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대체 뭐 하는 채팅방이에요?”
“고독한 현규하.”
“예에?! 팬들이 말없이 사진만 올리는 그 고독방이요? 유명 헌터들 고독방은 맨날 인원수 꽉 차 있어서 들어가기 어렵지 않아요? 어떻게 들어간 거예요?”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들어가 있었는데요.”
“……몇 년은 됐을 텐데 지금까지 고독방에서 얘기 한 번도 안 했어요?”
“네.”
“…….”
더 할 말이 없어지는 당당한 대꾸였다. 하긴 자기 고독방에 들어가서 구경만 하는 게 잘못한 일은 아니니까…….
혼란스러운 표정이 된 인유신의 입술에 샌드위치를 갖다 대니 반사적으로 한 입 깨물고는 오물오물 먹는다. 이런 식의 봉사도 꽤 괜찮은 기분이었다.
“이제 어지간한 커뮤마다 캡처되어서 퍼질 거고, 오늘 안에는 길드들도 내 경고를 다 알게 될 거예요. 그래도 경고를 무시하고 당신을 귀찮게 하는 길드가 있다면…….”
“……있다면?”
현규하는 대답 대신 산뜻하게 미소했다.
그 미소의 의미를 알게 된 건 3일 뒤였다. 기적처럼 러브 콜이 딱 끊긴 와중에 집적거린 어느 무모한 길드가 있었고, 그가 명함을 버리기 전에 발견한 현규하는 1시간 정도 외출했다가 돌아왔다.
“…….”
“재미있는 표정이네요. 왜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인유신은 현규하가 오늘 아침 자신에게 명함을 들이밀었던 길드의 건물을 통째로 뽑아서 거꾸로 꽂아 버리고, 넋을 잃은 길드장에게 백지 수표를 던진 뒤 유유히 사라졌다는 내용의 인터넷 기사가 뜬 창을 말없이 닫았다.
인성으로도 랭킹 1위일 게 확실하다.
* * *
이능부, 즉 국가에 소속된 공무 헌터들은 공격대에 소속되는 건 불가하더라도 다른 공무원들과는 달리 겸업이 가능했다. 따로 프리랜서처럼 헌팅하여 벌어들이는 돈이라도 없었다면 아무도 이능부 헌터가 되려 하지 않을 테니까.
이능부 헌터의 업무는 크게 위험하거나 어렵지는 않지만 복합적이다. 즉 잡다했다.
새 던전이 발견되면 사전 탐색을 하고, 던전에 문제가 생기면 파견을 나가고, 돌발 게이트나 몬스터 웨이브 때 최우선적으로 차출되고, 경찰이 감당하기 버거운 각성자의 범죄에 대응하고, 요인 경호도 하고.
현규하의 팬들과, 이능부 헌터에게는 따로 제복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인유신이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국가 행사에서 꽃 병풍도 되어 주고.
“종종 놀러 오셔야 해요!”
토템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인유신은 김지연과 함께 소속 헌터들을 보좌하는 헌터지원국의 헌터업무담당과로 이동했다. 민생안정과와는 아예 다른 건물이었다. 형식이야 여전히 계약직 공무원이지만 현규하 전담 매니저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아마 대통령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동한 첫날, 김 과장이 직접 그들을 데리고 사무실을 돌며 헌터와 직원들을 소개해 주었다. 특정직 공무원인 공무 헌터의 현장직은 팀제였고, 알파팀의 팀장인 이혜연이 현장직 전체를 통솔했다. 원칙상으로는 현규하도 기존의 팀에 소속되어야 했지만 특별히 별개의 팀을 신설했다. 팀원이자 팀장은 현규하 하나였다.
대기 중인 헌터들은 주로 훈련을 겸하는 체력단련실에 머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지하의 체력단련실로 내려왔을 때.
“오, 헬스장이잖아. 안 그래도 헬스장 등록시키려던 참인데 잘됐네요.”
선망과 질투와 동경 등이 뒤섞인 헌터들의 인사를 씹고 내부를 둘러본 현규하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인유신을 돌아보았다.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생기가 도는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이유 모를 불길한 예감이 오싹하게 등골을 태웠다.
“헬스장이 당신과 궁합이 딱 맞게 생겼어요. 그렇죠?”
“저, 저요? 규하 씨가 아니라?”
“내 근육은 지금도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으니 필요 없고요, 여긴 주인님을 위한 우리의 데이트 장소네요.”
“네? 제가 왜요? 헬스장에서 왜요!”
인유신은 기겁해서 현규하를 붙들었으나 현규하는 항의하는 그의 머리를 뻔뻔하게 쓰다듬으며 김 과장을 돌아보았다.
“내 매니저니까 꼭 사무실에 있을 필요는 없죠?”
“물론입니다.”
잠깐 안내하는 사이에 한국에서 현재 가장 유명한 이 커플의 힘의 역학 관계를 완벽하게 파악한 김 과장은 두말하지 않고 끄덕거렸다. 덤으로 끼여서 같이 안내를 받고 있던 김지연마저도 인유신을 슬쩍 외면했다.
“유신 씨도 헌터 라이선스 따야죠.”
체력단련실에서 도망치려던 인유신을 포획하여 옆구리에 낀 현규하가 데이트 신청을 하는 것처럼 정겹게 말했다.
“저는 헌터 라이선스 필요 없는데요.”
“내가 필요해요.”
“왜요…….”
“앞으로도 주인님과 같이 던전 데이트를 다녀야 하니까요. 내가 던전에서 일하는 동안 혼자 날 놔둘 생각은 설마 아니겠죠?”
“…….”
“아니겠죠?”
“…….”
“아니겠죠?”
“…….”
“아니겠죠?”
“……아닙니다.”
박승기가 예전에 던졌던 농담이 떠올랐다.
〈혹시 아냐. 던전 데이트 같은 거라도 할지.〉
말이 씨가 된다더니. 인유신은 박승기가 새 옷을 꺼내 입은 날 짬뽕 국물이 튀기를 저주했다.
“그치만 던전에 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가서 뭘 어떻게 해요!”
“정 안 되면 내가 노력해서 박쥐로 변신하는 스킬을 습득해 보겠습니다.”
“그거 하나도 안 도와주겠다는 뜻이죠?”
“네.”
대번에 울상이 되었지만 현규하는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F급이라 평가받은 능력이라도 각성하기만 했다면 헌터 라이선스를 획득하는 과정 자체는 어렵지 않다. 필기시험과 체력 검사에 합격하고 던전 환경 실습을 이수하면 된다. 문제는 그 체력 검사였다.
인유신은 운동하는 걸 싫어하는 전형적인 운동치였다.
사정을 모르는 헌터 하나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이름은 정민재. 소개를 받을 때부터 선망의 눈초리로 현규하를 보며 대화할 틈을 찾던 청년이었다.
“시험 별로 안 어려워요. 필기도 기출 문제나 며칠 빡세게 공부하면 되고, 체력 검사 커트라인도 평균 이상이기만 하면 되고요.”
현규하가 인유신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유신 씨, 고등학교 때 50미터 달리기가 몇 초였죠?”
인유신의 동공이 가늘게 흔들렸다.
“……7초요.”
“4초나 깎으면 어떡해요. 11초였잖아요. 남고생의 평균은 8초니까 한참 미달이죠. 푸쉬업도 두 번밖에 안 됐고.”
“그때는 대, 대충 해서 그래요! 근데 규하 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양사 부회장 찬스요.”
“…….”
기껏해야 고등학생 때의 체력 평가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대기업 부회장한테 요청했다고……?
할 말을 잃은 건 인유신만이 아니었다. 어색하게 눈동자만 굴리는 정민재에게 현규하가 물었다.
“쉽게 딸 수 있을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인유신 씨.”
그나마 희망을 주던 정민재마저 사라졌다. 인유신을 옆구리에 낀 채로 현규하는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합법적으로 땡땡이쳐도 되는 첫날이지만 돌발 게이트가 서울 시내에 발견된 건 없는지 성실하게 순찰 활동을 하러 가 보겠습니다.”
“그래서 어디 가시는데요……?”
“트레이닝복이랑 운동화까지 세트로 맞춰야죠.”
“…….”
“앞으로는 식단도 내가 짜 줄게요. 내가 주는 것만 먹어요. 기왕 운동하는 거, 우리 바디 프로필도 찍을까요?”
“…….”
인유신은 애써 긍정적인 방향으로 머리를 굴렸다. 운동을 하면 건강이 좋아질 테니 나쁘지는 않을 터다. 나중에 현규하와 헤어지고 취직이 잘 안 되더라도 헌터 라이선스가 있으면 던전에서 잡일하는 인부로 일할 수 있기도 하니까……. 나는 운동이 즐겁다. 나는 운동이 즐겁다. 나는 운동이 즐겁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이따금 헥헥거리는 F급 저질 체력이다. 현규하는 기초적인 체력부터 단련하자며 러닝머신을 달리게 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눈앞이 노랗게 변했지만 버틸 만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스쿼트도 그렇지만 모든 운동은 자세가 중요합니다. 허리 쫙 펴고요, 무릎은 너무 앞으로 빼면 안 돼요. 내가 사이코키네시스로 자세 잡아 줄 테니까 까먹지 말고 잘 유지하세요.”
“진짜 근육 땅겨서 아파 죽을 거 같아요! 너무 힘들어서 앞이 안 보여요!”
“스쿼트 하다가 죽은 사람 없어요.”
“내가 최초가 되면요!”
“키스로 깨워 줄게요.”
단백질 보충제.
“마지막으로 딱 열 번 더 할게요. 옳지. 아이 잘한다. 하나, 둘, 둘, 둘, 셋, 셋, 좋아요, 그렇게. 넷. 오옳지. 아이 이뻐.”
“왜 똑같은 숫자를 반복해서 세는 건데요!”
“자세 실패한 건 취급 안 합니다.”
단백질 보충제.
“운동은 루틴이 있는 게 아니에요? 상체 한 번 조지면 48시간인가 쉬었다가 해야 한다던데요?”
“그런 주인님을 위해 준비한 포션이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