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4/214)

넉살 좋은 김정훈의 말에 김지원의 어머니도 실없이 웃고 말았다. 나중에 김지원이 몰래 사실을 알려 주었다.

〈실은 아이를 못 가지는 건 엄마거든. 근데 그랬다가는 할머니가 더 속상해하실까 봐 아빠한테 문제가 있는 척하는 거야.〉

사위인 김정훈도 고아였다. 딸 부부가 입양한 고아를 낯설어하고 어려워하던 김지원의 어머니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잘 아이에게 줄 선물을 들고 방문하게 되었다.

아이는 조금 더 그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선창산에 놀러 갔을 때 우연히 산불 진화 작업에 조력한 경험으로 인해 김지원도 관심을 가지면서 부부가 나란히 소방관이 되었다는 것. 사람을 구하는 일에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는 것. 결혼한 지는 6년째라는 것.

또한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도 배웠다. 김지원은 헌터 시절의 인맥을 동원하여 테이머들을 찾아갔고, 노하우를 배워 왔다. 힐과 버프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지만, 설치류에 한정된 능력이기에 다른 노하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이는 덜컥 겁이 났다. 쓸모도 없는 능력이면 각성자라는 공통점도 없어지는 거 아닐까? 각성자도 아닌 내가 쓸모 있을까?

불안해서 조마조마하는 아이의 머리를 김지원은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목소리만큼 따스한 손이었다.

〈유신아, 너는 아주 특별한 아이야.〉

〈제가요?〉

〈그럼, 이름부터 특별하잖니?〉

〈원장님이 유진이랑 비슷하게 만든 거랬는데…….〉

〈그건 원장님이 지은 거고. 아빠랑 엄마가 유신이 이름의 한자를 새로 지었거든.〉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아 눈만 깜빡거리는 아이에게 그녀는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입양 서류를 작성하다 보니까 유신이 이름이 아쉬운 거야. 그래서 아빠랑 열심히 고민해서 한자, 그러니까 이름 뜻을 바꿨지.〉

김지원은 어려운 한자를 노트에 써 주었다. 유신唯信.

〈이게 뭐예요?〉

〈유일한 믿음이라는 뜻이야.〉

그러며 그녀는 다시 한번, “유신아.” 하고 아이를 불렀다.

〈엄마랑 아빠는 유신이를 처음 봤을 때 확신했고, 믿을 수 있었어. 이 아이만이 우리의 유일한 사랑이 될 거라고. 그래서 넌 유신이가 된 거야.〉

원장이 한자 변환을 할 때 우선 뜨는 단어를 아무렇게나 붙였던 이름은, 비로소 아이의 것이 되었다.

언제나 머리 위에서 멀뚱멀뚱 내려다보던 시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유신은 환하게 웃었다.

〈엄마.〉

엄마는 울 것처럼 마주 보고 웃어 주었다.

〈유신아. 우리 아들.〉

〈오늘을 내 생일로 할래.〉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아빠’라고 말하며 안기는 유신을 안으며 아빠는 눈물까지 펑펑 흘렸다.

〈어이구, 인간아. 하여튼 주책이라니까.〉

엄마는 짐짓 구박하며 팔을 찰싹 때렸고, 아빠는 팔이 부러진다면서 엄살을 떨었다.

〈이렇게 된 거 장모님도 모시고 우리 축하 파티하자!〉

〈그럴까?〉

〈기왕 할 거 어디 펜션이나 캠핑장 같은 데라도 가서 신나게 놀다 오자고. 자기랑 내가 비번 겹치는 날이 언제였지? 아니다. 그냥 연가 내!〉

〈유신아, 놀러 어디 가고 싶어?〉

보육원에 있을 때 놀러 간 곳이라고 해 봤자 근처의 공원이 전부였다. 바다든 산이든 숲이든 어디든 갈 수 있단 말에 놀란 유신은 자그마한 입을 크게 벌렸다.

하루 종일 고민한 끝에 대답했다.

〈산에 가고 싶어.〉

엄마랑 아빠가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는 산. 그곳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뒤 유신은, 그 결정을 평생 후회하게 될 거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 * *

“할머니가 절 만나기 싫어하시는 건 당연해요. 산으로 놀러 가자는 말을 안 했더라면 부모님은 돌아가시지 않았을 테니까요.”

인유신은 무의식중에 왼손 약지의 반지를 만지작거리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차라리 바다에 가고 싶다고 할걸. 멀리 있는 선창산까지 가기엔 네가 어리니까 가까운 파주의 감악산 여행을 가자던 부모님에게 꼭 선창산에 가고 싶다고 떼를 쓸걸. 여행을 가게 된 날 아침 배앓이라도 해서 축하 파티를 미룰걸.

어디든 좋으니 그날 감악산만은 피해야 했는데.

〈지원아! 지원아아아아아……!〉

팔다리마저 온존되지 못한 딸의 주검 앞에서 할머니는 무너졌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갖은 궂은일을 하며 금이야 옥이야 키운 유일한 자식이었다.

헌터로서 위험한 게이트를 들락거리는 딸을 보면서 다칠까 봐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가. 마수를 사냥하지 않아도 되는 소방관이 되어서 안도한 지 몇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기어이 마수에게 죽고 말았다. 제 핏줄도 아닌 아이를 지키려다가.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뒤에 남을 어미 생각은 하지도 않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위해, 그렇게 허위허위 날아가 버렸다. 남편을 잃었을 때는 딸이 있었다. 딸을 잃은 지금은, 무엇이 남는가.

할머니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내장이 끊어지는 것 같은 끔찍한 오열을 쏟아 냈다. 아이는 그 옆에서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

손상된 시체의 나머지 부위는 끝내 찾지 못했다. 사건을 알고 현장에 진입한 어느 헌터가 아니었다면 시체마저 찾지 못할 뻔했다고 들었다.

김정훈의 주검은 더욱 처참했다. 화상을 덜 입는 능력이어서 소방관이 되었다던 아빠는 아들을 지키느라 등이 짓무르고 타들어 가는 참혹한 화상을 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부부의 마지막 길에 눈물을 흘렸지만 자식을 앞서 보낸 부모의 고통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왜 너 같은 게! 하필 네가 살아서!〉

할머니는 때로 울부짖었고.

〈너만 아니었어도 지원이는 죽지 않았어!〉

때로 원망했고.

〈유신아, 유신아. 할머니가 미안해. 미안하다. 내가 정신이 나갔나 보다.〉

때로 어린아이처럼 통곡했다.

통곡뿐이던 장례식이 끝난 후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집의 풍경은 대체로 그러했다. 할머니는 이따금 미안하다고 눈물을 쏟으며 사과했다. 그러나 원망과 증오를 받아 내야 하는 나날은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아이는 다시 말 없는 소년이 되었다.

할머니의 참담한 슬픔 앞에서, 아이는 울음으로 고통을 토해 낼 자격을 스스로 버렸다. 언어화하지 못한 고통은 조금도 해소되지 못하고 묵은 멍울로 가슴에 맺혔다.

아이의 얼굴에 표정이 걷히기 시작할 무렵, 매서운 손찌검이 아이의 뺨으로 날아들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인유신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켰다.

“할머니가 절 때리셨던 게 길거리여서……. 마침 지나가던 경찰들이 바로 발견했어요.”

아동 학대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의 앞에서 할머니는 저게 내 딸을 잡아먹었다고 울부짖으며 발로 아이를 몇 번이나 걷어찼다. 당장 격리가 이루어졌고, 아이는 정신 상담을 받았으며, 할머니에게는 판결이 내려졌다.

버려진 아이는, 다시 또 보육원 앞에 섰다.

“처음에 파양당했을 때는 애들이 되게 심술궂게 놀렸는데, 두 번째 파양 때는 그냥 다들 모르는 척하더라고요.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을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 분위기가 엄청 무거웠는데 두 달 뒤에 돈세탁한 게 발각되어서…….”

옆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현규하가 툭 뱉었다.

“할머니는요? 그 뒤에는 어떻게 됐어요?”

“나중에 듣기로는 항소도 안 하셨대요. 근데 아무래도…….”

무거운 한숨이 발밑으로 내깔렸다.

“일부러 경찰들 앞에서 절 때리셨던 거 같아요. 할머니가 저한테 손찌검한 건 그때 딱 한 번뿐이었던 데다가, 발로 걷어차는 것도 시늉만 하셨었거든요.”

“왜였을까요.”

“……모르겠어요.”

인유신은 가만히 얼굴을 내저었다.

혹시, 라는 추측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짚을 자격도 없는 죄인이었다.

달가사 보육원에서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웃음을 잃었던 아이는 어느새 친구와 형과 동생과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고 승려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되었지만, 맺힌 멍울만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할머니의 피 토하는 오열은 아이의 가슴에도 피눈물을 떨구었다.

실없이 웃으면서도 늘 힘에 겨웠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기쁨과 즐거움이 전부 부모님의 몫을 빼앗아 온 것 같아서. 그를 입양하지 않았다면 부모님은 죽지 않았을 테다.

그리고 소방관이자 각성자로서 아주 많은 사람을 구했을 것이다.

기껏 능력을 각성했지만 누구도 구하지 못하고, 그날그날 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자신과는 달리.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구하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하여 인유신은, 사람의 생명과 그 가치에는 차등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날 펜션에서 살아나와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부모님이었다.

“규하 씨도 돌아가신 부모님만큼 대단한 사람이잖아요. 저 같은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할 아주 많은 일들을 하실 수 있을 텐데, 만약 규하 씨마저도…….”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던 말들이 되삼켜져 가슴을 긁어내린다. 자신에게 부모님만큼이나, 아니 더욱 얽매이는 현규하가 같은 절차를 밟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는가.

테이머에게 의지하고 집착할 수밖에 없는 그를 알았을 때 느낀 것은 막연한 공포였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지고 두 번이나 파양을 겪은 아이는 희망을 품으며 기대하는 게 가장 무섭다.

강제적인 허상의 관계가 어디까지 진실할까. 테이밍이 해제된다면 즉시 마음이 식을 사람에게 어떻게 그 이상을 바랄 수 있을까.

거듭 버림받아 감히 사람에게 기댈 수 없던 아이의 공포는 시간이 지날수록 바뀌었다.

〈……나 버리지 마요.〉

그의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버림받을 두려움보다 더한 공포였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자신을 필요로 하는 그를 볼 때마다 속으로 품고만 있던 멍울에서 흐르는 피눈물이 짙어졌다. 부모님을 죽음의 길로 몰아세운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그까지 죽게 할 수는 없었다. 절대로.

“저와 있으면 규하 씨가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요.”

허공에 고정되었던 현규하의 시선이 느슨히 아래로 내려왔다. 느릿느릿하게 훑던 눈동자가 고통을 삭이는 인유신의 눈가에 머무르고, 웃음을 빙긋 머금었다.

“내가 당신 때문에 죽을 거 같아서요?”

차마 토하지 못한 단어의 나열을 문장으로 듣게 되는 참혹함은 어떠한가. 인유신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네.”

“난 강해요. 돌아가신 분을 예시로 들어서 미안합니다만, 그분들은 100명이 와도 내게는 1초 컷인데.”

“저도 알아요. 규하 씨는 앞에 ‘절대’라는 말을 붙여도 될 만큼 누군가에게 당할 사람은 아닐 거라고 확신해요. 혼자라면 규하 씨는 절대 죽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왜요.”

“제가 규하 씨의 약점이잖아요.”

만약을 가정한다.

현규하의 적이 약점에 지나지 않는 자신을 인질로 잡는다면. 현규하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위험에 처한다면. 그로 인해 현규하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걸어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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