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토벌이 완료된 히든 보스의 결정석이 재생성되었다. 무슨 일이 발생해도 놀랍지 않은 게 시스템과 게이트라지만, 60년간 전무후무했던 재난이었다. 돌연변이로 분류되는 세 번째 유형의 게이트에 새로운 케이스가 60년 만에 추가된 셈이다.
결정석, 특히 히든 보스의 결정석은 그 자체로 대체 불가능한 에너지원이기도 했기에 이를 산업 단지에서 사용하지 않는 나라가 드물었다. 급히 보도 관제를 하였으나 모든 사람의 입을 막는 건 불가능했고, 각국에 첩보가 전해지기까지는 시간문제였다. 미국에서는 벌써 하원의장의 연락이 왔다.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한 사건에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터였다.
“씨발! 진짜 미치겠군.”
게이트관리국의 아 국장이 평소에 하지도 않던 험한 쌍소리를 신경질적으로 내뱉었으나 누구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못했다. 불과 1시간 전까지만 해도 IA옥션의 강남센터가 위치했던 장소가 불투명하게 일그러져 있었으니.
“측정 결과가 나왔는데 마나 파동이 브레이크가 터진 게이트와 동일합니다.”
“그딴 건 보면 알아! 자문 교수들은 뭐라고 하디 말이 통할 것 같은 히든 보스래”
던전의 보스 몬스터는 기괴한 괴물의 형상을 지녔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이지가 없다. 살아 숨 쉬는 지구의 생명체에 맹목적인 적의를 드러낼 따름이다.
하지만 히든 보스는 달랐다. 그들은 처음부터 광기에 휩싸여 나타나지 않는 이상 명료한 이성을 지녔으며, 때로는 인간보다 월등한 사고를 갖추기도 했다. 싸움을 꺼리거나 온건한 성향이라면 평화롭게 마무리를 지을 수도 있다. 극히 희박한 확률이지만.
‘심장을 씹고 피를 삼키는 가학자’였을 때는 말 그대로 악귀 같았던지라 대화가 성립되지 않았다는 공격대의 정보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이명도 바뀌었고, 피투성이 악귀가 아닌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났다. 말이 통할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멀리 갈 거 없이 이능부의 헌터인 이혜연의 귀속 아티팩트도 그렇게 적당한 선의 전투를 통해 획득하지 않았던가.
아 국장은 화형당하는 것 같은 보스 몬스터가 날뛰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애써 묻어 두며 질문했지만, 긍정적인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전의 이명이었던 ‘심장을 씹고 피를 삼키는 가학자’의 환영을 참고했습니다. 거기에 흑인 여성, 국왕, 전통 복식, 시녀의 등에 의자처럼 앉았다면 아마 은징가 음반데일 거랍니다.”
“그게 누군데!”
“현재 앙골라 일대의 왕이요.”
“아니, 씨발. 어쩌다가 그 먼 아프리카 왕의 던전이 한국에 열려서! 엿 먹이려면 유럽 땅에 열렸어야지! 우리나라도 똑같은 식민지였었다고!”
던전은 배경과는 상관없는 영토에 랜덤하게 열리니, 엄밀히 따지자면 그녀의 짜증은 불합리했다.
“그래, 아무튼……. 그 은징가란 왕은 막 평화를 사랑하고, 자애롭고, 상냥하고, 따뜻하고, 그랬었대 처음의 이명만 무시무시한 거겠지 이번에 나왔을 때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왕이었대잖아.”
“한창 유럽이 식민지 점령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던지라……. 반평생 전쟁터를 전전했었답니다. 본인도 유능한 장군이었던 데다가 어렸을 때부터 남자처럼 전사 훈련을 받았다고 하고요.”
“…….”
“은징가 왕이 살아 있을 때 끝내 왕국을 무너트리지 못한 유럽인들이 수백 명을 학살하고 식인했다는 악의적인 이미지를 씌워서 처음에는 ‘심장을 씹고 피를 삼키는 가학자’란 이명으로 나온 것 같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적들에게 잔인하게 군 건 사실이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치르는 약탈자들과 동맹을 맺어 거느리기도 했고요. 본인도 그 의식을 이행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
“끝까지 독립을 지켜 냈으니 사후 수백 년이 지난 뒤에도 ‘앙골라인만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기억한다.’라고 칭송받은 기록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씨발. 하여튼 만악의 근원인 영국 놈들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나쁜 일만 생기면 죄다 영국의 원죄라고!”
“당시 왕국을 식민지로 삼으려던 나라는 영국이 아니라 포르투갈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놈이 그놈이잖아!”
제국주의 시발 것들에 대한 분노를 터트린 아 국장은 눈앞의 게이트를 보며 암담한 탄식을 흘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로 설득할 수 있는 히든 보스가 아니었다.
“포르투갈로 이동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하면……. 안 되겠지”
“안 되겠죠…….”
“우리 아버지가 에티오피아에서 귀화하셨거든 반쪽이긴 하지만 나도 흑인이고 조상님이 아프리카 출신이니까 옛날에 만났다면 언니 동생 하는 친한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르잖아 그걸로 설득하는 거 어떻게, 안 될까”
“그 당시에는 흑인들의 공동체 의식이 없었다고 알고 있어서요. 국장님이 만나셨다면 아마 노예로 팔렸을 거 같습니다만…….”
“이 개 같은 포르투갈 놈들!”
히든 보스가 던전 안에 나타났다는 건, 지금 당장이라도 몬스터 웨이브가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였다. 거기에 마수 떼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위협적인 히든 보스의 존재까지 더하여.
만약 서울 한복판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다른 부하가 치를 떨고 있는 그녀에게 보고했다.
“국장님! 드론을 다시 날려 봤는데 게이트 내부 진입은 여전히 불가합니다.”
“얼마나 큰 걸 준비하고 있길래 이렇게 뜸을 들여. 아오…….”
이렇게 된 이상 게이트가 열리는 즉시 전력을 다해 빠르게 던전을 공략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만 문제는 인질로 잡힌 민간인이 한 명 있다는 점이었다.
아 국장은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도 아닌 평범한 민간인 한 명의 목숨은 서울 전체의 안보에 비하면 턱없이 가볍다. 다른 때였다면 인질의 안전을 고려하되, 히든 보스의 공략을 최우선시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터다.
인질로 잡힌 사람이, 아무도 손대지 못하던 핵폭탄의 안전핀이나 다름없는 유일한 이가 아니었다면.
“현규하……. 현 헌터는 지금 어떻지”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아.”
아 국장은 한숨을 쉬며 이마를 눌렀다. 던전을 빠르게 공략하려면 그가 빨리 회복해서 합류해야 하는데 깨어난 뒤의 일도 문제다. 현규하를 어떻게 해야…….
“우아악!”
불현듯 후방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다급히 뒤를 돌아본 그녀의 눈에 비친 건 하늘에서 정신없이 휘도는 천막과 의료진들이었다. 아 국장의 얼굴에서 급속도로 핏기가 사라졌다.
현규하가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