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유신은 상태창에 뜬 물음표가 못내 의아했다. 살의와 비슷한 감정, 그러니까 적의라든가 혐의 같은 걸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가 디폴트 같으니 또 아무 생각이 없다는 대답이나 할 거 같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는 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이제는 정말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그의 심리가 걱정이다.
‘에이, 모르겠다. 글자도 깨지는데 물음표가 생길 수도 있지. 살의든 적의든 뭐라도 규하 씨 마음에 있는 게 좋을 거 같아.’
현규하와 엮이다 보니 모르는 일에 신경을 끊는 스킬만 늘고 있는 거 같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또한, 인유신이 바이크에 익숙해졌다는 걸 의미했다.
바이크를 몰고 있는 현규하의 등에 찰싹 달라붙은 채 인유신은 상태창을 저 멀리 치워 놓았다.
공무 헌터들과 헌터업무담당과는 업무의 특성상 교대 근무를 한다. 주말인 오늘도 평일만큼은 아니지만 직원들은 더러 눈에 띄었다.
“응?”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마주치는 직원들이 어색한 미소로 인사하는 것 같았다. 인유신은 나란히 걷는 현규하의 소매를 살짝 잡았다.
“규하 씨, 오늘 좀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아요?”
“주인님과 같이 자고 나왔더니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네요.”
“…….”
괜히 물었다.
소맷자락을 슬쩍 놓으려다가 손이 잡혔다. 그의 손을 넉넉히 감싸고도 남는 온화한 체온에 갇힌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바로 어제 있었던 축제가 걸리긴 하는데…….
‘에이, 학교 축제에 온 사람들만 봤을 테니 인터넷에 목격담 올라가 봤자 얼마나 관심이 있겠어. 라이브로 방송된 것도 아닐 테니까! 하하!’
찝찝함을 지워 낸 인유신은 활기차게 웃으면서 사무실 문을 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유신이 왔다!”
팡 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로 종이 폭죽과 꽃가루가 쏟아졌다.
“스토커와 헤어진 걸 축하한다, 유신아!”
“축하.”
쏟아지던 종이 조각들이 현규하의 역장에 가로막혀 아래로 흘러내렸다.
“예? 누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떡볶이 먹다가 규하 찼다면서!”
“네엨?!”
“근데……. 옆구리에 규하가 붙어 있는 걸 보니 화해했나 보네.”
이혜연이 아쉽다는 티를 팍팍 내며 혀를 찼다.
“애초에 헤어진 게 아니라, 아, 아니! 그전에 어떻게 아신 거예요?!”
“인터넷에 영상 떴던데?”
휴대폰으로 허겁지겁 현규하의 이름을 검색한 인유신은 30초 만에 절망했다. 어째서 아침부터 박승기한테 ‘힘내셈’ 같은 문자가 와 있었는지 이해되었다.
‘그게 왜! 라방으로! 아아아아악!’
쪽팔림을 버티지 못하고 손으로 벌게진 얼굴을 감싸는 인유신의 어깨를 이혜연이 토닥토닥했다.
“그래도 규하가 네 얼굴은 잘 가려 줘서 노출은 안 됐어.”
“그건 다행이지만요…….”
“대신 규하가 너한테 버리지 말아 달라고 애걸하면서 싹싹 비는 광경은 생생하게 다 남았지만 말이야.”
인유신은 울상이 된 얼굴로 현규하를 힐긋 응시했다.
“이런 소문까지 났는데 규하 씨는 괜찮으세요?”
“전부 맞는 말인데요. 라방이 아니라 전 세계에 내가 유신 씨에게 애걸하는 게 생중계되어도 거리낄 게 없습니다. 주인님 없으면 하루도 못 버틸 테니까 앞으로도 유기하지 마십시오.”
“어우, 징그러워.”
어깨를 부르르 떤 이혜연이 커피와 마카롱을 슥 내밀었다.
“오늘 너한테 필요할 거 같아서 사 왔어.”
“잘 먹겠습니다…….”
그래도 마카롱은 맛있었다. 조금 기운을 차리는 사이에 이혜연이 사무실에 있던 다른 헌터들을 손짓해서 불렀다.
“소개가 늦었지? 지방에 파견 근무 나갔다가 오늘 복귀한 애들이야. 머리 까만 놈은 감마팀장 최진혁, 안경 쓴 애는 송찬영. 감마팀 나머지 애들은 내일 출근한다니까 그때 소개해 줄게. 이 녀석들까지 만났으니 연수나 휴직 중인 애들을 제외하면 거의 한 번씩은 인사 다 했네.”
들어올 때 낯선 사람들이 있는 걸 알면서도 정신이 없어서 인사하는 걸 깜빡했다. 인유신은 얼른 마카롱 부스러기를 닦으며 고개를 꾸벅했다.
“안녕하세요. 인유신입니다.”
“최진혁이다.”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아, 최진혁 헌터님! 1월에 태백산 게이트를 정리하신 그 헌터님이시죠?”
한 박자 늦게 최진혁을 떠올린 인유신이 탄성을 질렀다. 앞서 이혜연의 장난에 “축하.”라고 짧게 말했던 남자가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했다.
각성 능력이 톡시키네시스인 최진혁은 이혜연처럼 이능부에 몇 없는 상위 랭커였다.
“그리고, 저어…….”
반갑게 인사했는데 송찬영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민망해서 얼굴이 붉어지는 그에게 송찬영이 쾌활하게 웃었다.
“전 기억 안 나는 게 당연하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재작년에 의대 졸업하고 이능부에서 레지던트로 근무 중인 힐러거든요.”
의학적 지식이 있다면 상처를 보다 효율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간호학 이상의 학위를 수료하는 치유술사들이 더러 있었다. 야매 힐러 인유신은 괜히 뜨끔했다.
‘수박 겉핥기로라도 공부를 해 두는 게 좋을까.’
송찬영이 붙임성 있게 웃으면서 한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인유신도 당연히 악수를 하려 했으나.
“……?”
손을 내밀기도 전에 등 뒤에 있던 현규하의 팔이 재빨리 뻗어 나와 송찬영의 손을 대신 꽉 잡았다. 팔뚝이 스치며 상태창이 떴다.
[현재 상태 : 살의. ??. 견제. 경쟁심.]
‘경쟁심? 무슨 경쟁심?’
당황하는 인유신의 정수리에 손을 얹은 현규하가 당당하게 말했다.
“유신 씨의 애완동물 현규하입니다.”
“으, 어, 네, 네?”
“주인님의 애완동물로 다른 사람은 더 용납할 수 없으니 헛물켜지 마세요.”
현규하를 처음 겪은 송찬영은 몹시 당황했고, 인유신도 민망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이혜연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저놈 새끼 조댕이를 꿰매 버릴 수도 없고.”
“이 인간은 진짜 변하는 게 없군.”
현규하와 안면이 있는 최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예 사무실을 나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규하 씨가 원래 좀 뇌를 거치지 않고 말을 막 하셔서요.”
“아하하……. 듣던 대로네요.”
다행히 송찬영은 언짢아하지 않았다. 착한 사람이다.
인유신은 구석으로 현규하를 데리고 가 옆구리를 꾹꾹 찌르며 속닥거렸다.
“애완동물이라니 대체 무슨 말이에요?”
“약간 햄스터 상이잖아요.”
“그야 선한 인상이시긴 한데…….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유신 씨 취향 아니에요?”
“아닌데요?”
햄스터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딱히 햄스터 상의 얼굴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인유신이 어리둥절해하자 현규하가 “흐음.” 하며 생각하는 눈치더니 허리를 숙였다.
훌쩍 위에 있는 시선이 아래로 내려와 눈맞춤을 했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건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데, 오늘따라 가까워지는 얼굴에 심장이 반응했다. 순간 두근, 하는 심장의 울림에 당황하여 뒷걸음질하자 현규하의 한 팔이 허리를 받치며 안았다.
아침 햇살이 내려앉은 긴 속눈썹이 잘게 반짝이고, 입가에 보드라운 미소가 걸렸다.
“그럼 어떤 남자가 취향이에요?”
인유신은 눈을 세차게 깜빡거렸다. 창가에서 비치는 아침 햇살의 마법 때문인가. 원래도 잘생긴 남자가 비합리적으로 잘생겨 보였다.
하마터면 ‘잘생긴 남자요.’라고 대꾸할 뻔했다.
“저, 저는……. 이성애자인데요.”
“그래도 호감이 가는 남자는 있을 거 아니에요.”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성길 형님처럼 나이 많은 남자분이요.”
“……으음.”
빈틈없는 현규하의 미소에 금이 갔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인유신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노화 스킬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잘못 들었겠지.’
워낙 낮은 혼잣말이라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인유신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날 퇴근 후 최진혁과 송찬영의 복귀를 축하하는 회식이 열렸고, 인유신은 하루 만에 트레이너가 느슨해진 덕분에 마음껏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현규하가 구남친에게 제발 받아 달라며 애걸복걸하는 영상은 그 후에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능부 홍보 영상이 드디어 공개되면서 벅차오른 현규하 팬들의 오열과 함께 대다수의 인터넷 이슈가 그렇듯이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5.
카타스트로피 이후 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