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보스 공략을 위해 대형 길드에 협조를 요청하는 사이, 공무 헌터들도 긴급 소집되었다. 서울지부에는 최소한의 경계 인원만 남겼으므로 비번이었던 이혜연도 현장에 즉시 달려왔다.
아 국장에게 간단한 브리핑을 받은 이혜연은 공무 헌터들을 지휘하여 게이트 주변에 배치했다. 그 뒤 지휘권을 베타팀의 팀장에게 임시로 일임한 그녀는 전 세계에도 몇 없는 전술 병기급의 헌터를 찾아갔다.
물론 지금은 전술 병기가 아니라 터지기 직전의 핵폭탄이다. 이혜연의 머리도 심란해서 터질 것만 같았다.
‘유신이가 인질로 잡혔는데 어떻게 규하를 진정시키지’
공태성에게 자세한 얘기를 듣고 계속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없었다. 평소의 현규하를 진정시키는 방법은 아주 간단할 테지만…….
‘그 답인 유신이가 없잖아.’
인유신도 몹시 걱정이었지만 이혜연은 침착하게 판단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인유신만 특정하여 강탈했으니, 그에게서 그만한 가치를 본 것일 터. 당장 목숨의 위협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다.
“찬영아, 규하는 어떠냐”
고작해야 C급 헌터의 정신 공격에 기절한 현규하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게이트 공략 시 후방으로 이송되는 헌터들을 치료하기 위해 구축된 임시 진료소의 구석에 누워 있는 그의 안색은 몹시 창백했다.
“화살에 맞은 상처와 화상은 다 치료했습니다. 의식만 돌아오면 되는데…….”
먼저 도착해서 부상자를 살피던 의료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송찬영도 들었다. 그의 시선은 뒤틀린 공간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우그러진 차체들 사이를 불안하게 감돌았다.
이혜연은 머리를 싸맸다.
〈무방비 상태니까 약물이라도 주사해서 계속 기절시켜 놔. 저 새끼가 이성을 잃고 날뛰면 누가 감당하지 오히려 빠져 있는 게 공략에 도움이 될 거다.〉
공태성의 냉정한 말도 일리는 있었다. 아 국장은 던전 공략팀을 지휘하게 될 이혜연에게 판단을 일임했다.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송찬영이 눈치를 살피며 주사기를 보여 주었다. 주사기 안에서 찰랑거리는 투명한 액체는 여타의 약물과 다를 바 없었으나, 결정석을 활용하여 특수 제작한 약물이다.
S급의 강건한 육체를 잠재우려면 여타의 약물로는 불가했다. 그렇다는 것은, 후유증 또한 적지 않다는 뜻이다.
이혜연은 공략팀장으로서 생각했다. 제어되지 않는 병기는 적이 아니라 아군을 해치는 칼날이다. 불확실하며 불명확한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는 게 옳다.
또한 현규하와 인유신의 지인으로서 생각했다. 현규하 없이 게이트를 공략하고 인유신을 구출해 낸다면, 후에 의식을 회복한 그는 어떻게 될까. 상상 이상으로 인유신에게 맹목적인 그가, 오히려 자신이 구출에 마이너스 요소였음을 인지한다면.
“돌겠네.”
입 속으로 욕을 씹으며 이혜연은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트렸다.
“찬영아, 약은 넣어 둬.”
“괜찮으시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규하를 이번 작전에서 열외로 빼는 건 사람의 도리가 아닌 거 같다. 규하가 이성을 완전히 잃을 거란 게 100퍼센트 확실한 상황은 아니니까 진정시켜 봐야지.”
송찬영은 주저하면서도 주사기를 케이스에 되돌렸다.
“다시 게이트로 나가 볼 테니까 규하가 깨어나면 바로 연…….”
이혜연이 말을 잇던 바로 그 순간, 맥없이 늘어져 있던 손끝이 움찔하는가 싶더니 긴 속눈썹이 서서히 위로 올라가며 눈동자가 드러났다. 이혜연은 이유를 알지 못할 불안감으로 긴장했다. 그의 눈동자가 저렇게 붉은색이었던가
“…….”
간이침대에 누운 채 현규하는 멍하니 허공을 더듬었다. 배회하던 눈동자가 왼손 약지의 반지에 느릿하게 머물렀다. “규하야.”라는 조심스러운 목소리에도 반응하지 않고 반지만 바라보았다.
“유신 씨가…….”
탁하게 쉰 음성이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천천히 현실을 곱씹으며 되새김질하려는 것처럼.
시야가 흔들렸다. 아니, 그의 손이 눈에 띌 정도로 덜덜 떨리는 것이다.
부들거리는 손이 얼굴을 감싸고 짙어진 눈동자가 번들거린 순간, 광포한 기운이 치솟았다.
“우아악!”
제어되지 않는 능력에 휩쓸린 진료소의 천막이 뜯기고 침대를 비롯한 기물과 사람들이 단번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비명을 지르며 본능적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중력을 역행하는 힘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떠오른 기물과 사람들이 거칠게 허공에서 휘저어졌다. 마치 이곳에 국소적인 허리케인이 발생한 것 같았다.
“야! 현규하!”
마찬가지로 속절없이 휩쓸렸던 이혜연이 허공에서 외쳤지만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칫!”
이혜연은 육체를 강화하고 하반신에 무게를 실었다. 쿠웅. 묵직한 울림을 내며 낙하한 그녀는 둔하게 올라오는 통증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걸음을 뗐다.
거세게 일어나는 힘의 파동이 공기를 사납게 휘저어 폭풍이 부는 것처럼 요동쳤다. 부풀어 오른 옷자락이 찢어질 것처럼 연신 펄럭거리고 눈을 뜨기도 힘든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닥쳤다. 최대한 강화했는데도 뛰어가기는커녕 한 걸음씩 걸음을 떼는 게 최선이었다.
가까스로 침대에 도착한 이혜연은 현규하의 어깨를 낚아챘다. 그만한 힘을 쓰고 있는 주제에 맥없이 붙잡혀 오는 몸은 터무니없을 만큼 무방비하다. 시선은 분명히 전방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이혜연만이 아니라 그 무엇도 비치지 않고 있었다.
숨을 한 번 크게 몰아쉰 뒤, ‘빠악!’ 하는 소리가 날 만큼 이마를 세게 쾅 박았다.
“아이고.”
눈물이 찔끔 날 정도의 통증으로 머리가 얼얼했다. 아픔을 감수한 대가는 있었다. 불투명하게 흐려졌던 붉은 눈동자의 초점이 조금은 돌아왔다.
“야. 내 말 들리냐 네가 정신을 똑바로 챙기고 있어야 유신이를 무사히 찾아올 거 아니야!”
“아…….”
“아무리 너라도 현재 상황에서 외부의 공격으로는 게이트 못 뚫어. 공략팀 꾸리고 있으니까 게이트가 열리는 즉시 진입할 거야. 너 거기서도 정신 못 차리고 날뛰다가 유신이까지 눈먼 공격에 휩쓸리게 할 생각은 아니지”
“…….”
“지금 주변을 봐. 여기 유신이가 있었으면 어떻게 됐겠냐 걔도 휩쓸렸어.”
“…….”
“그러니까 단도리 잘해!”
일본말을 쓰면 대뜸 면박부터 주는 놈이 얼굴을 멍하게 숙이기만 했다. 제대로 이해한 건지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반향이 있었다. 요동치던 힘이 가라앉으며 떠올랐던 것들이 서서히 하강했다.
무사히 바닥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휘청거리다 못해 주저앉았고, 멀미 때문에 구역질하는 이도 있었지만 부상자는 없었다.
이혜연은 그제야 안도하여 현규하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어, 규하야. 이따가 전체 브리핑할 거니까 거기 꼭 참석해. 유신이 구해야 하잖아. 그렇지”
망연하기만 하던 얼굴이 느리게 아래위로 끄덕거렸다. 그를 제어한 사람은 결국 인유신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