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4화 (144/214)
  • 꽤 시간을 낭비하고, 또 다쳤지만, 보스 몬스터의 사냥은 성공했다. 삼승이 어떻게 손을 썼는지 아이는 한 번도 깨지 않았고, 잠든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사이코키네시스를 역장처럼 응용하는 방법도 깨우쳤다.

    마침내 게이트를 클리어했다. 밖은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현규하는 상처를 치료하기도 전에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제일 먼저 다급히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아이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긴장이 탁 풀리자 그제야 상처가 욱신거리면서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규하야! 무슨 일이야 다쳤니〉

    화장실에 가러 나왔다가 온몸이 피범벅인 현규하를 발견한 교사가 크게 놀라서 달려왔다.

    현규하는 그 전에 아이를 건물 뒤쪽의 그늘에 눕히는 데 성공했다. 방금 다녀온 침식 게이트는 생기가 쇠락하여 멸망하는 세계였으니, 인체에 해가 되는 건 일절 없으리라는 세 번째 우르시토아레의 설명이 있었다.

    그렇다면 꼬맹이도 안전할 테니 아예 이 상황과 무관한 게 나았다. 게이트를 클리어한 자신과 엮였다가는 괜한 구설수에 오를 것이다.

    현규하는 급히 달려오는 교사를 막아섰다.

    〈저 격리해야 하니까 오지 마세요.〉

    〈뭐라구〉

    〈침식 게이트에 빠졌다가 돌아왔거든요.〉

    그 말을 끝으로 마나를 쥐어짜서 하늘로 두둥실 떴다. 아연한 표정을 한 교사를 지나 몰래 눕혀 놓은 꼬맹이를 눈에 담았다.

    ‘건강하고, 잘 살고, 잘 커. ……그리고 나 때문에 많이 무서웠을 텐데 걱정해 줘서 고마워.’

    입술만 움직여 인사한 뒤 병원을 찾아 날아갔다. 그게 보육원과의 마지막이었다.

    9살에 혼자 게이트를 공략한 헌터를 보육원의 자랑으로 삼을 법도 한데 희한하게도 원장은 조용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형아, 안 아파〉

    때때로 울먹울먹하던 아이의 눈동자도 생각났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지 한 번쯤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마다 현규하는 쓴맛과 함께 충동을 삼켰다. 저 때문에 큰 곤욕을 겪을 뻔했던 아이를 떠올리면, 보고 싶다는 상념은 억눌러졌다. 아이를 위해서 앞으로도 관여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게 현규하는, 19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인유신의 신상명세서 파일이 태블릿 화면에 떴다. 눈동자가 느리게 화면을 읽어 내렸다. 나이. 생년월일. 혈액형. 각성 능력.

    그리고 이력.

    청솔 보육원.

    “으음.”

    현규하는 모호한 침음성을 뱉었다. 혹시나 했는데 자신이 한때 머물렀던 샛별원은 아니었다. 꼬마가 어떤 얼굴이었는지 기억을 되짚어 보았지만 일부러 잊으려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19년 전의 일이어서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삼승의 부탁도 받았다는 인안나가 뜬금없이 유신 씨에게 선물을 주길래 혹시나 했는데……. 역시 아니군.’

    그때 아이를 보살핀 건 삼승이었으니 무슨 수작을 부렸나 싶었다.

    저와 엮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반, 잘 울던 그 꼬맹이가 인유신이 아니라 아쉽다는 생각이 반이었다. 긍정적으로 판단하자면, 그처럼 선량한 사람이 두 명이나 존재하는 세상이라니 제법 아름답게 보인다.

    14년 전에 다 죽여 버리지 않길 잘했다.

    그래서 현규하는 다음 날 인유신을 만나, 가볍게 물을 수 있었다.

    “유신 씨. 유신 씨가 달가사에 가기 전에 있었던 곳이 청솔 보육원 맞죠”

    정말 별 뜻이 없었다. 달가사의 보육원에도 익명으로 기부금을 내고 있는 중이다. 인유신이 별다른 악감정이 없다면 청솔 보육원에도 기부금을 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청솔”

    하지만 인유신은 자신이 자란 보육원 이름을 듣고도 낯설어하는 눈치이더니, 잠시 생각한 뒤에야 고개를 끄덕거렸다.

    “참, 원장님이 잡혀간 뒤에 보육원 이름을 청솔로 바꿨다고 들었는데 깜빡했네요. 제가 있을 때 이름은 샛별원이었거든요.”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사람은 언제나 현규하였다. 늦은 시간에 문자를 받을 일도 거의 없다 보니 다음 날 아침에도 현규하와의 문자가 제일 위에 있었는데, 오늘은 다른 문자가 와 있었다.

    던전에 다녀오느라 피곤해서 일찍 자는 바람에 이제 확인한 민끝녀의 연락이었다. 병원에서 연락처를 교환한 민끝녀는 ‘현 헌터의 남친이면 내게도 동생이나 다름없어요.’라면서 종종 문자를 보냈다. 현규하와 친하다는 걸 알고 은근히 신경이 쓰였던 게 미안할 만큼 호의적이었다.

    어젯밤에 온 문자도 평범한 안부였다. 나중에 식사나 같이 하자는 그녀의 말에 그러자는 답을 보냈다. 덤덤히 답문을 쓰면서도 새삼 놀라웠다. 재벌 3세와 문자를 하게 되는 날도 오다니.

    ‘승기한테 말하면 규하 씨랑 사귄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만큼이나 놀랄 거 같아.’

    민끝녀의 프로필은 딸과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엄마에게 안겨서 히히 웃고 있는 귀여운 아이가 10살도 못 되어 죽을 운명이라니 가슴이 무거웠다.

    “찍.”

    주인의 묘한 분위기를 읽었는지 막 잠자리에 들려던 6세가 케이지 안에서 작게 울었다.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인유신은 짐짓 웃으며 6세가 잠들 때까지 조심조심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다 보니 출근해야 할 시각이 가까워졌다. 서둘러 씻고 식사하니 현규하가 도착해서 현관 벨을 눌렀다.

    그렇게 나란히 출근하는 길에 그가 보육원 얘기를 꺼냈다.

    “제가 있을 때 이름은 샛별원이었거든요.”

    가벼운 질문에 가볍게 대꾸한, 대수롭지 않은 대화의 한 토막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은 현규하의 반응이 어딘가 이상했다.

    그는 한순간 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로 우뚝 멈추어 서서 인유신을 내려다보았다. 인유신은 얼굴을 갸웃했다.

    “규하 씨 갑자기 왜 그러세요”

    혹시 열이라도 있나 싶어서 이마에 손을 가져갔는데, 피부에 손이 스치자마자 현규하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다.

    “……네 아, 네! 네, 넷! 네!”

    “예”

    “아, 그러니까, 그렇다는 것입니다. 네, 네.”

    “……”

    갑자기 현규하가 고장 났다.

    “괜찮으세요”

    한 걸음 다가서니 눈에 띌 정도로 흠칫하여 후다닥 물러났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심각했다. 반지 때문에 오해하고 있을 때도 반걸음밖에 물러서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진짜 무슨 일 있어요 8세가 또 사고 친 건 아니죠”

    “아, 아, 아, 아, 아니요. 아뇨. 아닙니다. 아무 일 없으니 주인님께서는 안심하고, 기체후 일향 만강하고, 별래 무양하고, 옥체 만안하고, 평안하십시…… 으악!”

    그들은 옥탑방에서 나가는 중이었고, 옥상에는 1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고, 주춤거리던 현규하의 발은 계단 위에서 삐끗했다.

    외마디 비명에 이어 쿠당탕탕 하는 소리가 계단을 데굴데굴 굴러 내려갔다.

    인유신은 경악했다. 사이코키네시스도 쓰지 못할 정도라면 얼마나 심각한 거지

    “규하 씨! 규하 씨!”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가 인유신도 하마터면 발이 꼬여 넘어질 뻔했다. 계단 아래에 나동그라진 현규하는 아프지도 않은지 멍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다가 인유신이 이마에 힐을 하자 움찔했다.

    “쥐새끼는 아무렇지도 않…….”

    “아무렇지도 않긴요! 이마에서 피가 나는데!”

    뼈에 금이 가든 부러지든 다쳤다는 말을 할 사람이 아니니, 일단 다짜고짜 팔다리부터 힐을 했다.

    ‘그다음에는…… 아! 늑골!’

    늑골에 금이 가면 깁스도 못 한다. 서둘러 가슴 부근에 손을 올리는데 주인집 문이 삐꺽거리면서 열렸다.

    “옥탑방 총각. 방금 무슨 소리야 뭘 떨어트렸어”

    계단에서 구르며 가장자리에 있던 화분을 죄 깨부순 건 둘째 쳐도, 머리칼과 이마에 피가 줄줄 흐른 흔적이 여실한 현규하를 본 주인 할머니는 정말 놀랐다.

    구급상자를 가져와야겠다, 병원에 당장 가야 하는 거 아니냐, 부산스러워진 할머니를 겨우 진정시켰다. 화분값을 물어 주고 집을 나왔을 때도 현규하는 여전히 고장이 나 있었다.

    “출근하실 수 있겠어요 제가 과장님께 대신 말씀드려서 병가라도 낼까요”

    “소인 같은 쥐새끼를 친히 걱정하는 주인마마의 하해와 같은 은덕이 몹시도 황송하오나…….”

    “…….”

    어떡하지. 머리까지 다친 걸까…….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얼굴로 횡설수설하는 현규하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일단 한쪽 팔을 붙잡았다. 혼자 놔뒀다가 또 굴러갈지도 모른다.

    어플로 택시를 부르고 나자 현규하는 정신을 차렸다.

    “아, 이럴 때가 아니라 주인님 모시고 출근해야죠.”

    “지금 상태로 바이크 운전은 못 하실 거 같아요. 택시 타고 가요. 그 전에 병원부터 가고요.”

    “어어…….”

    현규하는 손을 불안정하게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더니 등을 돌렸다.

    “어부바할래요”

    “…….”

    정신 차린 게 아닌 거 같다.

    마침 도착한 택시에 버벅거리는 현규하를 끙끙 밀어서 쑤셔 넣었다. 병원에는 가지 않아도 된다고 우겨서 바로 청사로 향하긴 했으나, 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화들짝하는 그를 보며 인유신은 근심했다.

    지금이라도 병원 데려가서 뇌 검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닐까 MRI 같은 거 찍으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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