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반려 햄스터의 수발을 들다 보니 벌렁거리던 심장이 조금 가라앉았다.
히든 특성이고 나발이고 사람을 테이밍할 수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사건이었다. 만약 이 사실이 드러난다면 주변에서 그를 어떻게 볼까.
테이밍은 곧 강제적인 길들임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조교되어 주인을 섬기게 되는 걸 기꺼워할 지성체는 없다. 당연히 그는 경계를 받을 터였다. 시스템 오류라고 항변해 봤자 통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각성 능력이라고 무시당하는 건 상관없지만, 주변에서 그를 믿지 않고 경계한다면 많이 슬플 것 같았다.
인유신은 결심했다.
‘테이밍을 취소할 수는 없으니까 무시하자, 무시! 누구인지 찾지도 말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거야! 나만 입 다물면 그 사람도 모를 테니까!’
그렇게 다짐하며 7세의 상태창을 닫으려다가 멈칫했다. 상태창에 너무나 익숙한 글자가 보였다.
[히든 특성]
- 뱀파이어 특질
- 철의 시대와 ®ÀÇ의 혼성
- ̵¡©±Ï¶
- 왕의 사생아
[귀속 아티팩트]
- 마지막 황제의 부러진 십자가
- 계승자 파디샤의 영원한 정복
하나만 갖는 것도 진귀하다고 평가받는 귀속 아티팩트를 두 개나 갖고 있다는 놀라움은 차치하고.
인유신은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상태창도 옆에 띄웠다.
[이름 : 인유신]
[고유 능력]
- 테이밍 (설치류 한정)
[히든 특성]
- ¦°ø¾Îð
상태창에 깨진 글자로 이루어진 능력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지구에서 인유신 자신뿐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한 명이 더 추가되었다.
- 상태창의 글씨가 인코딩 오류 나는 것처럼 깨지는 경우가 있을까요?
└그게 뭔 소리임. 상태창 글씨가 어떻게 깨짐??
└시스템 화면이 오류 날 수 있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네요. 상태창은 각성자가 모국어로 인식하는 언어로 표시됩니다.
└└이 말이 맞음. 내 친구는 미국으로 이민 가서 시민권까지 취득했는데 아직도 상태창이 한글로 뜬댔음.
별 영양가 없는 답변만 달린 게시판을 닫으며 한숨을 쉬었다.
‘정말 글자가 깨진 채로 시스템창에 출력되는 사람은 나랑 7세, 아니 테이밍된 그 사람 말고는 없는 걸까.’
곰곰이 생각을 거듭하던 인유신은 고개를 내저었다.
‘누구인지 찾지도 말고 궁금해하지도 말자고 결심했잖아. 그리고 뭐……. 히든 특성 같은 건 숨기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글자가 깨져 있는 걸 밝히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 나도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한테 글자가 깨졌다는 말을 한 적이 없고.’
“찌익. 찍.”
6세가 작은 목소리로 짜증을 냈다.
“어, 미안. 미안.”
인유신은 상념에서 깨어나 얼른 케이지를 청소했다.
테이밍되었다고 해서 그 이후로 6세가 극적인 변화를 겪어 엄청난 햄스터가 된 건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고, 훨씬 건강해졌다. 소소하게 아플 때는 동물 병원에 가는 것보다 힐을 해 주는 게 나았다. 보잘것없는 F급 능력이지만 인유신은 그에 만족했다.
6세는 20살에 보육원을 나와 독립하면서 햄스터 카페를 통해 입양한 녀석이었다. 유기되었던 6세는 벌써 2살이 되었다. 녀석과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지낼 수 있다면 좋겠다.
시스템창의 깨진 글자 따위보다 6세가 훨씬 더 중요했다. 인유신은 본의 아니게 테이밍하게 된 사람도, 깨진 글자도 모두 기억에서 지워 내기로 했다.
도용된 계좌 문제 때문에 은행과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는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정말 지워 낼 수 있었다.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현규하의 얼굴이 가끔 떠오르는 것만 제외하면 그날의 일은 그렇게 조용히 잊혀 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유신 씨.”
먼저 출근한 김지연이 테이크아웃해 온 커피를 마시며 인사했다.
“보이스 피싱한테 당한 일은 잘 해결됐어요?”
“어제 겨우 통장 정지당한 거 풀었어요.”
“어휴, 유신 씨도 피해자인데 오래도 걸렸다. 욕봤어요.”
“전 진짜 통장 정지당했던 일주일이 7년 같았다니까요.”
“재수 없으면 몇 개월씩 걸리기도 한대요.”
사람들이 하나둘 출근하고 사무실은 금세 북적북적해졌다. 일주일을 7년처럼 속 썩였던 문제까지 해결된 평화로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평화로운 시간은 길게 이어졌다. 오늘따라 평소보다 민원실도 조용한 느낌이었다. 언성을 높이며 욕부터 하는 진상 민원인도 없었다.
인유신은 이능부 민생안정과에서 근무하는 계약직 공무원이다. 고졸 채용으로 일을 시작한 지 벌써 2년째였다. 민생안정과가 한가롭다는 건 게이트나 마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다는 뜻이니 좋은 징조였다.
‘평화로워서 좋네.’
마수 때문에 사망한 민간인의 명단을 정리하는 업무 같은 건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5분 남은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인유신은 기지개를 길게 켰다.
‘오늘 점심 메뉴가 뭐였더라? 제육 덮밥이었던 거 같은, 으아, 문 열렸다.’
하필 점심시간 코앞에 민원인이 찾아왔다. 빨리 끝낼 수 있는 일이기만을 바라며 고개를 돌린 인유신의 입에서 멍한 소리가 나왔다.
“어?”
“어?”
두 번째 소리는 인유신이 아니었다. 오른쪽 옆자리에 앉은 김지연도 비슷한 신음성을 흘렸다.
“헉.”
세 번째 소리는 왼쪽 옆자리에서 들렸다.
“우와.”
“오.”
숨죽인 탄성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슬그머니 휴대폰을 꺼내는 사람도 있었다. 단지 걸음을 내디뎠을 뿐인데, 삭막한 민원실이 삽시간에 패션쇼의 런웨이로 바뀐 것 같은 착시 현상이 발생했다.
모두의 주목 속에 워커 소리만이 뚜벅뚜벅 다가왔다. 민원실 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탐색 한 번 없이. 곧게. 인유신에게로.
워커 소리가 인유신의 데스크 앞에서 뚝 멈췄다. 등 뒤로 전등의 불빛을 받은 장신의 그림자가 머리 위로 쏟아졌다.
“유신.”
목에 걸린 신분증도 보지 않고 또렷이 이름을 부른 현규하가, 눈웃음을 빙그레 지으며 허리를 굽혔다.
반장갑을 낀 손이 인유신의 턱을 잡아 들어 올렸다. 웃음기 너머로 기이한 기운이 일렁거리는 호박색 시선이 그를 관통했다.
현규하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내 주인님이 여기에 계셨네?”
그의 손과 인유신의 얼굴이 접촉되자, 자동으로 상태창이 떴다.
[이름 : 앙리 레이몬드 샤를 프랑소와즈 7세]
[현재 상태 : 살의. 분리 불안.]
* * *
최연소 S급, 최연소 던전 공략, 최연소 랭커 등등 온갖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운 현규하는 타인의 시선에 매우 익숙했다.
‘……?’
그런 그에게 있어 누군가가 부르는 듯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 건 몹시도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무시했는데도 말이다. 피부의 어딘가에 작은 가시가 박힌 것만 같은 찝찝함.
주변을 둘러보던 시선의 가장자리에 20대 초반의 청년이 포착되었다. 현규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기억에 있다.
〈제, 제가 인질이 대, 대신 될게요.〉
은행에 들어오기 전에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공. 실로 미담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인간 불신이 뿌리 깊은 현규하는 코웃음만 쳤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거 같은데 여기 상처 좀 누르고 있을래요?〉
일부러 지적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피가 흠씬 묻어도 무서워하거나 개의치 않고 지혈하는 모습이 의외이긴 했지만, 그뿐. 등을 돌리는 즉시 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부르는 느낌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 그가 있었다. 여전히 맹한 얼굴의 어린 청년.
‘착각이었겠지.’
현규하는 다시 쉽게 그를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