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화 -
자정이 갓 넘은 시각.
준성의 몸에 큰 무리가 가지 않게끔, 그리고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게끔 기승위 자세로 섹스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읏, 으으….”
스스로 움직이며 박혀주던 준성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한서는 그가 아까부터 위태롭게 흔들리던 걸 알고 있었기에, 갑자기 쓰러지는데도 당황한 기색 없이 너끈히 받아내었다.
한서의 성기를 그대로 품고서 쓰러져버린 준성은 그의 품에 기대어 완전히 눈을 감았다. 정신을 잃었다기보다는 극도의 불안감이 해소된 것과 더불어 그간 쌓였던 피로감이 수면욕을 가득 끌어올려 버린 듯했다.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뱉으며 잠들어버린 준성을 가만히 바라보던 한서는 그의 부드러운 등을 토닥여주며 한동안 제 몸 위에 그를 이불처럼 얹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분 후.
한서는 아쉬운 얼굴로 준성의 구멍에서 제 것을 빼내었다.
“으으응….”
내벽이 딸려 나가는 감각에 준성이 움찔거리며 바르작거렸다. 괜찮아, 라고 속삭이며 머리를 쓸어주니 제법 평온해진 얼굴로 다시금 고른 숨을 내뱉었다.
준성의 안에서 아직 식지 않은 두툼한 성기를 빼내자, 미처 다물리지 못한 구멍이 연신 뻐끔거렸다. 그때마다 한서가 싸버린 끈적한 욕망 덩어리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콘돔 끼는 것도 잊었네.’
정확히는, 잊었다기보다도 준성이 하도 놔주려 하질 않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한서는 아직 덜 식은 자신의 것을 대충 정리해 넣고는 준성의 몸을 다시금 깨끗이 닦아주었다. 특히나 구멍과 그 안쪽은 더욱 세심히 닦았다. 수건을 감싼 손가락을 넣어 안쪽 깊이까지 싸버린 정액을 살살 긁어내고, 얼추 다 빼냈다 싶을 때 깨끗한 부분을 새로 감싸서 안을 비비듯 쑤셨다.
“흐, 으…. 아….”
닦는다는 명목하에 안쪽을 쑤시고 있으니, 잠든 준성의 입에서 신음이 멈추질 않았다.
“닦아주는 것뿐인데도 이렇게 좋아하면 어쩌자는 거야.”
준성의 말랑한 성기가 벌써 발기하려고 꿈틀거리는 걸 본 한서가 낮게 웃으며 손가락을 빼내었다. 움찔하던 준성이 그새 거칠어진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정말 깊이 잠들었는지, 다행히 이렇게까지 해도 눈을 뜨진 않았다.
뒤처리까지 완벽히 끝마친 한서는 마지막으로 준성의 상처 부위를 감싸고 있는 붕대를 풀었다. 섹스 때문에 준성의 상처에 큰 무리가 가지는 않았는지 직접 확인할 생각이었다.
가장 걱정되는 게 어깨의 상처였는데, 섹스하면서도 은근히 신경 쓴 덕인지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다.
‘걱정….’
준성의 어깨에 새 붕대를 감아주며 피식 웃었다.
이젠 그 단어를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 줄 안다. 강준성 한정으로만 고개를 드는 감정이라서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은.
어깨에 새 붕대를 말끔히 감아준 한서의 손이 뒤이어 준성의 목에 닿았다. 붕대를 조심스레 풀어내고 나니, 목울대를 감싼 새파랗고 검붉은 잇자국 몇 개가 보였다.
‘이거 잘못하다간 흉터 남겠는데.’
준성의 목울대에 새겨진 잇자국들을 손끝으로 느릿하게 쓸어본 한서가 눈꼬리를 휘어 웃었다.
‘남아주면 좋고.’
제 잇자국을 문신처럼 달고 다니는 강준성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오싹해져서 아래가 또다시 뻐근해지려 한다.
섹스의 흥분감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상태라서인지 이런 별거 아닌 상상만으로도 충동적인 성욕이 일었다.
그런 한서의 눈에, 준성의 목 옆에 붙어 있는 거즈가 보였다.
약간의 피가 배어난 흔적이 있는 거즈를 치워내자, 자신이 새겼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피투성이의 잇자국이 보였다. 정말 생살을 뜯어서 씹어먹을 것처럼 물어버린, 남기혁의 잇자국이.
“…씨발 새끼.”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남기혁을 떠올렸다.
그놈도 자신 못지않은 미친 새끼이다. 닮은 구석도 많았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했으며, 강준성에 대한 집착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결국, 남기혁은 죽어서 좀비가 되어버렸음에도 끝까지 강준성을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강준성이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자신에게 애절히 매달리길 바라던 것처럼, 남기혁은 이렇게 선명한 죽음으로의 낙인까지 새겨둔 채 죽어버렸다.
백신이 완성되지 않은 지금 이 세계에서 이런 낙인이 찍혀버린 자는 당연히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강준성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이제껏 보지 못했던 한없이 나약해진 모습으로 무너져버렸던 거다.
하지만 강준성의 옆에는 자신이, 도한서가 있었다.
‘멍청한 놈.’
남기혁을 비웃으며 준성의 목울대를 둘러싼 제 잇자국들을 내려다보았다. 숨을 쉬면서 움직거려도 작은 목울대는 언제나 제 잇자국 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꼭 그의 ‘삶’이 도한서의 영역 안에서 머물며 그에게 안겨 있는 것처럼.
‘난 달라.’
자신은 ‘죽음’으로 준성을 얽매려 했던 남기혁과는 다르다.
그 누구보다 강준성이 그답게 살길 바라고 있고, 그걸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한서는 준성의 상처에 깨끗한 거즈를 새로이 덧대어주고 붕대를 감았다. 남기혁이 새겼던 흉측한 잇자국 따윈 이제 완벽히 가려져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준성의 이마에 짧은 입맞춤을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난 한서는 곧바로 복도로 나갔다. 비상등만 몇 개 켜져 있는 게 전부여서 어둡기 그지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매일 수없이 드나들었기에 원하는 곳을 찾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한서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채혈실’이라는 명패가 걸린 으슥한 공간이었다.
채혈실에 마련된 서늘한 시트에 다가간 한서는 비상전력으로 기계를 가동시키고 채혈을 위한 밑 준비를 시작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강준성과의 섹스 덕분에 현재는 도파민 과잉 상태에 다다라 있었다. 아직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으니, 이럴 때 최대한 피를 뽑아둬야 했다. 몸도 안 좋은 강준성을 붙들고 도파민 과잉 혈액을 위해 매일 섹스를 해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준비를 끝낸 한서는 시트에 몸을 비스듬히 누인 채로 직접 제 팔에 채혈용 바늘을 꽂았다.
* * *
끔찍한 꿈을 꾸었다.
“준성아…. 준성이…. 우리 준성이….”
사지가 절단된 남기혁이 뱀처럼 바닥을 기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끈적한 검붉은 피가 길을 만들었고, 그 뒤로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뒤따라 기어왔다.
처음에는 남기혁의 뒤를 따라 기어오는 자들이 좀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더 가까워지자, 그들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꿈속에서 남기혁에게 살해당했던 자신의 동료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그 당시 당했던 끔찍한 고문의 흔적을 단 채로 남기혁과 함께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무력한 자신을 원망하는 것처럼.
그 광경을 보며 준성은 그저 바들바들 떠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남기혁에게 유린당하던 그날처럼 두 손은 결박되어 있었고, 허리에는 밧줄이 있었으며, 그 매듭에는 쇠사슬이 연결되어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꿈이든 뭐든 벗어날 의욕조차 생기지 않았다.
꿈이라면, 지긋지긋했다.
꿈을 꿈이라 자각하는 것도 싫었고, 악몽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것도 싫었다.
그냥 버티면 되겠지.
이대로 가만히 다 받아들이고 버티기만 하면 알아서 깨어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제대로 봐야지, 준성아.”
남기혁이 발치까지 다가오는 걸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무렵, 뒤에서 뻗어 나온 손이 준성의 턱을 붙잡아 고개를 들게 했다.
익숙한 목소리, 다정한 체온, 부드러운 손길.
준성은 뒤에서 자신을 안아주며 속삭인 남자가 도한서라는 걸 알아채고는 깊이 안도했다. 신기하게도, 결박되어 있던 몸이 단숨에 자유로워진 게 느껴졌다.
도한서는 참 신기하다. 꿈에서조차 사람을 이렇게 안심시켜줄 수 있다니.
준성은 한서의 품 안에서 그의 말에 따라 정면을 명확히 두 눈에 담았다.
그제야 알았다.
남기혁의 뒤로 바짝 따라붙은 피투성이의 동료들이, 꿈속의 일행들이, 남기혁의 몸을 조금씩 뜯어먹고 있다는 걸.
그들은 남기혁과 함께 자신을 탓하듯이 나아온 것이 아니라, 바닥을 기어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원수를 뒤쫓아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었다. 꿈속에서 당한 것을 이제야 복수하듯이.
“준, 성아….”
남기혁의 목소리가 뚝뚝 끊어졌다. 어느새 그의 몸은 뒤쫓았던 사람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여, 머리 말고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남기혁의 머리가 삐걱거리며 들어 올려졌다. 목만 남은 좀비가 되어 날아왔던 그때처럼, 달랑 남아버린 머리가 준성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남기혁의 얼굴은 두 눈이 있을 자리에 남아 있는 붉은 칼자국 몇 개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가 그의 얼굴에 뿌연 라카라도 칠해버린 것처럼 이목구비를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다.
‘남…기혁…?’
이름만 남았을 뿐.
어찌 된 일인지, 강준성의 기억 속에는 더 이상 ‘남기혁’이라는 사람의 얼굴이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