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122/214)

공태성은 멈칫했다. 현규하가 ‘풀 한 포기까지 경애하는 왕’을 사냥할 때 일부 해방한 아티팩트의 힘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는 공태성도 당시 전투를 목격했던 나르샤 길드원에게 들었다. 하지만 지금과는 달랐다.

발리사르다에 힘이 깃들며 더욱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압박감은 둘째 쳐도, 칼날을 웅웅 울리는 오싹한 이 귀곡성은.

“전쟁터에서 죽은 원혼들만 끌어오는 거, 이렇게 하는 건가”

“……미친놈.”

기가 막혀서 다른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게, 남의 기술을 보고 처음 운용한 것이라고

단순히 전장과 관련된 아티팩트를 소지하고 있다 하여 누구나 쉽게 원혼을 끌어내어 힘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랬다면 딜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그것을 노렸을 터다.

공태성은 잇새로 욕설을 짓씹었다. 노력이라고 무슨 개소리인지.

그건 노력이 아니라, 개마고원인지 어딘지 함경도에서 서울까지 내달리느라 마나를 쥐어짠 주제에 능수능란하게 아티팩트를 운용하는 천부적이며 압도적인 재능이었다.

이를 공태성은 한마디로 요약했다.

“괴물 새끼 같으니라고.”

“쥐새끼라고 정정해.”

“입 닥쳐!”

칼날을 거세게 쳐 냈다. 튕겨 나간 발리사르다가 허공에서 빙글 회전하더니 복부를 노리며 찔러 왔다. 동시에 화염이 발밑에서 이글거리며 공태성을 집어삼켰다. 그의 화염과 화염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근거리의 순간 이동이 가능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현규하의 눈앞에서 사라진 공태성은 화르륵 치솟는 불길과 함께 그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그대로 켄묘렌을 그으려던 공태성의 손이 멈칫했다.

분명히 전방을 향했던 발리사르다는 어느 틈엔지, 뒤에 있는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한 번 봤던 스킬인데 놓칠 거 같아”

“…….”

화마로 인한 열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공태성의 목뒤로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그는 어쩌면 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를 보는 현규하의 눈동자에서 붉은 살기가 어른거렸다.

게이트는 어느 구축 아파트의 옥상에 열려 있었다. 인유신의 팔을 잡은 장범은 바람을 일으켜서 단번에 옥상까지 도달했다. 게이트를 지키는 길드원들은 공태성이 미리 철수시켰기 때문에 근처는 조용했다.

“8세야. 여기 맞아”

파우치에 얌전히 있던 8세가 코끝을 찡긋거렸다.

“유신아. 형 못 믿어”

“장 헌터님이 제 입장이라면 믿으시겠어요”

“응, 못 믿지. 근데 저 햄스터는 어떻게 파파의 위치를 아는 거지”

“뀨!”

8세가 여기에 있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는 파우치에서 폴짝 뛰어내려 잘 갔다 오라는 듯이 앞발을 흔들었다.

“여기에서 기다릴 거야”

“삐융!”

“알았어. 넌 던전이 무서울 테니까 밖에서 기다리는 게 낫겠다. 잘 숨어 있어야 해.”

바로 게이트로 뛰어들려는 인유신을 장범이 만류했다.

“파파랑 규하가 붙었는데 안이 멀쩡할 거 같아 만약 입구에서 싸우고 있는 거라면 넌 들어가자마자 이거야.”

말을 하며 장범이 엄지로 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인유신도 멈칫했다. 타당한 이유였다.

“그럼 어떻게 해요 규하 씨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파파가 나올 수도 있지.”

“규하 씨예요.”

“에효. 얘도 준수과였구만.”

어깨를 으쓱한 장범은 아공간에서 꺼낸 팔찌를 손목에 찼다.

“실드 코어니까 이쪽으로 와서 붙어.”

코어에 마나를 불어 넣자 보라색을 띤 투명한 막이 둥글게 펼쳐지며 두 사람을 감쌌다.

“범위 좁으니까 내 뒤에 바짝 붙어 있어. 손잡아 줄까”

“아니요.”

인유신은 행여나 손이 잡히기라도 할까 봐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등 뒤에 섰다. 픽 웃은 장범은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현기증이 머리를 한 차례 훑었다. 게이트를 넘은 인유신은 제 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하여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던전 입구의 문루부터 시작해서 멀쩡한 게 하나도 없었다. 무너지고 전소한 건물의 잔해와 시커멓게 타들어 간 정원의 흔적만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대체 어떤 싸움이었기에.

“오, 대박. 둘이 아주 작살을 내 놨네.”

장범이 휘파람을 불며 휴대폰으로 주변을 촬영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인스타에 올리려고.”

지금 그게 중요한가. 조급해진 인유신은 다른 상황이었다면 친하지도 않은 그에게 절대 하지 않았을 행위를 했다.

“빨리요, 빨리.”

“어어. 잠깐만.”

등을 꾹꾹 밀자 장범은 킬킬 웃으며 주변을 촬영하면서도 밀려 주었다. 그 장난기도 얼마 못 갔다. 본래 무엇이었는지 흔적도 남지 않은 전각의 잔해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길이 멀리 보이자, 그는 휴대폰을 넣고 간디바를 대신 꺼냈다.

“아마 저 안에서 싸우고 있을 텐데 가까이 접근하는 건 위험해. 파파의 불은 내가 못 꺼.”

“…….”

몹시 초조했으나, 인유신도 무작정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재촉할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마수들도 거의 몰살당한 거 같은데 몇 마리나 죽은…….”

장범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던전에 생존한 마수는 10개체입니다.]

마수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던전에 생존한 마수는 2개체입니다.]

[던전에 생존한 마수는 1개체입니다.]

[던전의 마수가 전멸했습니다.]

[던전의 보스 ‘누구도 응하지 않는 종소리’가 나타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