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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닷 (195)화 (195/240)

- 195화 -

잠든 준성이 깨어나기 몇 분 전.

그때까지만 해도 준성 곁에서 한시도 떠날 줄 모르던 도한서는 링거 스탠드에 걸린 자신의 혈액팩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팩 안에 가득 차 있던 피가 어느덧 상당량 줄어 있다.

한서는 혈액팩에 연결된 호스를 따라 시선을 내렸다. 제 혈액에서 가지를 뻗듯이 흘러나온 붉은 실이 준성의 손등에 닿아, 그의 몸 안으로 끝도 없이 파고들었다.

창백한 가운데 발그레한 뺨은 큰 부상을 입은 탓에 열이 오른 이유도 맞지만, 사실은 도한서의 피 때문이 컸다.

인간의 육체에 침투한 좀비 바이러스는 세포, 그 속에서도 효소와 단백질을 이용해 빠르게 증식해 나간다. 한서의 피는 이들의 증식을 가로막고 온전한 세포를 감싸 안는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체가 한서를 공격하지 않기 위해 회피하듯이, 몸속에서도 그의 피가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 세포는 굳이 건드리지 않고 지나친다.

준성의 몸에 열이 오르는 건 바이러스들이 한서의 피에 보호받지 못한 세포를 찾아서 몸 곳곳을 들쑤시고 있는 탓이다. 그래 봐야 지금처럼 일정하게 수혈하고 있는 동안에는 물린 자리 근처 외에는 어디도 감염시킬 수 없겠지만.

한서는 자신의 피가 흘러 들어가는 준성의 손을 꼭 붙잡았다. 손아귀에 쉽게 들어차 버리는 손마저 갓 흘린 피처럼 뜨겁기 그지없다.

빨갛게 달아오른 새하얀 피부와 따뜻함을 넘어 뜨거워진 숨결, 그리고 닿은 것만으로도 확연히 느껴지는 열띤 맥박.

제 몸에서 떨어져 나간 피가 강준성의 몸 구석구석을 애무하듯 파고들어, 그의 몸을 이처럼 한껏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미친 거 아닐까.

그럼에도 내색할 수 없는 건, 강준성이 자신을 위해 몸 바쳐 뛰어들던 그 순간이 아른거리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위해 뛰어든 강준성이 ‘도한서를 위해 몸 바쳐 죽어야지’라는 생각으로 뛰어든 게 아니란 것쯤은 안다. 이성적인 판단을 논리정연하게 나열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 것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전부 알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강준성은 ‘죽음’과 너무나 가까워졌다.

강준성이 만든 테두리 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내 사람’이라는 카테고리.

그 안에 들어가길 바랐던 건 도한서 자신이었다. 강준성이 언제든 도한서라는 존재를 최우선으로 여겼으면 했고, 그의 안에서 유일해지기 위해서 이미 그 카테고리에 속해 있던 자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버릴 생각도 해본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강준성이 만들어 둔 귀한 카테고리 속에 들어있다는 걸 이런 식으로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

꿈속에서도 현실에서도,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강준성이다.

강한 생존 본능을 가진 그런 강준성이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다. 명백한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바이러스를 사멸할 수 있는 완성형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이상, 준성의 매 순간순간은 죽음으로 향하는 카운트다운에 불과할 것이다.

도한서는 바로 이 연구소에서 수많은 감염자를 보았다.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체감하자마자 흉하게 무너진 얼굴로 살려달라고 발악하던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들을 마주하게 된 도한서가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흉하게 무너지지 않도록 끝을 내주는 거였다.

양부모의 강제가 있긴 했지만, 딱히 거부하지 않았다. 죽을 날을 기다리며 실험에 끌려다니다가 끔찍하게 죽을 바에야, 조금이라도 공포를 덜어주는 게 나을 거라는 나름 그럴듯한 핑계도 있었다.

감염이라는 이름의 죽음.

그 초읽기를 시작할 수 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자신이었고, 멈출 수 있는 것 또한 자신이었다.

오직 자신의 피만이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고, 마찬가지로 자신의 피만이 이를 멈추게 할 수 있었다.

도한서의 일반적인 혈액은 바이러스의 진행을 늦추는 역할을 한다. 도파민 과잉 상태에서 뽑아낸 혈액이라면 아예 바이러스 전체를 일시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발을 묶어둘 수도 있다.

지금처럼 혈액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주기만 한다면 수개월, 어쩌면 1년까지도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간만 버텨낸다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 정부의 내로라하는 인재들이라면 백신의 주재료인 자신의 혈액과 구멍 난 연구자료만으로도 머지않아 백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여차하면 제 머릿속에 있는 연구 내용과 자신의 피를 무한한 샘플 삼아, 양부모가 했던 것처럼 몇 명이든 끌고 와서 실험대에 올릴 생각도 하고 있었다.

강준성을 살릴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그들과 똑같아지든 그보다 더 악독해지든, 아무렴 상관없었다.

세상 모든 인간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좋다. 살아있는 인간 전원이 제 손에 의해 한낱 실험체로 전락해 죽어버려도 좋다.

어차피 제게는 강준성밖에 없다.

단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이때껏 조용히 웅크리고만 있던 유일무이한 카테고리가, 그저 ‘강준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로 그 카테고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목숨줄처럼 숨통을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한서는 제 손아귀에 잡힌 준성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부드럽게 입을 맞춰준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죽음을 앞둔 주제에 괜찮다는 말이나 지껄이던 강준성이다.

진통제 효과가 다 되면 극도의 고통이 다시 찾아올 텐데, 그때마저 태연한 얼굴로 괜찮다고 할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이미 몇 번이나 좀비에게 물려봤으니까 이 정도는 죽을 것 같지도 않다며 웃어버릴 수도 있고, 이 와중에도 다른 일행들을 걱정하며 그들이 무사히 탈출했는지를 확인하려 할 수도 있다.

아파 죽겠으면서도 자신에게 죄책감이라는 이해 못 할 감정이 들지 않게끔, 뭐든 꾹 참고만 있을 강준성의 얼굴이 어렵잖게 예상되어 가슴이 답답해졌다. 고통을 감내하며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그의 얼굴을 도저히 여유롭게 마주할 수가 없다.

여분의 진통제를 가지고 오기 위해 방을 빠져나간 도한서는 소리가 울리는 텅 빈 복도를 걷는 내내 준성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는 강준성의 모습이 상상되어, 기분이 저 밑바닥까지 차례차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강준성!”

그 잠깐 사이에 방에서 사라져버린 강준성을 찾아 다급히 복도로 뛰어나온 도한서는 금세 준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서 살균과 소독이라는 명목하에 별의별 약품을 다 뒤집어쓰길 반복해야 했던 공간을 지나, 더러운 모든 걸 씻어내던 자신만의 샤워실에 그가 있었다.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었던, 절망에 빠진 얼굴의 강준성이.

“하…, 하악….”

제대로 된 숨소리가 아니었다. 호흡이 일절 되지 않는 것처럼 겨우겨우 공기 새는 소리만 날 뿐이다.

강준성 본인은 인식도 못 하는 것 같았지만, 스스로 목을 조르고 있었다. 머릿속에 남기혁의 비열하게 웃는 얼굴과 이전에 그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심한 과호흡 증세를 보이던 준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개새끼 때문인가?’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강준성의 얼굴에 비쳤던 아주 잠깐의 두려움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금세 사라져버렸고, 본인의 처지보다도 넉넉히 뽑아버린 도한서의 혈액에 더욱 난색을 보였다.

그랬던 강준성이니, 지금처럼 그답지 않게 펑펑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목을 조르고 있는 장면은 자연스레 남기혁을 떠올리게 했다. 그가 새겨 넣은 트라우마가 아직도 멀쩡히 남아 있다는 게 화가 났다.

“나 봐. 강준성, 나 보라고.”

그딴 놈 말고, 날 봐.

이미 죽어버린 그 미친놈은 다 잊고 나를 보라고.

“네가 좋아하는 개새끼 왔잖아. 다 괜찮으니까 천천히 숨 쉬어.”

난 그놈과는 달라.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너만의 개새끼잖아.

앞으로도 네 곁에만 있을 개새끼이고, 널 살릴 예쁜 개새끼.

‘그게 나잖아.’

한서는 자신의 유도에 따라 애처롭게 호흡하기 시작하는 준성과 시선을 맞대었다. 크게 헐떡일 때마다 멍하니 흔들리던 그의 눈동자에 누군가가 비쳤다.

“도한서…. 나…, 나…….”

흘러내린 눈물을 머금은 붉은 입술이 달싹여졌다.

그에 맞춰 벌게진 두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한서를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매달린 강준성의 연약한 팔이 가냘프게 떨렸다.

“나… 죽기 싫어….”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서는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강준성이 직접 내뱉은 무거운 말.

평생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나약한 말.

속에 있는 모든 걸 끄집어내어 보여주는 것처럼 적나라한 말.

그 말이 가진 무게와 온도를 실감하는 동안, 준성의 입에서는 오직 ‘도한서’라는 이름만이 줄기차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한서…. 흑, 도한서….”

손끝을 살짝 댄 것만으로도 산산이 바스러져 내리깔릴 것 같은 타다 남은 잿가루.

그게 바로 지금의 강준성이었다.

잿가루 속에서 겨우겨우 튀어나온 뼈대만 앙상한 손이 도한서를 애절하게 붙든다.

엉망이 된 모습으로 매달리며 엉엉 우는 강준성을 품에 꼭 안아준 한서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워낙 강준성 자체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기에, 한서의 손끝이 떨리는 건 본인 외엔 아무도 모를 만큼 티도 나지 않았다.

“…그래.”

하염없이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준성의 머리를 쓰다듬는 한서의 손길이 점차 전율하기 시작했다.

“나 여기 있어.”

강준성이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자신만을 찾고 있었다.

준성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던 도한서의 입술이 점차 기이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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