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214)

“후우.”

8세를 볼 때마다 한숨이 깊어지는 현규하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보다는 덜 귀엽지만 그래도 유신 씨에게 힐링은 될 테니 갔다 올 때 저놈 먹을 간식까지 같이 사 올게요.”

“어디 가세요?”

“잠깐 볼일이 있어서요.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천천히 얘기 나눠요.”

그는 마지막으로 8세를 노려보는 것까지 잊지 않고 연구실을 나갔다. 조상필이 어색하게 웃었다.

“얘기로만 들었는데 사이가 좋구먼.”

“하하……. 고맙습니다.”

“아무튼 원래 화제로 돌아가 보자면. 자네의 사례는 세계에서 유일하다네. 테이밍할 때 어떤 느낌을 받나?”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뭔가 연결되는 느낌이 있어요. 영혼과 영혼 사이에 다리가 놓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조상필이 무릎을 탁 쳤다.

“동물 또한 생명체이니 영혼이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마수에게는 그게 없거든. 결정석에서 비롯되어 뼈와 살을 지닌 육체가 형성되지만, 생명체는 아니란 말일세. 번식도 하지 못하고.”

“어, 그럼 마수를 테이밍할 때는 어떻게 느끼는데요?”

“자네처럼 영혼이 아니라 결정석과 연결된다는 느낌이라네. 나도 이 녀석과 그랬고.”

앞발에 얼굴을 얹고 꾸벅꾸벅 졸고 있던 예삐가 입을 쩍 벌리며 하품했다.

“하지만 침식 게이트의 마수들은 결정석이 없지.”

“8세를 테이밍할 때도 저는 영혼에 연결되는 것 같았어요.”

“정말 흥미로운 사례로군. 아, 이런 표현은 용서하게. 흥분해서 그런지 말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구먼.”

“괜찮습니다.”

표현이야 아무래도 좋았으므로 인유신은 그냥 웃었다. 확실하지 않은 거라 현규하에게도 말하지 않은 거지만, 8세를 테이밍하기 전에 ‘누군가의 선물’이라는 예감을 느낀 것과 뭔가 연관이 있는 걸까.

“테이밍하여 주인과 교감이 깊게 형성되어도 근본적으로 마수는 지능이 낮다네. 이 햄스터처럼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는 건 불가능해. 이건 비정형 마수의 특징일까, 아니면 이 마수만의 특징일까. 자네처럼 비정형 마수를 테이밍한 각성자가 또 존재할까?”

깊은 사고의 바다에 빠진 조상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생각을 뻗어 나갔다. 볼주머니에 넣어 온 사료를 오물거리는 8세를 쓰다듬으며 인유신은 가만히 기다렸고, 한참이 지나서야 조상필이 고개를 들며 사과했다.

“이것 참, 도움을 준다고 불러 놓고 내 호기심만 채우고 있었군. 자네의 사례가 워낙 희귀해서 테이머의 보편적인 훈련법이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구먼.”

“실은 박사님께 여쭙고 싶은 게 있었는데요.”

“그래, 뭔가?”

인유신은 마음속으로 거듭하여 준비한 말을 찬찬히 꺼냈다.

“테이밍을 해제할 방법도 혹시 연구하고 있으신가요?”

조상필이 가볍게 미소했다.

“물론이지.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네.”

남자는 악몽 속에 허우적거리며 눈을 떴다. 진땀으로 등이 흥건했다. 전신 골절로 수술받은 고통보다 그를 더욱 공포스럽게 하는 건 바로 그 눈이었다.

‘씨발. 어떻게 사람 새끼 눈깔이 그따위일 수가 있지?’

자신에게 향했던, 오직 자신에게만 꽂혔던, 그 호박색 눈동자.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이 거세되어 그를 차근차근 짓뭉개어 죽인다는 과정에만 충실하던 무감한 시선.

차라리 분노하거나 살의로 가득했다면 덜 공포스러웠으리라. 그러한 감정들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익숙함이며, 미친놈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어떠한 감정도 없이 잔인하게 고문하여 죽일 수 있는 놈은 대체 뭐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남자는 오히려 재판을 받고 교도소에 갇히게 될 자신의 앞날에 안도했다. 바깥세상에서 자유로웠다면 분명히 그 눈동자와 마주치게 되었을 테니까.

저 소름 끼치도록 섬뜩한 색깔과.

“……!”

안녕.

어젯밤과는 달리 제법 감정이 깃든 얼굴로 현규하가 병실 창밖에서 입술만 움직여 인사했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데 나오지 않았다. 급히 침대 옆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형사를 부르려 했으나 손가락도 움직일 수 없었다.

“선배, 1시간 뒤에 교대니까 그때 서로 돌아가서 찾아볼게요.”

그의 심정을 알 리가 없는 형사는 통화하느라 이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눈알을 굴리는 행동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남자를 비웃듯이 창문 틈으로 스크롤 한 장이 날아들어 왔다.

소리 없이 형사의 머리 위로 날아온 스크롤은 그대로 찢어졌고, 형사는 몇 번 하품을 하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남자는 현규하가 병원의 창문을 뜯어내고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무력하게 눈동자를 움직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수술은 잘 끝났어?”

“…….”

“수술 도중에 안 죽어서 다행이야. 우리 주인님은 심성이 착해서 널 그냥 내버려 뒀지만 나는 아니거든.”

“…….”

“주인님에게 조금이라도 위해를 끼친 놈은 확실히 제거하는 게 집 지키는 개, 아니 집 지키는 쥐가 해야 할 일 아닐까?”

“…….”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공포스러웠다.

남자의 손목을 본 현규하가 혀를 찼다. 남자의 손목에 채운 수갑의 반대쪽은 침대의 난간에 걸려 있었다.

“수갑을 생각 못 했군. 침대째로 들고 가기에는 귀찮은데……. 흐음, 어쩐다.”

고민은 짧았다.

현규하는 아공간에서 손도끼 하나를 꺼냈다. 예리한 광택의 도끼가 서슴없이 위로 올라간다. 남자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형사한테 열쇠가 있다고! 호주머니에 있는 걸 봤어!’

필사적으로 외치려 했지만 웅얼거리는 신음조차 되지 않았다. 남자의 크게 뜬 눈에 도끼가 단번에 손목을 내리찍는 모습이 비치고.

“……!”

그는 나오지 않는 처절한 비명을 토해 냈다.

병원의 이불에 도끼날의 피를 대충 슥슥 문질러서 닦아 낸 현규하는 눈동자에 시뻘건 핏줄이 곤두선 남자에게 생긋 웃었다.

“뭐, 운이 좋으면 살아남을 수 있겠지. 너도 각성자니까 던전 사냥 정도는 해 봤겠지?”

“……!”

“그럼 주인님을 데리러 가야 하니까 얼른 갈까.”

현규하는 그대로 남자를 데리고 뚫린 창문을 통해 날아갔다.

1시간 뒤, 교대하기 위해 방문한 형사로 인해 병실은 소동에 휩쓸렸다. 남자의 남은 흔적이라고는 피투성이 손목뿐이었다. 창문 밖으로 이어진 핏자국을 추적했으나 종적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2시간 정도 자리를 비운 현규하가 돌아왔을 때 인유신은 훈련장에 나와 있었다.

“규하 씨! 저거 봐요!”

“찍!”

8세가 호응하며 길게 뻗은 꼬리를 휘둘렀다. 화살촉처럼 끝이 뾰족하게 다듬어진 꼬리가 얇은 철판을 날렵하게 꿰뚫었다.

“예리하고 단단하게 경도를 조절하는 것도 가능해요! 진짜 기특하죠?”

“다른 부분의 변형이 가능한지도 알아봐야겠지만 꼬리만으로 저 정도 공격이 가능하다면 육체의 크기에 비해 썩 괜찮군.”

숨만 쉬어도 귀여운 게 햄스터인데 제법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인유신은 녹아내릴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물론 현규하는 부루퉁해졌다.

“사람이 상대라면 심장이나 눈알을 통해 뇌를 꿰뚫는 공격으로 쓸 만하겠지만 마수 상대로는 영 별론데요. 꼬리가 손가락만큼 굵어지는 게 아니라면요.”

“시스템이 판단하는 설치류의 기준이 어디까지인지가 관건이로군. 날다람쥐나 호저도 설치류니 하늘을 날거나 바늘을 형성하는 정도라면……. 아니면 과거에 멸종된…….”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조상필의 옆에서 현규하가 총을 꺼내 8세에게 쐈다. 불시에 일어난 일이라 인유신도 ‘탕!’ 하는 총성이 들린 뒤에야 발포했다는 걸 알았다.

인유신의 눈이 동그래졌다. 총알이 허공에 멈추어 있었다. 정확히는 8세의 꼬리에 붙잡혀서.

아무렇지도 않게 총을 다시 넣은 현규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민첩도가 높으니 그럭저럭 활용은 할 수 있겠네요.”

총 때문에 놀라서 벌렁거리는 가슴을 쓸면서 인유신은 허겁지겁 8세에게 달려갔다. 그는 말로는 투덜거려도 현규하가 정말 8세를 해코지할 작정은 아니란 걸 알고 있었지만 조상필은 아니었다.

“지, 진짜 쏘려고 한 건 아니지?”

“주인님이 아끼는 놈인데 그럴 리가 있나요. 내 능력으로 총알 멈춰 세우려고 했어요.”

현규하를 신뢰하지 못한 건 조승필만이 아니었다. 8세 또한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눈앞에 나타났다.

“8세야!”

꼬리로 총알을 막아 안전해졌다는 걸 깨닫자마자 8세는 그대로 꼬르륵 뒤로 넘어갔다.

[현재 상태 : 기절.]

“8세야! 정신 차려!”

“아니, 무슨 마수가 저렇게 심약해 빠진 거죠? 저놈 싸울 수 있긴 한 거예요? 어이없네.”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희귀한 사례로구먼…….”

“던전에 던져 놓으면 심장 마비로 뒈지겠는데요.”

“심장은 없긴 하네만.”

“8세야아!”

인유신은 벌렁 나자빠진 8세를 살포시 올려 안으며 힐을 해 주었다. 우윳빛의 힐이 8세의 자그마한 몸을 감싸자 까만 눈이 희미하게 끔뻑거렸다.

그 옆에 쪼그리고 앉은 현규하가 간식 봉지에서 말린 당근을 꺼내 살랑살랑 흔들었다. 냄새를 맡은 8세의 코끝이 실룩거렸다. 인유신은 얼른 말린 당근을 받아 8세의 입에 대 주었다. 입이 살그머니 움찔거리면서 당근을 갉아 먹었다.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 이 마수는 내장 기관도 없는데 먹은 음식물은 전부 어디로 가는 거지? 그 전에 미뢰는 존재하는 건가?”

“……!”

8세가 눈에 띄게 흠칫하며 주둥이를 딱 멈췄다.

“눈치 주는 거 아니니 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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