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화 (112/214)
  • [내가 지금 걷고 있]

    거기까지 문자를 쓰고 있을 때 불현듯 비명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산으로 이어지는 논지 사이의 길에서 웬 노인이 마수에게 쫓기고 있었다. 쫓아오는 마수는 두 마리였다.

    ‘근처에 연구소 같은 게 있어서 탈출한 것도 아닌데 마수가 겨우 두 마리뿐이라고’

    이상했지만 일단 허공에 몸을 띄워서 날아갔다. 노인의 걸음으로 마수로부터 도망치는 건 어려울 테니.

    갑자기 하늘에서 나타난 헌터의 존재에 허겁지겁 도망치던 노인의 눈이 커지는 것과 동시에.

    “끼에엑!”

    목뼈가 비틀린 마수들이 쿵 하는 소리를 울리며 쓰러졌다. 그냥 놔둘까 하다가 한창 푸릇푸릇하게 벼가 자라는 논으로 굴러떨어질 거 같았기에 일단 들어 올렸다.

    “아구구.”

    노인이 그제야 앓는 소리를 내며 털썩 주저앉았다. 슥 훑어보니 다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

    마수를 계속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 근처에 길드가 있는지 지도를 검색하고 있을 때였다. 숨을 고른 노인이 손이라도 덥석 잡을 것처럼 외쳤다.

    “아슴태니꾸마(고맙습니다)!”

    “……”

    현규하는 순간 자신이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건너온 줄 알았다. 이게 뭔 소리지 설마 욕인가 하지만 싱글싱글 웃는 노인의 낯을 보니 기껏 구해 주고 욕을 먹은 건 아닌 듯했다.

    그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이자 노인이 말을 조금 바꿨다.

    “고맙소꼬망.”

    “클아바이(할아버지)!”

    마침 현규하가 다가왔던 곳에서 한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손에 도끼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헌터처럼 보였다. 헌터는 마수를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더니 우선 바닥에 주저앉은 노인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클아바이. 이기 무시기임둥”

    “즈쯤으 괘이채이타(지금은 괜찮다). 고톨밤냉기르 보러 갔는데 불쎌르 산비야이서 마수 쌔끼가 쫓아오젬메.”

    “또 그랬슴둥”

    “덩게 헌터분으 쌤 다꺼번에 목이 한꺼베 불떼리가 쥑엇다. 민수야, 네 아슴턚다구 말으 전하랑이.”

    “옛꼬망.”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안 그래도 말이 빠른 데다가 억양까지 강한 함경도 사투리다. 서울 사람 현규하가 대화의 반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이에도 노인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아 상황을 파악한 남자는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여행 오신 분인 거 같은데,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르신들 사투리를 알아듣기 어렵지요 하하. 이 동네가 옛날부터 고립된 지역이다 보니 어르신들은 사투리 많이 쓰세요.”

    “아, 뭐.”

    “그래서 할아버지가 뭐라고 말씀하신 거냐면요, 도토리나무를 갑자기 산비탈에서 마수가 쫓아왔었다나 봅니다. 그 뒤에 하신 말씀은 저기의 헌터분께서 싸움 한 번에 목을 전부 부러트려 죽였다고 하신 거고요. 고맙다는 말도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남자에게서 나온 말은 함경도 억양이 강하긴 하지만 표준어였다. 어쨌든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니 잘됐다. 현규하는 곧장 용건을 꺼냈다.

    “길드원이에요”

    “아, 그건 아니고 공무 헌터입니다.”

    “아무튼 마수 가져가요.”

    “예 사체를 주시는 거야 고마운 일이지만, 결정석도 안 가져가시고요”

    “상관없어요. 대신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할아버지를 구해 주셨는데 당연히 대답해 드려야죠! 그 전에 잠깐만요, 할아버지 모시고 갈 사람만 부르겠습니다.”

    남자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고, 몇 분 안 되어 노인의 아들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노인을 데리러 왔다. 노인과 아들은 현규하에게 연신 감사를 표하며 논길을 돌아 나갔다.

    “참, 소개가 늦었네요. 회령시의 공무 헌터 전민수입니다.”

    “현규하요.”

    전민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시나 했는데 그 현규하 헌터님이요 어쩐지 마수 사체에 피 한 방울 없더라니!”

    유명한 헌터를 목격한 전민수는 잔뜩 흥분해서 허둥지둥 소지품을 뒤졌다. 수첩을 안 가지고 와서 급한 대로 셔츠에 사인을 부탁한 그는 입이 귀에 걸릴 듯이 웃었다.

    “이 촌구석에서도 오래 살다 보니 현 헌터님 같은 분도 뵙게 되네요. 뭐든 물어보십쇼!”

    “저 마수들은 게이트에서 나왔습니까 그런 것치고는 피가 하나도 안 묻어 있던데요.”

    두 마리뿐이니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건 아닐 터였다. 지속 게이트에서 헌터들을 쫓거나, 쫓겨서 튀어나온 마수는 전투의 흔적이 남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저 마수들은 깨끗했다. 마치 방금 결정석으로 생성이 된 것처럼.

    전민수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게이트는 아니고, 가끔 산속에서 마수가 한두 마리씩 내려오는 일이 있어요. 그리 강한 놈들은 아니어서 지금까지 사망자는 없긴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위에서도 큰일이라는 생각을 안 하는 거 같습니다. 조사 요청을 했는데도 산속에 게이트가 없다는 것만 확인하고 끝내더라고요.”

    생식 기능이 없는 마수는 번식도 하지 않는다. 하여 상층부에서는 부근에 열렸던 돌발 게이트에서 나온 마수가 산속에 숨어 있다가 한두 마리씩 내려온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민수는 설명했다.

    “회령이야 보이는 곳마다 산이니 마수들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긴 합니다. 하지만 단발성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마수가 출몰하니 아무래도 찜찜해서요.”

    “언제부터 마수가 나왔죠”

    내내 고민하던 문제였던지라 전민수는 정확한 날짜를 알려 주었다.

    “최초로 산에서 마수가 내려온 날이 재작년 3월 19일입니다.”

    현규하의 눈썹이 가늘게 꿈틀했다. 공태성이 회령에 들렀던 날짜와 가깝다.

    전민수는 기꺼이 마수들이 출몰한다는 산을 안내해 주었다. 안내를 받으며 산 곳곳을 둘러보았으나 현재로서는 특별히 눈에 뜨이는 이상은 없었다.

    정확히 확인하려면 이 근방의 마나 흐름이 어떤지 세밀하게 계측해야 하겠지만, 가능할지 모르겠다. 아무리 현규하에게 특혜를 주고 있는 이능부라 해도 명백한 근거 없이 계측기까지 동원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

    애초에 공태성이 인유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과 회령에서 마수들이 드문드문 출몰하는 상황에 연관성이 있는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인유신이 공태성과 관련된 메시지를 볼 수 있게 된 이유도.

    “재작년부터 그 외의 다른 이상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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