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상태 살의. 애정. 황홀.]
중얼중얼하는 사람은 멀쩡한데, 듣는 인유신의 얼굴은 점차 열이 올랐다. 황홀……. 아니, 황홀이라니. 그 정도까지는 아닌 거 같은데……. 저번의 현규하처럼 각 잡고 빼입은 정장도 아니고 기껏해야 가볍게 입는 세미 정장일 뿐이었다.
난생처음 듣는 단어의 나열에 열기만 화끈화끈 오르자 인유신은 결국 단단한 어깨를 툭툭거리며 밀어 냈다.
“경매장 안 가요”
“으응, 가야죠.”
현규하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길로 그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목덜미를 안은 손이 귓불과 그 아래의 살갗을 느슨하게 훑는다. 살짝 벌어진 입술의 선을 핥듯이 가볍게 쪼아 오는 두 번째 키스를 받자, 이번에는 왠지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사이즈가 딱 맞는 구두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면접 볼 때도 로퍼를 신는 게 전부였던 인유신이 구둣주걱을 찾으려 신발장을 두리번거리자 현규하가 냉큼 무릎을 꿇고 앉아 신겨 주었다.
구두를 신기면서 손가락이 발등을 지나 발목과 복숭아뼈까지 둥글게 어루만졌다. 흠칫했지만 다리를 빼다가 자칫 그를 걷어찰지도 몰라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쩜 뼈까지 동글동글한 게 참 예뻐요.”
“그, 복숭아뼈는 누구나 동그랗지 않을까요……”
“주인님은 그 비율마저 황금 비율이거든요.”
“삐엥!”
8세까지 동의한다는 추임새를 넣었다.
“저 자식과 의견이 같다니 분하지만 이번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군요.”
마침 현규하의 휴대폰에 문자가 오지 않았다면 민망한 소리를 얼마나 더 듣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현규하가 휴대폰을 확인하는 사이 인유신은 슬쩍 발을 빼내 바짓단을 내렸다. 복숭아뼈는 잘 가려졌다.
현규하는 “흐음.” 하는 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민끝녀의 문자였다.
[준수 말로는 함경북도 회령에 다녀온 뒤로 이상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는군요.]
메시지에는 공태성이 회령을 방문했던 날짜가 적혀 있었고, 그녀도 따로 추적했지만 당시 회령에서 있었던 일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내용이 더불어 요약되어 있었다.
[공 씨가 인유신 씨를 조사한 이유와 관계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나 해서 말해요.]
문자를 읽으며 턱을 톡톡 두드리던 현규하는 그 내용을 알려 주며 물었다.
“공태성이 따로 연락한 적은 없었어요”
“길드장님이요 연수 다녀온 이후에는 얼굴도 못 봤어요. 저한테 볼일이 있으실 리가……. 아, 참. 일부러 숨기려고 한 건 아니고 그 뒤에 일이 많아서 말하는 걸 깜빡한 건데요. 연수에서 길드장님이 귀속 아티팩트를 사용하셨을 때 저한테 알림이 뜨더라고요.”
“……공태성의 알림이, 주인님에게요……”
현규하의 낯에서 급속도로 표정이 사라졌다. 인유신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요! 저랑 길드장님 사이에 테이밍 같은 게 있었던 건 절대 아니고요!”
변함없이 햄스터 두 마리와 박쥐 한 마리만 새겨져 있는 문신까지 보여 준 뒤에야 그는 진정했다. 인유신은 그가 멘탈을 챙길 수 있도록 팔을 뻗어서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규하 씨가 일부 해방했을 때처럼 저한테 아티팩트가 품고 있는 기억이 보인 것도 아니었고, 이름도 그냥 각성자 공태성이라고만 나왔어요.”
“설마 쥐띠여서…… 쥐띠가 몇 년생이죠”
쥐의 해, 쥐의 달, 쥐의 날, 쥐의 시에 태어났으니 설치류라고 우기는 수작, 시스템이라면 하고도 남을 거 같다.
인유신도 헷갈려서 공태성의 프로필과 같이 검색해 봤다. 공태성은 쥐띠가 아니었다.
“그전에 있었던 일과의 차이점이라고는 8세밖에 없어서요.”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파우치에 있는 8세에게 향했지만, 8세는 얼굴만 갸웃할 뿐이었다.
“뀨우”
“3분만 시간 주세요.”
“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귀척을 떨면서 가증스럽게 주인님을 속이고 있는 이놈을 족쳐서 이유를 알아 오겠습니다.”
“삐에엑!”
8세는 번개처럼 파우치에서 튀어나와 인유신의 슈트 소맷단 틈으로 도망쳤다.
“자, 잠깐만요! 규하 씨, 진정!”
“후우.”
오동통한 몸을 구겨서 손목 안쪽으로 기어들어 간 8세를 노려보며 현규하는 심호흡을 했다.
“8세가 저한테 해를 입힐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테이밍하기 전부터 누군가가 저에게 준 선물이라는 느낌도 강하게 들었고요…….”
느낌이라고 해 봤자 불명확한 증거가 아닌가. 말을 하면서도 인유신은 조마조마해했는데 현규하의 표정이 꽤 진지해졌다.
“침식 게이트에서 선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뜻이죠”
“짐작 가는 게 있으세요”
“…….”
소맷단 틈으로 보이는 8세의 빵실빵실한 궁둥이를 노려보는 한편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던 현규하가 곧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은 이렇다 할 만한 게 떠오르지 않는군요. 조금 더 생각을 가다듬어 볼게요. 그 뒤에 공태성과 연결되는 느낌은 없었고요”
“네. 길드장님이 다른 던전에서 아티팩트를 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야 금방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현규하는 휴대폰을 톡톡 터치했다.
“답문이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경매장으로 출발해요.”
“많이 안 늦었을까요”
“생각해 보니까 경매 시작 전의 쓸데없는 소개는 패스해도 되겠습니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나란히 현관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