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익! 뀨!”
“열심히 돈 벌어 올게.”
8세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왔다. 현관문을 걸어 잠그던 인유신은 불현듯 떠오른 불길한 추측에 어깨를 파르르 경련했다.
“저기, 규하 씨. 올 때 차 갖고 오신 건…… 아니죠”
불길한 예감이 사실이라면 이번에야말로 어떻게든 튀어서 지하철로 출근할 것이다. 현규하가 몹시도 유감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재킷 입었잖아요. 슈트 입을 때만 차 끌고 올게요.”
그러면서 그는 난해한 선택지를 던졌다.
“슈트 입고 스포츠카 타고 온 현규하 vs 재킷 입고 바이크 타고 온 현규하.”
“……!”
“주인님의 취향에 따르겠습니다.”
완벽한 스리피스 슈트를 갖춰 입은 현규하는 정말 진짜 너무나 굉장히 진심으로 보고 싶지만…….
‘왜 거기에 차를 운전한다는 옵션이 있는 거야!’
옛날에 부모님에게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처럼 깊은 고뇌가 찾아왔다.
“슈트 입고 바이크 타면 되잖아요!”
“바이크의 가오는 검은색 가죽 재킷으로 완성됩니다.”
반박의 여지가 없는 훌륭한 이유였기에 한마디로 납득할 뻔했다.
한 달에 한 번……. 아니, 열흘에 한 번 정도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니까 언젠가는 현규하의 운전을 즐기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남들은 돈 내고 일부러 놀이공원에서 스릴을 만끽하는데 열흘에 한 번씩 공짜로 황천길 구경 코스를…….
“우왓!”
딴생각을 하면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뎠다. 몸이 허공에서 크게 휘청했으나 넘어지기 전 단단한 팔이 부드럽게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허리를 안았던 팔은, 인유신을 부축하여 세우자마자 감쌌을 때보다 빠르게 풀렸다.
“고, 고맙습니다. 하마터면 데굴데굴 굴러갈 뻔했어요.”
“길 걷다가 가끔 발이 걸리지도 않고 아무것도 없는데 넘어질 뻔하기도 하죠”
“어떻게 알았어요”
“코어 근육 부족입니다. 운동합시다.”
“…….”
인유신은 슬쩍 현규하를 외면했다. 운동은…… 어느 정도는 해야 할 거 같긴 한데. 내일부터 러닝머신이라도 달려야겠다. 내일부터. 진짜 내일부터.
“근데 진짜 가오, 아니 멋있으니까 바이크랑 재킷을 세트로 갖추고 다니시는 거였어요”
“아뇨. 그냥 편해서요. 바이크는 자동차보다 가벼우니까 유사시에 들고 다니거나 아공간에 넣기 편하잖아요. 내 뇌를 지배하는 건 가오가 아니라 주인님을 향한 깊은 사랑입니다.”
“넹.”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대화이긴 한데, 미묘한 위화감이 스쳤다. 현규하라면 아마 부축하여 세운 뒤에도 허리를 부비적거렸을 텐데…….
인유신은 슬쩍 상태창을 곁눈질했다.
[현재 상태 살의. 애정. 불안.]
……던전에서 나온 뒤 계속 보이는 그의 불안은 무엇일까. 안 내려가냐는 얼굴로 돌아보는 현규하를 슬그머니 붙잡았다.
“규하 씨. 제가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만약 저 때문이라면 도와드리고 싶어서 그렇거든요. 던전에서 무슨 일 있으셨어요”
멈칫하는 듯하던 현규하가 목덜미를 조금 붉게 물들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면구해하는 눈치였다.
인유신도 멈칫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도 아닌 현규하가 말도 제대로 못 할 만큼 부끄러워하는 거지
힐끔거리는 시선이 인유신의 왼손을 부드럽게 훑는가 싶더니, 이내 한숨에 섞여 흩어졌다.
“지금 말하면 확인 사살만 당할 거 같아서요……. 우리 주인님은 어젯밤처럼 언제나 당당하게 자신을 바라보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너무 졸렬한 인간처럼 느껴지는 거 있죠.”
인유신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현규하만큼 뻔뻔, 아니 당당한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노력해서 버림받지 않고 주인님의 옆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애완쥐가 먼저 되고 싶어요. 그때까지 허벅지를 바늘로 찌르면서 참겠습니다.”
허벅지에는 다른 게 수납되어 있…… 아니, 이게 아니라. 현규하답지 않은 모습에 놀란 나머지 의식이 이상한 방향으로 뻗어 가고 있었다.
얼른 상념을 떨쳐 내며 현규하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이 눈에 띄게 흠칫하더니 뺨이 다시 발그레해졌다.
[현재 상태 살의. 애정. 불안. 설렘.]
그래도 이번에는 긍정적인 감정이었다.
“저는 언제라도 괜찮으니까 털어놓고 싶으시면 꼭 말해 주세요.”
“……5분 뒤부터 참을게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규하는 인유신을 와락 끌어안고 정수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유신 씨는 어쩌면 이렇게 체향까지 좋은 건지. 주인님은 없는 게 뭐예요”
“샴푸 냄샌데…….”
“평범한 샴푸도 유신 씨가 쓰니까 향기로운 거잖아요. 진짜 딱 5분만요.”
인유신은 더 끌어안고 있어도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현규하의 등을 토닥토닥해 주었다. 그가 왜 불안한지 빨리 알아내서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