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죽을 거라니! 헌터님은 그러다가 길드장님이 죽어도 된다는 거예요!”
“파파가 죽으면 차대 나르샤 길드장은 나거든.”
“…….”
인유신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읽은 장범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네가 그런 얼굴로 보니까 히든 보스한테 처맞고 날아갔을 때보다 더 아프네……. 나도 태성이가 무슨 생각인 건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그런 표정을 지을 때의 태성이는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는 건 알지. 부회장님이나 아가씨가 와도 못 말려.”
“…….”
“내가 설명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어떻게, 집까지 데려다줄까 아니면 누구 부를래”
“길드장님이 텔레포트한 곳으로 데려다주세요.”
“그건 안 돼.”
인유신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장범과 직접 대화를 하는 건 이번이 겨우 두 번째지만, 제 설득이 통하지 않을 남자라는 건 알겠다.
현규하의 상태창은 여전했다. 그와 싸우고 있는 걸까. 혹시나 하여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한 명은 사이코키네티시스트고 또 다른 한 명은 파이로키네티시스트다. 절대 흔적이 남지 않는 고요한 전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이나 SNS 어디에서도 특별한 소란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이 레스토랑에서 헌터들이 싸운 거 아니냐는 목격자들의 얘기는 벌써 보이고 있는데, 더 큰 소란이 일었을 두 사람의 얘기는 없었다.
‘그럼 아직 본격적으로 싸우지는 않는 걸까……. 훈련장 같은 건물 안으로 이동했으면 소란이 밖으로 보이지 않을 거 같기도 한데.’
하지만 현규하가 싸우는 방식을 고려해 봤을 때 건물 내라고 해서 소란이 감추어질 거 같지는 않았다. 제대로 힘을 쓴다면 건물을 붕괴시키고도 남을 터다.
‘……던전’
던전. 던전으로 이동했다면 소란이 밖으로 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태성도 거리낄 것 없이 전력을 투사할 수 있을 것이다.
던전은 공개 입찰 되고 있었고, 현재 나르샤가 소유한 던전을 검색하는 것 정도는 인유신의 아이디로도 충분히 가능했다. 8세를 파우치에 들어오게 하고 서둘러 레스토랑을 나가려던 인유신의 팔을 장범이 붙잡았다.
“어디 가”
“회사에요. 길드장님은 던전으로 이동하신 거 맞죠”
“……보기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네. 우리 길드가 갖고 있는 던전이 몇 개나 되는 줄 알아”
“여기에서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나아요.”
“네가 가서 어쩌려고. 집에 데려다줄 테니까 얌전히 있어.”
“이거 놓으세요!”
뿌리치려고 했지만 붙잡은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장범이 버둥거리는 인유신을 그대로 안아 올려서 어깨에 둘러메려 했을 때.
“찍!”
8세의 꼬리가 장범의 얼굴로 길게 뻗어 나갔다. 눈알을 꿰뚫을 듯 날카롭게 쇄도한 꼬리는 그의 손에서 순간 힘이 풀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뿌리친 인유신은 냅다 장범의 사타구니를 무릎으로 찍었다.
“억!”
육체를 강화하는 스킬이 없는 이상 급소를 맞으면 각성자도 평등하게 아팠다. 상대가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인유신이기에 꽤나 방심하고 있던 장범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꺾었다.
인유신은 그대로 레스토랑 밖으로 뛰쳐나갔다.
“야, 야! 인유신! 아오…….”
뒤에서 장범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계단을 달려갔다. 장범은 에어로키네티시스트다. 현규하만큼은 아니더라도 시야 안에 있으면 자신을 다시 붙잡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레스토랑의 소동으로 인해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건물 밖에 몰려 서 있었다. 그들을 지나 도로변까지 전속력으로 달려 나왔다.
숨을 헉헉 몰아쉬며 택시를 잡으려는데, 갑자기 8세가 울음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택시를 잡으려 앞으로 뻗은 인유신의 손을 꼬리로 휘감아 안으로 당겼다.
“어, 뭐 택시 잡지 말라고”
“꿋!”
“그럼 어떻게 해.”
“삥! 삐잉!”
8세가 앞발로 연신 북서쪽을 가리켰다. 인유신은 혹시나 하여 8세에게 고개를 숙였다.
“너 설마 규하 씨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거야”
“빼애앵!”
8세의 얼굴이 도리도리 흔들렸다.
“그럼…… 길드장님”
이번에는 아래위로 끄덕끄덕했다. 이유는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걸어갈 수는 없을 테니 어쨌든 택시를 타야…….”
“유신아! 거기 딱 붙어 있어!”
그사이에 아픔을 이겨 냈는지 오만상을 찌푸린 장범이 깨진 유리창 너머에서 뛰어내리려 했다. 3층 높이지만 장범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유신은 다급히 도로 건너편으로 달려갔다. 갑자기 무단 횡단을 하자 차들이 연신 클랙슨을 울리며 급정거를 하고, 도로가 혼란스러워졌다.
평소였다면 간이 졸아붙어서 무단 횡단은 엄두도 못 냈을 텐데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머릿속이 비었다.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던 버스가 미처 속력을 제대로 줄이지 못하고, 인유신의 얼굴을 전조등의 빛이 환하게 덮은 찰나. 발밑에서 한 줄기 바람이 허리케인처럼 솟아오르며 인유신을 하늘 높이 띄웠다.
창문 밖으로 헐레벌떡 손을 뻗은 장범이 바람을 조정하여 그를 레스토랑 안으로 옮겨 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레스토랑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이번에는 장범도 그를 순순히 놓치지 않았다.
인유신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까처럼 방심을 하지 않는 A급 헌터를 피해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고 순순히 붙잡혀 있을 생각은 없었다.
“야, 넌 쪼그만 게 간이 왜 이렇게 부었어 사고 나면 어쩌려고 그래!”
“길드장님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블러핑 한다고 내가 넘어갈 거 같냐.”
“거짓말 아니에요.”
단호한 표정을 본 장범이 한숨을 쉬며 목덜미를 문질렀다. 사실이든 아니든 인유신의 얼굴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서 거기로 가겠다고 내가 집에 가두고 못 나오게 지키고 있어도”
“몰래 도망칠 건데요.”
“하아, 내가 어쩌다가 태성이가 친 사고를 수습하는 신세가 된 건지. 원래는 그 반대 아니야”
입 속으로 불만을 구시렁거린 장범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기운 없이 늘어트렸다.
“알았어, 데려다줄게. 그러니까 아까처럼 날뛰지 말고 제발 얌전히 좀 있어. 네가 다치기라도 하면 날 물어뜯을 인간이 한두 명이 아니라고.”
공태성이 헌터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지도 20년이다. 그동안 그는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게이트를 넘었다. 게이트를 통과할 때의 짧은 현기증은 숨을 한 번 내쉬는 것으로 지워 낼 수 있었다.
하지만 6년 전의 그날 이후, 게이트를 넘을 때마다 그는 울렁거리는 현기증 속에서 그녀의 흐느낌을 들었다.
〈태성아. 아기, 아기 어떻게 해……. 전부 나 때문이야…….〉
지금도 그렇다.
텔레포트로 던전 앞까지 이동한 공태성은 즉시 게이트를 넘었고, 현기증에 이어 아찔하게 흔들리는 흐느낌이 쫓아왔다. 심장이 으스러지는 거 같다.
그는 호흡을 몇 번 고르는 것으로 평정을 되찾았다.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곧.
[던전 리셋까지 남은 시간 93시간 51분 07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