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끊어지는 듯했던 느낌은 다시금 이어졌다. 이번에는 조금 짜증스럽게 탐색했다. 기묘한 직감을 따라간 끝에는, 역시 그가 있었다.
〈혹시 그쪽이 나 불렀어요?〉
그는 몹시도 놀란 얼굴로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뭐였을까.
‘좀 예민해졌나.’
기껏 은행 강도 몇 명 잡은 일로 예민해지다니 비웃음이 나올 소리였지만, 그게 아니라면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다.
다행히 얼마 안 가 누군가 부르는 듯한 찜찜한 기분은 사라졌다. 역시 예민했던 모양이다. 요즘 던전을 안 돌았더니 나태해진 모양이라고 현규하는 자신의 나약함에 짜증을 내며 평소 같은 일과를 이어 갔다.
그것도 1시간 뒤까지였다.
“규하 씨.”
“왜요?”
“무슨 일 있었습니까?”
“없는데요.”
“근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모습이 꼭 뭐 마려운 강아지 같아서…….”
“딱히 그렇지는 않아요.”
현규하는 짐짓 단호하게 대꾸하며 피자를 우물거렸다.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래요.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거 같고, 당장 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은데 거기가 어디인지 모르겠고, 머릿속에 그 생각밖에 안 들고, 피자랑 콜라가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정말 그뿐인데요.”
“…….”
“…….”
“……집에서 나올 때 가스 안 잠갔습니까?”
젠장.
유 변호사의 말에 현규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불안감을 느낀 건 인체 실험을 하던 연구소에서 도망친 이후 14년 만이다. 얼마나 사치스럽고 약해 빠진 감정인지. 정말 짜증이 났다.
“씨발.”
그리고 하루 종일 그를 괴롭히던 짜증과 분노는 그날 밤 샤워하느라 옷을 벗었을 때, 정점에 달했다.
지루하고, 무료하고, 따분한 나날이 여러 가지 의미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 * *
주인님.
그 한마디의 여파는 굉장했다.
사인을 부탁하려던 사람도, 사진을 찍던 사람도, 속으로 탄성을 삼키며 쳐다보던 사람도, 현규하가 왔는지도 모르고 업무에 열중하던 사람도, 모두 경악했다. 사무실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현규하와 그에게 턱이 붙잡혀 있는 인유신에게 꽂혔다.
의외로 인유신은 침착했다.
‘지금 주임님을 찾는 거지?’
그의 뇌가 현실 부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주임님을 찾으시는 건지……. 주임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하.”
짧은 헛웃음을 뱉는 현규하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내 주인님이요. 주, 인, 님.”
“…….”
주임님이라고 우길 수도 없는 명료한 표준어 발음이었다. 인유신의 경련하는 눈동자가 갱신된 상태창을 읽었다.
[현재 상태 : 살의. 짜증.]
인유신의 시선이 잠깐 허공을 헤매자, 현규하가 뭔가 감이 온다는 표정을 짓더니 허리를 굽혔다. 귓전에 바짝 붙은 입술이 낮게 속삭였다. 솜털이 오싹오싹하게 떨렸다.
“지금 상태창 봤죠? 그쪽과 나 사이에 확실히 뭔가 있긴 한가 보네.”
“그, 그게, 저기, 뭔가 오, 오해가 있으신…….”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죠?”
“…….”
“머릿속에 온통 그쪽 생각밖에 없어.”
“…….”
인유신은 새파랗게 질렸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주변에서 허억, 힉, 와, 헐, 대박 따위의 격렬하고 낮은 단발적인 신음이 들려왔다.
현규하가 옆에 앉은 김지연에게 싱긋 미소했다.
“민원인도 없고 한가한 거 같은데 주인님 잠깐 모셔 가도 되겠죠?”
“어, 어어…….”
너무 놀라서 버벅거리는 그녀를 대신해서 뒷자리에 있던 홍 팀장이 서둘러 말했다.
“다, 당연히 데려가, 아니, 모셔 가셔도 됩니다! 어차피 유신 씨는 곧 점심 먹으러 가야 할 시간이었고요! 그렇지, 유신 씨? 괜찮지?”
홍 팀장의 절박한 눈은 ‘괜찮다고 빨리 말해! 빨리!’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현규하에게는 인유신의 대답 따위는 별로 상관이 없는 모양이었다.
“잘됐네요.”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손을 내저었다. 인유신의 몸이 허공으로 붕 뜨더니 데스크를 넘어왔다.
“으앗.”
사이코키네시스를 몸으로 직접 겪은 건 처음이었다. 깜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버둥거리다가 슬리퍼까지 벗겨져서 툭 떨어졌다. 그 모습이 퍽 우스웠을 테지만, 이미 현규하의 입에서 나온 주인님 소리에 경악한 사무실 안 사람들은 아무도 웃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데스크를 넘어온 인유신의 몸은 현규하의 양팔에 안정감 있게 안착……하지는 않았다. 그는 짐짝을 드는 것처럼 인유신을 옆구리에 꼈다. 힘이 얼마나 세길래 사람을 한 팔로 드는 건지 모르겠다.
“그럼 갈까요. 여기 인적 없는 곳이 어디죠?”
“옥상 정원 뒤편에 열쇠가 있어야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열쇠를 드리겠습니다!”
홍 팀장은 열쇠를 주며 안내도로 설명까지 해 주는 친절을 발휘했다. 현규하는 긴 다리를 성큼성큼 움직여 민원실을 나갔다. 닫히는 문 너머로 그제야 “봤어?”, “방금 뭐야!”, “환각 아닌 거 맞죠?!” 따위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소란은 밖에서도 이어졌다. 긴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가는 내내 현규하를 알아보는 사람은 무수히 많았다. 와, 헐, 오, 하는 감탄사 사이로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 소리와 수군거림이 들렸다.
“근데 옆에 들고 있는 사람은 누구래?”
“몰라.”
짐짝 인유신과 함께.
“민안과에서 민원 보는 유신 씨 아니에요? 지금 뭐 하는…….”
물론 2년째 근무 중인 인유신을 알아보는 사람도 드물지 않았다. 나는 그냥 짐짝이라고 애써 현실 도피를 하던 인유신은 목덜미까지 시뻘겋게 붉어졌다.
“현규하 헌터님, 사인 좀 부탁드립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눈치 없는 사람마저 만났다. 왼팔로 자신을 옆구리에 낀 채, 오른손으로 슥슥 휘갈긴 사인을 인유신은 그만 보고 말았다.
앙리 레이몬드 샤를 프랑소와즈 7세.
“…….”
“아, 미안요. 요즘 조금만 방심하면 손이 멋대로 움직여서.”
[현재 상태 : 살의. 짜증.]
현규하는 상큼하게 웃으며 새로 ‘현규하’라고 사인을 해 주었다.
그제야 인유신의 뇌가 삐걱거리며 현실을 인식했다. 영어와 프랑스어가 섞인 저딴 유치한 이름은 프랑스에서도 영국에서도 쓰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5살짜리 꼬맹이가 딴에는 멋지다는 생각으로 햄스터에게 붙이는 거라면 모를까.
테이밍한 박쥐는, 현규하였다.
사실 지금까지 현실 부정을 하고 있었을 뿐이지 어렴풋이 직감하고 있었다. 테이밍할 때 현장에 있던 각성자는 현규하뿐이었으니까. 게다가 스탯이 전부 S급 이상인 각성자가 전 세계에 몇 명이나 되겠는가.
‘미쳤어! 사람을 테이밍하다니! 심지어 현규하 헌터라니!’
인유신은 각성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원망스러워했다.
‘박쥐가 무슨 설치류야! 거기다가 박쥐가 쥐라는 건 한국어 한정이잖아! 사람인 줄 알았다면 절대 테이밍 안 했을 거라고!’
그런 고로.
옥상으로 올라온 현규하가 그를 벤치에 내려놓자마자 즉시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현규하가 비식거렸다.
“죄송한 줄 알기는 아나 봐요?”
“죄송합니다!”
“사과 한마디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세상에서 살인 사건이 반절은 줄지 않았을까요?”
“……!”
이건 죽인다는 협박일까……! 벌겋게 되었다가 새파랗게 되었던 인유신의 낯은 이제 허옇게 변했다. 색색깔로 물드는 그의 낯빛을 구경하던 현규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아까도 물었지만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모, 모, 몸이요?”
정신이나 영혼이나 의식 같은 그런 종류가 아니라 몸? 육체?
인유신은 당황한 와중에도 고개를 갸웃했다. 본의 아니게 그를 테이밍하긴 했지만 그 뒤에 명령을 내리거나 뭔가를 강제한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테이밍했었던 햄스터나 흰쥐도 건강하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외견은 아주 평범했다.
현규하의 육체에 이상이 생길 리는 없다는 뜻이었다.
“저어,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