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0/214)
  • “난 이딴 쓰레기 같은 거나 먹으면서 못 살아! 분명히 제대로 된 음식은 네놈들이 숨겨 놓고 혼자 처먹고 있는 거지?! 내가 모를 줄 알고!”

    “거기까지입니다.”

    이혜연의 목소리가 갑자기 냉정해졌다. 시종일관 존댓말과 웃는 낯으로 그들을 대우해 주던 이혜연의 반응이 바뀌자 나오는 대로 지껄이던 남자마저 움찔했다.

    이혜연의 손이 일행을 둥글게 둘러싼 원을 가리켰다. 공태성의 불길이 타오르는 경계이기도 했고, 최진혁의 독액이 고여 있는 경계이기도 했다.

    “경고는 한 번뿐입니다. 현재 리더는 나이고, 나는 일반인 여러분은 이 원 안에 머무르라는 규칙을 정했습니다. 규칙을 따르는 한 우리는 여러분을 보호합니다.”

    차가운 공태성의 조소가 뒤를 이었다.

    “너 같은 돌대가리도 알아듣기 쉽게 요약하자면 그 선 밖으로 나가면 마수한테 머리통이 터지든 팔다리가 뜯어지든 안 구해 준다는 뜻이니까 식량을 구하든 말든 마음대로 해.”

    “그, 그런 게 어디 있어! 네놈들은 헌터가 아닌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잖아!”

    “게이트 안에서 리더에게 불복하고 규칙을 지키지 않겠다는 건 죽여 달라는 뜻 아닌가? 게이트 안에서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는 등신이라면 대상이 아무리 일반인이라도 즉결 처분이 허용된다는 거 시험 치면서 안 외웠나?”

    “체력 테스트도 통과했다면 이미 헌터나 마찬가지 아니야? 시끄러운데 그냥 죽여.”

    최진혁까지 이어폰을 빼며 인상을 찌푸리자 남자의 안색은 더 창백해졌다.

    “나에게 명령하는 건가?”

    “가라, 콩.”

    “……넌 반드시 내가 죽인다.”

    그때 정확히 72시간이 지났다.

    구차한 자존심 때문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원 가장자리에서 머뭇거리던 남자의 등 뒤를 곁눈질한 현규하가 불현듯 휘파람을 휘익 하고 불었다.

    “주인님, 보스 나올 거 같으니까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있어요.”

    “뭐?!”

    반응은 오히려 인유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등 뒤에 보스가 나온다는 소리에 다리에 힘이 풀린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기어들어 왔다.

    놀란 인유신은 일단 무조건 현규하에게 찰싹 달라붙었고, 헌터들은 재빨리 미리 계획한 포메이션을 짰다. 이곳의 마수들에게 상성상 유리한 파이로키네티시스트인 공태성을 메인 딜러로 한 포메이션이었다.

    전완에 새겨진 공태성의 귀속 아티팩트 문신이 빛나며 검붉은 살기가 불길과 함께 칼에 맺혔다. 게이트 내부가 진동하며 검은 기운이 사방에서 피어올라 허공에 고이기 시작했다. 쿠르릉! 보스의 기운을 버티지 못한 센터 건물이 요란한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모두의 긴장한 시선 앞에서 뭉친 기운이 차츰 하나의 형상을 갖춰 가며, 거대한…….

    “뵤.”

    햄스터가 나타났다.

    “…….”

    “…….”

    “…….”

    그렇다. 햄스터였다.

    인유신은 눈을 세차게 비볐다가 떴다. 변함없이 햄스터였다.

    황금색 털이 보송보송하고, 쌀알 모양의 까만 눈동자가 반짝거리고, 오밀조밀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비록 5층 건물과 비슷할 만큼 거대할지라도, 저것은 햄스터였다.

    “뵤오?”

    햄스터가 창문만 한 눈동자를 깜빡거리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 진동으로 그나마 버티고 있던 센터의 잔해가 완전히 붕괴했다.

    “씨발, 무슨 불알이 저렇게 크지?”

    공태성은 못 볼 걸 봤다는 질린 표정으로 신음했고.

    “왕 크고 왕 귀여워…….”

    최진혁의 눈빛엔 그 어느 때보다도 황홀해하는 감정이 비쳤다. 탱커로서 일행의 전위에 있던 이혜연은 입만 쩍 벌리고 있다가 슬금슬금 뒤로 와 인유신을 툭툭 건드렸다.

    “유신아. 저거 테이밍 가능하겠냐?”

    “그, 어, 어음……. 그게…….”

    흠칫한 인유신의 눈동자가 애매하게 흔들렸다. 사실 그의 시선은 햄스터가 나타났을 때부터 눈앞에 뜬 상태창을 좇고 있었다.

    [햄스터의 테이밍이 가능합니다.]

    [테이밍하시겠습니까?]

    [Yes / No]

    “가능할 거 같긴 한데…….”

    “네에?! 안 돼요!”

    멍한 얼굴로 햄스터를 올려다보고 있던 현규하가 그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는 재빨리 인유신을 옆구리에 끼고 하늘을 날아 햄스터, 아니 보스 몬스터의 뒤로 향했다.

    “귀여움으로 주인님을 유혹하고 있다고 해서 넘어가면 안 됩니다! 봐요! 꼬리도 이상하잖아요!”

    보스 몬스터가 흠칫했다. 덩치가 큰 탓에 조금만 움찔해도 그 행동이 아주 크게 보였다.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강아지처럼 북슬북슬하게 말려 있던 꼬리가 슬금슬금 짧아지며 슬림해졌다.

    “햄스터 꼬리 됐는데요?”

    “이익……!”

    보스 몬스터가 짧은 꼬리를 늘어뜨리며 시무룩하게 울었다. 자기를 믿어 주지 못해 섭섭하다는 것처럼. 인유신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보스 몬스터라는 거 알고는 있다. 알고는 있는데…….

    귀엽다. 너무 너무.

    “뵤오…….”

    “세상에 ‘뵤’라고 우는 햄스터가 어디 있냐고요!”

    “……찍.”

    “이제 ‘찍’이라고 우는데요? 귀엽다아…….”

    “아악!”

    현규하가 터지는 분통을 이기지 못하고 거의 절규를 했다. 노상 뻔뻔할 만큼 태연한 그가 저렇게 흥분하는 것도 처음이거니와, 눈이 뒤집힌 이유가 남친의 새 반려 햄스터다. 일행은 어떻게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상공에서 벌어지는 촌극만 올려다보았다.

    “주인님.”

    “네…….”

    대답을 하면서도 인유신의 눈은 햄스터의 통통한 뒤통수를 힐끔거렸다. 손가락으로 살살 만져 보면, 복슬복슬하고 따끈따끈하겠지…….

    현규하는 다급히 그를 붙잡아 자신의 잘생긴 얼굴로 시선을 고정하게 했다.

    “냉정하게 생각을 해 봐요. 저건 보스 몬스터입니다. 귀여운 척 주인님을 꼬시다가 먹어 치울 수도 있어요.”

    “으음, 그렇긴 한데 저한테 적의가 있으면 테이밍하겠냐는 창이 안 떠요. 절 식량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뜻이겠죠?”

    “……좋아요. 저 큰 놈을 테이밍해서 어떻게 키울 거죠? 유신 씨의 집은 저게 불알 한쪽만 걸쳐도 와르르 무너질 텐데요?”

    “ㅂ…… 찍!”

    불알을 방석처럼 깔고 앉아 있던 거대 햄스터가 짧은 앞발을 움직여 얼굴을 탈탈 털었다. 그러더니 크기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5층 건물에서 4층 건물로, 3층 건물로…….

    “찍!”

    갑자기 눈앞이 텅 비었다. 무너진 센터의 잔해에서 자그마한 햄스터가 꼬물거렸다. 인유신이 팔다리를 허우적거려서 어쩔 수 없이 현규하가 밑에 내려 주자, 햄스터가 기다렸다는 듯이 쪼르르 뛰어왔다.

    폴짝폴짝 뛰어서 손바닥으로 안착하는 몰랑몰랑한 온기를 느끼며, 인유신의 표정도 같이 녹아내렸다. 현규하의 낯은 급속도로 창백해졌다.

    “귀여움에 속지 말라니까요!”

    “규하 씨도 한번 만져 보실래요? 테이밍도 안 했는데 애가 되게 순해요.”

    현규하가 뒷목을 잡고 넘어가기 전, 최진혁이 슬쩍 손가락으로 톡톡 햄스터를 건드렸다.

    “진짜 햄스터 같군. 작아도 귀여워.”

    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던 이혜연까지 신음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테이밍까지 가능하다면 정말 해가 될 거 같지는 않은데……. 페루에도 보스 몬스터만 길들이는 S급 테이머가 있잖아. 지금이야 귀여운 거 말고는 다른 공격수단도 없는 거 같지만, 명색이 보스 몬스터인데 유사시에 유신이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주인님 옆에는 내가 24시간 내내 붙어 있을 건데요!”

    “그, 그래.”

    “근데 너희 전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는 거 같다만.”

    공태성이 여전히 징그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게이트에 계속 죽치고 있을 건가? 테이밍을 안 할 거면 빨리 죽여.”

    갑자기 햄스터가 나타나서 깜빡하고 있었지만 그 말이 맞았다. 귀엽든 귀엽지 않든, 보스 몬스터를 정리하지 않는 이상 게이트는 클리어되지 않는다. 테이밍을 하느냐 마느냐로 오래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규하 씨…….”

    울망울망한 인유신의 눈동자를 필사적으로 외면하던 현규하는 결국 왈칵 외치고 말았다.

    “진짜 싫어요!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도 합사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나도 똑같다고요! 쟤 이름까지 앙리 레이몬드 샤를 프랑소와즈 8세가 될 거 아니야!”

    테이밍되었다는 사정을 모르는 일행의 눈빛은 참으로 기괴하게 변했지만, 어쨌든 현규하는 몹시 진지했다. 인유신도 진지하게 시선을 내렸다.

    귀여운 건 둘째 쳐도, 이 보스 몬스터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더욱 테이밍하고 싶었지만 현규하가 저렇게 질색하니 어쩔 수 없다. 그가 싫어하는데도 억지로 우기면서 제 의견만 관철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안해.”

    “찌익.”

    햄스터는 이해한다는 듯이 뒤로 벌렁 누웠다. 얌전히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에 인유신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고, 현규하의 미간에는 힘이 들어갔다.

    “변형했으니 목을 자르면 죽겠지? 시간 낭비할 거 없이 바로 처…….”

    한 발 앞으로 나왔던 공태성은 치켜올리려던 칼의 각도를 빠르게 틀었다. 카앙! 얼굴로 날아들던 독 비수가 튕겨 나갔다. 비수를 회수한 최진혁의 표정이 싸늘했다.

    “저 모양으로 눈치가 없으니 백 년이 지나든 천 년이 지나든 콩이지.”

    “이 새끼가 진짜!”

    불길은 엉뚱한 싸움으로 번졌다. 놀라지도 않고 두 사람의 칼질은 무시한 이혜연이 손을 내밀었다.

    “보스 몬스터를 테이밍할 수 있으면 네게도 이득일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지. 유신아, 내가 할게.”

    그녀의 손은 다른 사람의 팔에 의해 가로막혔다. 현규하였다.

    인유신이 놀란 얼굴을 들자, 그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거듭 심호흡하더니 침착하게 말하려 애썼다.

    “그거, 죽이기는 싫죠?”

    “하지만 규하 씨가 거부하는데 멋대로 테이밍하는 건 더 싫어요.”

    “후우, 그 말이라도 들었으니 됐어요.”

    허리를 숙인 현규하가 인유신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콩 하고 살짝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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