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214)
  • “내 몸에 그런 짓을 해 놓고도 모르겠다?”

    “죄, 죄송합니다.”

    지은 죄가 있는 인유신은 일단 머리부터 박았다. 그리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반문했다.

    “아까는 제 생각만 난다고 하셔서…….”

    “그걸 자기 입으로 말하다니 뻔뻔하네.”

    현규하가 작게 웃었다.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방금까지 그와 접촉하고 있던 인유신은 자동으로 나타난 상태창에서 똑똑히 확인했었다. 계속 웃는 표정인데도 현재 상태의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감정을.

    살의.

    마른침이 꼴딱 넘어갔다. 수동으로 그의 상태창을 불러낼 엄두도 못 내고 있지만 지금도 분명히 살의가 가장 앞자리에 있을 것이다.

    “좋아요. 주인님이 모르신다니 내가 보여 드려야지.”

    현규하가 라이딩 재킷을 벗더니 휙 던졌다. 얼떨결에 재킷을 받아 들자 안에 입었던 티셔츠까지 훌렁 벗었다. 백주 대낮 옥상에서 맨가슴이 드러났다. 그의 가슴을 본 인유신은 기겁했다.

    마르기만 한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훌륭한 남자의 반나체에 기겁한 건 아니었다. 아니, 그쪽도 충분히 놀랍긴 했다. 헬스장에서 가꾼 게 아니라 실전으로 다져진 근육은 둔중하지 않았으며 조각상처럼 우아하고 멋졌으니까. 몸의 곳곳에 남은 크고 작은 흉터마저 흉하지 않고 문신처럼 근사해 보인다.

    다만 그보다 더 인유신을 경악하게 한 건 현규하의 왼쪽 가슴, 즉 심장이 있을 위치에 새겨진 두 글자였다.

    유신唯信.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도, 비볐다가 다시 봐도, 선명한 자신의 이름이었다. 동명이인으로 착각하기라도 할까 봐 한자 병기까지 친절하게.

    “어, 어, 어떻게 거기에 제 이름이…….”

    “사람한테 삿대질하지 마요.”

    인유신은 화들짝 놀라서 저도 모르게 삿대질하던 손을 급히 내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그쪽과 은행에서 봤던 날 집에 오니까 이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타투 스, 스티커 같은 건 아니고요?”

    패닉에 빠진 인유신은 은행에서 잠깐 마주친 자신을 현규하가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현규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지금 내가 그쪽 이름으로 일부러 타투 스티커를 붙인 뒤에 구라 치고 있다는 거예요? 왜 그런 짓을 하죠?”

    “그, 그러게요?”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 인유신을 잠깐 보던 현규하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럼 만져 봐요.”

    무슨 뜻인지 이해할 틈도 없었다. 눈을 한 번 깜빡거린 순간, 인유신의 손바닥은 문신을 만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외간 남자의 맨가슴에 새겨진 문신.

    [현재 상태 : 살의. 짜증.]

    “으아아…….”

    손바닥에 꽉 부딪히는 듯한 탄탄한 가슴의 감촉에 비명을 지르기 직전, 문이 벌컥 열렸다.

    “흡연실보다 옥상에서 피우는 게 좋긴 한데 올라오는 게 귀찮…… 헉!”

    “갑자기 왜…… 히익.”

    ‘반나체로 서 있는 남자의 가슴을 만지고 있는 다른 남자’라는 광경을 목격하고 눈이 휘둥그레진 그들에게 현규하가 태연히 말했다.

    “내가 좀 바쁜데요.”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헌터님!”

    “좋은 시간 되십쇼!”

    사람들은 허둥지둥 문을 닫으며 옥상에서 도망쳤다. 방해……. 뭘 방해했다는 걸까……. 좋은 시간은 또 뭐고……. 인유신의 눈가에 눈물이 찔끔 고였다.

    “손은 이제 떼면 안 될까요…….”

    “스티커 아니란 거 이해했으면요.”

    “이해했습니다…….”

    현규하가 손목을 놓아주자 얼른 손을 뗀 인유신은 울상을 지었다. 손바닥에 남은 감촉이 너무 생생했다. 사람의 몸이 아니라 강철을 만진 것처럼 탄탄한 느낌이었는데도 피부는 몹시도 매끄러웠…….

    ‘정신 차려, 미친놈아! 남의 가슴 감촉이 뭐가 중요해!’

    인유신은 필사적으로 가슴의 감촉에서 의식을 돌리려 애썼다. 테이밍을 하면 상대의 육체에 주인의 이름이 새겨진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애초에 사람을 테이밍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옷을 다 입은 현규하는 내면의 소리를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인유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술을 움직였다.

    “먼저 내 상황부터 설명해 보죠. 그날 은행에 있을 때부터 자꾸 누가 나를 부르는 거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

    불렀다. 7세야, 7세야, 하면서 계속.

    현규하가 거듭 자신을 돌아보았던 일을 떠올린 인유신은 제 입을 후려치고 싶어졌다.

    “형사들한테 강도를 넘겨준 후에도 기분이 계속 이상했어요. 정확히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뭔가와 떨어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안 되고 초조하고, 자꾸 생각나다 못해 의식이 매몰되는 듯한 느낌?”

    “…….”

    “한마디로 주인에게 길든 개새끼처럼 분리 불안을 느꼈다는 거죠.”

    “…….”

    “그런 이유 모를 불안감에 하루 종일 시달리다가 집에 와서 보니까 여기에, 단어가 새겨져 있는 거야. 꼭 사람 이름처럼.”

    “…….”

    유구무언. 입이 있어도 쓸모가 없으니 닥치고 있을 수밖에.

    현규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예사롭게 말을 이어 갔다.

    “처음에는 사람 이름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 했죠. 생각을 해 봐요. 어떤 미친놈이 스토커도 아니고 남의 몸에 자기 이름을 멋대로 새겨 넣어? 그것도 ‘나’한테? 안 그래요?”

    “…….”

    “안 그래요?”

    “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의 회상에 두들겨 맞고 있던 인유신은 더욱 쪼그라들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자세히 확인하지 않은 건 분명히 자신의 잘못이 맞았다.

    회상이 이어질 때마다 주변의 공기는 1도씩 뚝뚝 떨어졌다.

    “저주인가 싶어서 인맥을 총동원해 치유술사와 정화술사를 다 찾아갔어요. 근데 저주가 아니래. 무슨 수를 써도 해주가 안 된대. 증상을 이야기하니까 다들 뭐라는지 알아요?”

    “…….”

    “정신 병원을 가 보라는 거야.”

    “…….”

    “졸지에 미친놈 취급을 받은 내가 어떤 기분이었을 거 같아요?”

    “……그, 매우, 답답하고 언짢으셨을 거 같고…….”

    “또?”

    “진노하셨을 것 같사옵니다…….”

    “알긴 아네.”

    현규하의 입술에 잔웃음이 피식 매달렸으나 급냉각된 공기는 조금도 이완되지 않았다.

    “범인과 은행에서 만났겠다 싶었죠. 그래서 강도들부터 하나씩 족친 다음에 그날 사건 자료를 입수해서 봤는데, 내가 거기에서 뭘 봤을 거 같아요?”

    “제 이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그런지 똑똑하네요.”

    “그, 저는 계약직이라서…….”

    “내가 하는 말에만 대답해요.”

    “넵.”

    “뭐, 아무튼 그래서.”

    인유신은 어깨를 잘게 떨었다. 허리를 굽히며 지그시 응시하는 호박색 눈동자가 무척이나 무서웠다.

    “헌터 관련 법이고 나발이고 찾아서 찢어 죽여 버리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히끅.”

    “그쪽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치더라고요.”

    아, 저 사람이 바로 내 주인이구나.

    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여 만든 한마디의 문장을 읽어 낸 인유신은 더욱 공포에 떨었다. 저주인지 스토킹인지 모를 짓을 저지른 범인을 죽이려고 살기 등등하게 찾아왔는데, 강제로 길들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것이다.

    그 심정을 헤아리니 충격으로 의식이 아찔해졌다. 자신이 현규하의 입장이었어도 목을 조르고 싶었을 거다.

    그리고 현규하는 사람을 죽일 능력도, 이를 은폐할 능력도 충분하다.

    이젠 눈에 보일 정도로 떠는 인유신에게 현규하가 느긋하게 턱짓했다.

    “그럼 이제 그쪽이 설명해 봐요.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라면 던전에서 고문해서 죽이지 않고 안 아프게 바로 죽여 줄게요.”

    고문해서 죽일 생각이었구나…….

    인유신은 달달 떨리는 입술을 힘겹게 움직였다.

    “제, 제가 테이머거든요. F급인데……. 어쩌다 보니 혀, 현규하 헌터님을 테이밍하게 되었나 봐요.”

    시스템창에 오류 같은 게 났던 장면부터 설명을 했다. 사람을 테이밍할 작정은 절대 아니었다고 열심히 피력했으나 현규하는 제대로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흐음, 테이밍이라고.”

    그의 관심은 오직 ‘테이밍’이라는 단어에만 집중되어 있는 듯했다.

    “사람을 테이밍할 수 있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인데, 뭐, 그건 그렇다 쳐도. 테이밍 해제는 되나요? 안 되는 거로 아는데.”

    테이밍을 해제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테이밍된 마수의 죽음. 다른 하나는 테이밍을 시전한 자의 죽음.

    그리고 물론, 헌터로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현규하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턱을 어루만지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테이밍된 마수의 시점이 되어 본 적이 있어요?”

    “아니요…….”

    “상당히 불쾌해요. 내 마음이 내 뜻대로 안 된다는 기분이 정말 좆같거든. 지금도 이성은 그쪽을 죽이고 싶어 하는데, 그쪽과 떨어지지 않고 대화하고 있어서 안심되는 본능이 있어요. 이게 어떤 기분인지 짐작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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