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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닷 (211)화 (211/240)

- 211화 -

준성의 입을 틀어막은 남자는 바로 옆에 열려 있던 문 안으로 그를 끌었다. 소리 없이 끌려간 준성은 뒤이어 그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으어어….

얼핏 듣기에도 성대가 온전치 못한 게 분명한 기괴한 신음이 두 사람을 긴장하게 했다.

"여기 가만히 있어."

작게 속삭인 남자가 그제야 준성을 풀어주고는 그를 몸으로 막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선 밖을 직접 내다보지는 않고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남자의 휴대폰 카메라가 복도를 비추었다.

화면에는 한쪽 복도 모퉁이를 돌아서 이쪽을 향해 느릿하게 걸어오는 목 꺾인 좀비 하나가 있었다. 군용 대피소에 널려 있는 시체들과 달리, 낯익은 군복이 아니라 너덜너덜한 티셔츠에 찢어진 면바지, 피에 절은 갈색 반코트를 입고 있다. 복장만 봐도 외부에서 배회하다가 우연찮게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티가 났다.

붉은 피막으로 인한 나쁜 시야 탓에, 좀비는 5m 남짓한 거리의 문밖에 슬쩍 튀어나와 있는 휴대폰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눈치챘다고 하더라도 지성이 없으니, 살아있는 사람을 직접 눈으로 본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휴대폰 하나에 무작정 달려들 리 없었다.

어기적거리며 다가오는 좀비와의 거리가 3m 안팎이 되었을 즈음.

남자는 준성이 붙잡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가, 멍하니 복도를 걸어오던 좀비에게로 몸을 날렸다.

크아-…!

좀비가 뒤늦게 남자를 발견하고 괴성을 낼 땐 이미 그의 머리에 날카로운 나이프가 내리꽂히고 있었다.

괴성도 온전히 다 내지르지 못한 좀비가 버퍼링 걸린 음악처럼 멈칫거리다가 이내 풀썩 쓰러졌다. 괴성은커녕, 작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된 좀비는 그렇게 완전히 멈춰버리고 말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남자가 품고 있던 극도의 긴장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의 오르락내리락하는 어깨와 약간 가빠진 호흡, 그 안에 퍼져 나오는 안도의 한숨이 준성의 긴장을 부추겼다.

“…왜 여기 있어?”

그 긴장은 군용 대피소에 움직이는 좀비가 있었다는 데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눈앞의 남자가, 장대욱이, 바로 이곳에 홀로 남아 있다는 게 준성의 감각을 팽팽히 긴장시켰다.

“다 데리고 같이 나가랬잖아…. 근데 왜 여기 있냐고!”

장대욱의 등을 보며 울컥한 준성이 언성을 높였다. 그래 봤자 주변에 또 다른 좀비가 있을지도 모를 상황이라서 음량 자체는 그리 크게 내지 않았지만.

깊이 숨을 내쉰 대욱이 뒤를 돌아보았다. 화를 참고 있는 준성의 얼굴을 보며, 그 역시 딱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다 데리고 나가라고 했지, 네가.”

대욱이 준성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여전히 눈을 부라리는 준성을 대욱이 잠시 말없이 응시했다. 그러더니 피식 웃는다.

“그래서 기다렸잖아. 네 말대로 ‘다’ 데리고 나가려고.”

대욱의 눈이 준성의 목에 닿았다.

헤어지기 전에도 목에 붕대가 감겨 있긴 했어도 지금처럼 두툼한 거즈까지 대어 있진 않았다. 헤어진 뒤로 목에 부상을 당한 게 분명했다.

이어서 준성의 목에 걸쳐진 어깨끈과 그 붕대에 얹어져 굽어진 왼쪽 팔이 눈에 들어왔다. 팔 자체에는 부상의 흔적이 없다는 걸 금세 알아챈 대욱이 준성의 왼쪽 어깨를 짚었다. 한차례 움찔한 어깨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아프냐?”

“…어.”

“그 새끼가 몸빵 안 해줬어? 하는 짓 보면 지가 네 방패막이라도 되어줄 것처럼 나대던데.”

대욱이 말하는 ‘그 새끼’가 누군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준성이 한쪽 눈을 치켜뜨며 제 어깨에 얹어진 대욱의 손을 떨쳐내었다.

“도한서가 있어 줘서 이 정도인 거야.”

당당히 말하더니 이번엔 슬쩍 고개를 돌려서 작게 혼잣말을 했다.

“…없었으면 난 진작 팔다리 다 잘려서 끌려갔을걸.”

“뭐?”

“아니야, 아무것도.”

장대욱이 아는 남기혁의 이야기라고는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준성의 꿈속에 남기혁이라는 살인마가 있었고 그가 현실에서도 그와 일행을 노리고 있다는 게 장대욱이 아는 정보의 전부였다. 그를 완전히 떨쳐내지 않으면 구조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도.

그 때문에 준성이 도한서와 함께 일행과 떨어져, 그 살인마를 유인하고 처리하려 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대욱이 알아들은 ‘처리’는 그저 살인마를 더는 쫓아 오지 못하도록 조치를 하겠다는 것뿐, 설마하니 죽일 생각까지 하는 줄은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장대욱에게 사실은 팔다리가 잘릴 뻔했다느니, 그와 죽고 죽이는 사투를 벌이다가 어깨가 박살 났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줄 필요는 없었다. 괜히 걱정을 더해줘 봐야 지금 상황에는 그리 좋을 게 없다.

‘이미 죽어서 끝난 일이기도 하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소름 끼치는 원수의 마지막을 떠올리던 준성이 슬쩍 제 목을 더듬었다. 좀비가 된 남기혁에게 물린 자리가 유독 욱신거렸다.

“여하튼, 그래서 나 때문에 안 나가고 남았다고? 채이는? 다른 사람들은?”

준성의 손이 닿은 거즈 부분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대욱이 제게로 쏟아지는 물음표에 쓰게 웃으며 답했다.

“네가 계획했던 대로 군대가 왔고, 그 사람들 따라서 전부 내보냈어. 여기 남아 있는 건 나 혼자야.”

준성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강채이와 다른 사람들이 전부 이곳을 벗어나게 된 건 확실히 다행이었다. 애초에 그걸 최우선 목적으로 삼았으니 안심해도 될 일이다.

하지만 장대욱이 남았다.

준성의 계획 속에는 이곳을 벗어나 안전한 대피소에서 쉬고 있을 장대욱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그가 지금 제 앞에 있다는 것부터가 계획의 한 획이 삐뚤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너도 나갔어야지. 알잖아, 그 군대 놓치면 안전히 구조될 방법 따윈 더 이상 찾기 힘들다는 거.”

“알지. 아니까 남은 거고.”

대욱이 피식 웃으며 준성의 멀쩡한 오른팔에 장난스레 팔짱을 꼈다. 그의 미소는 어느새 어린 악동의 것처럼 변해 있었다.

“야, 그래도 내가 뭐 아무 생각도 없이 남은 건 아니다? 네가 여기 죽으려고 남아 있던 게 아닌 것처럼.”

대욱은 일행 모두가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속에서 준성이 쏙 빠져 있던 걸 이상하게 여겼다. 준성은 제아무리 일행을 위해서라지만 쉽게 희생을 선택할 사람이 아니었다. 대책 없는 죽을 각오, 그런 걸 할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대욱의 예측은 정확했다.

사실 준성은 군대를 이용하는 방법 외에도 인한시를 빠져나갈 다른 방법을 생각해두고 있었다.

다만 그 방법이라는 게 워낙 위험하기도 하고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가능에 가까운 루트였다.

하수도.

준성은 자신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밑에도 좀비들이 있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단지 그 좀비들이 어디에 얼마만큼 배치되어 있고 어느 정도의 범위로 배회하고 있는지 아는 건 꿈속에서 경험한 모든 루트를 기억하고 있는 강준성뿐이었다.

하수도는 소리의 울림이 크고 퍼져 나가는 범위가 바깥보다 훨씬 넓다.

그 안에서 이동한다면 쥐죽은 듯 소리 없이 움직여야 할 텐데, 인원이 많으면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말 잘 듣는 한두 명이라면 모르겠지만.

남기혁과의 결전이 늦어지거나 그에게 오랜 시간 동안 붙잡혔다가 겨우겨우 끝을 냈을 때를 대비한 수단이었다. 도한서와 자신, 단둘이라면 충분히 그 루트를 통해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염두에 뒀던 마지막 수단.

장대욱은 귀신같이 그 수단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준성은 자신을 너무 잘 아는 장대욱을 노려보았다.

“생각도 없이 남은 게 아니면 뭐? 무슨 생각을 뭐 어떻게 한 건데?”

사실 준성은 눈앞의 장대욱에게 상당히 화가 나 있었다.

시체로 가득한 이런 곳에서, 심지어 밖을 배회하던 좀비가 흘러들어오는 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꿋꿋이 기다려준 건 분명 감동도 받고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준성은 자신의 ‘안전 루트’에서 벗어난 장대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 안전한 길을 버리고서 시체투성이인 이런 곳에 멀뚱히 남아 웃고 있으니, ‘이 새끼는 뭐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준성의 마음을 안다는 듯, 대욱이 장난스레 팔짱을 끼웠던 그의 팔을 툭툭 다독였다.

“네가 꼭 알아야만 할 정보가 있어서.”

대욱의 눈빛이 어느새 진지해져 있다. 그 때문에 준성도 제 팔을 붙잡은 대욱을 귀찮다는 듯이 밀어내려다가 멈칫하며 귀를 기울였다.

“군인들에게 들은 정보야.”

대욱은 이 군용 대피소에 찾아온 군대를 떠올렸다. 그들 중, 연구자료와 혈액팩을 확인하던 한 군인이 그들의 소대장과 대화하던 말을 떠올렸다.

“네 꿈에도 나오는 정보인지는 모르겠는데…….”

웃음기가 가신 진지한 얼굴의 대욱이 한층 목소리를 낮췄다.

“청무시에 있는 혈액연구소, 그곳에 백신을 연구 중인 한 연구원이 있다더라.”

그 말을 듣자마자 준성의 뇌리에 떠오른 건, 혈액원 원장의 집에서 확인한 동영상 속에 있던 한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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