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214)
  • └└난 그것보다 도대체 어떻게 현규하를 꼬셨는지 궁금함. 돈이나 아티팩트에 스급템을 처발라도 안 넘어가던 인간이 어쩌다 공노비가 된 거냐. 나르샤는 둘째쳐도 옛날부터 양사에서 스폰 받은게 장난 아닌데도 안팡으로 안 넘어갔었잖아. 이능부에서 홍보하는 것처럼 나라를 위한 숭고한 의무감과 애국심인 건 당연히 아닐 텐데.

    └└└뭘 묻냨ㅋㅋㅋㅋ뻔하짘ㅋㅋㅋㅋㅋㅋㅋ

    └└└└전국민이 다 알 정도로 유난 떨면서 연애질하다가 깨지면 ㅈㄴ쪽팔릴텐뎈ㅋㅋㅋㅋㅋ

    - 이게 나라가 허락한 덕질인가 그거냐

    우리 애 공무원됐으니까 이제 행사에서 제복 입은 모습도 볼 수 있는 거 맏지?ㅠㅠㅠㅠㅠ

    └그날까지 안 죽고 살아있어야겠다.... 인멘인멘.....

    └부서는 옮기겠지? 이제 민원실 가도 못 보겠네...ㅠㅠㅠ정부는 세금 내는 국민들에게 이능부 청사 공개해라ㅠㅠㅠㅠㅠㅠ

    └└이능부 슨스에 뀨 뉴짤 안 올려주면 날마다 민원 넣을 거야ㅠㅠㅠㅠㅠㅠ

    └좀 걱정? 되는게ㅋㅋㅋ남친 때문에 이능부 들어간거 백퍼잖아ㅋㅋㅋㅋ근데 남친을 다른 길드에서 스카웃해서 빼내가면 어떻게 되는 거야?

    └└당장 위약금으로 장관 싸다구 날린 뒤에 계약서 찢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남친 따라 갈듯

    └└└않되ㅠㅠㅠㅠㅠㅠ갈 때 가더라도 제복 한 번만 입어주고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네. 이 문제를 미처 생각 못 했네.”

    “뭔데요?”

    “내가 깜빡한 걸 알려 준 사람이 있어서요.”

    인유신에게 달린 악플의 PDF를 따서 로펌에 넘긴 현규하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계약직 공무원 생활에 특별히 애착 있어요?”

    “아니요. 그냥 채용돼서 하는 건데요.”

    “그럼 나중에 길드에서 사무원 같은 거로 스카우트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쪽에서 저를 왜 스카우트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받는 최저 임금보다 더 주면 가야죠.”

    “그래요. 그건 뭐 유신 씨 마음대로 하면 되는데, 나르샤 길드가 스카우트하러 오면 갈지 말지 고민을 좀 해 줘요.”

    “어, 왜요?”

    “나르샤 길드장은 별로예요. 뭔가 음흉한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 콩 라인 길드장이요?”

    “네. 내 발바닥 밑에서 아등바등 삽질하는 그 길드장이요.”

    나르샤 길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길드고, 이를 직접 운용하는 길드장 공태성 또한 염제라 불리는 S급의 최상위 랭커다. 현규하에게 밀려서 만년 랭킹 2위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헌터지만.

    저 현규하가 별로라고 하는 사람이라니 갑자기 공태성의 인성이 궁금해졌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게 있었다.

    ‘제가 나르샤에 스카우트되어서 취직하는 거랑 규하 씨가 무슨 관계인데요?’라고 막 물으려던 찰나, 민원인이 들어왔다.

    “피해 본 거, 그거 증명서를 좀 떼러 왔는데요.”

    용건을 말하면서도 민원인의 시선은 인유신의 머리 위에 둥둥 뜬 채로 누워서 감자칩을 먹는 현규하에게 향해 있었다.

    “사업장의 피해인가요, 아니면 선생님 개인의 피해인가요?”

    “저희 회사…….”

    머뭇거리던 민원인이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헌터님, 거기에서 뭐 하시는 건가요?”

    “업무 방해를 안 하는 선에서 합법적인 데이트요.”

    인유신은 그렇다 쳐도 주변의 다른 직원들은 업무 공간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온 그가 영 신경 쓰이는 기색이었지만 합법적이라니 뭐라 하겠는가.

    그냥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민원인은 서류를 뗀 뒤에도 공중에 떠 있는 현규하를 연신 힐끔거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인유신은 조금 창피했다.

    “아, 해요.”

    그러거나 말거나 현규하는 허공에서 손을 뻗어 그의 입에 감자칩을 쏙 물려 주었다. 이 와중에 짭짜름한 감자칩이 맛있었다.

    “사내 연애라니 몹시 설레는 단어군요. 우리 함께 이능부의 한 쌍의 바퀴벌레가 되어 보도록 합시다.”

    “넹.”

    이 곤욕스러운 쪽팔림도 앞으로 며칠 남지 않았다. 사람을 덜 마주치는 부서로 이동하면 덜 쪽팔릴 것이다. ……아마도.

    * * *

    “현규하가 이능부에 채용된 이유가 인유신 때문인 거 같습니다.”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던 남자가 눈동자만 힐긋 움직여 비서를 응시했다. 날카롭게 뻗은 성급한 눈매에 의아함이 서린다.

    “인유신? 그게 누구지?”

    “지난번에 보고드렸는데 까먹으셨어요? 현규하 애인이요.”

    “뭐? 그 주인님? 또라이 새끼가 또 지랄병에 걸려서 쇼하는 줄 알았는데 진지하게 사귀던 거였어? 아니, 그 전에 진짜 게이였나?”

    “게이인지 바이인지는 모르죠.”

    비서가 어깨를 으쓱하며 보고를 이어 갔다.

    “홍보 영상을 촬영하던 현장 스태프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로는 눈치 안 보는 데이트를 하기 위해 이능부 소속이 되겠다고 했다 합니다.”

    “미친놈. 히든 보스의 결정석에 무라마사(일본의 도공 무라마사가 만든 칼들.)를 얹어 줘도 우리 길드에 오기 싫다던 놈이?”

    “왜놈 칼은 거부한다고 했었죠.”

    “……그래서 무라마사를 용천검(임경업 장군의 검.)으로 바꿔 줬는데도 걷어찬 주제에 그깟 애인 때문에?”

    “로맨틱하군요.”

    “넌 현규하가 정말 연애질에 눈이 멀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저야 모르죠.”

    책상으로 돌아와 의자에 털썩 앉은 남자는 시큰둥한 기색의 비서에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나마 친한 권성길이나 이혜연도 수틀리면 주저하지 않고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인간 불신이 극에 달한 놈이라고. 그 새끼는 아무도 안 믿어. 남들처럼 평범하게 연애나 하면서 살 수 있을 인간이 아니야. 다른 이유가 있을 거다. 그게 아니라면……. 그 애인이라는 사람한테 뭔가 숨겨진 게 있겠지.”

    “너무 과한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현규하가 얼마나 커퀴짓을 하는지 목격한 썰들이 많은데 몇 개 보여 드릴까요?”

    “눈 썩는다.”

    보지도 않고 비서가 건넨 태블릿을 밀어 낸 남자는 가볍게 손짓했다.

    “인유신에 대해 샅샅이 털어 봐라. 오늘 아침에 먹은 식사까지 알아낼 수 있도록.”

    비서가 물러간 뒤 턱을 문지르며 고민하던 남자는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어이.”

    『…….』

    “잠에서 좀 깨시지. 슬리핑 뷰티.”

    『후아아암.』

    몇 번의 재촉 끝에 커다란 하품 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그리고 남자가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을 때.

    『왜 불렀어?』

    그의 눈앞에는 거대한 고래가 헤엄치듯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장정보다 커다란 눈동자가 느리게 끔뻑거린다. 불투명한 환상에 가까운 고래는 너른 사무실을 점령하고도 부족하여 빌딩을 뚫고 나간 몸체를 꿈틀거렸다.

    밖에서 목격한다면 고래의 거체를 빌딩이 관통한 것처럼 보이리라. 고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남자뿐이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감각이 상실될 만큼 아찔한 몸체지만, 이 또한 진흙을 뭉개듯이 축약하고 뭉쳐서 소형화한 것이라는 사실을 남자는 알고 있었다. 이 고래가 본신으로 현현했다가는 지구가 쪼개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현규하에게 애인이 있다더군.”

    『우와아. 왕자님 결혼하시는 거야?』

    “그건 모르지. 아무튼 이 사람이라는데 느껴지는 게 있나? 혹시 현규하와 동류인가?”

    남자는 일전에 비서에게 보고 받았던 서류에서 인유신의 사진을 꺼내어 고래에게 보여 주었다.

    고래의 커다란 눈동자가 동공보다도 작은 사진 한 장에 바짝 붙었다.

    『우움. 이건 인간들이 찰나를 박제해 놓은 의미 없는 장면에 불과하잖아. 이것만으로는 모르겠어. 직접 봐야 알 거 같은데.』

    둔한 음조로 느릿느릿 말한 고래는 다시금 거대한 입을 쩍 벌리며 하품하더니 가물거리는 눈을 감았다.

    『그때가 되면 다시 불러. 난 잘래.』

    고래가 눈을 완전히 감자 환영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본래의 사무실로 돌아온 공간에서 그는 손에 쥔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제법 멀끔하고 귀염성 있는 얼굴이지만 현규하의 ‘그 애인’이라는 소문이 아니었다면 주목하지도 않았을 청년이 거기에 있었다.

    인유신이라.

    남자, 나르샤의 길드장 공태성은 그 이름을 한참이나 곱씹었다.

    4.

    23시 정각. 시야의 한쪽에 떠 있는 ‘무닌의 눈’. 한 손에는 휴대폰. 위치는 지붕 위. 오늘도 완벽하다.

    현규하는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하는 스킬이 담긴 스크롤을 찢은 뒤 태연하게 전화를 걸었다.

    “유신 씨, 슬슬 잘 시간이죠?”

    - 자려고 막 이불 깔고 누운 참이에요. 규하 씨는요?

    “나도 자려고요. 잠옷 뭐 입었어요?”

    - 햄스터 그림 있는 잠옷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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