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214)

“…….”

인유신은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댓글 +999에서 애써 눈을 돌리며 게시판을 닫고, “진짜 주인님이라고 해? SM 플레이 같은 건 아니지? 어떻게 사귄 건데! 야! 인유신! 야! 야!”라는 고함이 들려오는 휴대폰을 끈 뒤 얌전히 매트리스에 누웠다.

나는 몰라.

아무것도 못 봤고, 아무것도 못 들었고, 아무것도 몰라. 정말 모르는 일이야.

그날 밤, 인유신은 옥상에서 주차장까지 현규하가 그를 트램펄린처럼 통통 튀게 하는 악몽을 꾸었다.

“어우. 악몽을 꿔도 하필이면…….”

악몽에 시달리다가 결국 밤중에 깨 버렸다. 꿈속이라서 그런지 현규하의 미소가 훨씬 더 살벌했다. 자신이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그쪽이 테이밍만 안 했어도 이럴 일 없잖아요.’라고 환하게 웃으며 통통 튕기는 그의 얼굴은 참으로 무시무시했다.

그래.

마치 저쪽 어두컴컴한 방구석에서 허옇게 떠오른, 살 떨릴 정도로 잘생긴 얼굴 같은…….

“전화 왜 안 받아요?”

“흐이야으아아아앜!!”

귀신! 강도! 아니, 어느 쪽이든 고작해야 F급 각성자인 자신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허약한 존재였다.

인유신은 비명을 지르며 6세의 케이지를 온몸으로 감쌌다.

“귀신이라면 무슨 원한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가 무조건 전부 잘못했고요! 강도라면 현금 다 드릴게요!”

“유신 씨.”

“저에게는 생쥐 같은 자식이…….”

“유신 씨, 나예요.”

“아직 2살밖에 안 된……. 어?”

인유신은 아연실색하여 입술을 벌렸다. 현규하였다.

“허, 헌터님. 여기는 어떻게……? 제가 문을 안 잠갔어요?”

“현관문을 떼고 들어왔습니다.”

“아.”

인유신의 고개가 삐걱거리며 움직였다. 조촐하게 구색을 갖춘 파티션 너머로 보이는 현관이 왠지 휑한 기분이 들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찬 바람도 좀 들어오는 거 같고.

“문짝을…….”

“네. 완전히 박살 내면 도둑 같을 테니까 힌지만 부수고 들어왔어요.”

“그러셨구나…….”

문짝을 거덜 내는 건 똑같지만 힌지만 부수면 도둑이 아닌 거였다…….

무슨 차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인유신은 그냥 고개만 멍하니 끄덕거렸다.

“여기는 언제 오셨어요?”

“2시간쯤 됐나.”

“왜 오신 건지…….”

“당신이 내 전화를 안 받아서요.”

그러고 보니 자기 전에 휴대폰을 꺼 놨었다. 인유신은 슬쩍 휴대폰을 켰다. 어둠 속에서 액정 빛이 환하게 밝아지며 휴대폰이 부팅되었다. 그리고 확인한, 부재중 통화 124통.

“…….”

박승기를 비롯한 친구들의 연락도 있지만 대부분 오직 한 명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인유신은 꺼진 휴대폰에 120통의 전화를 건 남자의 얼굴을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면 될지 몰라 몹시 혼란스러웠다. 무서워 죽겠다는 솔직한 심정으로 봤다가는 부재중 통화 120통의 대가가 돌아올 것만 같았다.

창백한 액정의 빛에 비치는 현규하의 얼굴은 더욱 음울해 보였다.

“잘 자라는 인사를 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휴대폰이 꺼져 있는 거예요. 설마 내가 싫어서 날 거부하려고 휴대폰을 꺼 놨나? 이런 생각이 든 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

“아마 유기견이나 유기묘가 버려진 걸 알았을 때 이런 기분일 거 같기도 한데.”

“…….”

“정신이 없었어요. 휴대폰이 꺼져 있는 걸 알면서도 계속 전화를 걸었습니다.”

“…….”

“이성적인 판단이 정말, 하나도 안 되더군요.”

식은땀으로 등골이 오싹했다.

인유신은 자신이 ‘사람을 테이밍한다.’라는 사실의 무거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당신이 나를 거부하는 세계 따위가 의미가 있나 싶어서 그냥 게이트를 폭주시켜 버리자는 결심까지 했을 때 집을 알고 있으니 찾으러 가면 된다는 걸 겨우 떠올렸어요. 와서 보니 자고 있더군요.”

거기다가 아무 생각 없이 잠자던 사이에 서울이 멸망할 뻔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지, 지금은 괜찮으세요?”

“당신의 대답 여하에 따라 다를 거 같습니다만.”

“그, 그게……. 제가 헌터님 전화를 받기 싫어서 일부러 그런 건 절대 아니고요! 친구가 자꾸 귀찮게 해서…….”

인유신은 박승기가 보내 준 링크를 급히 보여 주었다. 다른 때라면 쪽팔려서 절대 남한테 보여 주지 않았을 게시물이었지만 지금은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이 글을 보고 헌터님과 무슨 관계인지 자꾸 캐물어서 그냥 폰을 꺼 놨어요.”

현규하는 메마른 눈길로 게시글을 주욱 훑었다. 현실 도피로 잠들어 있는 사이에 댓글창은 터져 나가 있었다.

“네에. 이 정도면 납득할 만한 이유군요. 유신 씨도 놀랐겠어요.”

고개를 든 그의 얼굴은 어느 정도 평소의 낯빛으로 돌아와 있는 듯했지만 인유신의 긴장감은 전혀 흩어지지 않았다. 인유신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힘주어 말했다.

“테이밍 해제할 방법 꼭 찾을게요.”

“당신에게 별로 기대는 하고 있지 않지만, 아무튼 믿어 보겠습니다.”

“저야 할 말이 없는 처지이긴 한데, 헌터님은 이런 소문 때문에 더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게다가 이성애자인 헌터님이 남자랑 사귄다는 소문까지 나는 건데…….”

“공개적으로 연애하는 관계가 되면 분리 불안 때문에 당신에게 집착해도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없을 테니 오히려 환영입니다. 그리고 남자를 만나든 마수를 만나든 내 랭킹은 안 떨어집니다.”

현규하의 입에서 ‘분리 불안’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심장이 콱콱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수명도 하루씩 깎이고 있지 않을까.

“그보다, 유신 씨.”

“네?”

“현규하입니다.”

“네?”

“내 이름이요. 애인한테 언제까지 헌터님이라고 부를 건가요?”

“아, 그렇지만 헌터님보다 제가 한참 어려서 이름 부르는 건 좀.”

“그건 당연히 안 되죠. 내가 6살이나 더 많은데.”

“…….”

지극히 한국인다운 서열 정리로 인해 인유신의 입이 닫혔다.

“그냥 형이라고 부를래요?”

나쁘지 않은 호칭이지만 역시 좀 부담스럽다. 언젠가 테이밍을 해제하면 서로 모르고 살던 때처럼 남남으로 돌아갈 텐데 그때도 친한 척 형 형 할 수도 없는 거고.

“규하 씨, 라고 불러도 될까요?”

“주인님 편한 대로 하세요.”

그렇게 호칭은 ‘규하 씨’가 되었다. 인유신은 입 속으로 ‘규하 씨’ 하고 조금 굴려 보았다.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실수하지 않으려면 익숙해져야겠다.

하지만 둘이 있을 때는 부담 없이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헌터님은…….”

“규하 씨.”

“……규하 씨는 오늘 어쩌실 거예요?”

문짝도 부서진 집에서 자는 게 불안해서 오늘 밤에는 6세의 케이지를 들고 근처의 모텔에 갈 생각이었다. 빈집이 된다 해도 어차피 제집엔 도둑이 훔쳐 갈 것도 없으니 몸만 보전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한데 현규하가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묻냐는 표정으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여기서 자고 갈 겁니다만?”

“어, 여기서요? 문도 부서졌는데?”

“그런데요?”

“문이 부서져서 바람도 좀 들어올 거고…….”

“그런데요?”

“혼자 사는 집이라 따로 주무실 곳도 없고…….”

“그런데요?”

“아닙니다…….”

현규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까 주인님이 편한 숙면을 취하실 수 있도록 내가 보초를 서야죠. 현관은 내일 아침에 아는 사람 불러서 고쳐 놓을게요.”

“네…….”

거기다 대고 모텔에서 잘 생각이었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 전에.”

현규하가 방의 전등을 켰다.

“야식부터 먹죠. 유기된 게 아니란 걸 알고 안심해서 그런지 배가 고프네요.”

야식은 역시 치킨과 맥주였다. 입맛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녁을 굶은 데다가 고소한 치킨 냄새까지 맡으니 군침이 돌았다.

인유신이 식탁 겸 책상으로 쓰는 테이블에서 맥주를 따르는 사이에 현규하가 닭 다리와 닭 날개를 전부 다 인유신의 앞으로 옮겨놓았다.

“규하 씨는 닭 다리 안 좋아하세요?”

“제일 좋아합니다.”

“근데 왜…….”

“맛있는 건 주인님 드셔야죠. 나는 퍽퍽살이나 먹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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