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전파는 여전했다. 가까운 곳이라면 자신이 그를 찾아가면 될 텐데, 기차로도 반나절은 걸리는 회령이다. 거기까지 가는 건 둘째 쳐도 길이 엇갈리기라도 한다면 상황이 더 꼬인다.
“표정이 왜 그러지”
심란한 마음이 겉으로 드러났나 보다. 인유신은 얼굴을 문질렀다.
“규하 씨랑 계속 전화가 안 돼서요.”
“개마고원에 갔다면서 전파가 잘 안 터지는 곳이 있다고 들었다.”
“……그렇죠.”
“현규하도 그건 감수했겠지.”
멍하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과 연락이 안 되는 걸 감수할 만큼 중요한 단서를 찾으러 산속에 들어간 거라면 좋겠는데.
“안나에게 줄 선물은 대충 다 골랐고……. 슬슬 저녁 시간인데 식사라도 같이하지”
“아, 아뇨. 저는 괜찮아요.”
“오후 내내 끌고 다닌 보답이라고 생각해라.”
이렇게까지 말하니 더 사양할 수가 없었다. 아직 떠보지 못했으니 식사 자리에서 노려야겠다는 생각 속에 인유신은 그를 따라갔다.
백화점을 나온 공태성이 데려간 곳은 한눈에도 값비싸 보이는 레스토랑이었다. 3층이라 뷰도 멋졌다. 그래도 단지 그뿐이었다면 놀라지 않았겠지만 안에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인유신의 눈이 동그래졌다.
“설마 레스토랑 통째로 빌리신 거예요”
“긴하게 만나려면 사람의 눈을 타지 않는 게 편하니까.”
긴한 만남 이 사람과 내가 긴하게 만날 이유가 뭐가 있지 팽팽 돌아가던 인유신의 머리가 침식 게이트에서의 대화를 떠올리고 말았다. 인유신은 냅다 허리를 90도로 굽혀서 사과했다.
“길드장님의 마음은 감사하지만 저에게는 규하 씨가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아니라고!”
“저보다 더 좋은 남자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야!”
결국 공태성은 뒷목을 잡고 말았다.
“너, 제발……. 혹시라도 끝녀 앞에서 그딴 소리 했다가는 그 옥탑방 다 태워 버릴 줄 알아라.”
“제가 대기업 부회장님을 만날 기회나 있을까요……”
“혹시라도!”
“그 전에 부회장님과는 이혼하신 게 아닌지……”
“…….”
“설마 길드장님은 마음이 계속 있는데 뭐 잘못한 게 있어서 이혼당하신 거였어요 헉, 죄송해요.”
“…….”
의도치 않게 공태성을 멕이는 데 성공했다는 걸 모르는 인유신은 눈만 말똥말똥 떴다. 공태성은 많은 걸 놓은 표정으로 묵직한 한숨을 뱉었다.
“현규하한테 문자 보내면서 내 눈치를 계속 살살 살피던데, 할 말이 있는 건 오히려 너 아닌가”
“아, 아, 아닌데요.”
“아니든 맞든, 밥이나 먹어. 비쩍 말라 가지고선.”
인유신은 레스토랑에서 유일하게 세팅되어 있는 창가 쪽 테이블에 우물쭈물하며 앉고 말았다. 눈치가 백 단이었다.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알아챈 거지
기왕 말하라고 판을 깔아 줬으니 대놓고 묻는 게 나을까. 그래도 조금은 숨겨 볼까. 고민하는 사이에 웨이터가 왔고, 영어도 아니고 이탈리아어가 적힌 메뉴판을 본 인유신은 그냥 공태성을 따라서 똑같이 시켰다.
“8세도 같이 먹어도 될까요 따로 뭘 시켜 주실 필요는 없고 앞접시 작은 것만 있으면 돼요.”
“그래서 그 쥐는 테이밍까지 할 만큼 쓸모가 있긴 한 건가”
“당연하죠! 오늘 새로운 기술도 개발했어요. 8세가 사람이었다면 스킬로 등록되었을 거예요.”
인유신은 8세를 정수리에 올려놓았다. 척하면 척이다. 8세의 작은 눈동자가 결연하게 빛났다.
“8세야!”
“쁏!”
익막을 펼친 8세가 머리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공중을 활공하여 멋지게 테이블에 착지했다. 그리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
공태성이 혼란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이게 뭐”
“하늘을 날았잖아요! 그리고 여기 보면요, 스킬 쓸 때는 8세 다리 사이에 익막이 생기거든요. 이 면적만큼 귀여움이 더 커졌어요.”
“……”
뿌듯한 설명에 비해 공태성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으나, 8세를 위한 앞접시는 따로 웨이터에게 부탁했다.
테이블에 햄스터가 올라오자 웨이터는 당황하는 듯했지만 햄스터의 목에 냅킨처럼 두를 작은 천 조각까지 가져왔다. 고급 레스토랑다운 센스였다.
8세와 공태성의 거리는 1미터도 되지 않았다. 이전에 현규하는 공태성과 관련된 메시지가 출력되는지 여부가 거리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했었다. 그 추측대로라면, 지금 공태성이 귀속 아티팩트를 사용하면 메시지가 나올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귀속 아티팩트 한 번 써 달라는 말을 할 수도 없고…….’
고민 끝에 인유신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은 본인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의문이었다.
“전에도 물었었는데 정말 커다란 물고기 안 키우세요”
“안 키운다니까.”
“이상하다…….”
“왜.”
“언젠가부터 길드장님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들거든요.”
“나는 남자한테 관심 없다.”
“그런 거 아니고요……!”
인유신은 몹시 억울했다. 동시에 역지사지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공태성도 이런 기분이었나 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던전 연수 갔을 때부터 뭔가 느낌이 좀 그랬어요. 그게 구체화된 게……. 엄청나게 커다란 물고기 같은데…….”
“…….”
“오늘도 어렴풋이 물고기가 길드장님과 겹친 느낌이 들거든요. 기르시는 게 아니라면 물고기 원혼 같은 게 붙어 있는 거 아닐까요”
“쥐만 기르는 줄 알았더니 영매나 무당이었나 보군.”
공태성은 대수롭지 않아 하는 표정으로 픽 웃었다. 실없는 얘기로 여기는 모양이다. 인유신만 답답했다. 묘한 느낌이 든 것도, 처음으로 공태성의 메시지가 출력된 것도 던전 연수 때다. 둘은 같은 의미인 걸까.
그가 진지하게 제 말을 듣도록 하려면 역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입술을 달싹거렸을 때, 웨이터가 접시를 가지고 나왔다.
“안티파스티로 나온 부르스케타입니다.”
뭐라 뭐라 길게 이어지는 요리 설명이 텅 비어 있는 레스토랑 안을 울렸다. 잔잔한 음악이 깔려 있긴 하지만 손님이 없는 레스토랑이라는 건 생각 이상으로 스산했다. 여기에서 사람이 죽거나 납치되어도 직원들만 함구한다면 절대 모를 거 같은 분위기였다.
갑작스레 소름이 돋는 느낌이어서 인유신은 어깨를 움츠리며 훈제 연어를 올린 부르스케타를 잘랐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문 그의 어깨가 크게 움찔했다.
‘변변찮은 게 없군.’
의자에 늘어진 현규하는 제 능력으로 마우스만 딸깍딸깍 클릭하면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전민수만이 아니라 상급자인 회령지부의 부서장도 현규하의 사적인 조사를 반겼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건 같은 마음이었다.
아이디를 하나 빌려서 자료를 찾아보는데도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없었다. 있다 해도 전민수의 말처럼 공태성이 회령을 방문한 이후 가끔 마수가 두어 마리씩 출몰한다는 것 정도.
‘회령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방향을 바꿔서 공태성이 닫았다는 재작년 백두산 게이트를 검색해 보았다. 정확히는 계란재에 열린 게이트였다.
특기할 만한 건 없었다. 나르샤 길드가 낙찰받은 던전이었고, 던전 브레이크를 고의로 터트려 히든 보스까지 무사히 사냥했다는 기사만 나왔다. 후속 기사가 없는 걸 보면 그 후에도 별문제는 없었던 모양이고.
고민하던 현규하는 전민수를 찾아가 보았다.
“공태성 길드장이 재작년에 회령을 방문했다던데 이유가 뭐였죠”
“아, 그 일요”
회령 같은 지방의 소도시에 대형 길드의 길드장이 방문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꽤 예전인데도 전민수는 바로 기억을 떠올렸다.
“돌발 게이트의 마나 파동이 계속 관측되어서요.”
“돌발 게이트 파동이요”
돌발 게이트는 이름 그대로 갑자기 나타나서 마수를 토해 내고 사라지는 게이트다. 사전에 파동이 관측된다고 해 봤자 고작 2, 3분 전이 한계였다. 계속 관측될 리가 없었다.
현규하가 미심쩍게 눈을 치뜨자 전민수가 손사래를 쳤다.
“저희도 그게 참 이상했습니다. 돌발 게이트의 파동을 미리 예측한 줄 알고 급히 주민들을 대피시켰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겁니다. 대피시킨 주민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고, 계속 경계 태세를 갖출 수도 없어서 난감하던 차에 나르샤 길드장님이 백두산에 계신다는 소식을 들어서요.”
“그래서 길드장이 회령까지 왔어요”
“네. 혹시 우리 쪽에서 제대로 감지를 못 한 건가 싶어서 부탁을 드렸는데 흔쾌히 회령에 방문해 주셨습니다. 며칠 머물면서 둘러보셨는데 그사이에 마나 파동은 자연 소멸하였고요.”
공태성이 쓸모없었다고 치부하기에는 인과 관계가 묘하다. 일단 전민수에게 마나 파동이 계측된 곳이 어디였는지 위치 좌표를 받은 현규하는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