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그, 그게 아니라요.”
뭐가 아니란 건지도 모르면서 나오는 대로 우물거렸다.
‘진짜 사귀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손을 잡으니 불쾌했을 거야. 안 그래도 나를 볼 때면 살의부터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잖아.’
그의 상태창을 불러와서 스스로 확인 사살할 용기는 없는 인유신은 애매하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저녁때 시간 있으세요?”
“당신이 질문하는 이유에 따라 대답이 다를 것 같네요.”
다행히 현규하는 겉으로 불쾌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시간 되시면 저녁을 사 드리고 싶어서요. 맨날 출퇴근 도와주시는 게 감사하기도 하고, 아까 말하셨던 던전 공략에 대해 얘기드릴 것도 있어서요.”
“뭐, 그런 거라면 시간 많습니다.”
시동을 끈 현규하가 바이크에서 내려왔다.
“근데 당신의 카드로 얻어먹을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주인님에게 봉사하는 게 애완쥐의 유일한 기쁨이랍니다. 음, 아니 애완서라고 해야 하나?”
“…….”
“실제로도 내 이성이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을 도우면 정말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아주 효과적인 마약 같습니다. 매너리즘 때문에 뭘 해도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무기력했는데 강제로 기분 전환이 되니 제법 쓸 만합니다. 좆같아지는 거야 가벼운 부작용이죠.”
“…….”
“그럼 갈까요? 오가다 보니 늘 테이블이 만석인 정육 식당이 요 앞 골목에 있던데.”
진땀을 흘리던 인유신은 얌전히 입을 다물고 그의 뒤를 따랐다.
사실 홍보 건을 자신의 성과로 올려 준다는 얘기를 할 때부터 이런 이유일 거라는 짐작은 했었다. 부당한 이득을 얻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제 처지에 감지덕지하며 받아들여야 할 거 같기도 하고, 고민이다.
딱 하나 남은 정육 식당의 구석 테이블에 인유신은 현규하와 마주 앉았다.
“고기는 뭐 먹을래요?”
“레드 혹 목살이요.”
“한우나 먹죠.”
인유신이 가장 저렴한 마수의 고기를 말하자 현규하는 멋대로 주문을 바꿨다.
돌발 게이트가 불시에 열리면 가축들은 폐사하기 일쑤였다. 마수들의 접근을 제한하는 실드 코어의 가격도 만만치 않다. 덕분에 오히려 사냥한 마수의 고기가 더 싸다.
그런 세상이 되었다.
60년 전, 게이트가 열리고 마수가 쏟아지며 카타스트로피를 맞은 세계는 대변혁을 겪었다. 당시 연합군은 함흥을 수복하고 진격하던 중이었다.
세계 최초의 게이트는 그 무렵 지구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낙동강 유역에 열렸다. 후방이 혼란스러워지자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서는 연구자들을 파견했다.
전쟁이 마침내 한국과 유엔군의 승리로 종전되었을 때, 세계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3개월 만에 수복한 서울은 마수들로 인해 재차 반파되었다. 승리와 기쁨의 함성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하지만 그 비극이 오히려 한국이 전후의 상처를 딛고 일어날 원동력이 되었다. 역설적인 결과였다.
해양 마수로 인해 바닷길이 봉쇄되어 유엔군은 한국에 발이 묶였다. 파견된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유엔군은 식은 총열을 다시 달구며 마수들을 사냥했고, 미지의 힘으로 각성한 자들이 나타났으며, 연구자들은 연구를 계속 이어 갔다.
카타스트로피로 인한 혼란을 한국은 빠르게 수습할 수 있었다. 마수들은 각성자와 현대 중화기로 정리되었고, 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연구의 성과를 얻었다. 마수의 접근을 막는 실드의 개발로 바닷길이 열린 뒤에도 한발 앞선 게이트와 결정석 연구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몇 년 발이 묶이는 동안 군인과 연구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한국에 정착하고 귀화했다. 다민족 국가라 칭할 정도는 아니나, 매일 출퇴근길에 지나치는 이 정육 식당의 주인도 조부가 튀르키예 출신의 군인이었고, 옆자리의 김지연도 흑인 혼혈이다.
현규하의 아마빛 머리칼과 호박색 눈동자도 지나치게 튀는 건 아니었다. 물론 독보적으로 고운 색이긴 하지만.
저도 모르게 그 고운 색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호박색 눈동자가 가늘게 휘며 입술이 열렸다.
“내가 잘생겼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홀린 눈으로 쳐다보지 않아도 됩니다.”
“아, 그래서 본 게 아니라요.”
“못생겼다는 얘기를 하는 건가요? 이런 모욕은 처음인데요.”
“그게 아니라…….”
놀리는 거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겪을 때마다 대처하기 어렵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학창 시절부터 은근히 겉돌았던 인유신이다. 자신과 타인 사이에 그어 놓은 선을 이처럼 스스럼없이 뭉개고 들어오는 사람은 처음이라 대하는 게 난처했다.
고기라도 구우려고 했는데 현규하는 집게를 내놓지 않았다. 심지어 상추쌈을 예쁘게 싸서 먹여 주기까지 했다.
“아, 하세요.”
“제가 먹으면 되는데…….”
“내가 능력 써서 입 열게 하고 상추쌈을 입 안으로 날아가게 할까요?”
인유신은 잠자코 입을 열었다. 입 안으로 쏙 넣어 주는 상추쌈의 고기는 기가 막히게 잘 굽혔다.
마수가 아닌 짐승의 고기를 먹는 건 보육원에서 박승기와 같이 독립하던 날에 한 축하 파티 이후 처음이었다. 그때 먹은 건 돼지고기였다.
“생각해 보니까 저 한우 먹은 거 처음이에요.”
“맛있어요?”
“엄청요. 육즙도 비교가 안 되는 거 같아요.”
“유신 씨가 맛있게 먹어서 나도 기쁩니다. 마수 고기는 보통 누린내나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 더 많은 공정을 거치니까요. 근육이 많아서 질기기도 하고요.”
현규하는 쌈을 하나 더 싸 주었다.
“맛있는 거 먹고 기분도 풀었으면 좋겠네요.”
“……티가 났어요?”
“당신은 생각하는 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니까요.”
쌈을 받아먹으며 인유신은 볼을 긁적거렸다.
“제가 노력해서 이루어 낸 일도 아닌데 성과표에 올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고, 다른 분들께 미안하기도 해요.”
“유신 씨가 아니었으면 홍보 영상 따위는 찍지 않았을 거니 유신 씨 실적이 맞습니다. 입장을 바꿔서 다른 사람이 유신 씨 입장이었다면 과연 당신을 배려해서 거절했을까요?”
사무실 직원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이지만 현규하의 말에 선뜻 ‘그렇다.’라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관점을 바꾸면 일종의 상호 계약이기도 해요.”
테이블에 멀거니 놓여 있던 인유신의 손을 현규하가 부드럽게 쥐었다. 현관에 마력 패턴을 주입하는 걸 도와줄 때처럼 그의 손을 완전히 감싸는, 크고 단단한 손이었다.
체온이 번져 온다. 따스했다. 뭉클하게 풀어지는 느낌에 가슴까지 간질간질하여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 꼼지락거림마저도 그의 손안에 온전히 감싸였다.
“당신은 나의 유일한…….”
아무도 보지 않는 TV 소리와 고기를 굽는 냄새와 술잔을 기울이며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의 소음 사이로, 울림이 깊은 현규하의 낮은 음성이 흘러들었다.
“마약이니까요.”
아.
“구체적으로는……. 음, 뭐가 적당하지?”
“각성제 정도로 타협하면 안 될까요.”
“그래요. 각성제로 쇼부 쳐요.”
“외가가 독립운동을 해서 일본 말 불쾌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내가 쓰는 건 돼요. 유신 씨도 되니까 마음껏 일본 말 쓰십시오.”
“아, 고맙습니다.”
뭐가 고마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요점은 당신을 도와주는 만큼 나도 기뻐지니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하고 받으라는 뜻입니다.”
“정말 그렇게 편하게 생각해도 되는 걸까요?”
“정신과에서 상담받아도 극복되지 않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게 해 줬으니 당연하죠. 물론 제일 처음 느낀 감정은 깊은 빡침이었습니다만.”
“문신이라도 지울 방법을 제가 꼭…….”
“됐어요. 익숙해지니 늘 주인님과 함께 있는 거 같아서 좋네요.”
마약과 주인님이라는 단어가 정신을 혼미하게 하였으므로, 결과적으로 홍보 건에 얽히면서 심란했던 마음은 조금 잦아들었다. 이유가 뭐든 자신을 생각해 주는 사람이다. 가슴 안쪽이 몽글몽글 간지러웠다.
그 덕분에.
“돈이 좀 모이고 여유가 되면 방통대를 가고 싶어요. 대학을 못 간 게 콤플렉스거든요. 공부도 좋아하고요.”
“나는 대학 중퇴했어요.”
“어, 정말요?”
“마수 사냥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관련 학과를 갔는데 현장 뛰는 게 낫겠더군요. 생각해 보면 마수만 때려잡느라 청춘을 다 보냈네요.”
“저희 둘 다 고졸이었네요.”
속에 품고 있는 얘기도 조금은 꺼냈고.
“이 집 된장찌개 맛있어요.”
“고깃집에 왔으니 마지막으로 된장찌개를 먹어야죠.”
“저도요. 냉면보다 된장찌개가 더 좋아요.”
의외의 공통점도 발견했다.
알바생이 된장찌개를 가지고 오느라 분주한 사이 이번에는 자신이 슬쩍 쌈을 싸서 현규하의 앞 접시에 놓았다. 그것을 본 현규하가 피식 웃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주인님이 주신 사료, 감사히 먹겠습니다.”
인유신은 흠칫 놀라는 알바생의 얼굴을 애써 못 본 척했다.
옥탑방으로 돌아오는 길도 나란히 걸었다. 정육 식당에서 5분밖에 안 걸리는 거리가 왠지 아쉽다.
“올라가세요.”
현규하의 인사를 듣고도 왠지 모를 아쉬움에 머뭇거리던 인유신은 깜빡했던 용건을 그제야 떠올렸다.
“참, 제가 테이밍한 애들한테 약간의 힐과 버프를 줄 수 있거든요. 규하 씨에게도 가능하면 던전 공략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힐이요?”
“진짜 조금요. 감기나 골절은 치료할 수 있는데 사람한테는 어느 정도 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규하가 아공간에서 예리한 나이프를 한 자루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손등을 칼날로 푹 찍었다. 깊이. 단번에.
순간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인유신은 입만 작게 벌렸다.
가로등과 주택가의 불빛이 뒤섞여 드는 일상적인 생활의 감각이 묻어나는 골목에서, 갑작스럽게 번지는 피비린내는 몹시도 이질적이었다. 손등을 관통한 칼날에서 붉은 핏방울이 바닥으로 똑 똑 똑 떨어졌다.
“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