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214)

* * *

다음 날, 출근하자 김 과장이 반갑게 현규하를 반겼다.

“현 헌터, 어제는 고생 많았어요. 서부서의 최 계장님도 현 헌터 덕분에 일망타진할 수 있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 달라더군요.”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무원으로서 국민을 위해 당연한 일이죠.”

“……!”

다소곳한 겸양에 김 과장은 오히려 경계했다. 그동안 익히 알게 된 바에 의하면, 현규하라는 인간은 딱히 생색내는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손한 성격도 아니다.

그가 어울리지도 않는 겸손을 떤다는 건 뭔가 속셈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 하하하. 그렇죠? 아, 참. 회의가 있는 걸 깜빡했네요. 오늘도 수고해요.”

“과장님, 할 말이 있는데요.”

현규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앞에 서며 사무실 문도 막았다.

“연수 전이어서 아직 라이선스 발급은 못 받았지만 유신 씨는 헌터가 된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렇죠?”

“그, 그렇죠.”

“그럼 넓은 의미에서 유신 씨도 공무 헌터가 되는 거네요. 그렇죠?”

“그, 렇죠.”

“이능부에도 훈련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건 헌터들이 근무 시간에도 자신을 단련하는 능력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의미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근데 체력 단련에 치중되어 있어서 테이머인 유신 씨가 훈련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솔직히 거긴 그냥 헬스장이죠. 마수를 꺼내면 무너질지도 몰라요. 공무 헌터로서 국가와 국민에게 이바지하기 위해 유신 씨도 능력을 갈고닦을 필요가 있어요. 그렇죠?”

“그렇…….”

“마침 테이밍 연구를 하는 국립연구원이 있네요. 사기업도 아니고 이능부 소속이에요.”

“…….”

“이거, 외근 맞죠?”

현규하의 궤변에 밀린 김 과장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외근을 허락해 주었다.

매번 현규하만 따라다니느라 또 밖으로 나가게 된 인유신은 죄송하다고 꾸벅꾸벅 인사했다. 정작 사무실의 직원들은 언짢아하지 않았다. 그가 아니었다면 현규하가 컨트롤되지 않았을 거라는 걸 모두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일만 해도 그랬으니까.

이능부 청사를 나와 8세를 데려가기 위해 우선 집부터 들렀다.

“6세야, 8세야. 나 왔어.”

옥탑방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을 마주했다. 현규하는 인상을 썼으며 인유신의 뒤통수에는 진땀이 또륵 매달렸다.

“봐요, 저놈. 저거 주인님 앞에서는 내숭 떨고 있는 거라니까요. 불시에 들이닥치니까 이렇게 본성이 나타나잖아요.”

밤에 6세의 간식으로 주려고 따로 챙겨 놓은 딸기를 씻어서 6세에게 먹여 주고 있던 8세는 얼른 불알을 깔고 엎드려서 자는 척하기 시작했다. 6세는 아랑곳하지 않고 떨어진 딸기를 도로 주워 뇸뇸 갉아먹었다.

“야, 앙리 레이몬드 샤를 프랑소와즈 6세 누나 집에는 또 언제 들어간 거야?”

8세는 현규하가 대놓고 쿡쿡 찌르는데도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하며 눈을 감았다. 인유신은 외출한 사이에 8세가 TV를 보고 있어도 놀랍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모습이 햄스터이긴 해도 6세한테는 동족으로 안 느껴지나 봐요. 얘들은 영역 동물이라서 서로 가까이에 두면 예민해지는데.”

[이름 : 앙리 레이몬드 샤를 프랑소와즈 6세]

[현재 상태 : 만족. 포만감.]

상태도 변함이 없으니 같은 케이지 안에 합사했어도 괜찮았을 듯싶다. 햄스터 케이지가 두 개나 놓여 더 좁아진 방이 마음에 들어서 굳이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8세야. 같이 갈 데가 있는데 이동장에 들어갈래?”

귀를 쫑긋하며 눈을 뜬 8세는 인유신이 가지고 온 이동장과 셔츠를 번갈아 보더니 앞주머니로 쏙 들어갔다.

“여기가 더 편해?”

“뀨!”

“주인님의 앞주머니는 주인님의 온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이겠죠…….”

스산한 목소리였다.

인유신은 급히 앞주머니에서 8세를 꺼냈으며, 8세도 파르르 떨며 허겁지겁 기어 나왔다.

“휴우, 됐어요. 내가 주인님 앞주머니에 들어가지는 못하니까요.”

어깨를 축 늘어뜨린 현규하가 먼저 터덜터덜 옥탑방을 나갔다. 인유신도 안절부절못하며 뒤를 따랐다.

“앞으로는 앞주머니 있는 셔츠 안 입을게요.”

“그럴 필요 없어요. 생각해 보니까 그놈이 앞주머니에 있는 것도 제법 쓸모 있을 거 같아요. 나름대로 심장 보호대잖아요.”

그 말을 하며 현규하는 앞주머니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8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너, 거기에 있을 때 주인님에게 위험이 닥치면 몸으로 막아. 알겠어?”

당연하다는 것처럼 8세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금 기분이 풀린 얼굴이 된 현규하가 얼른 바이크에 타라며 손짓했다.

가는 길에 어딘가에서 탈주한 마수 한 마리도 잡으며 전략능력연구원에 도착했다.

조상필 박사는 반갑게 두 사람을 맞았다.

“어서 와요. 조상필일세.”

“급하게 잡은 약속인데 선선히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안 그래도 현 헌터한테 유신 씨 능력에 대한 얘기를 듣고 오히려 설레서 기다리던 중일세. 아, 편하게 불러도 되겠나?”

조상필은 사람 좋은 표정으로 웃으며 손수 차를 따라 주었다. 주름이 진 눈매가 지극히 학자다운 호기심으로 빛났다.

“나도 테이머지. 자네와는 다르게 마나가 바닥이라 D급으로 판정받았지만. 요놈이 내가 길들인 예삐라네.”

“크르르.”

예삐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마수는 대형견보다도 큰 덩치를 낮추며 그르렁 울었다. 외양은 개, 또는 여우와 비슷하지만 털이 길고 북슬북슬하여 훨씬 위협적으로 커다란 덩치였다. 눈이 세 개고, 발가락도 세 개고, 꼬리도 세 개다.

“쉽 독이에요?”

“맞네. 벌써 20년째 나랑 같이 살다 보니까 자식새끼나 다름없지.”

조상필은 정겨운 손길로 갈기 같은 털을 쓰다듬었고 예삐도 만족한 울음을 내었다. 본인이 테이머이면서도 가까이에서 테이밍한 마수를 본 건 처음이라서 인유신도 신기했다.

“주머니에 있는 그 햄스터가 자네의 마수인가?”

“마수를 테이밍한 건 얘가 처음이에요. 지금까지는 햄스터나 흰쥐……만 길들였었거든요.”

설명을 하며 인유신은 무심코 현규하를 곁눈질했고, 그는 눈웃음을 치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기색을 눈치채지 못한 조상필은 한 손을 내밀었다. 8세가 쪼르르 기어 나와 손바닥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조상필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알기로 테이밍에 종족 제한이 있다는 것과, 마수가 아닌 일반 동물을 길들인 각성자는 자네가 유일하다네.”

그러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어떤 능력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긴 했지만 말이야.”

털을 쓰다듬으니 8세는 주둥이를 잘게 우물거렸다.

“반응 또한 햄스터와 비슷해 보이긴 하는군. 엑스레이부터 한번 찍어 보겠나?”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8세는 검사대에 올라가자 알아서 착 드러누웠다. 그렇게 촬영한 엑스레이 사진은 외형의 윤곽만 드러났을 뿐, 내부는 새까맸다.

현규하가 미간을 모았다.

“이건 안에 뼈나 장기가 없다는 건가요?”

“그렇게 볼 수 있겠지. 과연 비정형 마수들만 나오는 게이트의 보스답군. 비정형 마수가 스스로 형태를 갖춘 것뿐만이 아니라 그 형태가 지구상의 동물과 흡사하다니 무척 흥미로워. 진짜 수컷처럼 생식기도 부풀어 있지만 번식은 불가능하겠지.”

“암컷 햄스터도 한 마리 기르는데 동족으로 인식하지도 않는 거 같았어요.”

“그럼 고환도 정말 단순히 흉내만 낸 모양새고, 내부는 비어 있겠군.”

“대신 귀여움이 들어 있지 않을까요?”

어쨌든 인유신은 마냥 귀여워했고, 조상필은 학자다운 관점으로 호기심을 드러냈지만, 현규하는 모든 게 불만이었다.

“갖추고 있는 형태를 변화하지도 못한다는 건가요? 햄스터 따위는 커져 봤자 햄스터잖아요. 유사시에 주인님을 지킬 수단도 없다니 정말 쓸모가 없는 놈이네요.”

“에이, 햄스터의 쓸모는 귀여움으로 충분하잖아요.”

“내가 더 귀엽잖아요.”

“…….”

부정할 수 없었다.

그의 언행이 익숙하지 않은지 조상필은 헛기침만 했다.

“사료만 축내지 말고 주인님의 앞주머니를 독차지할 만할 가치를 좀 보여 봐. 명색이 게이트 보스였으니까 뭐 하나는 있을 거 아니야.”

노골적인 질투와 구박에 쪼그라들던 8세는 문득 앞발을 올리고 뒷발로만 서는 이족 보행을 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외쳤다.

“찍!”

짧게 달랑거리던 꼬리가 채찍처럼 길게 뻗어 나가며 케이스에 있던 주사기를 감아올렸다. 꼬리는 자랑스럽게 흔들렸으나, 현규하의 시선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래서.”

“……뀨우.”

“리모컨 주워서 유신 씨에게 줄 수 있는 거 말고 무슨 쓸모가 있는 능력인 건데.”

“이건 내 생각이지만 말일세.”

불편하게 헛기침하던 조상필이 끼어들었다.

“이 마수는 시스템에 의해 ‘설치류’라는 정언으로 테이밍의 계약을 맺었지. 그러니 규정된 정의에서 어긋나는 변형은 불가한 게 아니겠는가? 예를 들어 종에 따라 꼬리가 긴 설치류는 있을 수 있지만, 그 꼬리가 다섯 개인 설치류는 없듯이 말이야. 햄스터의 형상을 취한 건 유신 씨의 취향을 반영한 거 같고.”

“찌익! 찍! 찍!”

그 말이 맞는다는 것처럼 8세가 짧은 앞발을 휘저으며 열심히 호응했다. 현규하가 싸늘하게 받았다.

“결국 쓸모없다는 거로군.”

“……찌이익.”

“주인님의 앞주머니를 독차지한 주제에.”

“……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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