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214)
  • 낯선 시선이 다시금 환영을 바라보았다. 종교의 신성한 상징일 십자가를 탐욕과 학살의 정당성으로 이용하는 모습은 그것이 환영일지라도 무척이나 불경하고, 참담하게 여겨졌다.

    “어쨌든 십자가에 주목한 건 좋은 센스입니다. 나는 콜럼버스가 히스파니올라부터 선주민을 짓밟는 시간이 박제된 던전을 공용 포함 다섯 곳을 보았는데, 개중에서 십자가가 눈에 띈 곳은 세 곳이었어요.”

    현규하의 설명은 거기까지였다.

    “슬슬 싸울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던전이 당신의 존재를 감지했습니다.]

    학살하고 학살당하던 환영이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육지로 하강한 현규하는 인유신을 내려놓고 아공간에서 막대를 꺼냈다. 인유신의 가슴께까지 오는 반투명한 막대 네 개가 그의 앞뒤 좌우에 하나씩 꽂혔다.

    “이게 뭐예요?”

    “아다만티움만으로 제련한 포스 실드. 메이드 바이 권성길.”

    현규하는 대꾸하며 막대의 하나에 손바닥을 얹었다. 마나가 주입되고, 투명한 막이 펼쳐지며 막대를 중심으로 인유신을 감쌌다.

    “규하 씨가 헌팅에 쓰던 걸 저한테 주셔도 돼요?”

    “설마 나 때문에 샀겠어요?”

    결국 인유신 하나를 위해 장만한 방어구란 뜻이었다. 아다만티움은 던전에서만 채굴되는 희귀 광석인데, 이건 순도 100퍼센트로 만든 포스 실드이니 얼마나 비쌀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뜨끔한 인유신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규하의 목소리는 무심하기만 했다.

    “은폐 기능까지 붙어 있으니까 내가 죽어서 마나가 끊기지 않는 이상 안전할 겁니다.”

    인유신을 보호할 준비를 갖추는 사이에 슬라임처럼 뭉친 환영은 던전의 마나를 핵으로 하여 마수들을 생성했다.

    지구상의 생물을 닮았지만 완전히 똑같지 않은 뒤틀린 형체의 마수들이 사나운 울음을 뱉는다. 피부에 오싹오싹 솜털이 돋았다. 인유신은 마수의 주둥이에서 풍기는 역겨운 비린내와 누런 송곳니와 끈적한 타액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때 죽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왜 너 같은 게! 하필 네가 살아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자신을 원망하는 절규를 토해 내던 울부짖음으로부터 고개를 드니 눈앞에 넓은 등이 보였다.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등줄기. 은은한 광택을 품은 검은색 가죽 재킷. 늘씬하고 단단하게 뻗은 근육질의 체신.

    어느새 저 등에 익숙해졌다.

    인유신은 작게 중얼거렸다.

    “파, 파이팅.”

    어색한 응원을 들은 현규하가 피식 웃는 기척이 느껴졌다.

    “잘 키운 애완쥐 한 마리가 애완견이나 애완묘보다 낫다는 걸 보여 주겠습니다.”

    “개나 고양이 기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앞으로도 기르지 마세요. 앙리 레이몬드 샤를 프랑소와즈 6세 누나는 그렇다 쳐도 밑으로 동생들이 생기면 못 참을 거 같거든요.”

    왜 동생이 생기면 첫째가 분리 불안을 느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떠오르는 걸까. 서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햄스터를 더 입양하면 안 되겠다.

    이런 잡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인유신이 위험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포학하게 내달리는 마수들의 앞에 선 현규하가 아공간에서 무기들을 꺼냈다.

    보편적으로 헌터의 무기는 마나를 코팅하거나 주입한 냉병기다. 화기 또한 타격을 입힐 수는 있지만 마수는 심장을 대신하는 결정석으로 인해 어느 정도의 방어력을 지닌다. 군대처럼 압도적인 화력으로 밀어붙이지 않는 이상 헌터 개개인이 총기만으로 제압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물론 총에 마나를 주입해서 무수한 총알에 일일이 마나 코팅을 하는 가성비 최악의 스킬을 쓴다면, 총만으로 마수를 사냥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리고 현규하의 마나는 측정 불가의 EX급이다.

    돌격 소총을 한 손으로 드는 말도 안 되는 모습에 놀란 건 잠깐이었다.

    곰과 악어를 뚝뚝 떼어서 찰흙처럼 제멋대로 붙인 것만 같은 형상의 마수가 수 미터의 공간을 도약하며 쇄도했다. 인유신이 눈을 깜빡하는 순간 마수는 현규하가 오른손으로 쥔 소총의 총알에 머리통이 꿰뚫려 즉사했다.

    왼손의 총은 머리 위에서 내리꽂히던 날개 여섯 개의 거대한 매의 몸체를 터트린다. 이어 오른손에서 불꽃이 튄다. 돌격 소총의 드르르륵 하는 요란한 발사음이 마수의 포효를 찢어발기며 사방을 메웠다.

    침입자를 분쇄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살기를 흩뿌리는 마수 무리의 가운데에서 현규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탄창이 바닥나면 순식간에 아공간에서 새 총을 꺼내 교체한다.

    그를 중심으로 반경 2미터의 선을 그린 것처럼 생과 사를 나누는 공간이 형성된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마수는 그 선 밖, 죽음의 공간에서 단말마의 비명을 울부짖는다. 강자와 약자, 포식자와 피식자라는 절대적 명제가 뒤집힌다.

    [던전에 생존한 마수는 2개체입니다.]

    [던전에 생존한 마수는 1개체입니다.]

    [던전의 마수가 전멸했습니다.]

    다른 헌터들이 전진 기지를 꾸리면서 사냥하는 던전의 마수들이 몰살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10분이었다.

    인유신은 그의 별명 하나를 떠올렸다.

    원 맨 아미.

    홀로 일개 군단에 대응하는 자. 어디에도 소속되지 아니하였으나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오롯이 완성된 남자.

    테이밍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수단으로 그를 무엇도 아닌 자신에게 묶어 두는 건 너무나 온당하지 않은 일이었다.

    인유신은 뒤늦은 의문을 떠올렸다.

    “잡몹은 대충 정리가 됐네요.”

    손을 툭툭 털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돌아서는 현규하에게 물었다.

    “규하 씨는 시스템의 의도가 뭔지 짐작이 되세요?”

    “시스템이 마치 지성체라도 되는 것처럼 판단하는 질문이군요. 근데 갑자기 그건 왜요?”

    “그냥요. 규하 씨처럼 굉장한 헌터를 박쥐가 쥐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로 우겨 가면서 저처럼 보잘것없는 각성자한테 붙여 놓았다는 게 이해되지 않아서요.”

    “나는 굉장한 헌터가 아닙니다.”

    현규하의 입에서 겸양의 말이 들려서 인유신은 흠칫했다. 뭐지? 헛소리를 속삭여서 사람들을 현혹하는 마수가 남아 있었나?

    “표정이 왜 그러죠?”

    “아뇨. 아무 표정도 안 지었는데요.”

    “마치 내가 겸손한 말도 할 줄 알아서 놀랍다, 라는 표정인데요?”

    “아닙니다. 규하 씨가 얼마나 겸손한 분인지 저도 잘 아는데 그럴 리가요.”

    “흐음.”

    현규하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지만 인유신은 애써 침착한 낯으로 버텼다. 다행히 그는 한 걸음 물러나 주었다.

    “아무튼 사실이 그래요. 혈통발이니까.”

    “아, 규하 씨의 어머니도 헌터셨죠?”

    현규하의 어머니 현소라도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헌터였다고 알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외아들만 남기고 실종되어 더 높이 오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현규하는 어깨를 주물렀다.

    “던전 보스가 나올 때가 되었으니까 준비하세요.”

    때마침 시스템의 알림도 갱신되었다.

    [던전의 보스 ‘일그러진 망집의 학살자’가 나타납니다.]

    인유신도 준비 태세를 갖췄다. 현규하의 전투를 보고 감탄하며 응원할 준비였다.

    보스 몬스터는 일반 마수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을 소모하여 형성되었다.

    “크하아아악!”

    거친 울음을 토하자 ‘일그러진 망집의 학살자’의 그림자로부터 마수들이 꾸물거리며 재형성되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일그러진 망집의 학살자’는 15세기 유럽인의 복식을 한 인간체였다. 현재에 남아 있는 콜럼버스의 초상화와 비슷한 얼굴처럼 보였다. 몸집이 3층 건물 정도 되는 건 둘째 치고, 다리가 여섯 개에 팔이 세 개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일그러진 망집의 학살자’의 한 손에는 망원경, 한 손에는 피에 젖은 선주민의 목, 한 손에는 금이 들려 있었다. 사람 하나 따위는 으적으적 씹어 삼켜 버릴 것만 같은 거대함에 인유신의 낯빛이 해쓱해졌다.

    ‘뭔가 생리적인 거부감 같은 게 자꾸 들어.’

    마수들도 그렇지만 저 기괴한 형체야말로 게이트 안의 세계가 비틀려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긴장감으로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아무리 현규하라도 혼자 던전 보스를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 버프는……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두고, 힐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집중했다.

    쿵!

    여섯 개의 다리 중 하나를 움직이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육지가 요동쳤다. 마수들이 환호하며 겅중겅중 뛰었다.

    인유신은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하는 현규하의 등에 속닥거렸다.

    “저렇게 큰 건 어떻게 잡으시는 거예요?”

    “더 많은 화력, 더 많은 무기, 더 많은 총알이 있으면 됩니다.”

    그 말과 함께 현규하가 아공간에서 무기를 꺼냈다. 중기관총이었다. 단번에 수십 발을 연사하는 소총보다 더 많은 화……. 어?

    현규하는 중기관총을 꺼냈다. 중기관총을 꺼냈다. 중기관총을 꺼냈다. 중기관총을 꺼냈…….

    10정이 넘는 순간부터 헤아리는 것도 포기한 무수히 많은 중기관총이 그의 능력에 의해 허공에 고정되었다. 목표는 ‘일그러진 망집의 학살자’.

    그리고 현규하는 그냥 그걸, 쐈다.

    수천, 수만 발은 될 듯한 총알에 전부 마나 코팅을 한다는, 단순하고 과격한 방법으로 마나를 활용하며.

    허공을 메운 중기관총으로부터 일제히 불꽃이 튀고 총알이 쏟아지니 총소리가 아니라 하늘이 찢어지고 땅이 갈라지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앞까지 흔들렸다.

    [던전의 보스 ‘일그러진 망집의 학살자’가 사망했습니다.]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다리를 여섯 개나 갖고 있는데 여섯 걸음을 딛지도 못하고 절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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