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153/214)

[앙리 레이몬드 샤를 프랑소와즈 7세가 소유한 ‘스토야의 심장’이 훼손되었습니다.]

[이아드와 연결된 통로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빛 무리가 사라졌다.

“…….”

“…….”

“…….”

『…….』

무거운 침묵이 하강했다.

세 명의 사람과, 하나의 신어가 할 말을 찾지 못한 가운데.

“뀨우우”

바닥에 착지한 8세만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깜찍한 포즈로 갸웃거렸다.

  

“음”

긴 의자에 잠이 든 것처럼 기대어 있던 청년이 나른한 눈을 반개했다. 옅은 호박색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문이 열리자마자 다시 닫혔네 어떻게 된 걸까.”

청년은 허공에 불투명한 창을 하나 띄웠다. 문이 잠깐이나마 열렸던 지역의 이름은 이 땅에서 강화도라 칭하는 섬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이변은 없었다. 그는 의아하다는 듯 우아한 긴 손가락으로 턱을 리듬감 있게 토옥, 톡 두드렸다.

“그 아이가 건너왔으면 내가 바로 감지했을 텐데 말이지. 무언가 사고라도 있었나……. 어쩔 수 없지. 세계를 연결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커프크니를 다시 보내 볼까 남아 있는 커프크니가 있던가 소라, 너는 어떻게 생각해”

시선을 내리며 물어보았지만 눈꺼풀을 내리감고 고요히 잠이 든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청년은 웃으며 그녀의 이마를 어루만지듯 손을 허공에서 움직였다.

“무슨 사고가 발생했든, 우리 아들은 꼭 데려올 거야. 그러니까 그 아이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무섭도록 무거운 침묵 끝에, 현규하는 신음하며 머리를 눌렀다. 9살에 만났던 세 번째 우르시토아레가 가라앉혀 준 뒤에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느껴지지 않던 끔찍한 두통이 급격하게 치밀어 올랐다.

‘나에게, 우리의 세계로 오려무나. 내 아들아.’

저주 같은 그 울림과 함께.

현규하의 잇새에서 으득 이가 맞물리는 섬뜩한 소리가 씹혔다. 반지를 쓰지 못하게 했던 건, 결과적으로 인유신이 무사했으니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 일은.

거의 평생 품어 온 살의가 방향을 달리하여 급격히 끓어올랐지만 저 쥐는, 인유신의 것이다. 그 괴리감에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현규하의 굳은 턱에 핏줄이 곤두섰다.

인유신도 무턱대고 8세를 감싸지는 않았다. 새파랗게 질려서 8세를 다그쳤다.

“8세야! 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 어쩔 작정이야!”

“찍!”

얼굴을 도리도리 흔든 8세가 주인의 몸을 쪼르르 기어올랐다. 오른쪽 어깨까지 빠르게 올라온 8세는 짧은 앞발을 내밀어 인유신의 귓불을 톡톡 쳤다. 바로 귀속 아티팩트의 문양이 새겨진 곳이었다.

“아티팩트 지금 아티팩트를 쓰란 말이야”

“삐엥!”

“아니, 지금 아티팩트 문제가…….”

“미유웅! 뿌웃!”

입만 쩍 벌린 채 굳어 있던 솜노로스가 뒤늦게 더듬더듬 말을 전해 주었다.

『어, 어……. 그, 그게 일단 써 보면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라는데……. 아, 일부만 해방하면 된대.』

시원한 해명은 아니었지만 8세의 눈빛도 진지했고,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도 없었기에 인유신은 당혹한 심정으로 귀속 아티팩트를 시전했다.

[귀속 아티팩트 ‘일곱 문 너머의 세계’를 일부 해방합니다.]

명계로 하강하는 인안나의 환상이 빠르게 뇌리를 스치고, 인유신의 머릿속으로 어린 소녀의 음성이 울렸다. 의념(意念)으로 전해지는 음성이었다.

『드디어 만나게 되는구나! 성공해서 정말 다행이야! 사실 도박이나 다름없다 보니 거의 포기하고 있었거든. 아아, 둠네제울이시여. 감사합니다.』

“누, 누구세요”

인유신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처럼 입을 열자 현규하와 공태성도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를 주목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놀란 한편으로 인유신은 기시감을 느꼈다. 분명히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그리고 방금 전에도.

“저어, 규하 씨랑 성인 할머니들을 만날 때마다 도와 달라는 목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거든요. 혹시…….”

『역시 너는 규하와는 달리 내가 열쇠에 심어 놓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구나! 규하의 머릿속엔 다른 음성이 깃들어 있거든.』

목소리의 주인은 잔뜩 흥분한 어조로 재잘거렸다.

『길게 얘기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네. 나는 스토야라고 해. 규하의 고모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디까지 알고 있니』

“그, 지하에 묻히셨다는……”

『응, 맞아. 내 심장을 쓰지 못하게 한 게 칼리칸트자로스니』

“네. 훼손되었다는 메시지가 나왔어요.”

『놀라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바로 이아드로 건너오면 안 되었거든. 이아드로 넘어가자마자 스토얀이 규하를 감지하게 될 텐데, 그 전에 꼭 너희와 만나고 싶었어.』

“다시 문을 열 수 있는 거예요”

『정확한 시기를 답할 수는 없지만 가능해. 언젠가 너희 세상에 세계의 틈이 열리거든, 그곳에서 내 심장과 혈계를 사용하렴.』

사용법을 빠르게 설명한 스토야의 목소리가 환해졌다. 실제로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웃음을 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규하와 같이 있는 거지』

“하실 말씀이 있다면 전해 드릴까요”

『아니야. 나중에 직접 만나게 되면 말할게. 그보다, 넌 이름이 무엇이니』

“인유신입니다. 인이 성이고 이름이 유신이에요.”

『응, 유신. 규하와 만나 줘서 정말 고마워. 규하의 곁에 있어 줘서 정말 고마워.』

그 말을 끝으로 스토야의 목소리는 어둠 너머에 잠기듯이 사라졌다. 귀속 아티팩트를 다시 써 봤지만 그 목소리가 재차 들리는 일은 없었다.

내내 입을 닫고 있던 현규하가 낮게 물었다.

“……고모를 만났어요”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에 얼이 빠진 인유신은 더듬더듬 대답했다.

“어어, 그런가 봐요. 그것보다 세계의 틈을 통해서 ®ÀÇ로 갈 수 있다고 하는데요…….”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한곳으로 향했다. 정신없이 인유신의 말을 듣고 있던 솜노로스가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을 뒤늦게 깨닫고 눈을 끔뻑거렸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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