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유신은 정말, 좆 됐다는 걸 깨달았다.
“길드장님, 던전 들어가시기 전에 이걸 좀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뭐지?”
사무실을 나가기 전에 비서 한준수에게 붙잡힌 공태성은 문 앞에 선 채 태블릿을 내려다보았다. ‘한국대 대동제의 생생한 현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라이브 영상이었다.
연관도 없는 곳이지만 보라고 한 이유는 있을 것이다. 일단 잠자코 영상을 훑던 공태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미간을 검지와 엄지로 꾹꾹 누르며 눈을 감았다가 뜬 후에 다시 바라보았다. 변함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1년 내내 똑같은 저 시커먼 가죽 재킷을 입은 뒷모습은 아무리 봐도 현규하였다.
누군가를 격정적으로 포옹하고 있는.
- ……나 버리지 마요.
순간 저주나 환술에 걸려서 헛것으로도 모자라 환청이라도 듣나 싶은 충격에 공태성은 침음했다. 그와 비슷한 충격을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채팅방의 시청자들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뭐임]
[방금 뭐라고 한 거냐??]
[??????]
[버리지 말라고 한 거 맞음?]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진짠가ㅅㅂ]
[??ㅋㅋ???ㅋㅋㅋㅋ?]
[아니 지금ㅋㅋㅋㅋ저겈ㅋㅋㅋㅋ아무리 봐도 현규하가 매달리고 잇는거 아님....?]
[맞는거 같은뎈ㅋㅋㅋㅋ버리짘ㅋㅋㅋ마욬ㅋㅋㅋㅋ엌ㅋㅋㅋㅋ차였나봨ㅋㅋㅋㅋㅋㅋㅋ]
[시발 세상에서 지들만 연애하는 것처럼 온갖 유난을 다 떨더닠ㅋㅋㅋㅋㅋ]
[그러니까 남친이 현규하를 차고 떡볶이 먹방을 찍고 있었는데 현규하가 쫓아와서 매달리고 있는 건가??]
[남친ㄴㄴ 구남친ㅇㅇ]
[떡볶이〉〉〉〉〉〉넘사〉〉〉〉〉〉〉현규하]
[와 현규하 등짝에 가려서 보이지도 않을 만큼 존만한 거 같은데 스급을 차다니 패기 보소ㄷㄷㄷ]
[패기로는 랭킹1위ㄷㄷㄷ]
[현규하 와꾸로도 차이는구나.... 이번생은 가망이 없으니 걍 한강 수온이나 재러 가야겠다.....]
[ㅋㅋㅋ이런 꿀잼 컨텐츠를 공짜로 봐도 되나]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방의 속도와 비례하여 동시 접속한 시청자의 수도 정신없이 증가하고 있었다. 그 꼴을 계속 보자니 정신이 오염되는 기분이라 공태성은 그냥 동영상을 껐다.
“……진짜 사랑이었나?”
“사랑이었나 보죠.”
“필요성이 있어서 연애하는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그 현규하가, 정말 사랑에 눈이 멀어서 저렇게 추한 꼴을 보인다고?”
“사랑이니 어쩔 수 없죠.”
“하아.”
한준수가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촉촉한 눈시울을 닦았다. 아담한 사람이 그러면 귀엽기나 하지, 덩치도 큰 새끼가 저 지랄이니 몹시 징그러웠다. 공태성은 태블릿으로 그의 얼굴을 밀어 내며 손짓했다.
“인유신 조사한 자료나 내놔 봐라.”
던전을 다녀온 후에 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지금 확인해야 할 거 같았다.
프로필은 간략했다. 인유신. 22살. 서울 출생. 현재 이능부의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 중. 각성 능력은 F급 테이밍.
“테이머인데 F급이 가능했나? 마나가 거의 없는 수준인가?”
“마나 등급이 낮은 것도 맞지만, 무엇보다 설치류 한정이랍니다.”
“테이밍에 종이 한정된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군.”
각성이 되는 것도 운인데, 그중에서 어떤 능력으로 각성하는지도 전적으로 운에 달려 있다. 목청이 커진다거나, 땀이 덜 나는 등의 사소한 각성 능력을 지닌 자들도 많았다.
공태성의 판단으로는 개중에서도 역대급으로 쓸모없는 능력이었다. 쥐를 길들여서 대체 어디다 쓴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현규하의 능력과 시너지를 낼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능력도 아니면 대체 어딜 보고 반한 거지? 얼굴도 그냥저냥 앳돼 보이는 꼬마일 뿐인데.”
“사랑에 빠지는 거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한준수의 촉촉한 말은 무시하고 다음 장을 넘겼다. 이번에는 조금 눈길이 가는 내용이 있었다. 공태성은 살짝 미간을 모았다.
“쯧. 무슨 파양을 두 번이나.”
5살에 입양되었다가 1년도 못 되어 파양되고, 이듬해에 입양되었다가 또 파양되었다. 두 번째 파양은 경찰이 아동 학대 정황을 파악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 뒤 개성의 달가사 보육원으로 옮겨져,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주욱 개성에서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이능부의 고졸 채용에 합격했다는, 짤막한 경력이었다.
“그래서 지금 현규하와 동거하고 있지는 않다는 건가?”
“거주지는 다릅니다만, 현규하가 매일 출퇴근 길에 태워다 주고 있습니다.”
“그럼 저녁 늦게 찾아가면 만나 볼 수 있겠군.”
“직접 가시게요? 그 주인님이잖습니까. 현규하가 저 정도로 매달리고 있는데 과연 저녁이라고 혼자 놔두고 있을까요?”
“……그건 확실히.”
공태성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현규하 성격이라면 뭔가 조치를 해 놨을 거다. 설마 직접 내내 지키는 건 아니겠지만. ……아니, 설마.
설마 싶은데 방금 본 동영상이 자꾸만 떠올랐다. 공태성은 한숨으로 눈앞에 어른거리는 현규하의 등짝을 흐트러뜨렸다. 진짜 못 볼 꼴을 봤다.
“자연스럽게 만날 방법을 알아봐야겠군.”
“아무리 길드장님이시더라도 현규하 애인에게 집적대시는 건 모양새가 좀 안 좋습니다. 예쁜 사랑 하게 놔두세요.”
“그딴 이유 아니니까 닥치고 가서 네 할 일이나 해라.”
신경질적으로 한준수에게 내던진 서류에서 인유신의 사진이 바닥으로 팔랑 떨어졌다. 22살의 남자답지 않게 해사하고 순해 보이는 얼굴을 시야의 끝에서 밀어 내며 공태성은 걸음을 옮겼다.
두근두근두근.
가파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감각을 아득하게 매웠다. 느껴지는 것은 깊이 포옹한 품, 절박하게 쏟아지는 숨결, 치닫는 심장 소리. 현규하의 모든 것.
귓가에 바짝 붙은 입술로 격정적인 속삭임이 쏟아졌다.
“내가 당신을 죽이고 싶다는 얘기를 계속해서 그래요? 앞으로 그런 얘기 절대 안 할게요.”
“저기, 규하 씨.”
“불쾌했겠죠. 하지만 당신한테 다른 문제까지 속이고 싶지 않아서 말했던 거였어요. 변명같이 들리겠지만 진짜예요.”
“아니, 아니. 그, 문자 보낸 거……. 안 보셨어요?”
“……문자?”
그제야 현규하가 팔을 살짝 풀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문자를 확인한 그의 눈썹이 크게 꿈틀했다.
현규하는 휴대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이윽고 서서히 시선을 내렸다. 인유신은 그의 눈동자가 이렇게 커진 걸 처음 봤다.
“……운동하기 싫어서 사라진 거였어요?”
“오늘만 떡볶이 먹고 내일부터는 열심히 하려고…….”
“아…….”
속눈썹이 느릿느릿 깜빡거리고, 무념하게 식어 있던 낯에 감정이 서서히 돌아왔다.
[현재 상태 : 살의.]
말없이 뒤를 돌아본 현규하는 그들을 응시하는 수많은 눈동자와 마주했다. 짧게 한숨을 뱉은 그는 재킷을 벗어 인유신의 얼굴을 덮은 후 안고서 막사 뒤쪽으로 날아올랐다.
그제야 현규하로부터 비롯된 감정의 압박에서 벗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터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방송부가 송출을 중단하긴 했으나, 그날 라이브 영상은 최고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 * *
쏟아지는 숨결이 뜨겁다.
적막한 상공에 앉아 있다는 진귀한 경험을 하고 있는데도, 등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현규하의 존재만이 느껴졌다. 그를 버린 게 아니었단 걸 알게 된 뒤에도 현규하는 품에 당겨 안은 팔을 좀처럼 풀지 못했다.
“…….”
가쁜 숨소리만 들리는 침묵 속에 인유신도 그의 팔과 다리 사이에 갇혀 가만히 앉아 있었다. 호흡이 차츰 잦아들고, 등으로 느껴지는 심장의 박동이 그와 비슷한 속도로 느려질 때까지.
“운동하는 게 그렇게 싫었어요?”
느리게 돌아온 그의 목소리에 인유신은 상태창을 힐끔 보며 대답했다.
[현재 상태 : 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