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 숍에서 팔려 온 1세의 건강은 좋지 않았다. 정서적 안정감을 주던 아이와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1세는 보이지 않는 주인을 찾으며 고요히 눈을 감았다. 영혼의 교감이 끊어진 그날 밤, 아이는 혼자 화장실에 숨어서 소리 죽여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다음 날.
밤새도록 울어 퉁퉁 부은 못생긴 눈으로 아이는 그녀를 만났다.
〈네가 유신이구나? 만나서 정말 반가워! 아줌마도 김씨야. 여기에 있는 무섭게 생긴 아저씨는 아줌마 남편인데, 역시 또 김씨란다. 우리 벌써 공통점이 생겼지? 한국에서 제일 흔한 성씨인 게 좋은 점도 있네? 하하.〉
어머니.
만나지 말았어야 할, 내 어머니.
* * *
故 김지원, 故 김정훈.
향년 36세.
젊은 부부와 함께 다정하게 찍은 노인의 사진 앞에서 현규하는 살짝 미간을 모았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서 인유신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가 제 사진 넣는 걸 싫어하셔서요.”
“어째서요? 입양했다고 해도 손자 아닌가요?”
“저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시거든요. 틀린 생각도 아니고요. 그래서 저는 기일에는 부모님 뵈러 안 와요. 할머니와 마주칠지도 몰라서…….”
한날한시에 사망한 부부의 봉안당에는 그들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들과 소방관의 물품들이 미니어처로 장식되어 있었다. 작은 드라이플라워도 구석에 놓여 있지만, 인유신은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가지고 오지 못하는 것이다. 할머니가 알게 되면 노여워할 테니. 자신의 흔적을 무엇도 남기지 못하는 인유신은 유골함 앞에서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 옆에서 현규하는 찌푸린 미간 그대로 사진을 다시 눈에 담았다. 부부가 사망한 날짜는 14년 전의 여름이다. 그 날짜가 묘하게 낯익었다.
아마도 둘 중의 하나 이상은 소방관이었을 부부와 14년 전의 여름.
그 의미를 미처 되짚기 전에 인유신이 고개를 들었다. 부모와 전혀 닮지 않은 아이의 눈동자에 시린 결심이 맺혀 있기에, 현규하는 차라리 묵념하는 시간이 영원토록 지속되길 바란다.
인유신의 감정을 가장 예민하게 헤아리는 현규하는, 유일하게 인유신의 감정만을 헤아린다. 그가 헤아린 인유신의 감정이 자신과 정반대를 보고 있음을 직감하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다.
“뒤쪽에 산책로가 있던데 좀 걸을까요?”
하지만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었기에 앞서 걸으며 제안했다.
“부모님도 개성에 모신 줄 알았어요.”
“달가사 보육원으로 옮기기 전에는 서울에서 살았거든요. 보육원이랑 입양되었던 집 밖에 간 적이 없어서 서울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저도 고향을 개성이라고 여기고요.”
“어쩌다 개성까지 옮겼어요?”
“그게 좀 사연이 어이가 없는데…….”
산책로를 걸으며 인유신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렸을 때 있던 보육원은 조폭들이 자금 세탁용으로 위장하고 돌리던 곳 중 하나였대요. 그게 발각돼서 원장님은 감옥 들어가고, 폐원 조치는 면했지만 규모가 확 줄어서 원아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 했거든요. 서울에 있는 보육원은 대부분이 포화 상태라서 전국 각지로 애들이 갔는데 저는 가까운 개성으로 옮겼으니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웃기는 인간들이네요.”
“그래도 덕분에 보육원에 돈은 부족한 적이 없어서 지내는 게 나쁘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여러 보육원을 전전한 현규하가 듣기에도 헛웃음이 나오는 사정이었다.
산책로 중간에 있는 벤치에 인유신은 엉덩이를 붙였고, 현규하도 그 옆에 따라 앉아야만 했다.
“규하 씨.”
인유신은 오늘을 위해 몇 번이고 연습한 말을 신중하게 혀끝에 올렸다.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실래요?”
그리고 아마, 현규하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얼굴을 거칠게 문지르고는 어깨를 늘어트렸다.
“내가 듣지 않겠다고 하면 당신이 난처해하겠죠?”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뭐든 들을게요. 뭐든 말해요.”
인유신은 현규하의 얼굴도, 상태창에 뜨는 그의 감정도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차분히 입술을 움직였다.
처음은 버려졌던 첫 순간부터.
“겨울인데 보육원 앞에 버려졌대요. 마트에서 돌아오던 선생님이 어떤 여자가 도망치는 뒷모습만 겨우 봤다고 했어요. 30분 거리에 베이비 박스가 설치된 시설이 있었는데도 절 낳은 엄마는 거기까지 갈 정신도 없었나 봐요…….”
* * *
물건을 품평하는 것처럼 둘러보던 중년 부부들과는 달리, 김지원과 김정훈 부부는 봉사 활동도 하며 자주 아이를 찾아왔다. 때로는 다른 사람이 바쁘다며 둘 중의 한 명만 만나러 올 때도 있었다.
부부가 보육원에 꾸준히 방문하며 어린아이 하나를 찾는 이유는 자명하다. 원아들은 몹시 부러워했으나, 아이는 정작 그들의 방문을 마음 편히 누리거나 기대할 수 없었다.
무서웠다.
또 버려지게 될까 봐.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무슨 말을 해도 입을 꾹 다물고, 늘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아이를 교사들이 염려했다. 한 번 파양을 당하여 상처가 큰 아이다. 두 번째 기회에서마저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애써 달랬으나 아이는 도무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김지원과 김정훈은 개의치 않았다. 아이가 움츠러들수록 오히려 더 정답고 따스한 목소리로 아이를 맞았다. 아이는 그들을 만나러 가는 게 여전히 무섭고 주눅이 들었지만, 온기가 깃든 목소리는 침대에 누워서도 오래도록 귓가를 맴돌았다.
한두 마디나마 조금씩 말을 섞게 될 무렵, 아이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럼 아줌마는 헌터예요? 글자가 보이면 헌터인 거예요?〉
〈응, 예전에. C급 각성자야. 아저씨도 각성자고.〉
〈그럼 아저씨도……?〉
〈아니, 나는 등급이 낮아서 헌터는 무리야.〉
〈아줌마는 헌터이긴 해도 기껏해야 힘이 세지는 능력일 뿐이야. 등급이 낮아도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은 아저씨란다.〉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말이었기에 고개가 갸웃했다. 그 모습을 본 김정훈이 잠깐 생각하다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라이터에 불을 켜고, 거기에 손바닥을 가져갔다.
깜짝 놀란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김정훈은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분명히 불길이 닿았을 손바닥에는 흔적 하나 없었다.
〈그냥 불에 덜 다치는 능력이야. 아예 안 다치는 것도 아니고 좀 애매하지?〉
〈유신아, 아저씨는 뭐 하는 사람일 거 같아?〉
〈…….〉
틀리면 어쩌지, 틀렸다고 나를 안 만나면 어쩌지. 걱정이 아이의 입을 막았다. 김지원이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밑으로 가라앉히며 다정하게 웃었다.
〈괜찮아. 뭐든 말해도 돼.〉
〈……소방관?〉
〈정답!〉
김지원은 과장된 웃음을 터트리며 박수를 짝짝 쳤다. 옆에서 김정훈이 추임새를 넣었다.
〈아저씨가 소방관이라서 아줌마랑 만나고 결혼도 할 수 있었어. 유신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인데, 금강산 좀 지나서 선창산이란 곳에 큰불이 났던 적이 있거든? 불이 너무 커서 서울 소방관인 아저씨도 한밤중에 거기까지 갔었어.〉
하필 산장에 고립된 등산객들이 있었고, 김정훈은 그들을 급히 대피시켰다. 등산하다가 발목을 삐끗하는 바람에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마지막으로 업고 나오려던 때, 기어이 불길이 산장까지 덮치고 건물이 붕괴했다.
〈그때 정말 죽는 줄 알았다니까.〉
지금 살아서 눈앞에 있으니 당연히 김정훈도 무사했을 터였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워낙 긴장감 있게 풀어낸 탓에 아이는 저도 모르게 몰입해서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런데 천장까지 딱 무너지려는 순간! ……누가 나타났을 거 같아?〉
이번에는 아까보다는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었다.
〈……아줌마요?〉
〈그렇지! 무너지는 천장이랑 기둥을 손으로 딱 받쳐 들고 서 있는 아줌마가 얼마나 멋있었는지 알아? 그 모습에 첫눈에 반했다니까.〉
〈참 나, 자기는 뭐 그런 얘기까지 애한테 해?〉
민망한지 김지원이 소리 높여 웃으며 김정훈의 어깨를 퍽 쳤다. 무심코 그 손에 힘이 들어간 탓에, 김정훈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의자째 뒤로 벌렁 넘어갔다. 뒤쪽이 침대여서 다치지는 않았다.
그 광경이 꼭 TV에서 봤던 개그 프로그램이나 시트콤 같아서, 아이는 저도 모르게 살짝 웃고 말았다. 김지원과 김정훈은 아이보다 더욱 환하게 웃었다.
〈우리 유신이, 정말 너어무 예쁘다.〉
다음에 만났을 때 아이는 자신도 그들처럼 허공에 글자가 보인다는 얘기를 했다. 그들과의 또 하나의 공통점이었다.
아이는 그들의 앞에서 스스럼없이 웃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방문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제 아이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일도 보육원에 오는 걸까 기대하고, 꿈에서 두 사람을 만나 놀고, 그 꿈 얘기를 방문한 그들과 즐겁게 나누며 하루하루를 보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김지원과 김정훈은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주 조심스러운 한마디를 꺼냈다. 아이만큼이나 긴장한 목소리였다.
〈우리가 유신이의 엄마랑 아빠가 될 수 있도록 허락해 줄래?〉
김유신인 채로, 아이에게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기뻤다. 하지만 아이의 입술에서는 도무지 ‘엄마’와 ‘아빠’가 나오지 않았다. 그 단어를 목구멍 안에서 끄집어 올리자면, 그날의 기억이 불현듯 엄습하여 입을 틀어막는다.
《얘. 그냥 아저씨랑 아줌마라고 불러. 정들라.》
멀뚱멀뚱 내려다보던, 그 시선.
이전의 중년 부부와 그들이 다르다는 건 아이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유신이는 반찬 뭐 먹고 싶어?〉
〈분홍색 소시지를 계란이랑 같이 구운 거요. 맨날 영민이가 뺏어 가서 많이 못 먹었어요. 떡볶이도 좋아요.〉
그들은 생활의 사소한 하나하나를 전부 아이에게 맞췄으며.
〈유신아, 엄마가 아는 사람이 햄스터를 기르는데 이번에 새끼를 낳았대. 한 마리 받아 올까?〉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챙겨 주며 가정에 마음을 붙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
좋은 사람들. 너무나 좋은 사람들. 버려진 기억만 아니었다면 금세 달려가 안겼을, 좋은 사람들.
그들은 아이가 엄마와 아빠를 부르지 못할 때마다 슬픈 눈을 했지만 결코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사랑을 주었다.
김지원의 어머니는 아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 피가 섞인 자식도 아닌데……. 병원에서는 정말 가망이 없다더니?〉
〈죄송합니다, 장모님. 제가 비록 씨는 없지만 지원이에게 더 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