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53/214)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 섞이려니 멋쩍었지만 랩실의 학생들은 적절한 거리에서 인유신에게 호감을 표했다.

“승기에게 말씀 많이 들었어요. 테이머이시라면서요?”

“F급이라서 별로 효용은 없어요.”

“그래도 라이선스 시험도 합격하시고, 연수만 하시면 헌터가 되시는 거잖아요. 좋겠다. 저도 석사 학위 따고 던전 탐사에 끼어들어 가는 게 꿈이에요.”

공용 게이트에 들어가려면 헌터 라이선스나 게이트 관련학을 전공하는 학자라는 증명이 있어야 한다. 각성자가 아닌 학생들은 F급 능력이라도 몹시 부러워하는 얼굴이었다.

보잘것없는 제 능력을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처음이어서 인유신은 조금 민망했다.

“맨날 붙어 다니던 남친은 어디로 갔냐?”

“오늘은 만날 사람 있다고 학교까지만 데려다주고 갔어.”

“다음에는 현규하 헌터님이랑 같이 놀러 오세요!”

같이 주문한 소주도 한 잔씩 들어간 식사 자리는 시끌벅적했다.

소란 속에서 인유신은 박승기를 찾으러 왔던 목적을 겨우 슬그머니 꺼낼 수 있었다. 사실 혼자서 알아보려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았었는데, 14년 전에 고인이 된 사람이어서 그런지 자세한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박승기가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어보러 온 것이었다.

“혹시 강석우라는 분 알아? 게이트학 연구자였다고 하던데.”

“강석우? 들어 본 거 같기도 하고…….”

짬뽕에서 홍합을 까며 박승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선배, 강석우가 누구인지 아세요?”

“강석우? 어……. 아, 그, 누구였지, 그, 그…….”

“강석우 박사?”

대답은 학생들이 아니라 반주에 벌써 취해 버린 서 교수에게서 나왔다.

서 교수가 짜장면 그릇을 손에 들고 인유신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무척 소심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알고 보면 남의 학교에 놀러 갔다가 찜한 박승기를 자기 랩실까지 끌고 온 무시무시한 사람이다.

“그 양반 얘기 참 오랜만이네. 갑자기 죽은 지 얼마나 됐더라……. 15년? 아, 14년 전이구나. 옛날 사람인 데다가 마이너한 부분을 연구하던 사람이라 관계없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모를 텐데 어디서 들었어요?”

“아는 헌터분과 얘기를 하다가요.”

“아아. 헌터라면 기억할 수도 있겠네. 강 박사 연구가 각성자와 관련이 있는 거였거든요.”

대화가 이어지자 다른 학생들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서 교수가 흐 웃으며 깐풍기 한 점을 집어먹었다.

“식사 중에 본의 아니게 강의나 하게 됐네요. 입맛 떨어지게 해서 미안합니다. 우리 어린 학생인 유신 씨를 위해 기초부터 썰을 풀어 볼게요. 지겨우면 졸아도 돼요.”

농담을 섞으며 그녀는 비전공자인 인유신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이어 갔다.

60년 전, 최초의 게이트가 나타나며 시작된 게이트학은 상당히 포괄적인 학문이었다. 게이트와 던전만이 아니라 이로 인한 각성자들의 능력, 결정석을 비롯한 여러 부산물 연구도 포함했다. 근래에는 평행 세계 이론이 정립되면서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역사와 문화까지 다루게 되었다.

“강 박사는 개중에서 각성자들과 관련된 연구를 했어. 어떤 거였을 거 같아? 힌트는 마이너. 한번 맞춰 볼래? 아, 거기 논문 검색하지 말고.”

“아이, 교수님. 마이너한 각성자 관련 연구라는 것만으로 어떻게 맞춰요. 힌트 더 안 주세요?”

“음, 좋아. 인심 썼다. 두 번째 힌트는 히든 특성.”

두 번째 힌트를 들은 학생들은 더 아리송한 표정이 되었다. 박승기도 고개를 모로 꼬았다.

“히든 특성은 안 그래도 희귀한데…….”

“그 희귀한 것 중에서도 마이너 연구에 천착한 사람이야.”

“저, 혹시……. 특질이었어요?”

“오! 대답이 바로 나왔네? 누구지?”

서 교수와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심스럽게 손을 든 사람은 이 자리의 유일한 비전공자인 인유신이었다.

“각성자의 감이라는 건가? 유신 씨, 게이트학 배워 볼 생각 없어요? 게이트학은 60년밖에 안 된 신생 학문이다 보니 감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각성자인 데다 감까지 좋으면 최고죠.”

서 교수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칭찬했지만 인유신은 애써 웃음을 지었다. 현규하와 관련이 있으며, 히든 특성을 연구했다는 말에 혹시나 해서 던진 거였는데 정답이었다니 외려 더 불안하다.

〈하긴, 알고 있던 놈들은 내가 옛날에 다 죽였으니까.〉

〈그리고 14년 전, 현규하에게 죽었다.〉

공태성의 한마디가 점점 더 신빙성을 갖춰 가고 있었다.

“특질이라면 그, 드물게 있다는 켄타우로스 특질, 듀라한 특질, 뭐 그런 거요?”

“그렇지. 한국인에게 익숙한 거라면 그슨대 특질도 있고.”

특질은 대개 설화나 신화라는 형태로 이어진 옛이야기 속의 신비와 관련되었지만 특별한 능력이 표출되지는 않았다. 켄타우로스 특질이 있다고 하여 반인반마인 것도 아니고, 듀라한 특질이라 하여 목을 잘라서 들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뱀파이어 특질인 현규하가 인간의 피를 빨거나 박쥐로 변하지 않듯이.

인유신은 반도 먹지 않은 짜장면 그릇을 내려놓으며 젓가락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서 교수의 설명은 이어졌다.

“강 박사는 바로 그 특질이 능력으로 현현되지는 않았지만 인류의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세웠어. 일종의 미싱 링크라고 해야 할까? 옛날이라면 강 박사의 주장은 그냥 미친놈으로 무시당했겠지.”

하지만 인류는 게이트를 보았으며, 게이트에서 간혹 보스나 히든 보스로 등장하곤 하는 전설 속의 신비와도 마주했다. 현규하가 신화로 전해지는 영웅인 데미난을 히든 보스라 예측했었던 건 그 탓이었다.

“반년 전만 해도 알제리에 지리산 배경의 던전이 열렸었는데, 거기 히든 보스가 우리나라 설화에 나오는 아기장수 우투리였잖아. 근데 우투리 설화의 배경은 여말선초쯤으로 추정된단 말이야. 이게 문제야. 이유가 뭘까?”

“우리 지구의 역사에서 여말선초에는 이미 괴력난신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정답. 60년 전까지 그런 건 전부 역사가 아닌 구전설화에 불과했어. 하지만 게이트가 열리고 나니, 짜잔. 전설로만 접하던 신비가 실존하네? 심지어 거기가 평행 세계 같네? 그런데 왜 우리 지구에는 그냥 전설이라고 치부되었을까?”

“…….”

“아마 이렇게 가정할 수 있겠지? 인류의 시작은 신비와 함께 했지만 ‘어느 지점’에서 구미호니 늑대 인간이니 요정이니 하는 것들이 계속 존재하는 평행 세계와, 전부 사라진 우리 지구로 갈라졌다고. 그 ‘어느 지점’에서 인간 이외의 신비는 사멸되었지만 유전자에 정보가 남아 있어서 각성자의 특질로 구현되었을지도 모른다, 라는 게 강 박사의 연구였어.”

물론 처음부터 게이트 내에 보스로 등장하는 신비가 실존했다고 확신한 건 아니었다. 게이트 내부의 세계는 뒤틀려 있으니 인간이 인식하는 전설이 구현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실존했다는 가정하에 연구가 시작된 건 근래 평행 세계 이론이 정립된 후였다. 강석우는 그 이전부터 평행 세계를 주장하며 특질에 천착한 학자였다.

“학계에서 주목받는 건 아니었어. 강 박사 생전만 해도 평행 세계 이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까.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

“근데 교수님.”

박승기가 갸웃하며 물었다.

“현재는 특질 연구가 거의 사장된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요? 들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서요. 평행 세계 이론은 정립되었는데 어째서 강 박사님과 같은 연구를 하는 사람이 없을까요? 특질을 가진 각성자가 드물기 때문인가요?”

“그 이유도 있고. 외국에는 더러 연구자들이 있지만 국내는 좀 힘들다고 해야 할까. 으음, 이건 조금 딥한 이야기인데…….”

소주를 한 잔 더 비운 서 교수가 탁 소리 나도록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취기가 올라 불콰하게 붉은 얼굴로 망설이던 그녀는 이내 결심하고 입술을 움직였다.

“여러분이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쪽에 흥미를 갖는다면 언젠가는 알게 될 테니 설명해 줄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벌 눈치가 보여서 못 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로. 연구에는 돈줄이 필요한데 재벌가에 밉보이면 얼마나 쪼들리겠니. 그치들이 마음만 먹으면 일개 연구실의 자금줄 말리는 건 일도 아닐 텐데.”

서 교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소주를 자작했다.

“양사 그룹.”

“네?”

“강 박사의 스폰서였던 재벌가야. 강 박사는 연계한 길드까지 있는 번듯한 연구소의 수석연구위원이었어. 그런데 14년 전에 사고로 갑자기 사망하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양사에서도 사람들이 줄줄이 죽어 나갔지.”

14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까지도 간간이 회자될 만큼 유명한 사건이었다. 재계에서 10위 안으로 꼽히는 대기업인 양사 그룹의 회장부터 조카, 조카손자에 이르기까지 남자들만 차례대로 사망했다.

그 때문에 장자 승계를 고집하던 양사는 죽은 회장의 부인이 새로운 회장으로 취임했고, 배제되었던 외동딸이 앞으로 회장직을 승계할 예정이었다. 공태성의 전처이기도 하다.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어느 술사의 저주나 살을 받았다는 가설도 있지만, 아무래도 강 박사가 죽은 직후의 사건이니 타이밍이 공교롭지.”

“그럼 강 박사님의 원한 때문일지도……?”

괴담이니 귀신이니 하는 얘기에 약한 학생이 히익 하며 어깨를 떨었다.

“이건 카더라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말고, 듣기로는 강 박사가 사망한 전 회장을 위해 불로불사 연구를 했다더라. 특질 가운데 불로불사와 연관이 있을 만한 거라면……. 음, 뭐가 있지?”

“인어?”

“에이, 인어는 인어 고기를 먹어야 불로불사가 된다는 거지.”

“아하스베루스(저주를 받아 영원히 유랑하는 유대인.)나 우트나피쉬팀(수메르 신화의 영생자.)은 종족이 아니니까 특질로 구현되지는 않을 거고…….”

“그 둘 같은 경우는 어느 게이트의 보스로 있을 거 같은데? 만나게 되면 정말 불로불사인지 물어보고 싶다.”

“넌 그 전에 논문부터 통과해라, 인마.”

토의 거리가 생긴 학생들은 금세 왁자지껄해졌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서 교수의 옆에서 인유신은 홀로 창백한 낯을 숙였다.

불로불사하는 전설의 존재라면 대표적인 종족이 있지 않나.

누군가 그의 속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뱀파이어라든가.”

저녁을 먹은 서 교수와 학생들은 내친김에 2차까지 하러 나왔지만 인유신은 거기에서 작별했다. 술자리까지 따라가기는 뭣했거니와, 무엇보다 도저히 술이 넘어갈 거 같지 않았다.

‘괜히 물어봤나…….’

뒤늦은 후회가 새록새록 감돌았다. 그와 아무 관계도 아닌 자신이 깊이 알아도 되는 문제가 아니란 걸 아는데도, 공태성의 한마디가 못내 마음에 걸렸었다. 그리고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묻고 말았다.

어째서일까. 왜일까.

왼손 약지의 반지만큼이나 해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 발목을 끌어당겼다.

그 순간 전화가 걸려 온 휴대폰의 액정에 뜬 이름이 마치 자신을 책망하는 것만 같아, 인유신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네, 규하 씨.”

- 저녁은 먹었어요?

“교수님이 중국집 배달해 주셨어요.”

- 학교 앞에 있는 그 중국집 맛있죠. 언제 끝나요? 데리러 갈게요.

“아, 조금 전에 나오긴 했는데…….”

- 게이트학과는 후문이랑 가깝죠? 지금 갈 테니까 근처에 있어요.

뭐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통화가 끊어졌다.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걸려던 손가락이 머뭇거리며 허공을 헤매다 안으로 말려들었다.

인유신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닥을 톡톡 차는 운동화의 발끝이 왠지 시리다.

“유신 씨.”

바이크의 배기음이 앞에서 멈추고, 다정한 목소리가 시선을 끌어 올린다. 두어 시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도 기뻐하는 환한 미소에서, 강석우가 누구인지 물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았다.

인유신은 무서웠다.

“무슨 일 있었어요?”

늘 그랬던 것처럼, 현규하는 그의 반응을 예민하게 감지했다. 인유신은 불안하게 수런거리는 감정을 세게 갈무리하며, 입가를 살짝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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