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214)
  • “보육원 나온 뒤에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자는 거 처음이에요. 절에 있는 보육원이었으니까 바닥에 요랑 매트리스를 깔고 여럿이 같이 잤었거든요. 누가 피곤해서 코를 심하게 골거나 이를 갈면 자다가 자꾸 깨기도 했고요. 잠버릇이 심한 형이 있었는데 자다가 그 형 팔에 맞은 적도 있어요.”

    말을 잇다 보니 몰두하여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는 인유신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던 현규하가 미소하며 잘게 속삭였다.

    “즐거웠나 봐요.”

    인유신은 숨을 한 번 들이켠 뒤, 대답했다.

    “……네. 좋았어요.”

    그때는 짜증이 났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마저도 좋은 추억이었다. 6세가 쳇바퀴를 돌리거나 혼자 노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드는 건, 조용하지 않았던 과거의 밤들이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현규하가 그의 말에 호응하듯 깍지 낀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나도 어렸을 때 보육원에 있었다는 말, 했었죠? 근데 나는 유신 씨처럼 좋았던 기억이 없어요. 우리는 비슷한 상황이었는데도 당신은 그곳에서 추억을 만들어 내었군요.”

    “……어쩌다가 보육원에 가게 되셨는지 물어봐도 돼요?”

    “그럼요. 뭐든 물어봐요.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말해 줄 테니까. 유신 씨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게 좋아요.”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로 현규하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맞잡은 손의 감촉도, 나직이 들리는 미성도, 어둠에 감긴 오감이 다시금 현규하로 농밀해진다.

    “어머니가 방랑벽이 심한 사람이었어요.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마 보부상이 되어서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을걸. 아무튼 몇 달씩 집을 비울 때마다 날 보육원에 맡겼어요. 할머니와는 일찌감치 절연해서 날 맡아 줄 수 있는 가족이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

    “그런데 어쩌다가 할머니 귀에 소식이 들어갔나 봐요. 당장 나를 보육원에서 데려오시고는 나중에 집에 오게 된 어머니와 또 크게 싸웠어요.”

    “애들은 부모님이 싸우는 게 제일 큰 상처라던데…….”

    “뭐, 어렸을 때라서 잘 기억은 안 나요. 그냥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라고 일찌감치 체념했었는지도 모르죠. 땅에 발을 붙이지 않고 항상 전력으로 질주하던 사람이었어요. 그게 헌터로서의 목표이든, 사랑이든.”

    사랑이든.

    그 말을 담는 목소리의 울림은 어째서인지 자조적으로 내깔렸다.

    인유신은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랑이라면……. 그분이 규하 씨 아버지예요?”

    문득 현규하가 낮게 웃었다. 목 안을 깊게 울리며 기어 올라온 웃음이 입술 밖으로 떨어지며 냉소적으로 흩어졌다.

    “자식까지 보육원에 팽개치고 맹목적으로 쫓을 만큼 사랑한 모양입니다.”

    “…….”

    “그래서, 여하튼.”

    그는 가벼운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에 개의치 않는다는 것처럼.

    그리고 그의 언행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얽매임을 나타내는 듯하여, 인유신은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나에게 보육원은 어머니가 버려두고 간 곳이었어요. 몇 달 뒤에는 다시 주워 갈 곳이기도 했죠. 그래서 그런지 보육원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어요. 크고 난 뒤에 생각해 보니 어차피 몇 달만 지나면 헤어지게 될 거야, 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거 같아요.”

    “…….”

    “그러다 할머니와 살게 되고, 얼마 안 지나서 어머니가 실종되고, 할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정말 보육원에 완전히 맡겨졌죠. 그때가 9살 때였어요.”

    “규하 씨가 9살 때라면 그 일이…….”

    “맞아요. 보육원에 게이트가 열렸어요.”

    현규하가 9살에 최연소로 던전을 클리어하고 훈련소로 가게 되었다는 건 예전에 그에게 큰 관심이 없었던 인유신도 알 만큼 유명하게 회자되던 사건이었다.

    “훈련소를 나온 뒤에도 이곳저곳 돌아다녔는데 늘 독방만 썼어요. 그러니까 누군가와 같이 나란히 눕는 건 9살 때 이후로 유신 씨가 처음이네요.”

    그것이 만족스러운 듯 현규하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이 남자는 역시,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게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인유신은 그가 버텨 온 삶의 깊이를 응시하며, 깍지를 낀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혼자 자는 게 심심하면 저 불러 주세요. 손만 잡고 잘게요.”

    나직한 웃음소리가 어둠의 건너편에서 잔잔히 번졌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인님.”

    유신 씨.

    그가 깰지도 모른다는 게 저어되어, 소리 내어 부르지도 못하고 혓바닥 위에만 얹는다. 곤히 잠든 그의 깍지 낀 손을 어루만지다, 옆으로 누워 조심스럽게 포옹했다. 곧잘 손등에 입맞춤을 남기곤 했는데, 잠이 드니 품에 안는 것조차 어렵다.

    깨지 않도록 살살 정수리의 머리칼을 헤치며 입술을 가볍게 눌렀다. 품 안에서 뒤척거리는 자그마한 온기가 심장까지 온화하게 번진다.

    〈주인님도 안 평범해요.〉

    그 말을 들었을 때의 표정을 떠올린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어디 있냐며 의아해하던 까만 눈동자.

    평범한 사람일 리가 있나.

    〈저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계속하셔도 되고, 저한테도 그 말 해도 돼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 그게 좋을 거 같아요.〉

    저를 충분히 죽일 수 있는 사람에게 그 말을 차분히, 진심으로 하는 사람이 평범할 리가.

    현규하는 제 평판이 어떠한지 알고 있다. 이 세계가 자신에게 의미가 없기에, 거리낄 것도 없어 임의롭다. 그런 자신에게 번번이 휘둘리고, 꼼짝을 못 하고, 휩쓸리면서도 그의 마음 안에 세워진 단단한 심지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유신 씨.

    단단한 그의 마음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불현듯 궁금해졌다. 현규하는 타인의 본질을 깊이 알고 싶다는 생소한 욕망에 낯섦을 느끼며 그를 깊게 품었다.

    이 모든 생소함이 테이밍이라는 관계로 묶인 탓인가. 품 안에서 무방비 상태로 곤히 잠든 인유신의 잔잔한 호흡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와 어떠한 관계로도 엮이지 않은 채 만남을 지속하게 되었다면.

    현규하는 그럼에도 끝내 그를 쫓고 말았을 자신을 발견했다.

    이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다.

    * * *

    고등학교에 올라간 여름 방학, 승려들 몰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매일 외출하며 제약 회사의 연구소를 방문했다. 주로 사무 보조를 했고 연구실이 번잡하면 청소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실험이 끝난 흰쥐 세 마리를 보았다.

    〈주임님, 얘들을 제가 연구실 구석에서 보살펴 줘도 될까요? 일에는 방해되지 않게 할게요.〉

    〈그 애들 그냥 놔둬도 얼마 못 가서 죽을 텐데…….〉

    연구원은 걱정했지만 결국 허락했다.

    거의 10년 만이었지만 테이밍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차례대로 3세, 4세, 5세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5살 때 지은 이름을 다시 붙이자니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그 무렵의 기억이 담긴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다.

    주인과 교류하고, 힐을 받으면서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았던 흰쥐들은 기운을 차리는 듯했다.

    [현재 상태 : 기쁨. 안정.]

    〈어쩐지 예전보다 털에 윤기가 더 흐르는 거 같아.〉

    테이밍 능력이 있다는 걸 모르는 연구원들은 의아해하면서도 곧잘 보러 왔다.

    〈아무리 임상 실험이 필요하다지만 쥐들을 계속 희생시키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얘들이라도 건강해 보이니 다행이다.〉

    기뻤다.

    어쩌면 스님에게 사정을 설명해서 보육원에서 계속 기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소박한 꿈까지 꾸었다.

    헛된 꿈이었다.

    테이머로서의 힐링이 상처나 감기처럼 가벼운 질병은 낫게 해도, 유전자까지 변형시킨 병을 낫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세 마리의 흰쥐들은, 여름 방학이 끝나기 전에 차갑게 식었다.

    1세는 파양당하면서 강제로 놓고 와야 했다. 1세가 죽었다는 건 나중에 영혼의 교감이 끊어지며 알았다. 1세는 죽을 때까지 갑자기 사라진 주인의 행방을 찾았다.

    2세는 던전 브레이크 때 죽었다.

    3세와 4세, 5세는 앞으로도 계속 키울 수 있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낙관을 하고 있을 때 죽었다.

    손바닥 안에서 서서히 식어 가는 온기가 무서워 엉엉 울면서, 테이밍이 무엇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 * *

    인유신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멍하니 눈썹을 깜빡거렸다. 잠결에 눈물을 흘리기라도 했는지 눈가가 조금 뻑뻑하다.

    6세는 아무리 기력을 회복해 줘도 햄스터인 이상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 터다. 박쥐의 테이밍을 결심한 이유도, 쥐보다 수명이 길기 때문이다.

    “잘 잤어요?”

    인유신은 힘없는 아침 인사를 던졌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원래 밤잠이 좀 없는 편입니다.”

    햄스터보다도 박쥐보다도 훨씬 더 오래 살아갈 남자는, 밤새도록 맞잡고 있던 손을 어루만지며 미소했다.

    [이름 : 앙리 레이몬드 샤를 프랑소와즈 7세]

    [현재 상태 : 살의. ??]

    * * *

    저 물음표는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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