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214)

이것은 전쟁이었다. 마수와 싸우는데도 기묘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드론을 보내어 관측했을 때는 중앙아프리카의 사바나라는 것 외의 특이점은 없었다. 멀리 도시처럼 보이는 구역이 있었고, 거기에 ‘인간’으로 보이는 형체들이 무기를 들고 도열해 있었다. 이 게이트 내의 마수는 온전한 사람의 형상을 갖추고 있다.

헌터는 마수를 사냥하는 자들이지, 인간을 사냥하는 자들이 아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게이트에 입장하자 물밀듯이 몰려오는 ‘인간’들을 바로 공격하지 못해 주저한 헌터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곧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의 함성을 지르며 인간의 무기를 쓰지만 마수였다. 찢긴 팔다리는 결정석만 온존해 있다면 순식간에 회복되었고, 냉병기는 아무리 베고 잘라도 날이 무뎌지지 않았다.

가끔 보이는 머스킷의 총탄은 무한했다. 전투 코끼리의 발 굴림은 평야를 흔들었고 울음소리는 충격파가 되어 거세게 진동했다.

이 게이트는 히든 보스의 영역이다. 방금까지 초원이었던 땅은 일단의 마수들이 포위되어 위험에 처하자 요동치며 솟고, 지형을 바꾸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풀이 무성한 평야가 시가지로 변하고, 건물 뒤에 숨은 마수가 활과 총을 쏘았다.

“이 씨발스러운 게이트는 또 뭐냐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어느 헌터의 짜증스러운 외침이 이혜연의 심정을 대변했다. 지형이 제멋대로 바뀌니 기껏 고심했던 전술은 전부 무위로 돌아갔고, 결국 진형은 산개하여 각개 격파로 바뀌었다.

이혜연은 앞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마수의 가슴을 맨손으로 꿰뚫어 결정석을 뽑아내는 동시에 후방을 걷어차며 또 다른 마수의 얼굴을 박살 냈다. 이어 얼굴이 뭉개진 마수의 가슴을 찢어 결정석을 뽑아냈다.

‘아이고. 당 떨어진다……. 몇 시간이나 지난 거야.’

다른 마수들을 사냥할 때와는 달리 결정석을 파괴하거나 뽑아내야 하니 더욱 손이 많이 갔다. 숱한 디버프로 인한 능력치 저하도 만만치 않았고.

“장범!”

“오케이!”

혼란스러운 난전에서 누구보다 혁혁한 전과를 올리며 도드라진 사람은 나르샤 길드의 두 사람이었다.

에어로키네티시스트인 장범의 화살들이 가속화된 공기의 흐름을 타고 날아들고, 요동치는 돌풍이 실어 나른 공태성의 불을 폭발시켰다. 사나운 바람의 칼날과 백색의 염화로 이루어진 거대한 허리케인이 나타나 사방을 하얗게 불태우며 수십 마리의 마수들을 갈가리 찢고 잿더미로 만들었다.

장범이 신명 나는 웃음을 크하하핫 터트렸다.

“내가 이 지리는 손맛의 뽕 때문에 나르샤에서 못 나간다니까! 파파! 우리는 영원히 함께야! 절대 놓아주지 않아!”

“그딴 소리 또 나불거리면 주둥이를 지져 버린다고 했다!”

공태성이 정말 하얀색 불덩이를 얼굴로 날렸으므로, 장범은 입을 합 다물었다.

주변이 청소된 김에 이혜연은 짤막한 휴식을 취하며 에너지바를 꺼내 우물거렸다. 던전에서 채취된 열매도 섞여 있고 특별히 높은 열량으로 제작되어 주로 헌터들이 먹는 에너지바다.

“너네는 어디에서 왔냐”

“해가 어딜 가도 머리 위에 바로 떠 있으니 방위를 알 수가 있어야지. 대략 저기쯤이다.”

공태성이 가리킨 방향을 보니 군데군데 시커멓게 탄 흔적들이 보였다.

“오면서 규하 못 봤어”

“하늘을 날아가는 걸 언뜻 보긴 했는데 말을 붙일 틈도 없이 사라지더군. 말해 봤자 듣기나 했을지는 모르겠다만.”

“끄응.”

역시나였다. 이혜연은 심란함을 감추지 못하고 침음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폭주해서 아군까지 공격하는 상황보다는 낫긴 한데…….

“여기에서는 ‘무닌의 눈’도 안 통할 테니 난감하네.”

“‘무닌의 눈’ 스토킹하는 아티팩트 말인가”

“어. 성길이한테 들었는데 규하가 ‘무닌의 눈’의 스킬을 유신이에게 걸었더라고.”

경박한 언행과는 달리 퍽 예리한 장범이 에너지바를 까먹으며 히죽거렸다.

“누나, 이능부가 규하 끌어들이면서 이것저것 편의를 엄청 봐줬다며 규하가 뭔 지랄을 해도 오냐오냐하면서 설설 긴 게 이럴 때 한 방 크게 써먹기 위해서였을 텐데 전혀 쓸모가 없으니 큰일 났네.”

“위에서 무슨 압박을 받거나 여론으로 두들겨 맞아도 규하한테는 타격이 전혀 없겠지만…….”

“걔 남친은 안 그럴 거 아냐. 애가 나이도 어리고 순해서 잡아 먹히기 딱 좋아 보이는 인상이더구만. 몇 살이야”

“스물둘밖에 안 됐어.”

“에구구. 완전 애기네, 애기.”

장범의 히죽거림은 이혜연의 심려를 완벽하게 설명했다. 진입하고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마수 떼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끔찍할 정도로 큰 던전이었다. 공략한 뒤의 수습도 문제였다. 인유신의 안위도 마찬가지고.

공태성이 목뒤를 문지르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상당히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만,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

“이열. 만약 아가씨나 부회장님이 납치됐으면 파파도 눈깔이 홱 돌아서 날뛰었을 거라는 뜻 언제 봐도 우리 파파는 찐사라서 멋있다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혜연도 어느 정도 동감이었다. 가족이 변을 당했다면 그녀도 냉정을 유지할 자신은 없었으니까.

물론 장범은 굳이 한마디를 더했다.

“그래 봤자 이혼당하고 양육권도 없지만.”

공태성의 낯에서 쩌적 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요즘 공태성 지인들 사이에서 최신 트렌드 갈굼 소재는 이혼인가. 언제 봐도 타격감이 좋으니 최진혁의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나름대로 인망이라면 인망일 것이다.

이혜연은 자신 또한 이혼 언급으로 그를 두들겨 팼다는 사실은 망각한 채, 남은 에너지바를 한입에 욱여넣고서 마수들에게 달려갔다.

  

지형이 바뀐다. 마수가 나타난다. 지형이 바뀐다. 마수가 나타난다. 어지러이 뒤섞이는 게이트 안의 풍광만큼이나 현규하의 의식도 엉망진창으로 휘저어진다. 과거가 현재로 뒤집히고, 현재가 과거로 매몰된다.

9살의 어린아이가 침식 게이트를 홀로 클리어했다는 소식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성장하면 희대의 천재로 불릴지도 모르는 어린 각성자는 언론의 호들갑스러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그 아이가, 고작해야 9살이라는 사실을 옳게 이해하는 어른은 없었다. 부모도 보호자도 없는 9살의 어린아이.

어린 나이에 각성하자마자 A급으로 판정된 천재를 조기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정부는 현규하를 훈련소에 입소시켰다. 아이의 의지는 중요하지 않았으며 물어보는 어른도 없었다. 필수 교육은 홈스쿨링으로 대체되었다. 그 외의 시간은 훈련, 훈련, 훈련, 그리고 마수 사냥이었다.

친구는커녕 또래의 아이들도 만나지 못했다. 같이 훈련을 받는 각성자들은 저희 나이의 반도 되지 않는 천재를 매섭게 질투했다. 강사들과 하는 얘기라고는 훈련과 마수에 관한 화제뿐이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아이는 언제나 혼자였다.

보호자가 없는 천재란 사실은 아이의 이용 가치를 더욱 높였다. 애국심으로 포장한 야욕이 충만한 저 위의 누군가는 이렇게 판단했다. 어린 시절부터 잘 교육하여 나라를 위한 번견으로 길들이자.

그렇게 아이는 철저하게 사회로부터 고립되었고, 격리되었다. 훈련소의 사람은 두 부류뿐이었다. 그를 이용하려 하거나 질투 속에 분노하거나.

홀로 서게 된 아이는 사람들에 대한 모든 기대감을 포기했다. 그래도 별로 상관없었다. 이아드로 가는 통로를 찾기에도 바빠서 주변을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었으니까.

〈당신들은 저런 조막만 한 어린애를 세뇌라도 하려는 건가〉

그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이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고 천천히 썩어 갔을 터였다.

강석우.

처음으로 아버지의 정을 느낀 사람.

〈어린애를 학교에도 보내지 않는 게 학대와 뭐가 다르지 침식 게이트 클리어한 뒤에 언론을 타지 않아서 지금은 관심이 식었다지만 규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아. 아는 기자 많은데 하나 잡고 찔러 봐 타이틀 좋게 뽑히겠는데 어린 천재를 병들게 하는 정부의 실체. 괜찮구만.〉

훈련소에서는 아이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또래에 비해 키가 훌쩍 크다지만 아이는 아이다. 강석우는 허리를 굽혀 시선을 맞추었다.

〈규하야, 나랑 같이 갈래 마누라 먼저 보내고 대충 살다 보니 집 안 꼴이 말이 아니긴 하다만 꼬맹이 하나는 책임질 수 있어. 가족 없는 우리 둘이 함께 살면 잘 살 거 같지 않냐〉

두꺼운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진짜 ‘어른’이란 바로 이런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투박한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어른답게 크고, 아주 따스한 손이었다.

〈강 박사님이라고 부르면 돼요〉

〈어이고, 어린애한테 박사님 소리 들으니 낯간지럽네.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라.〉

아이는 배시시 웃었다.

〈네. 아저씨.〉

강석우와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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