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각성자와 헌터도 줄어들었으나, 게이트의 출현 빈도까지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국내의 헌터를 강제 징집 하다시피 등록하고, 귀화하는 외국의 헌터도 적지 않은 헵타곤이 만성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이유였다.
그 때문에 한양 지부장인 허정현까지 현장을 뛰고 있었다.
‘뭐, 외국과는 달리 전 국토의 대부분을 방어하고 있는 대가라면 갈리는 것도 할 만하지.’
게이트가 세계에 최초로 열린 지 수백 년이 지났다. 긴 시간 쌓인 노하우가 있으니 게이트 출현 시각의 관측은 오차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설렁설렁 성신방까지 간 허정현은 한쪽 눈썹을 추어올렸다. 분명히 대피령이 떨어졌는데도 공원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민간인이 둘이나 있었다.
“이…….”
‘이봐.’ 하고 그녀가 소리 높여 그들을 부르기도 전에 마나가 응집되며 허공에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민간인부터 보호하기 위해 단번에 몸을 날리려 했으나, 민간인 중 키가 큰 남자가 칼을 뽑는 게 먼저였다.
‘아공간 저 남자도 헌터인가’
얼마나 자신만만하기에 대피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지 한번 보기나 하자, 라는 심정으로 허정현은 팔짱을 꼈다. 관찰하던 시선은 이내 놀라움이 되었다.
남자는 대단히, 아니 대단히라는 부사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허정현은 곰곰이 고민했지만 빈약한 어휘 실력 탓에 그럴듯한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튼 대단하고 대단한 실력의 화염술사였다.
불꽃으로 된 칼날에서 뻗어 나가는 백색의 화염이 파도처럼 일어나 마수 떼를 덮쳤다. 불길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재가 된 마수의 사체와 결정석뿐이었다.
허정현은 혀를 내둘렀다.
‘불꽃을 보니 저 칼은 더르누인(영국의 전설에 나오는 무기) 같은데, 조선에 있었던 건가 저만한 실력자가 어떻게 지금까지 묻혔던 거지’
더르누인은 생지급의 헌터가 아니라면 칼날에서 불길이 치솟기는커녕, 평범한 철검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티팩트였다.
‘최 팀장보다는 확실히 강하겠고, 나와 비슷하려나’
그 남자의 뒤에 있는 앳된 청년은 황금색의 실드 코어에 감싸인 채 얌전히 서 있었다. 누가 봐도 남자가 청년을 보호하는 모양새였기에 어떤 관계일까 고민하던 때였다.
타다다당!
뜬금없는 총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난입한 사람을 본 허정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토얀과 판박이였다. 그제야 저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최진혁이 어제 회령에서 데려온 사람들이다.
‘저 친구는 비행술사인가 총알에 마나 코팅을 한 거 같은데, 마나가 썩어 넘치나 보군.’
추측이 틀렸다는 건 곧 알게 되었다. 그는 아공간에서 소총을 한 정 더 꺼내더니 그 총은 그대로 허공에 띄운 채 조작했다. 염력술사였다.
그는 화염술사 남자와는 다른 의미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마수 떼를 쓸어 버렸다. 좋은 동료 사이로 보였다.
“지금 누구한테 총을 쏘는 거야!”
“네가 뒤통수에 눈깔 달고 알아서 피했어야지.”
아니다. 동료는 아닌 모양이다.
염력술사까지 합세하자 허정현이 나설 필요도 없이 갑형 게이트는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저들을 헵타곤에 협력하게 할 수만 있다면. 야근과 과중한 업무에 찌든 허정현의 낯에 활기가 돌았다.
두루마기를 탁탁 털고 옷매무새를 정돈한 허정현은 비지니스 스마일을 방긋 올리며 걸어갔다. 모쪼록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첫인상이 좋아야 한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들이 먼저 알아보았다.
“……허정현도 있었나.”
한 발 이르게 화염술사가 반응했고.
“빌딩이 낮아서 날아다니기는 편한데 길거리가 낯설다 보니까 좌표를 띄워 놓고도 좀 헤맸어요.”
염력술사는 알아보는 눈치이긴 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실드 코어를 거둔 청년을 끌어안으며 그의 정수리에 볼을 비비적거렸다.
“어, 안팡의 부길드장님”
제일 마지막으로 청년이 탄성을 질렀다.
파견원들이 현장을 분주히 정리하는 가운데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최 팀장에게 다른 세계 어쩌고 하는 얘기는 들었는데 진짜였구만. 거기서 내가 뭐라고 길드는 또 뭐고”
“헌터들이 모여서 만든 사적인 무력 집단이다.”
민간의 군사 기업이나 다름없는 무력 집단들이 나라마다 있는데도 사회 체제가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게 허정현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을 꼬실 때였다.
“너희 둘 다 최소 생지급의 헌터로 보이는데 우리랑 일 같이 할래”
총성이 들리자 안심하고 기절한 8세를 보듬는 인유신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던 현규하가 시틋하게 내뱉었다.
“생지급 헌터라니 들을 때마다 적응이 안 되네요. 조선어든 영어든 둘 중 하나만 할 것이지 희한한 혼종이잖아요.”
“헌터와 서번트, 서번트 태블릿 같은 표준 용어를 재정립할 때 조선어 쓰는 인구가 영어 인구에 비해 쪽수가 후달렸거든. 등급을 나누는 분류는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근래에 다시 정의한 거야. 아무래도 각성자들의 숫자가 많이 줄었다 보니.”
등급은 위부터 차례대로 생지(生知), 학지(學知), 곤지(困知), 하우(下愚)였으며 그 안에서 다시 정(正)과 종(從)으로 분류했다. 이에 따르자면 현규하와 공태성은 생지 정급이고, 인유신은 하우 종급이다.
영입 제안을 들은 공태성은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상관없다만 개인적으로 경호 업무를 하고 있다. 자유롭게 시간을 빼도록 해 줄 수 있나”
“정식 요원으로 입사하는 게 아니니까 문제없긴 한데, 팀원들까지 스케줄을 맞추려면 힘들지 않겠냐”
“팀원이 왜 필요하지”
자신만만한 말투에 허정현은 푸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맞네, 맞아. 나도 특별한 문제 아니면 팀 없이 혼자 다니는데 너도 그러겠지. 좋아, 이따가 계약서 쓰자고. 그리고 현규하라고 했지”
“데이트할 시간도 없는데 뭔 헛소리예요.”
허정현이 미처 묻기도 전에 현규하는 툭 하고 던지는 말로 대답했다.
“데이트…….”
허정현의 시선이 멍하니 인유신과 현규하를 훑었다. 인유신은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여기에서는 두 사람이 공인된 커플이 아니었다.
인유신은 오랜만에 머쓱한 웃음으로 그녀의 시선에 답했다.
“데이트. 그래, 데이트. 중요하지……. 어어.”
난데없는 대답에 허정현이 적응을 하든 말든 현규하는 당당히 손을 내밀며 요구했다.
“그거는 그거고, 오늘 잡은 마수 값은 따로 줘요. 여기에서도 결정석은 팔릴 거 아니에요”
십수 년간 통장에 돈이 얼마 있는지 확인도 안 하고 쓰는 삶을 살아왔던 현규하는 현실적인 위기감을 나름대로 느끼고 있었다. 인유신을 잘 먹이고 잘 살게 하려면 최진혁에게 받은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돈 필요하면 헵타곤에 알바는 뛰러 갈게요.”
그렇게 현규하는 허정현에게서도 뜯어내는 데 성공했다.
8세는 아파트로 귀가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삐이이…….”
용기를 쥐어짠 여파 탓인지 축 늘어진 8세에게 버프를 해 주며 인유신은 오늘 최진혁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현규하는 출생률 감소로 인한 인구의 하락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들었다.
“저번에 규하 씨가 말했던 올리비아 맥도웰도 아이를 가져서 귀화했대요.”
“오, 유전자를 보존하겠다는 욕구가 국뽕을 이겼네요.”
“모성애가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요”
“오, 모성애가 국뽕을 이겼네요.”
현실이 어떠한지 이야기하는 인유신의 표정은 왠지 복잡해 보였다. 그 이유가 짐작되었기에 현규하는 입 속에서 거듭하여 말을 골랐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온 걸 후회해요’라는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 말의 기저에 있는 것이 인유신에 대한 걱정이라 하여도, 오직 자신 하나를 위해 따라온 그에게 하기에는 온당하지 않다.
대신 현규하는 옆에 앉은 인유신의 어깨를 당겨 안으며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인유신의 얼굴에 드리웠던 그늘이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유신 씨랑은 달리 나는 별로 성과가 없었어요. 아버지를 못 만났거든요.”
“집에 없었어요”
“아예 집을 없애 버렸더라고요. 결계 같았는데, 여기는 마법을 숨 쉬듯이 쓰니까 환영 마법 같은 것일 수도 있겠네요.”
말하다 보니 생각났는데, 바이크를 그대로 스토얀의 집 앞에 팽개치고 왔다. 재수 없으면 문 열고 나오다가 스토얀이 바이크에 무릎을 처박는 일이 있지 않을까 목격하면 꽤 즐거울 거 같다.
“대신 ‘무닌의 눈’이 반응을 하더라고요.”
‘무닌의 눈’과 ‘후긴의 눈’, 두 세트 아티팩트에 관한 추측을 들은 인유신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고래한테 물어보면 어떨까요 오늘 얘기 들어 보니까 세트 아티팩트가 반응하는 조건은 알고 있을 거 같아요.”
“……!”
[현재 상태 애정. 살의. 벅차오름. 감격. 놀라움. 뿌듯.]
애인의 천재성에 북받치는 감격의 시간을 보낸 현규하는 겨우 진정하고 공태성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야, 고래 불러 봐.”
종놈 부리듯 공태성을 고래 셔틀로 활용하여 곧 대답을 얻어 냈다.
“같은 세계에서 습득한 아티팩트만 세트로 묶인다네요.”
“아, 그렇다면…….”
인유신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현규하가 낮게 웃으며 그런 그의 머리칼을 살살 매만졌다.
“그렇지만 어머니 외에도 파계 스킬을 가진 사람이 30년 전에 이아드에 왔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흉터도 많고 단단한 헌터의 손이, 인유신의 머리칼을 어루만질 때는 더없이 보드라웠다. 그리고 인유신은 그 보드라움이 좋았다.
〈14년 전에 절 구해 준 사람이 규하 씨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순간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규하 씨가 절 구해 주지 않았어야 했는데, 하고.〉
그렇게 이기적인 말을 해도, 여전히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 주는 그의 손길이.
완전히 풀린 얼굴로 손길을 음미하던 인유신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현규하가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30년 전이라는 단어가 낯선 이질감으로 가슴에서 튀어 올랐다.
“스토얀이 조선에 온 게 30년 전이었다고 최 팀장님이 그랬죠”
“그랬죠.”
“만약 ‘후긴의 눈’이 규하 씨 어머니가 갖고 있던 아티팩트가 맞는다면, 이아드에 도착하신 게 30년 전쯤이란 뜻이죠”
“‘후긴의 눈’과는 상관없이 30년 전이 맞아요. 예전에 얼핏 들었던 적이 있거든요. 아버지와 연애질을 하고 나를 임신할 만한 행위를 하던 기간을 생각하면 대충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그럼요……. 스토얀은 왜 갑자기 자기 고향을 떠나서 이 먼 곳까지 온 걸까요 그것도 하필이면 딱 30년 전에요.”
30년 전.
30년 전 스토얀은 한양으로 거처를 옮겼고, 30년 전 현소라는 세계를 넘어 한양에 다다랐다. 그리고 사랑에 빠져, 아이를 가졌다.
“…….”
현규하의 표정이 선뜩하게 굳었다.
이전까지는 우연히 스토얀과 어머니가 만나서 눈도 맞고 배도 맞았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스토얀이 세계 어디를 가든 제 맘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아드에 온 뒤에야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토얀은 30년 전 갑자기 한양에 오기 전까지, 기원전부터 루마니아와 세르비아 일대에만 머물렀다는 것을.
마치 현소라를 만나기 위해 긴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던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이동한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소슬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슥한 밤이었다. 현규하는 창틀에 걸터앉아 ‘무닌의 눈’을 만지작거렸다. 언제 ‘후긴의 눈’의 행방을 알렸냐는 것처럼 도래까마귀 형상의 아티팩트는 조용하기만 하다.
‘……정말 어머니가 갖고 있을까.’
속단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타이르고 있는데도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제삼자가 객관적으로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를 본다면 20년이 되도록 찾아 헤맬 이유는 없다고 여길 것이다. 현규하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기억이란 주로 보육원에 그를 맡기고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뒷모습이었으니까.
어렸을 때야 그런 어머니도 하염없이 좇았다. 나이가 들고 버림받았다는 걸 깨달은 뒤에도 마음 한구석에 늘 그리움을 품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엄마가 미안해. 널 낳아서 정말 미안해…….〉
실종되기 전날 밤, 아버지를 찾아가기 전날 밤, 그를 버리기 전날 밤. 바로 그 밤에. 그를 부둥켜안으며 흐느끼던 어머니의 눈물이 가슴에 맺혀 있기 때문이리라.
어머니를 찾게 된다면, 맺힌 이 눈물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규하 씨 아직 안 자요……”
자다가 목이 말라서 깼는지 인유신이 잔기침을 하며 문을 열었다. 눈이 제대로 안 떠져서 흐느적거리는 걸음이 불안해 보였기에 현규하는 사이코키네시스로 슬쩍 그를 올려 자신에게 옮겼다.
갑자기 올려져서 쭈뼛거릴 만도 한데 잠이 덜 깬 탓인지 인유신은 착 안겨 왔다. 아까까지 자고 있어서 그런지 살결이 따끈따끈한 게 기분이 좋아서 현규하는 뺨을 맞대며 문질렀다.
내내 속을 시끄럽게 굴던 상념이 그를 품에 안으니 잔잔히 잦아드는 게 느껴졌다. 신기하기도 하지. 현규하는 그로 인한 자신의 변화가 때때로 놀라웠다. 그 지독한 권태감만이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다.
“으음…….”
작게 하품한 인유신이 눈을 감으며 기댔다. 무방비하게 늘어진 그를 세차게 부둥키고 살갗에 깊이 얼굴을 묻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눈꺼풀에 입맞춤만 떨어트렸다. 살결에 피부가 스치는 찰나에도 심장이 뻐근해져서 곤란했다.
정말 곤란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