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214)
  • 라이브 방송이 종료되었을 때는 얼추 점심시간이었다.

    직원들의 멘탈은 멘탈이고, 방송 기념 회식은 회식이다. 청사 근처의 고깃집에 도착해서 솔솔 풍기는 고기 냄새를 맡자 노 팀장을 제외한 직원들은 정신을 수습했다.

    “회식 있는 줄 알았다면 마수 고기 말고 더 좋은 거 먹으러 갈 걸 그랬군요.”

    현규하가 혀를 찼다. 이미 예약을 해 두어서 취소할 수가 없었다.

    레드훅을 비롯한 마수 고기가 한 접시씩 들어오자 노 팀장도 뒤늦게나마 기운을 차렸다. 배 속에 고기라도 쑤셔 넣어야 상사에게 깨지더라도 버틸 수 있지 않겠는가.

    “급조한 첫 라방이었는데 오늘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저희 팀이 헌터님과 유신 씨에게 신세를 참 많이 지고 있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점심시간 지나기 전에 돌아가야 하니까 얼른얼른 먹어요. 민원 들어가면 안 되니까 소주는 안 돼!”

    테이블에는 금세 고기 굽는 냄새가 맛있게 풍기기 시작했다. 늘 그랬듯이 인유신이 집게를 들기도 전에 먼저 빼앗다시피 가로챈 현규하는 알아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고, 같은 테이블의 직원들도 황송해하며 덤으로 고기를 먹었다.

    8세도 인유신이 소주잔에 따라 준 콜라를 찹찹 핥았다. 라이브 방송을 하는 사이에 사무실의 직원들에게 귀여움을 받고 간식까지 얻어먹었다고 들었는데 고기가 들어갈 배는 남아 있었나 보다.

    “유신 씨, 얘 생마늘도 잘 먹네요 진짜 신기하다.”

    고기를 오물거리던 8세는 옆의 직원이 호기심으로 준 마늘도 오독오독 깨물었다. 맵기는 매운지 먹는 속도가 느려지기는 했으나 마늘 편 하나를 금방 꿀떡 먹었다. 인유신은 고기를 8세의 앞접시에 더 덜어 주었다.

    “이름이 팔세예요”

    “숫자 8이요. 얘 이전에 키운 쥐가 일곱 마리여서요.”

    “아하. 8세야, 고기 많이 먹어.”

    대외적으로 8세는 현규하를 따라간 던전에서 발견한 햄스터 형상의 마수를 테이밍했다고 말했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저놈은 생고기도 잘 먹을 거 같은데요.”

    투덜거리면서도 현규하는 8세 앞에 덜어 줄 고기도 가위로 잘게 썰었다. 고기에 정신이 팔린 8세는 드물게도 현규하의 구박에 반응하지 않고 열심히 고기만 뜯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옆 테이블의 직원 하나가 문득 소리를 높였다.

    “오, 우리 방송 반응 완전 좋은데요”

    “벌써 퍼졌어”

    “두 분 헌터님이 나오셨는데 당연하죠! 언뜻 훑어보기로는 제일 핫한 게 멜…… 크흠, 현 헌터님이 웃으시던 그 부분 같아요.”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반응까지 좋다는 얘기에 회식 자리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현규하만이 자신의 얘기가 들리고 있는데도 무심히 고기를 굽고 있을 따름이었다.

    “깻잎 더 먹을래요”

    “아, 네.”

    슬그머니 반응을 찾아보려다가 현규하가 말을 걸어서 제풀에 찔린 인유신은 얼른 휴대폰을 내렸다.

    회식이 끝나자 다른 직원들은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갔지만 인유신은 현규하와 함께 느긋이 헌터 대기실로 향했다. 다른 때였다면 얼굴로 꼬시는 현규하의 유혹을 버티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체력 단련실로 내려갔겠지만 오늘은 그가 핏이 완벽한 정장을 입었다.

    “주인님 앞에서 구겨진 옷을 입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순간 인유신은 매일매일 정장 입어 달라고 할까, 라는 생각에 혹했다.

    하지만.

    “다음에 슈트 입을 때는 내 트레이닝복도 챙겨 와야겠어요.”

    “…….”

    그럼 그렇지, 그렇게 만사가 쉽게 풀릴 리가 없다.

    다른 헌터들은 단련실에 있거나 외근을 나가서 대기실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양껏 고기를 흡입한 8세는 볼록한 배를 내밀고 빈 의자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뀨웅…….”

    제 몸무게의 수십 배는 먹은 느낌인데 대체 먹은 음식들은 다 어디로 들어간 걸까

    현규하가 탕비실에서 두 사람 몫의 커피를 내리러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인유신은 재빨리 휴대폰에 검색어를 입력했다.

    현규하 멜로 눈깔.

    주르륵 뜨는 수많은 검색 결과의 바다에서 인유신은 움짤이 있을 거 같은 웹 페이지를 클릭했다.

    - 라방에서 지 혼자 멜로물 찍는 헌터가 있다....!

    〈현규하 멜로 눈깔.gif〉

    ㅋㅋㅋㅋ...

    솔찌 공개 연애하는 거 많이 불만이었는데 오늘 라방보고 다 납득함... 이건 찐이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는 눈깔임... 연애 세포 다 뒤진 줄 알았는데 방금 개같이 부활

    └저건 진실의 광대야

    └비밀연애 해봤자 금방 들통났을거라는 거에 어제 받은 규하 포카 건다. 저걸 어케 숨기냐고ㅋㅋㅋㅋㅋㅋㅋ

    └라방 내내 성의는 있는데 싸가지는 없고 시키는 건 하면서도 건성인 희한한 태도였는데 애인 보고 웃던 찰나에만 영혼이 살아남ㅋㅋㅋㅋㅋ눈에 활기 도는 뀨 본 것만으로도 오늘 라방 가치가 있닼ㅋㅋㅋㅋㅋㅋㅋ

    └이능부 공무 헌터가 홍보용으로 찍은 라이브에서 제일 많이 한 말 남친

    └근데 오늘 방송으로 확인사살까지 당했는데도 규하가 연애에서 을이라는게 믿기지 않음ㅋㅋㅋㅋ얼마나 좋아하는 거면 차이고 또 차여도 잘 보이겠다고 애착 재킷까지 갖다 버리는건데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

    └└남친니뮤ㅠㅠ우리 뀨 그만 차고 이뻐하면서 길러주세요ㅠㅠㅠㅠㅠ

    시선이 마주했다는 이유만으로 녹아들 듯 달콤하게 피어난 미소가 새삼스럽다. 그가 자신을 볼 때면 늘 이런 눈을 하고 있었던가. 일상에서 마주할 때는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진 그의 표정들이, 타인의 눈과 입으로 재조립되자 익숙함에 무뎌진 감정을 되새기게 한다.

    자신이 그를 볼 때는 어떤 표정인지, 인유신은 갑자기 궁금해졌다.

    “본인 놔두고 왜 저화질 짤을 봐요.”

    언제 다가왔는지 현규하가 얼음까지 동동 뜬 커피잔을 내밀었다. 인유신은 얼른 인터넷 창을 껐다.

    지금 시선이 마주쳤다가는 분명히 아까의 그 미소가 머릿속을 산란하게 할 것이다. 8세의 볼록한 배를 쓰다듬으며 슬쩍 눈을 내렸다.

    “팬분들이 많이들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팬 카페는 가입했으면서 어쩌다가 강퇴당할 때까지 한마디도 안 하신 거예요”

    “별 이유는 없고요.”

    현규하가 자신의 커피를 마시며 옆에 앉았다.

    “나는 살아가는 게 의미가 하나도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정말 즐겁고 보람차게 살고 있는 게 의문이어서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발견했던 거예요. 뭔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 열심히 사는 거 같더라고요.”

    “…….”

    “정작 당사자는 무료하고, 지치고, 다 놓고 싶은데, 그런 날 보면서 살아갈 기운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그냥, 신기했어요.”

    그의 권태는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담담한 말투로, 그러나 무심하게 과거를 반추하던 현규하는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짐짓 웃음기를 섞어 마무리했다.

    “아무 말도 안 했던 건 귀찮아서지만요. 딱히 할 말도 없고.”

    “저, 규하 씨.”

    아마도 지금이 간간이 품고 있던 의문을 건네기에 좋은 타이밍 같았다.

    “저랑 다니는 게 규하 씨가 뭔가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잖아요. 근데 그걸 찾으려고 일부러 절 데리고 던전에 간 적은 처음 말고 없는 거 같아서요. 빨리 안 찾으셔도 되는 거예요”

    “완전히 느긋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테이블에 커피잔을 내려놓은 현규하가 의자 등받이로 팔을 뻗어 인유신의 어깨를 느슨하게 안았다. 어깨를 건반처럼 느릿하게 두드리는 손끝에서 자잘한 전류가 튀는 것만 같다. 인유신은 커피 맛에 집중하며 차가운 얼음을 입 안에서 굴렸다.

    “그걸 찾겠답시고 당신과 보내는 시간을 소모하는 게 아깝기도 해서요.”

    “찾기만 하면 일이 전부 다 끝나는 거예요”

    “…….”

    현규하가 갑자기 입을 다물자 인유신은 바로 한발 물러났다.

    “말하기 곤란한 문제라면 대답 안 해도 괜찮아요.”

    “아뇨, 그게 아니라……. 어떻게 풀어서 설명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가다듬던 중이었어요.”

    반도 채 비우지 않은 커피잔에서 완전히 손을 놓은 현규하가 등받이에 몸을 깊이 기대었다. 대화를 중단한 그의 표정은 뭔가 고민하는 낯이긴 했으나, 그곳에 떠오른 건 망설임이 아니었다.

    “평행 세계라는 거, 유신 씨도 믿죠”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게 존재할 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던전 연수에서 박승기 씨와 얘기했을 때 내가 던전의 배경이 평행 세계임을 확신한 이유는 간단해요. 내 어머니의 고유 능력이 평행 세계를 이동하는 것이거든요.”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 듯한 담담한 어투였기에 인유신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뒤늦게 그의 말을 이해했다.

    “평행 세계를요 그게 가능한 거였어요 아, 규하 씨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너무 의외의 말이어서요.”

    “의심해도 돼요. 나도 다른 놈이 같은 얘기를 했으면 정신 병원으로 안내해 줬을 테니까.”

    현규하는 입술을 쓸며 다소 냉소적으로 말했다.

    “내가 던전에서 환영으로 구현되는 세계의 단편들만 보고 역사나 문화 등을 파악할 수 있었던 건 어머니가 남긴 기록을 봤기 때문이에요. 어머니는 해변가의 모래알처럼 셀 수도 없이 많은 평행 세계에 매료되어서 늘 세계를 여행했거든요.”

    “방랑벽이 있다고 말씀하셨던 게 그럼…….”

    “네에. 세계를 넘나드는 스케일의 방랑벽이었죠.”

    A라는 평행 세계의 서울에서 B라는 평행 세계로 넘어가면 도착하는 장소는 역시 서울이라며 현규하는 설명했다. 동일한 시간대의 동일한 장소인데도, 그곳에 펼쳐지는 문명은 비슷하기도 했으며 천양지차이기도 했다.

    자신이 알던 서울과 동일한데도 신탁이 내려오며 곳곳에서 신의 눈길을 느낄 수 있는 서울. 구미호가 종신 통령으로 통치하는 서울. 화성의 테라포밍에 성공한 서울. 비공정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서울. 조선과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않는 남경. 대한 제국의 한성부. 쇠락하고 멸망하여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은 황야의 잊힌 도시. 범람한 강과 바다에 수몰된 도시.

    홀어머니와 절연하면서도, 현소라는 매료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어머니가 신들과 공존하는 세계에서 만신을 통해 알게 된 건데, 유신 씨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바로 이곳의 세계를 신들은 ‘철의 시대’라고 일컫는다는군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철의 시대요(인류의 다섯 시대 중 하나.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가 쓴 시에 언급되며 이중 철의 시대는 모든 신들이 인간들을 버리고 떠난 시대.)”

    “신이 먼저 그 명칭을 만들고 전해 주었는지, 인간이 정립한 명칭을 신들이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그럴듯하죠”

    “아, 그럼 규하 씨의 히든 특성이…….”

    인유신의 망설임을 읽은 현규하가 가볍게 눈짓했다. 상태창을 띄워 다시 확인했다.

    [히든 특성]

    - 뱀파이어 특질

    - 철의 시대와 ®ÀÇ의 혼성

    - ̵¡©±Ï¶

    - 왕의 사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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