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화 (110/214)

“……그거 설마, 나”

“이름은 뀨뀨예요.”

“…….”

“참, 햄스터 규하 씨 인형도 있길래 그것도 주문했어요!”

“…….”

침묵하던 현규하가 묵직하게 신음하며 미간을 주물렀다.

“그러니까 주인님이 그 인형을 끌어안기도 하고 같이 출근도 하고 같이 식탁에 앉기도 하고 같이 잠도 자고 같이 목욕도 하고, 그런단 말이죠”

“……어, 그렇게 구체적인 생각까지는 안 했지만 좁은 집에 인형이 있으면 대충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현규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이 탄식한 탓에, 키가 작은 인유신은 그가 “씨발. 쥐새끼로도 모자라서 이젠 인형까지.”라고 입 속으로 중얼거린 욕설을 미처 듣지 못했다.

“아무튼 뀨뀨를 규하 씨라고 생각하고 잘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우왓!”

여전히 운동을 게을리하고 있던 인유신은 작은 돌멩이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옆에 현규하가 없었으면 바로 엎어졌을 것이다.

반사적으로 그를 부축한 현규하가 잠시 멈칫하더니 손목을 잘라 내는 거 같은 결연한 표정으로 손을 놓았다.

인유신은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슬쩍 어깨를 밀착해 보았다. 현규하가 흠칫하며 반걸음 물러섰다. 또 다가가니 또 반걸음 물러섰다. 조건 반사적인 반응이라서 좀 재미있었다.

자신과 가까이 접촉하면 화들짝 놀라면서도 제가 다가선 거리 이상으로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그냥 지금 뭐가 불안한지 말해 주면 안 돼요”

“또 주인님한테 차일 거 같아서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뭐,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어도 규하 씨가 얼굴로 또 꼬시면 바로 넘어갈 텐데요.”

“……과연.”

현규하는 갑자기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더니 빠르게 뭔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뭐 하세요”

“에스테틱 숍 예약하려고요. 고백하기 전에 미모부터 우선 가꿔야 할 거 같아요. 주인님도 같이 갈래요 회원제 숍이라 같이 가도 유신 씨가 내 남친이라는 비밀은 잘 지켜 줄 텐데.”

현규하와 나란히 누워서 피부 관리를 받는 자신을 상상한 인유신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왠지 얼굴이나 피부 등을 바로 비교당할 거 같았다.

“한 번 갈 때마다 운동 하루씩 뺄게요.”

“갈게요.”

인유신을 꼬드기는 데 성공한 현규하는 그의 호감도를 더 상승시키며 예쁨을 받기 위한 새로운 작전, 즉 데이트로 돌입했다. 지금처럼 외근하며 같이 외출하는 게 아니라 진짜 데이트. 물론 1박 2일이나 떨어져 있어야 하니 인유신의 충전도 실컷 해 둬야 했다.

만약 오늘 인유신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조금 더 자신이 생기면, 제 불안을 그에게 조심스럽게 고백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대로 퇴근하면 되니까 저녁부터 먹으면서 진짜 데이트를 하러 가요. 내가…….”

호텔 레스토랑을 예약해 놓았다는 말을 하려는데, 인유신이 먼저 반색하며 끼어들었다.

“마침 규하 씨한테 배우고 싶은 게 있었어요!”

“뭔데요 내가 유신 씨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있었던가”

인유신이 그에게 뭔가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 건 처음이었다. 마음이 들뜨자 현규하의 입꼬리도 방긋방긋 위로 올라갔다.

그것이 뭐가 됐든 인유신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자체에 무척 기쁘다. 호텔 레스토랑의 고급스러운 풀코스 따위보다 훨씬 더 마음을 충족하게 해 주는 기쁨이었다.

“규하 씨는 바느질도 잘하죠 옷에 붙인 자수 패치도 규하 씨가 직접 만든 거 맞죠”

“그렇긴 한데요.”

“그럼 바느질 가르쳐 주세요.”

“바느질은 갑자기 왜요 수선해야 할 게 있으면 내가 할게요.”

“뀨뀨의 옷을 만들어 주려고요.”

“…….”

갑자기 닥친 현규하의 침묵을 눈치채지 못한 인유신은 신나게 얘기를 늘어놓았다.

“아까 찾아보니까 인형 옷이 은근히 비싸더라고요. 그치만 다른 인형도 아니고 규하 씨 인형인데 단벌 신사로 둘 수는 없잖아요.”

“…….”

현규하는 묵묵히 얼굴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자기보다 더 귀여움을 받고 있는 듯한 제 인형을 향한 욕설을 살벌하게 중얼거린 뒤, 산뜻하게 웃는 얼굴로 돌아와 인유신과 눈 맞춤을 했다.

“도안이나 영상은 인터넷에 있죠”

“네! 찾아보니까 많았어요.”

“그럼 뭐, 대충 보다 보면 나도 만들 수 있을 거 같네요.”

인유신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역시 현규하는 못하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운전만 빼고.

“우선 동대문에 원단부터 사러 가 볼까요.”

“자투리 원단을 파는 곳도 있대요. 규하 씨가 평소 입는 티셔츠랑 비슷한 원단이 있으면 좋겠네요.”

“유신 씨랑 비슷한 옷을 입혀야 커플 룩이 되죠.”

어쨌든, 즐거운 데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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