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거나 나쁘게 대한 일이 없는데도 현규하와 나누었던 대화 탓인지 괜히 긴장되었다.
‘길드장님이라면 아는 사람도 많을 테니 그냥 지나쳐서 가시려나’
하지만 공태성은 그에게 인사를 붙이려는 사람들에게 건성으로 한 손을 올려 보이면서 정확히 인유신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왔다. 한준수와 낯선 남자를 동행한 채였다.
자신이 앉은 곳으로 저벅저벅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무심코 침을 꼴깍 삼켰는데, 공태성은 평범한 인사를 건넸다.
“이런 곳에서 다 보는군.”
“안녕하세요, 유신 씨.”
1박 2일을 같이 보내고 더 서글서글해진 한준수도 반갑게 고개를 숙였다. 옆에 있던 경박한 인상의 남자가 휘파람을 휘익 불었다.
“네가 유신이구나 난 장범이야. 알고 있겠지”
“아, 네! 안녕하세요.”
장범은 나르샤 길드에서 가장 S급에 가깝다고 일컬어지는 상위 랭커 헌터다. 인유신도 얼굴은 헷갈리지만 이름은 기억하고 있는 유명한 헌터였다.
“이야, 안 그래도 네 소문만 많이 들었거든 규하를 대체 어떻게 길들인 거야 그게 길들기는 하는 놈이었어”
“그냥, 잘…….”
“얼굴 한 번 꼭 보고 싶어서 던전 소풍에 따라갈 계획이었는데 급똥 소식이 와서 화장실에 있는 사이에 날 내다 버리고 출발했더라고. 진짜 너무하지 않냐. 내가 변비가 있어서 오랜만의 쾌거였는데 축하해 주지는 못할망정.”
“그런 슬픈 일이…….”
처음 보는 사람의 내밀한 생리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괜히 또라이라고 유명한 게 아니었다.
한준수의 눈이 찌푸려지고 듣다 못한 공태성도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너는 좀, 그 주둥아리 좀!”
“파파는 맨날 범이만 미워해.”
장범이 어린아이처럼 입을 삐죽 내밀었다. 밖에서는 최진혁이 갈구고 안에서는 장범이 말썽을 피우니 나르샤 길드장도 아무나 할 건 못 되나 보다. 그 덕분에 긴장감은 풀렸지만.
“이놈은 무시해도 된다.”
“넵.”
“아무튼 현규하와 같이 온 건가”
“아까 규하 씨가 아이템이랑 아티팩트도 낙찰받았었어요.”
“그랬던가 나는 눈여겨본 물품이 마지막 타임에 경매된다 해서 방금 도착한 참이다.”
공태성이 경매 카탈로그에 나온 경매품 하나를 툭 쳤다. 경매품을 본 인유신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현규하도 지대한 관심을 보일 거 같다.
“낙찰받은 게 뭐예요 유신 씨 선물”
한준수가 나이 차이 나는 막냇동생을 대하듯 친근감 있게 웃으며 말을 붙였다. 덩치 큰 남자 셋이 앞에 버티고 서 있으니 꼭 벽을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현규하도 장신의 근육질이지만 체형이 날렵하기 때문인지, 경쾌한 분위기 때문인지 답답함을 느낀 적은 없었는데.
“마나를 증폭하는 아티팩트요.”
공태성이 미간을 살짝 모았다.
“네 마나를 증폭해 봤자 쓸 곳이 어디에 있다고”
현규하도 조상필도 간과했던 점을 공태성은 바로 지적했다. 이 사람이 가장 객관적이고 냉정한 판단력을 갖고 있었나 보다. 역시 길드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인유신이 쓸데없는 감탄을 하는 사이 한준수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에이, 그걸 그렇게 말하시면 안 되죠. 하나 있으면 뭐……. 어떻게든 잘 쓸 수 있지 않겠어요 햄스터를 더 테이밍할 수도 있고, 안 그래요”
“집도 좁고 질투가 좀 심해서 더 데려오는 건 어려워요.”
“햄스터도 동생 생기는 거에 민감한가 봐요.”
침식 게이트 때 없었던 한준수는 햄스터 얘기라고 지레짐작했지만 공태성은 탐탁지 않아 하는 표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현규하 얘기라는 걸 눈치챈 거 같았다.
장범이 뒤통수를 문지르며 끼어들었다.
“마나가 많으면 귀속 아티팩트도 여유 있게 쓸 수 있잖아. 딱이네. 규하한테 하나 찾아 달라고 해.”
“유신 씨, 우리 길드장님을 반면교사 삼아서 귀속 아티팩트는 신중하게 잘 선택해야 합니다.”
“기왕이면 테이밍 관련 아티팩트라면 딱일 텐데. 관련 전설이나 실화가 배경인 던전이 있으려나”
“괴물을 길들인 전설이라면 좀 있지 않아요”
명절 때 만난 친척 형처럼 오지랖을 떨기 시작하는 두 사람의 얘기를 듣던 인유신의 뇌리로 불현듯 이상한 직감이 스쳤다. 불투명한 유리 너머를 바라보는 것처럼 머릿속에 무언가가 자꾸만 아른거렸다. 혹시 공태성과 관련된 메시지가 출력되는 것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걸까
긴가민가한 느낌에 망설이다가 슬쩍 물었다.
“길드장님.”
“음”
“혹시 댁에서 물고기 기르세요 열대어처럼 작은 거 말고, 큰 거요.”
“아니.”
공태성의 대답은 자연스러웠다. 그 때문에 바로 앞에서 응시하던 인유신도 질문을 들은 순간의 흔들림은 포착하지 못했다.
아니라는 대답을 들었는데도 아주 거대한 물고기의 그림자가 그와 겹치는 듯한 낯선 기분이 자꾸 들었다. 물고기와 뭔가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려고 입술을 다시 열려는데, 공태성이 손을 올리는 게 더 빨랐다.
“잠깐, 실례.”
고개를 조금 숙인 그가 뭔가 보는 눈치더니 손수건을 내밀었다. 입가를 닦으라는 손짓에 그의 손수건을 받아 슥 문질렀다. 아까 먹던 핑거 푸드의 부스러기라도 붙었나 보다.
“공태성.”
그리고 공교로운 타이밍에, 현규하가 그 모습을 목격했다. 비스듬한 각도였기에 공태성이 인유신의 얼굴을 감쌌다고 착각하며.
서늘하게 식은 음성이 주변을 갈랐다. 삼삼오오 모여서 핑거 푸드로 입가심도 하고, 친목 도모도 하느라 웅성거리던 공기가 삽시간에 경직되었다. 압박적인 기세가 일자 사람들은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좌우로 분분히 갈라졌다.
공태성이 허리를 곧게 펴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시선을 받아쳤다. 오해를 정정할 필요도, 굳이 거는 싸움을 마다할 필요도 없다는 얼굴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인유신도 당황했으나 어떻게 현규하를 만류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서 대뜸 오해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더 이상하게 여길 것 같았다. 문득 8세가 아프지 않게 인유신의 손가락 끝을 깨물었다.
“꾸이이.”
보석처럼 빛나는 까만 눈동자가 결연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바닥에 뚜벅뚜벅 부딪히는 구두 굽 소리가 스산했다. 누군가는 두 헌터의 심상치 않은 기색에 얼굴이 하얗게 되어서 피하고, 누군가는 인터넷을 조금 방황하다가 사라진 ‘현규하-현규하 남친-공태성의 삼각관계’ 루머를 떠올리며 팝콘을 찾았다. 장범은 후자였다.
불필요한 소란을 제지해야 할 가드들도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을 때.
“찍!”
인유신이 냅다 던진 8세가 날다람쥐처럼 사지를 쫙 펴고 용맹하게 털퍽 부딪혔다. 상대가 인유신이기에, 날아오는 걸 알면서도 완전히 방심한 현규하의 얼굴에.
“삐약! 삑! 삐익!”
“그건 쥐가 아니라 병아리 소리잖아.”
짧은 사지로 얼굴에 파다다닥 부딪히며 활개 치는 8세의 뒷덜미를 두 손가락으로 잡아서 떼어 내며 현규하가 노려보았다. 꽤나 싸늘한 음성이었으나 이성은 돌아왔고,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압박감도 서서히 수그러들었다.
“이놈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돌리면 하늘을 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날다람쥐도 설치류니까 뭔가 방법이……”
“삐엥!”
된다는 건지 안 된다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8세의 용감한 희생 덕에 분위기가 완화되었으므로 인유신은 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팝콘을 아쉽게 거둔 장범이 손을 흔들었다.
“어이, 규하야. 오랜만이네 우리 파파와 싸우고 싶으면 얼마든지 나르샤로 찾아오라니까.”
물론 현규하는 그 인사를 씹었다. 때마침 휴식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음악 소리가 들렸기에 그들도 테이블을 찾아 돌아갔다.
“저 인간 불신 미친개와 계속 만나려면 네 신상부터 걱정해야 할 거다.”
공태성이 돌아가기 전에 인유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속삭인 말에 현규하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긴 했지만. 테이블 위를 포로로 달려오는 8세를 손바닥으로 안으며 의자에 앉았다.
“입가에 뭐가 묻어서 손수건 주셨어요.”
“어디요”
“여기요.”
별생각 없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촉촉한 감촉이 닿았다. 눈이 마주친 현규하가 배시시 웃었다.
“애완쥐의 소독.”
그냥 손수건만 닿았을 뿐이라든가, 다른 사람들이 본다든가, 여러 말들이 속에서 뭉클거렸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현규하의 기분이 풀린 것 같으니 됐다.
어느새 현규하에게 붙잡힌 손가락을 슬쩍 빼내며 말문을 돌렸다.
“낙찰할 거 더 있으세요”
“딱히 없는데요.”
말문을 돌리려는 의도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늘 그랬던 것처럼 현규하는 내색 없이 그에게 맞춰 주었다. 그의 배려에 외려 가슴 안쪽이 뭉친 듯이 답답하다.
“갖고 싶은 거 있어요 카탈로그 보여 줄까요 사실 ‘중긴 카툰의 벅특’만 보고 카탈로그 확인을 제대로 안 해서 후반 타임에 당신이 좋아할 만한 게 뭐가 나올지 모르겠네요.”
“저보다는 규하 씨가 관심 가지실 거 같아서요.”
“음, 그게 뭘까.”
“히든 보스의 결정석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