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214)

“꽉 붙잡아요. 날아갑니다.”

그 말을 듣고도 힘만 살짝 주었을 뿐이지만, 이윽고 현규하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자마자 기겁해서 허리를 부둥켜안았다. 빨랐다. 엄청나게 빨랐다.

“히으아아아!”

헬멧 안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이에도 바이크는 한참이나 도로를 질주했다. 인유신이 주마등을 아홉 번쯤 보고 난 뒤에 도착한 장소는 서울 북쪽의 야산이었다. 과거에 38선이 있던 곳이다.

“흐어어…….”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다리도 풀려서 바닥에 주저앉는 그를 본 현규하가 어이없어했다.

“아니, 겨우 그거 달렸다고 이 모양이에요?”

“하마터면 토할 뻔했어요.”

“내 등에 토하면 살인 청부를 할 겁니다.”

“넵…….”

현규하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를 그냥 옆구리에 끼고 산을 올라갔다. 인유신도 그냥 대롱대롱 늘어졌다.

현규하가 소유한 던전은 숲속에 있었다. 평범한 나무로 위장된 결계에 일정한 마나 패턴을 주입하자 풍경이 흔들리며 게이트가 드러났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게이트를 본 것도 처음이었다. 인유신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현규하는 놀라움을 만끽할 여유 따위 주지 않았다.

그를 옆구리에 낀 채, 현규하가 성큼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낯선 감각이 몸을 쓸고 눈앞이 까맣게 일렁거려서 인유신은 무심코 눈을 감았다. 이어 약간의 울렁거림과 함께 눈을 뜬 순간.

“우와앗!”

인유신은 바다 위에 있었다.

[던전 리셋까지 남은 시간 : 07시간 28분 31초]

대롱대롱 들려 있는 건 똑같지만 지상과 바다는 확연히 느낌이 달랐다. 깜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바둥거리자 현규하는 그냥 손을 놓아 버렸다.

“힉.”

다행히 바다에 빠트릴 생각은 없었나 보다. 인유신은 허공을 엉금엉금 기어가서 현규하의 허리에 매달렸다. 현규하가 인상을 썼다.

“안 떨어트릴 테니까 좀 놔요.”

“무, 무서워서…….”

“나는 안 무섭습니까?”

“무서워요.”

“놔요.”

“무서워요…….”

“…….”

왜 게이트의 입구가 하필 바다 위에 열려서 랭킹 1위의 귀찮아하는 눈총을 받게 한단 말인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필사적으로 매달린 인유신의 머리 위로 낮은 한숨이 흘렀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현규하는 그에게 한숨을 많이 쉬는 느낌이었다.

“빨리하고 나갑시다. 상태창이나 확인해 보세요.”

“던전에서는 상태창이 바뀌는 건가요?”

“……그것도 모르면서 왜 순순히 따라온 겁니까?”

“헌터님이 증명하라고 하셔서…….”

잠시 그를 내려다본 현규하는 확인이나 하라며 턱짓했다. 그리고 순순히 상태창을 불러온 인유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글자가 바뀌었어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바뀌었죠?”

다시 꺼내 준 태블릿에 인유신은 글자를 그리고, 썼다.

¦°ø¾니ð.

“내 상태창은 어떻게 보여요?”

“헌터님 상태창의 깨진 글자도 일부가 바뀌었어요!”

[히든 특성]

- 뱀파이어 특질

- 철의 시대와 이ÀÇ의 혼성

- ̵¡©±Ï르

- 왕의 사생아

흥분해서 외치던 인유신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 이건 바뀌었다기보다는 깨진 글자가 원래대로 드러난 거 같기도 한데…….”

“……그쪽은 부모가 누굽니까?”

설마 갑자기 부모의 안부를 묻는 패드립인가 싶어서 흠칫했지만 현규하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고아라서 모르겠어요. 보육원 앞에 버려져 있었대요.”

그 대화를 끝으로 현규하는 침묵했다. 허리에 바짝 매달린 팔이 슬슬 아파져 오고 물고기는커녕 갈매기 한 마리 날지 않는 적막한 바다에 익숙해졌을 무렵, 반듯한 입술이 느릿하게 열렸다.

“어쩔 수 없네요. 우리 그냥 사귀죠.”

“……?”

잘못 들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의 첫머리에 살의가 있는 사람이 사귀자고 할 리가 있나.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말똥말똥 쳐다보기만 하자, 현규하는 그를 옆구리에 다시 꼈다.

“마수들이 접근할지도 모르니까 일단 나가서 얘기하죠.”

던전 밖으로 나온 현규하는 슬리퍼가 벗겨진 인유신의 맨발을 보더니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숲 바깥으로 나와 바이크에 그를 앉혔다.

“두 번 말하는 거 싫어하니까 잘 들어요. 사귀자고 말한 겁니다.”

“…….”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인유신의 눈동자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경련했다.

“그, 그야 물론 현규하 헌터님은 같은 남자인 제가 봐도 매력적이시고, 키도 크고 잘생기셔서 인기도 많으실 거고, 사귀자는 제안은 기쁘고 감사하지만…….”

“혓바닥이 기네요.”

“죄송하지만 저는 이성애자라서요…….”

“나도 여자가 더 좋습니다.”

“근데 왜……?”

“페이크요, 페이크.”

현규하가 검지로 인유신의 어깨를 꾹 찔렀다.

“그쪽이 나한테 테이밍을 해서 주인만 보면 꼬리 흔드는 개새끼라도 된 것처럼 분리 불안 증상에 시달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쪽과 어떻게든 연결 고리가 없다면 돌아 버릴 거예요. 여기까지는 이해했죠?”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인유신은 고개만 열심히 끄덕거렸다.

“오늘 헤어진다고 해도 나는 계속 그쪽을 찾으러 갈 거고, 만날 거고, 볼 거고, 그렇게 해야만 안심을 할 거예요. 근데 이걸 주변에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나는 우리가 사귄다는 설정이 연막 치기 제일 좋은 거 같은데.”

“친구……? 뜨거운 우정?”

“요즘에는 스토커도 친구라고 설명하나요?”

“…….”

분리 불안 증상 때문에 스토킹도 불사하겠다는 뜻인가……. 갑작스러운 한기가 밀려와서 인유신은 등골을 오싹 떨었다.

“아니면 뭐, 사실대로 말해도 돼요. 내가 그쪽을 주인님으로 모시고 있다고. 사귄다는 페이크와 테이밍해서 주인님이 됐다는 거. 어느 쪽으로 할 거죠?”

인유신은 고민해 보았다.

능력이 출중하거나 외모가 빼어난 헌터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현규하는 둘 다 가졌다. 그와 사귄다는 거짓말을 하면 왜 저런 평범한 놈이 애인이냐는 악플이나 받겠지만, 그의 주인님이 되었다는 진실을 밝히면…….

“…….”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사, 사귀겠습니다.”

현규하의 입꼬리가 가늘게 휘었다.

“좋아요. 오늘부터 1일입니다.”

현규하가 손을 내밀었다. 잔흉터와 굳은살이 박인 헌터의 거친 손을, 기껏해야 햄스터를 핸들링하는 거로 만족하던 손이 가늘게 떨며 맞잡았다.

국내 최고의 헌터 커뮤니티에서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5년째 연속 수상하고 있는 웃음이 찬란하고, 살벌하게 떠올랐다.

[이름 : 앙리 레이몬드 샤를 프랑소와즈 7세]

[현재 상태 : 살의. 의문. 흥미.]

22년 인생을 살면서 본 웃음 중 최고로 오싹한 웃음이었다.

* * *

야산을 내려와 시내로 들어온 현규하는 잠깐 기다리고 있으라며 어디론가 걸어갔다. 퇴근 시간 전까지 사무실로 돌아가는 건 무리일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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