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이 락이면 박쥐도 쥐입니다. 박쥐의 테이밍이 가능합니다.]
[테이밍하시겠습니까?]
[Yes / No]
인유신은 자신이 다친 사람을 지혈하고 있다는 것마저 잊고 입을 벌렸다.
‘아니, 박쥐도 쥐라고? 종이 다르잖아.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시스템이 미쳤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을 몇 번 깜박거려 봤지만 시스템창은 변함없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Yes / No]
인유신은 각성자다. F급 테이밍 각성자.
게이트에서 출몰하는 마수를 패밀리어처럼 길들이는 게 가능하기에 테이밍은 비교적 높이 평가되는 능력이다. 하지만 인유신은 F급이다. 그가 테이밍할 수 있는 건 마수가 아니라, 동물 가운데에서도 설치류 한정이기 때문이었다.
던전에서 쥐가 몹으로 나온다면 모를까, 영 쓸모없는 능력이었다.
‘……내가 모르는 박쥐라는 종류의 쥐가 있는 걸까? 흰쥐 같은 거 말이야.’
혹시나 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박쥐는커녕 쥐 꼬리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하수도나 야외도 아니고 도심지의 은행에 쥐가 출몰할 리가 없다.
‘역시 오류 아냐?’
무시하려고 했지만 시야를 차지하고 있는 시스템창이 영 거슬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해서 현장을 정리했다. 의식을 잃은 경비원과 은행원도 무사히 앰뷸런스로 이송되었다.
[Yes / No]
“…….”
평생 이 창을 띄운 채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은행 강도까지 만났는데 이거보다 더 최악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그리고 정말 박쥐라면 일반 쥐보다는 좋을 거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수명이 더 길 테니까.
사건 현장이 정리되는 어수선함 속에 인유신은 ‘Yes’를 터치했다.
익숙한 감각이 정수리를 관통했다. 영혼과 영혼 사이에 다리가 놓이는 듯한 느낌. 손목 안쪽에 새겨진 햄스터 옆에 박쥐 문신이 그려진다. 테이밍이 완료되었다.
[박쥐의 테이밍이 완료되었습니다. 자동 설정된 이름으로 명명하시겠습니까?]
‘응.’
[박쥐의 이름은 ‘앙리 레이몬드 샤를 프랑소와즈 7세’입니다.]
인유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스템상으로 테이밍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음에도 여전히 주변에서 박쥐는 보이지 않는다.
역시 시스템 오류인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게 불러 보았다.
“7세야.”
주인의 부름에 응하여 찍찍거리며 달려오는 자그마한 몸체도, 유선형의 날개를 펄럭거리며 날아오는 몸체도 없었다.
테이밍한 박쥐를 부른 인유신이 마주한 것은, 불현듯 그를 응시하는 현규하의 선연한 호박색 눈동자였다. 권태로움에 젖은 눈동자가 무언가 말을 할 것처럼 가늘어졌다.
‘와, 눈동자 진짜 예쁘다.’
보석을 녹여 부은 것처럼 아주 고운 색이었다. 울프 아이라 불릴 만큼 드문 색이라 이질적으로 여겨질 법도 한데 그에게는 정말 잘 어울렸다. 연한 빛깔의 머리칼에 흰 피부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색소가 엷다는 느낌이 드는 탓일까.
‘그냥 잘생겨서 어울리는 거 같기도 하고. 저 얼굴이면 눈동자 색깔이 뭔들……. 아예 눈알이 없어도 잘생겨 보이지 않을까.’
토종 한국인에게서 나올 수 없는 눈동자 색깔은 사람들이 현규하가 혼혈이라고 추측하는 근거 중 하나였다. 눈이 마주쳤는데 무시하고 돌릴 수도 없어서 인유신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은행 강도에게서 구해 준 게 무척 고맙기도 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인질이 되어 큰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현규하는 대답 없이 뒷덜미를 문지르며 등을 돌렸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있어 대수롭지 않은, 흔해 빠진 일상의 하루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악몽으로 기억될 뻔했던 하루를 바꿔 준 그에게 뒤에서 고개를 한 번 더 숙여 인사했다.
“7세야.”
소파 밑 같은 곳에 숨어 있나 싶어 아래를 살펴보며 불렀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정리 중인 경찰을 방해했나 싶어 돌아본 인유신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좌우대칭까지 완벽하여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잘생긴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혹시 그쪽이 나 불렀어요?”
“아, 아, 아니요.”
잘생긴 얼굴이 시야에 가득 차자 순간 당황하여 말까지 더듬었다.
“이상하다……. 누가 나를 부르는 거 같은 느낌인데.”
현규하는 고개를 갸웃하며 저쪽에 서 있는 형사에게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이 멀어지고 난 뒤에야 인유신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예인을 마주치는 것보다 더욱 심장에 해로웠다. 사람이 저렇게 완벽하게 잘생길 수도 있는 거였다니.
‘현규하 헌터는 정말 다 가진 사람이구나.’
카타스트로피로 대변혁을 맞아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 세상이라 해도 저 얼굴에 저 능력이면 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었을까 싶다. 기껏해야 F급 각성을 한 자신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아직도 목소리의 여운이 남아 감도는 듯한 귓불을 매만지면서 조금 뺨을 붉혔다.
‘승기에게 현규하 헌터가 구해 주고 또 대화까지 했다는 걸 말해 줘도 안 믿을 거 같아.’
무엇보다 인유신 자신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
그나저나 7세는 어디에 있는 거람.
결국 조사가 끝나고 귀가할 때까지 7세는 찾지 못했다. 옥탑방으로 터덜터덜 올라온 인유신은 문이 활짝 열린 케이지를 보았다.
“6세야.”
행어 뒤에서 햄스터가 쪼르르 뛰어나왔다.
“집 잘 지키고 있었어?”
두려워하지 않고 손바닥으로 서슴없이 들어온 햄스터를 살살 조몰락거리며 냉장고에서 물을 따랐다. 손바닥이 따끈따끈하고 포근포근했다.
‘6세를 핸들링하니까 역시 치유된다.’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가. 그 노곤함이 6세의 따끈함에 스르르 녹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이름 : 앙리 레이몬드 샤를 프랑소와즈 6세]
[현재 상태 : 기쁨. 안정.]
접촉하고 있는지라 6세의 상태창도 자동으로 떴다. 녀석도 주인인 그의 귀가가 기쁜 모양이다. 햄스터답게 능력치는 전부 F급이었다.
‘그러고 보니 7세의 상태창은 확인을 안 해 봤네.’
박쥐니까 햄스터보다는 조금 높지 않을까. 별생각 없이 7세의 상태창을 불러온 인유신은 마시던 물을 뿜었다.
“푸흡!”
체력, 근력, 민첩 등등 모든 스탯이 S급이었다. 심지어 마나는 측정 불가라는 EX급이다. 헛것을 보는 건가 싶어서 눈까지 세차게 비비고 다시 보아도 여전했다.
한마디로 저 박쥐의 날갯짓 한 번만으로도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자신은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아니, 박쥐 맞아? 동물이 가질 능력치가 아니잖아!’
불길한 예감으로 등골이 오싹했다.
그러니까 박쥐라는 건 시스템의 페이크고 사실은 마수도 아닌 사, 사, 사…….
“치, 침착해. 인유신.”
마수와 진배없는 특급 동물이라면 S급일 수도 있지 않을까? 동물 중에서도 천재로 태어나는 녀석은 있을 테니 말이다.
인유신은 애써 합리화를 하며 상태창을 자세히 읽었다. 그리고 절망했다.
[히든 특성]
- 뱀파이어 특질
……가끔 이렇게 인간이 아닌 종족의 특질을 가진 각성자가 존재하긴 했다.
뱀파이어는 안개나 박쥐로 변할 수 있다던가. 뱀파이어라는 히든 특성을 가진 각성자가 하필이면 재수 없게 설치류 테이밍 능력을 가…….
“으아악! 아니야! 박쥐가 무슨 설치류냐고!”
갑자기 큰 소리를 내자 6세가 깜짝 놀랐다. 인유신도 흠칫 놀라 얼른 6세를 케이지에 넣어 주었다. 좋아하는 양상추도 찢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