인식된 순간, 새하얀 뇌전이 작렬한 것처럼 머릿속이 텅 비었다.

걸어야 한다는 의식을 하지 못했음에도 다리가 휘청휘청 움직이고, 시야는 일렁일렁 흐려졌다가 깜빡거리기를 반복했다.

“엄마, 나야. 규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이아드로 가는 열쇠를 얻기 위해, 무수히 새겨 넣어야만 했던 지독한 고독과 괴로움이 쓸려 나가듯이 사라졌다. 어머니를 찾았으니 되었다. 만났으니 되었다.

〈내가 어머니를 좋아하는지, 원망하는지, 보고 싶은 건지, 보고 싶지 않은 건지 이제는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닳고 닳은 감정이 지치고 힘들어서 퇴색되었을 뿐 계속, 계속 어머니가 그리웠다.

“엄마. 자고 있는 거야 아픈 건 아니지”

현소라는 그의 대답이 들리지 않는지, 여전히 눈을 굳게 감고 투명한 관 속에 누워 있었다.

……관

멍한 손길이 유리로 된 관 위를 더듬었다. 관, 관이라니 어째서 침대도 아니라, 관 왜 왜

“……어머니, 왜 여기에 있어요”

등 뒤에 있을 한 사람의 존재를 간신히 떠올리고 묻자, 스토얀은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이 얼굴을 갸웃했다.

“파계 스킬을 준 소라가 이아드로 어떻게 가려 했는지 얘기 못 들었어”

“……침식 게이트에서 찾으려 한 게 아니었어요”

“그러니 하는 말이야.”

스토얀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투로 읊조렸다.

“침식 게이트를 넘어온 사람이 살아 있을 리가 없잖니”

  

현소라는 식당의 넓은 창밖으로 매연이라고는 없이 푸르기만 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조선’은 그녀가 알던 한국과 많은 것이 비슷하지만 또 많은 것이 달랐다. 마법이 일상화가 되어 깨끗한 환경부터, 멸망으로 치닫는 세계라는 것까지.

한때 40억 명을 돌파했다던 지구의 인구는 우하향하고 있었으며, 농사는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되었다. 여행자에 불과한 그녀도 이 세계의 상황을 알고 난 뒤 착잡해졌는데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여기는 며칠만 있다가 돌아가야겠다.’

현소라가 ‘파계’라는 고유 능력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은 게이트가 열린 뒤의 세계로 한정된다. 게이트 내의 던전이 평행 세계의 파편이니, 게이트가 열려야 평행 세계 간의 이동 통로도 연결되는 게 아닌지 추측할 따름이었다.

능력을 각성한 이후 숱한 세계를 넘나들었던 현소라에게도 이곳, 이아드라 불리는 세계는 꽤 흥미로웠다. 수백 년 전에 게이트가 열렸던 탓에 고립되었던 기간이 길어서 독특하게 보존된 전통문화는 상상력을 자극했다.

멸망이 진행 중인 세계라는 걸 알게 되기 전까지만 해도 장기간 머물 예정이었다. 그래서 어느 세계든 화폐로 통용되는 결정석을 넉넉하게 환금하기도 했다.

‘나는 관계없는 사람이라며 여행하는 기분으로 지내는 건 여기 사람들에게 도리가 아닌 것 같고.’

서울 근교만 둘러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밥을 한술 떴다. 감칠맛 나는 매운 양념은 그녀의 고향과도 비슷했다.

‘고추가 전래된 시기는 여기가 더 빨랐던가’

그렇게 남은 식사를 이어 가던 중이었다. 비어 있던 맞은편 의자에 갑자기 웬 소녀가 털썩 앉았다.

〈한심한 것아. 너는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이야〉

현소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껏해야 십 대 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낯선 아이가 대뜸 하대하는 것만으로도 황당한데, 심지어 타박하는 어투다.

〈누구니 나 알아〉

사람을 잘못 본 건가 싶었는데 소녀는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나는 너를 모르지. 하지만 나에게 신명을 내리신 분은 너를 아주 잘 안다. 너는 세계를 떠도는 유랑자로구나.〉

〈뭐〉

〈이전에 네가 머물렀던 세계에서 나처럼 신을 섬기는 무당으로부터 바리공주의 전언을 들은 적이 있지 않더냐〉

그제야 소녀의 정체를 짐작한 현소라는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만신(무당을 높여 칭하는 말)이신가요〉

〈흥.〉

소녀는 짧게 코웃음을 쳤다. 세계를 여행하던 중, 소녀와 같은 만신을 통해 그녀에게 흥미를 느낀 바리공주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현소라의 고향이 ‘철의 시대’라 불린다는 걸 알려 준 신도 바로 바리공주였다.

〈바리공주께서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너는 언제까지 세상을 유랑할 생각이더냐〉

〈뭐, 죽기 전까지 이렇게 살지 않을까요〉

〈그것은 네 자유다만, 네 어미의 수명이 앞으로 10년밖에 남지 않았다.〉

〈예!〉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라고 바리공주께서 말씀하시는구나. 잠깐 스친 인연이나마 그분이 다시 너를 보게 되셨으니 내가 전하는 것이다.〉

그 말을 남긴 소녀는 현소라를 남겨 두고 식당을 나갔다. 거리를 거닐다가 창문으로 우연히 목격했던 거였는지, 소녀는 곧장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현소라는 창백한 안색으로 이마를 감쌌다.

‘……엄마가 엄마가 10년밖에 못 살아’

정처 없이 세계와 세계를 유랑하면서도 그녀가 반드시 돌아올 수 있는 건 어머니라는 이정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어진 피가 짙은 혈육은 무한한 세계를 떠돌다가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이정표다.

일제 치하에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생존하여 귀국한 집안사람은 할아버지 혼자였다. 할아버지의 슬하에는 4남매가 있었지만 6·25와 카타스트로피를 겪으며 죽거나 실종되었다. 막내딸, 즉 그녀의 어머니 하나만 남았으며 현소라 또한 다른 형제자매가 없었다.

어머니가 사망한다면 현소라가 이정표로 삼을 수 있는 혈육은 없다. 여행을 떠난다면 두 번 다시 철의 시대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 따위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무게 앞에서 사소한 문제가 되었다.

현소라는 덜덜 떨리는 손을 감싸 쥐었다.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미쳐서, 자신을 붙잡는 어머니와도 절연하여 집을 뛰쳐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남은 시간은 10년. 평행 세계의 여행과 어머니와의 화해.

저울에 올릴 필요도 없는 사안이었다.

‘당장 돌아가야겠어.’

현소라는 얼마 먹지도 않은 식사를 계산하고 서둘러 식당을 나왔다.

‘엄마가 날 믿어 줄까 어떻게 사과하면 되지’

고민으로 가득한 머릿속에 문득 하나의 아티팩트가 떠올랐다. 얼마 전 던전에서 우연히 획득한 ‘후긴의 눈’이었다. ‘후긴의 눈’은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아티팩트. 어머니는 E급이지만 각성자이니 이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 있다.

특히 경호 용도로 가치가 높은 아티팩트인 ‘후긴의 눈’을 던전에서 획득하자 금세 소문이 났었다. 경매에 올리라거나 긴히 팔아 달라는 은밀한 접촉이 있었으나, 현소라는 전부 거절했다. 정확한 이유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제야 알겠다. 역마살이 낀 듯 평생을 유랑하며 살아온 그녀도 돌아갈 곳이 필요했다는 걸. 언젠가 이 아티팩트를 어머니에게 주고 싶었다는 걸.

‘내 위치를 어머니에게 늘 공유하겠다고 하면 용서해 주지 않으실까……. 그래, 그렇게 해야겠다.’

결심한 현소라는 서울에서 가장 높은 북한산으로 향했다. 지각이 변할 정도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은 이상 지형은 대개 비슷하다.

파계 스킬을 이용하여 세계를 넘어가면 동일한 위치로 이동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A 세계에서는 공터였던 곳이 B 세계에서는 도로 한가운데라면, 세계를 넘어가자마자 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 때문에 현소라는 그나마 사람의 손이 덜 닿았을 산의 정상 근처에서 세계를 이동했다.

‘북한산에서 내려올 때 어느 쪽으로 왔었지’

기억을 더듬어 가며 걷고 있을 때였다.

〈여행자이신가요〉

귓가를 부드럽게 스치는 젊은 남자의 음성이 불현듯 발을 붙잡았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현소라의 시선에 옅은 호박색 눈동자가 담겼다.

투명하리만큼 맑은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현소라는 알게 되었다.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10년밖에 살지 못할 어머니 어머니와의 화해 그딴 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에게 삶을 바치는, 앞으로의 미래까지 그의 발밑에 꽃길처럼 깔아 주는, 그에 제 모든 것을 잃고 파멸한다 하여도 영원히 변치 않을 맹목적인 사랑을, 현소라는 하게 될 것이다.

〈안녕하세요. 지금은 나도 비슷한 처지랍니다.〉

현소라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돌아오니 6세와 8세는 은신처에 포개져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인유신은 큰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옷을 갈아입고 씻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재미가 없어서 그냥 누웠다.

‘규하 씨는 얘기 잘하고 있을까’

던전에서, 병원에서, 별장에서, 그리고 이아드로 오기 직전에는 집에서도.

현규하와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지낸 적이 아주 없지는 않다. 얼떨결에 동거하게 되었어도 그때랑 비슷할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그가 있고, 다른 방에 있더라도 부스럭거리는 인기척과 생활 소음이 들려왔다.

괜히 긴장하게 되어 옷매무새도 몇 번씩 가다듬고, 등줄기를 꼿꼿하게 세웠다. 그러다가 방심해서 털버덕 늘어졌을 때 현규하와 눈이 마주치면, 눈가를 부드럽게 휘는 미소가 돌아왔다.

자는 사이에 현규하가 늘 먼저 일어나서 침실 밖에 나가 있지 않았다면, 아침마다 무척 곤란해졌을 것 같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우리 집에서 규하 씨가 하룻밤씩 자고 갈 때만 해도 안 그랬는데.’

이것은 변화일까. 의문은 금세 확신으로 바뀐다. 변화가 맞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시작된 변화. 인유신은 현규하가 없음에도 그의 잔향이 은은하게 맴도는 듯한 집 안의 공기에 푹 파묻힌 채 눈을 감았다.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다. 눈을 떴을 때는 사위가 어두컴컴했다.

‘어, 지금이 몇 시지’

이 시간까지 귀가하지 않은 걸까. 괜히 허둥지둥하는 마음에 일어나려다가 멈칫했다. 현규하다. 누워 있던 소파 옆에 현규하가 웅크리고 있었다.

“언제 왔어요”

“……아까요. 유신 씨가 자고 있어서.”

“그냥 깨워도 되는데. 얘기는 잘했어요”

“…….”

“규하 씨”

신음처럼 억눌린 숨소리만이 희미하게 울렸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인유신은 현규하의 손을 붙잡았다. 가늘게 떨리던 손끝이 인유신의 손바닥 안으로 움츠러들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어머니를.”

아까는 목소리가 워낙 작아서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그의 음성은 거친 잡음이 낀 것처럼 탁하게 쉬어 있었다.

“어머니를, 만났는데……. 관에 누워 있더라고요.”

관. 그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를 인유신이 이해하기에 앞서 스러지는 듯한 흐린 음성이 깨닫게 했다. 현소라와 그의 만남이 어떠했을지. 그가 무엇을 보았을지.

인유신은 말없이 그의 등을 안았다. 어깨에 얼굴을 묻은 현규하의 떨림이, 차츰 격해지는 슬픔이, 인유신의 가슴까지 우렁우렁하게 적셨다.

  

“그 애는 뭘까 소라, 내 자식이 맞긴 하지”

현소라의 주검을 안치한 유리 관에 기대어 앉은 채 스토얀은 아쉬움을 흘렸다.

그녀가 죽었다는 걸 알고 무척 동요하였기에 다시 현혹을 걸어 보았으나 통하지 않았다. 정말 테이밍이라도 당했나 주인이라던 그 인간의 고유 능력이 엄청나게 희귀한 동물 테이밍이긴 했는데. 개중에서도 설치류에 한정된 건 처음 보는 경우지만.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없고 비웃음이 나오는 가설이었기에 바로 폐기했다.

사실 더 어처구니가 없던 건 현소라의 죽음에 동요하던 그 아이였다. 왜 놀라워하는 거지 반신에 가까운 커프크니마저 침식 게이트로 넘어가면서 존재가 소멸되는데, 한낱 인간에 불과한 현소라가 무사할 리가 있나.

‘그런 추측도 못 할 정도였나’

기왕 머리가 둔하다면 제 설득에 순순히 따라 주는 편이 좋으련만.

어머니의 시체에 충격을 받을 정도이니 전 인류를 향한 무한한 이타심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스토얀은 저를 바라보던 아들의 시선을 떠올리며 조소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겠고 관심도 없지만, 그 녀석도 아주 혹독한 배신을 당한 모양이다. 부모와 온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던 어린 시절의 자신처럼.

“정말 나를 닮긴 닮았네. 내 자식이 맞나 보다.”

유리 관을 손가락으로 톡톡 리듬감 있게 두드리며 스토얀은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를 닮은 자식은, 아버지의 운명도 함께해야만 도리가 아니겠니. 그것만이 네가 태어난 이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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