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화 (118/214)
  • [현재 상태  살의. 애정. 불안. 살의. 살의. 살의.]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마수와 싸울 때도 이처럼 노골적인 살의를 느낀 적이 없는 현규하다. 회령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식사도 멈추고 휴대폰으로 급히 전화를 거는 인유신을 본 공태성이 낮게 중얼거렸다.

    “슬슬 올 때가 되었나 보군.”

    그 말에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콰창! 두껍고 커다란 창문이 산산이 깨지며 유리 조각이 안으로 비산했다. 반사적으로 8세를 몸으로 감싸며 엎드린 인유신은 이상을 깨달았다. 바로 코앞에서 유리가 깨졌는데도 상처는커녕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올린 인유신은 자신을 보호하는 투명한 장막을 느꼈다.

    “……규하 씨”

    조각조각 부서지며 흩날리는 유리 조각이 바닥으로 완전히 추락하기도 전에 레스토랑의 외벽이 박살 나며 잔해가 안으로 날아들었다. 백염이 맹렬한 기세로 치솟으며 날아드는 잔해를 삽시간에 녹이고 재로 화했다.

    “하.”

    공태성의 입매가 비틀렸다.

    “제법 봐 줄 만한 얼굴이 되었군.”

    날아오는 즉시 인유신의 안전부터 확인한 현규하의 낯에 안도감이 돌아왔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는지 몹시 놀란 얼굴이긴 했으나 다치거나 운신에 제약이 있었던 흔적은 없다.

    안도감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살의가 들끓어 올라 냉정한 판단이 되지 않는 상태였지만, 자신을 꾀어내기 위한 미끼로 인유신을 사용했다는 걸 눈치챌 정도의 이성은 돌아왔다.

    “식사하던 중이었어요”

    그 말에 정신이 돌아온 듯 인유신이 눈썹을 크게 깜빡거렸다.

    “그, 그렇긴 한데……. 그보다 규하 씨의 안색이…….”

    현규하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의 테이블이란 테이블은 죄다 들어 공태성에게 집어 던졌다.

    “내부까지 싹 비워 놓아야 했던 거였나.”

    물론 테이블들은 공태성이 일으킨 화염의 방벽을 뚫지 못했다. 그리고 현규하 또한, 이 공격이 먹히리라 판단한 건 아니었다.

    단번에 내던져진 테이블은 일시나마 화염을 막았다. 그 뒤에 바짝 붙어 공태성을 낚아채려던 현규하의 손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눈을 깜빡한 순간, 불길이 공태성을 감싸는가 싶더니 어느새 현규하의 뒤로 이동해 있었다.

    “꽤 먼 거리를 날아온 거 같은데 여전히 쌩쌩하군.”

    “닥쳐!”

    “내가 용건이 있는 건 너다, 현규하. 인유신을 건드리는 일은 없어. 우리끼리 따로 얘기를 하지.”

    공태성이 아공간에서 작고 투명한 구슬을 꺼냈다. 고유 능력을 추출한 아이템이라는 걸 눈치챈 현규하가 인유신을 보호하며 몸을 뒤로 날리기 직전, 공태성의 입술이 달싹이며 손아귀에서 구슬이 빠지직 깨졌다.

    그와 동시에, 공태성을 중심으로 한 반경 2미터 내의 모든 사물은 사라졌다.

    “규하 씨!”

    현규하도 역시.

    당혹하여 허겁지겁 달려갔으나 공태성이 있던 곳에서는 부서지고 재가 된 잔해마저 도려낸 것처럼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낯빛이 새파랗게 된 인유신은 더듬거리며 상태창을 살펴보았다.

    [현재 상태  살의. 애정. 불안. 살의. 살의. 살의.]

    적어도 의식을 잃거나 죽은 건 아니다. 그렇다면…….

    ‘치, 침착해. 침착하자, 인유신.’

    인유신은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하며 10까지 헤아린 후에 떴다. 눈앞의 광경은 여전했다.

    ‘아까 그 구슬……. 구슬을 깨면서 스킬을 발동한 거 같아. 그럼 고유 능력을 추출하여 구슬에 담은 것일 텐데, 어떤 스킬이……. 텔레포트인가’

    “텔레포트로 사라진 거야, 그거.”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해연하여 고개를 돌렸다. 한 손에 간디바를 든 장범이 레스토랑 안쪽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장 헌터님 헌터님도 여기에 계셨어요”

    “응, 유신아. 다친 데는 없지”

    “텔레포트라면 어디로 간 건데요 규하 씨는 왜요 길드장님이 어째서요!”

    “복잡해지니까 하나씩 물어봐 줄래”

    장범이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태연해 보이는 언행이었으나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드러나 있었다.

    “먼저 나는 파파 명령을 받고 숨어 있었어. 만에 하나의 상황에서는 파파도 돕고, 유신이 너를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줘야 하거든. 같은 길드원인 나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면 혜연이 누나나 진혁이 불러도 돼.”

    “이거 전부 길드장님이 의도하신 거예요”

    “오늘 규하가 멀리 갔다는 걸 알고 즉흥적으로 실행에 옮긴 거야. 어느 정도 계획은 이전부터 잡고 있었겠지만.”

    이전부터라니,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일을 계획하고 있었단 말인가. 현규하와 떨어진 틈에 자신을 이용하는 것을.

    “……규하 씨와 계속 전화 연결이 안 됐어요.”

    “전파 방해 하는 기계를 파파가 갖고 있었어. 스쳐 가는 사람들이야 잠깐 전파가 안 터졌나 보다, 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테니까. 너한테 현규하가 ‘무닌의 눈’을 걸어 놨다면서 연락이 계속 안 된다는 걸 알면 네 위치로 곧장 빡쳐서 달려오겠지 싶었어. 정말 그렇게 됐고.”

    인유신은 장범의 설명을 이해하려 애썼다.

    한마디로 공태성이 일부러 현규하의 화를 돋우었다는 뜻이 아닌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현규하는 특별히 호전적이라 할 성품은 아니나,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하는 사람도 절대 아니었다. 호사가들이 떠드는 것처럼 누가 정말 최고의 헌터인지 승부를 낼 작정이든,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든 공태성이 그와 겨루고 싶었다면 얼마든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수단을 쓰지 않고도.

    “길드장님은…… 무슨 의도이신 건데요”

    “깊은 사정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가면 같은 장난스러움이 자리한 장범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웃음이 걷혔다.

    “태성이든 규하든, 둘 중 하나는 죽어서 나올 거야. 너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당연히 나는 태성이가 살아 나오길 바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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