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214)

“®ÀÇ란 세계에서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고 나를 임신했어요. 내 아버지는 이 세계가 아니라 ®ÀÇ의 루마니아인이란 거죠.”

“…….”

놀란 표정을 제대로 가다듬지도 못하는 인유신을 본 현규하가 피식 실소했다.

“내가 정말 미쳤으면 내 발로 정신 병원에 갈 테니 그렇게 겁난 토끼처럼 안 봐도 돼요.”

“아, 아니, 미쳤다는 생각은 절대 안 해요! 그냥 좀, 노, 놀라서…….”

허둥지둥 대꾸하다 보니 오히려 정신이 좀 돌아왔다. 괜히 콩닥거리는 심장을 쓸어내리는 그에게 현규하가 농담했다.

“다른 세계 유전자가 섞였다고 해서 갑자기 괴물로 변해서 유신 씨를 잡아먹는 일 같은 건 없을 테니까요. 다른 의미로는 잡아먹고 싶긴 한데.”

“으, 방금 또 은근슬쩍 성희롱한 거죠.”

“어딘가에는 주인님이 잡아먹으라고 명령하는 평행 세계가 있지 않을까요.”

진심으로 섭섭해하는 듯한 대꾸를 들으니 왠지 자신이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평행 세계의 규하 씨도 너무나 규하 씨다울 거 같아.’

거기에서도 자신은 그와 만나게 되었을까. 잘 모르겠다.

“제 히든 특성도 글자가 깨져 있잖아요. 규하 씨가 말한 그 세계랑 뭔가 관련이 있는 거예요”

“정확히는 내 특성 중의 하나인 ̵¡©±Ï¶와 세트로 묶이는 건데……. 왜 유신 씨에게 발현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감추려는 게 아니라 진짜 모르겠어요. 유신 씨 특성인 ¦°ø¾Îð는 ®ÀÇ의 사람이 가지고 있을 줄 알았거든요.”

현규하는 턱을 톡톡 두드리면서 잠깐 생각하는 눈치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유신 씨의 특성이 ¦°ø¾Îð라는 건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지 마세요. 어차피 이곳 세계에서는 필요 없는 특성입니다.”

그러고는 가볍게 분위기를 환기했다.

“여하튼 제가 찾는 건 쉽게 말해서 ®ÀÇ로 가는 열쇠라고 생각하면 돼요.”

“아버지가 그곳에 계세요”

“죽지 않았으면요.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서 ®ÀÇ에 가려는 건 아니에요. 실종되었던 어머니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그 말을 하며 현규하는 비웃는 거 같기도 하고, 탄식하는 거 같기도 한 묘한 감정을 드러내고서 입술을 움직였다.

“®ÀÇ에 가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목표는 어머니예요. 이 나이가 되어서도 어릴 때 헤어진 어머니를 쫓는다는 게 웃기죠”

“……아니요.”

인유신은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

“엄마를 다시 볼 기회가 있다면 저도 규하 씨처럼 찾아다녔을 거예요.”

“유신 씨의 어머니와 내 어머니는 아주 많이 다른 사람이지만요.”

현규하의 입술에 다시금 오른 미소는 뚜렷한 냉소였다.

“내가 어머니를 좋아하는지, 원망하는지, 보고 싶은 건지, 보고 싶지 않은 건지 이제는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는 전해야 할 거 같아서요.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또 궁금한 건요”

솔직히 아주 많다. 예전과는 다르게 그는 자신이 무엇을 묻든 대답을 해 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대답을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인유신은 가만히 얼굴을 내저었다. 현규하도 더 붙잡지 않고 주억거렸다.

“그래요, 오늘의 현규하 타임은 여기까지. 다음 이 시간을 기대해 주세요. 그럼 이제 인유신 타임을 좀 가져 봤으면 하는데요.”

“어, 저요 저한테 뭐 궁금한 거 있으세요”

“말 돌리는 재주가 없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테니, 오해는 하지 말아 줬으면 합니다.”

“뭔데요”

“14년 전 부모님의 사고가 파주에서 일어난 거라고 했었죠 어디에 있는 펜션이었나요”

“감악산이요.”

“…….”

대답을 들은 현규하의 호흡이 한순간 끊어졌으나, 바로 말을 이었기에 인유신은 이상을 눈치채지 못했다.

현규하가 여상한 어조로, 그러나 그와 눈을 마주하지 않은 인유신은 알지 못하는 창백한 안색으로 입을 뗐다.

“……부모님의 기일이 정확히 언제죠”

“27일요.”

영문을 알 수 없는 질문이었지만 숨길 내용도 아니었기에 선선히 대답했다. 부모님의 뭐가 궁금한 건지 인유신이 되물으려 했을 때, 휴대폰의 벨 소리가 대화를 끊었다.

이마를 쓰는 척하며 눈을 가린 현규하가 받으라고 손짓했다. 인유신이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터치했을 때는 이미 그의 얼굴에서 창백함이 완전히 가신 뒤였다.

“안녕하세요, 조 박사님. 식사는 하셨…….”

- 유신 씨! 지금 어딘가

안부를 묻기도 전에 조상필은 흥분한 목소리로 대뜸 외쳤다.

“회사인데……. 왜 그러세요”

- 8세와 관련된 이론이 하나 떠올라서 말일세! 전화보다는 직접 말로 전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연구원에 올 수 있겠나 8세와 같이 와 주게!

흥분했는지 와다다다 쏘아붙인 조상필은 대답조차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인유신은 머리를 긁적였다.

“조 박사님이 8세 데리고 한번 오라고 하시는데요.”

“그럼 지금 가죠, 뭐. 과장님한테 외근 허락받아 올게요.”

현규하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중단하며 일어났다. 태연해 보이는 그 얼굴에 덜컥 겁이 난 인유신은 그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저어, 규하 씨. 아니죠, 설마……. 아니죠”

격하게 흔들리는 동공을 내려다보며 현규하는 꿀을 핥는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연구원까지 잘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전 지하철 타고 가겠습니다!”

“삐에엑!”

“아니, 오늘 막 아다를 뗐는데 한 번 하는 걸로 만족한단 말이에요 조루인가 하지만 주인님이 조루라도 난 다 포용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요. 유춘이랑 같이 당신에게 짜릿한 천국을 보여 줄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이름은 또 언제 붙였어요!”

“주인님 이름을 땄는데요.”

“안녕히 계세요!”

인유신은 비명을 지르는 8세를 손으로 안고 서둘러 대기실에서 도주하려 했으나,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8세의 애처로운 비명과 인유신의 간절한 바람이 통한 것일까.

네 번의 시도 끝에 시동을 걸고 출발한 너덜너덜한 고오급 스포츠카는 10미터도 못 가서 완전히 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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