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인유신은 가슴살을 좋아했지만, 어딘가 핀트가 엇나간 배려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닭 다리나 뜯었다. 그래도 쫄깃쫄깃한 살을 씹다 보니 맛있었다. 보육원에서는 닭 다리든 가슴살이든 가리지 않았는데 2년 만에 입맛이 사치스러워졌다.
“저 케이지에 있는 햄스터가 혹시 앙리 레이몬드 샤를 프랑소와즈 6세인가요?”
“……저는 그냥 6세라고 불러요.”
앙리 레이몬드 샤를 프랑소와즈라는 유치찬란한 이름을 육성으로 들으니 말하는 현규하는 태연한데 왠지 자신만 쪽팔렸다.
“쟤가 형이었네.”
“6세는 암컷인데.”
“누나였네. 근데 암컷 이름을 왜 남자 이름으로 지었어요?”
“처음 키웠던 햄스터 이름을 계속 붙이다 보니까요. 5살 때는 좀, 그런 이름이 멋져 보이잖아요.”
멋지다고 생각되는 이름을 다 갖다 붙였더니 이 모양이었다.
“아 참. 이름은 바꿀 수 있는데 규하 씨 이름도 7세에서 원래대로 돌려놓을게요.”
“그냥 둬도 돼요. 이름을 입력할 때나 사인할 때 손이 저절로 앙리 레이몬드 샤를 프랑소와즈 7세라고 쓰는 걸 제외하면 불편한 거 없습니다.”
“그치만 좀 창피한 이름이잖아요.”
“네? 멋진데요?”
“…….”
그래, 뭐. 갑식이보다는 앙리 레이몬드 샤를 프랑소와즈가 멋진 거 같기도 하다…….
“근데 보육원에서 햄스터를 기르게 해 줍니까?”
“아, 그건…….”
그럭저럭 맛있게 먹던 닭 다리살에서 갑자기 모래가 씹히는 느낌이 들었다. 거짓말로 얼버무릴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테이밍되어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그에게 거짓말까지 하는 건 너무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양되었을 때여서요.”
그리고 파양되었다.
인유신은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한 채 치킨을 우물거렸다. 입양되었는데 왜 보육원에서 계속 자랐냐고 물으면 대꾸할 말이 없겠지만, 현규하는 뒷말을 더 잇지 않았다.
“맥주에다가 콜라도 섞어 줄까요?”
“어, 그렇게 마셔도 맛있어요?”
“달달한 탄산을 섞는데 당연히 맛있죠.”
현규하는 사이코키네시스 능력을 이용해서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콜라와 맥주를 섞는 경이적인 기술을 선보였고, 콜라와 섞여 달착지근한 칵테일이 된 맥주는 무척 맛있었다.
“저는 맨바닥에서 자도 되는데…….”
“던전 공략하다 보면 야숙하고 날밤 새우는 거에 익숙해집니다.”
“그렇지만요, 규하 씨가 손님이시잖아요.”
“손놈 따위보다는 주인님이 편하게 주무셔야죠. 쥐새끼는 그냥 구석에 쭈그리고 있겠습니다.”
현규하는 유일하게 하나 있는 매트리스를 양보하려는 인유신에게 그렇게 우기며 억지로 눕혔다. ‘주인님’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꽤 효과적이었다.
잠을 자지 않고 버티려는 듯하던 그에게서 이내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걸 인식하자마자 심장이 미친 것처럼 요동치며 극도의 절망과 우울증이 덮쳤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곁에서 그의 숨소리와 인기척을 느끼며 무한한 안정감을 느낀다.
타인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이 좌지우지되는 이 느낌은 무척이나 불쾌하다.
쳇바퀴를 돌리던 햄스터마저 얌전해진 한밤중의 낡은 주택가는 고요하다. 간간이 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다, 나직이 불렀다.
“유신 씨.”
“……6세야……. 도망치지 마.”
웅얼거리는 잠꼬대에 실소할 법도 하건만 어둠에 가라앉은 현규하의 무심한 표정은 변함이 없다.
현규하는 9살에 게이트를 첫 공략 했다. 마수를 죽인 것도 살생이라 칭한다면 현규하는 그때 처음으로 손에 피를 묻혔다. 무서웠다. 하지만 등 뒤에 저보다 어린, 3살밖에 안 된 아이를 두고 있던 소년에게는 도피할 곳이 없었다.
그리고 첫 살인은.
〈오, 히든 특성이 뱀파이어라고? 멋진데?〉
가장 믿었던 사람.
반장갑을 낀 손을 몇 차례 쥐었다 폈다 했다. 이상 없다. 팔을 뻗는다. 가깝다. 날씬한 목은 그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쉽게 잡힐 것이다. 1초면 족하다. 목을 움켜잡고 비틀어, 꺾는 것에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현규하는 이상이 없던 손이 갑자기 경련하기 시작하는 것을 본다. 고른 숨을 들이마시고 뱉어 내는 목의 체온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이성은 테이밍된 짐승의 본능에게 형편없이 패배한다.
인유신을, 그의 ¦°ø¾Îð를 절대 죽이지 못하리란 걸 다시금 깨닫는다.
“¦°ø¾Îð.”
단어를 발음해 본다. 이 세계에서 인지하는 언어가 아닌 것에 지직거리는 잡음이 낀다.
현규하는 그것이 몹시 마뜩잖았다.
“……정말이지, 어쩌다가 ¦°ø¾Îð가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시스템이 박쥐도 쥐라는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붙인 것도 같잖고, 테이밍된 이유도 짐작되지 않아 짜증이 났다. 아버지나 고모 짓은 아닌 것 같은데.
“누가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내 인생에서 좀 꺼져. ¦°ø¾Îð도 필요 없어.”
현규하는 닿지 않을 욕설을 씹으며 힌지가 부서진 문을 대강 걸쳐 놓은 현관 근처의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어두운 방은 죽음처럼 고요하다. 현규하의 지난 삶은, 그리고 미래의 삶은 죽음과 맞닿은 한 점으로의 추락이다. 부딪치고, 깎이고, 마모되고, 살육에 익숙해지며 나아가는 길의 극점은 멸망하는 세계의 끝이다.
그 길의 여정에 누구도 개입시키지 않으리라. 설사 그의 유일한 짝인 ¦°ø¾Îð라 하여도.
그는 왕이 완공한 도시를 홀로 무너트릴 것이다.
* * *
현관문을 고치기 위해 현규하가 불러온 사람을 본 인유신은 몰카라도 찍는 줄 알았다. ‘아는 사람’이라길래 수리공인가 싶었더니, 세계적으로도 명성 높은 블랙스미스 권성길이었다.
“이쪽이 어제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던 그 주인님인가 보지?”
덩치 큰 중년 남자의 넉살 좋은 인사에 입을 헤 벌리고 있던 인유신은 급히 정신을 차렸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인유신이라고 합니다! 권성길 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나랑 처음 만났을 때는 부른 적이 없다는 거짓말만 하더니. 차별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인마, 이게 인망의 차이가 아니겠냐.”
권성길이 흐흐 웃으며 현규하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인유신은 살아 있는 전설이나 다름없는 블랙스미스가 현관문을 고치러 왕림했다는 사실에 급격히 송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문짝 따위야 아무거나 새로 사다가 붙여 놓고, 권성길 님이 손대는 저 현관문은 어딘가에 잘 보존해 놓아야 하는 게 아닐까?
무릎까지 꿇고 경건하게 권성길의 작업을 관람하는 인유신의 옆에서 현규하는 어이없다는 실소를 지었다.
“주말인데 쉬시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어어, 괜찮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보나 마나 현규하 놈이 작살냈을 거잖아. 저놈한테 출장비까지 알뜰살뜰하게 뜯어먹을 거야.”
“나만큼 형의 변태적 취향을 존중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 대우가 박하네요.”
“인마, 유신이가 오해하잖아! 던전에서 희귀 광물을 조달해 주는 거라고 똑바로 얘기해! 아, 유신이라고 편하게 불러도 되지?”
“황송합니다!”
각이 잡힌 인유신의 대꾸에 현규하가 슬쩍 눈을 흘겼다.
“나도 각성을 제작 능력으로 할 걸 그랬군요.”
“그게 아니라, 몇 년 전에 애들이랑 스님이랑 같이 유원지에 놀러 갔다가 돌발 게이트가 열렸던 적이 있거든요. 죽을 뻔했는데 스님이 갖고 계시던 일회용 실드 코어 덕분에 헌터들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었어요.”
“오, 그 실드 코어가 내가 만든 거였냐?”
“실험용으로 만드신 걸 주변에 나누어 주셨다고 들었는데 그중의 하나를 스님이 받으셨어요.”
반짝거리는 인유신의 눈동자에 권성길은 코밑을 문지르며 머쓱하고도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직접 마수를 처리하는 현장에 나서는 일이 없는 권성길로서는 일반인으로부터 솔직한 감사 인사를 듣는 경우가 퍽 드물었다.
힌지를 수리하는 일이야 금방 끝났다. 현규하의 사이코키네시스를 노동력으로 써서 문틀에 고정한 권성길은 몇 가지 시약과 재료로 문을 조금 더 뚝딱거렸다.
그 덕분인지 아이템처럼 감정도 되었다.
[각성자 권성길이 수리한 알루미늄 현관문]
“문짝만 붙이는 게 허전해서 손을 조금 더 봤어. 기본적인 경보 기능을 갖춰 놨으니까 누가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면 전기 충격을 받을 거야. 월세로 사는 집만 아니었어도 미관까지 다듬어 주는 건데. 쩝.”
“감사합니다, 권성길 님!”
“형이라고 불러도 돼.”
고아로 자라서 나이 많은 연상에게 약한 인유신은 마냥 쑥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6살 연상인 남자의 표정은 미묘해졌다.
“각성은 했어?”
“하긴 했는데 별거 아닌 능력이라서 헌터 라이선스는 없어요.”
“마나만 있으면 돼.”
권성길은 현관 손잡이에 손을 올리게 했다.
“여기에 네 마나 패턴을 인식하면 도어 록을 누르지 않아도 문을 열 수 있을 거야. 지문 등록보다 편할걸?”
“저, 근데 마나를 주입해 본 적이 없어서…….”
“내가 도와줄게요.”
권성길이 조언하기 전에 냉큼 끼어든 현규하가 팔을 뻗었다. 뒤에서 팔을 길게 내민 그가 손등에 손을 올리니 등으로 그의 가슴이 맞닿고, 머리 위로 어둑한 그늘이 드리웠다. 낯선 존재감이 인유신을 감쌌다.
[현재 상태 : 살의. 흥미. 이상한 증상.]
어쩐지 잘 단련된 넓은 가슴에 안기는 느낌이 들어 머뭇거리는 인유신의 손등을 현규하가 덮었다. 크고, 따스한 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