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화 -
‘왜……?’
‘현실’에서 자신이 죽는 장면을 생각해 본 적 따윈 없었다.
당연하지.
이때껏 오직 살아남기 위해 앞만 보고 발버둥을 쳐왔으니까.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받게 되더라도 상관없었다. 인간적이지 못한 차가운 놈이라고 욕을 들어먹어도 괜찮았다.
감정과 인정에 휘둘릴 수 있는 위험한 선택지를 차례차례 제외하고, 모두가 살 수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은 루트를 골랐다. 생판 모르는 타인을 구하는 영웅 심리 따윈 일개 휴지 조각처럼 내던진 지 오래다.
어떻게든 내 사람들과 함께 살아남자.
단지 그것만 바라보았다.
그랬던 자신이 이젠 죽을 날을 받아버렸다. 끝도 없는 기회를 부여받는 꿈속이 아니라,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는 ‘현실’에서.
다리에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 뜨거운 몸이 타일 바닥의 냉기마저 단숨에 삼켜버렸다.
준성은 남기혁이 만든 지옥 같은 회차에서 벗어났던 그날처럼 두 손으로 제 목을 감싸 쥐었다. 누가 억지로 붙잡게 한 것도 아니고 손등에 다른 손을 덧대어 틀어쥐고 있는 것도 아닌데, 목을 붙잡은 손아귀에 멋대로 힘이 가해졌다.
“하악…, 하….”
꽉 막혀버린 숨통 사이로 가느다란 쇳소리만 흘러나왔다. 그럴 때마다 뜨거운 손아귀에 온전히 느껴지는 거즈 속에서, 더없이 무서운 바이러스가 자신보다 더 크게 호흡하는 것 같았다.
‘싫어….’
육체의 고통만큼이나 가혹한 두통이 몰려왔다. 산소가 부족해진 뇌는 두통이 주는 감각에 맞춰 ‘죽음’이라는 키워드에 온 신경을 결집했다.
만약 이대로 죽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유일하게 남은 가족마저 잃어버린 강채이는?
형제나 다름없이 지내왔던 절친 장대욱은?
정 많은 제 일행들은?
‘도한서는……?’
자신이 죽어버리면 도한서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도한서의 얼굴을 떠올리자마자 갑자기 뿌옇던 눈앞이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착각이 들었다.
더는 세상을 인간답게 볼 필요 없다는 듯이, 붉은 장막으로 시야를 가려버리던 감염 말기 증세처럼.
그 속에서 도한서의 얼굴 또한 피에 물들어 사라져갔다.
“아…, 으…, 아안…!”
부릅뜬 눈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마다 극도의 공포 속에서 발생한 핏빛 환각이 깜빡깜빡 점멸하며 시야를 온통 붉은 빛으로 가렸다가 풀어주길 반복했다.
싫어.
살려줘.
내가 왜 죽어야 하는데?
살고 싶어.
머릿속의 키워드에서 뻗어 나온 생존 본능이 전신을 옭아매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누군가가 도와줘야만 가능한 것처럼, 준성은 제 목을 틀어쥔 채 웅크려 떠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눈에서 몸보다 더 뜨거운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안개에 둘러싸인 것처럼 눈앞이 흐려지고, 숨과 함께 막혀버린 울음소리가 목구멍 안을 맴돌았다.
살려줘….
누구든 제발…….
본능에 휩싸인 단순하고도 명확한 의지만을 되뇌는 동안, 절망에 매몰되어 가는 준성의 머릿속을 ‘누군가’가 톡톡 두드려댔다.
‘도한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걸까.
백신의 재료이기 때문에? 아니면 시간상 이미 좀비가 돼야 했을 자신이 그의 피 덕분에 아직 살아있으니까?
‘아니야…, 난 그냥…….’
도한서가 보고 싶어.
그 생각을 하자마자 혼란스럽게 시야를 건드려대던 붉은 빛이 사라졌다.
남은 건 그저 언제부터였는지 모를 ‘도한서라는 이름의 흐느낌’뿐.
“강준성!”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타일 바닥에 고꾸라지듯 닿을 뻔한 준성의 머리가 멈칫했다. 기분 좋은 서늘함이 뜨거운 준성의 몸을 감싸 안았다.
목을 옥죈 채로 아무리 애를 써도 떨어지지 않던 손이 큼직한 손아귀에 붙잡혀 맥없이 떨어졌다. 그제야 숨통이 트여, 큰 소리로 숨을 들이쉬며 헐떡거렸다.
“나 봐. 강준성, 나 보라고.”
갑작스레 트인 숨을 어찌할 줄 모르고 급히 호흡하는 준성의 얼굴을 차가운 손이 어루만졌다. 버겁지 않도록 조심스레 턱을 들고, 시선을 맞추고, 다정하게 속삭여준다.
“네가 좋아하는 개새끼 왔잖아. 다 괜찮으니까 천천히 숨 쉬어.”
그놈의 개새끼.
신기하게도, 그 단어를 듣자마자 머릿속을 채운 공포 사이로 선명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은 분명 눈앞에 있는 남자의 것이었다.
“도한……, 흡! 도한서…. 나…, 나…….”
거친 호흡 사이로 도한서를 불렀다. 금방이라도 발작할 것처럼 미친 듯이 떨리던 팔을 뻗어, 그를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았다.
이미 울고 있었음에도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 될 정도로 끝없이 흘렀다. 후두둑 떨어진 눈물은 차가운 타일 바닥에 자그마한 웅덩이 몇 개를 만들었다.
“나… 죽기 싫어….”
다른 사람도 아닌 도한서에게 이런 말을 해선 안 된다는 걸 안다.
자진해서 도한서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건 자신이니까, 그에게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일깨울만한 부담감을 지워선 안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입 밖으로 이딴 나약한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건, 눈앞의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도한서라서 그런 거겠지.
“도한서…. 흑, 도한서….”
준성은 엉망이 된 모습으로 오직 한서의 이름만을 부르며 그에게 매달렸다. 상처가 욱신거리고 격하게 호흡할 때마다 물린 자리가 아려왔지만, 그럴수록 더욱 소리 높여 한서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어 울었다.
“…그래.”
한서는 하염없이 자신을 부르며 우는 준성의 머리를 조심스레 쓸어주었다.
“나 여기 있어.”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산산이 조각날 것 같은 준성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그의 눈물을 정성껏 핥아주었다.
“울지 마. 너 안 죽어.”
열과 눈물로 가득 채워진 얼굴에 몇 번이나 키스하며, 한서가 세상에서 더없이 자상한 목소리로 준성에게 속삭였다.
“말했잖아, 내가 죽게 두지 않겠다고.”
하얀 공간과 닮은 도한서의 서늘한 숨결이 준성의 입술에 닿았다. 눈물 섞인 입술이 자연히 벌려지고, 그 안으로 파고든 부드러운 살덩이가 작은 혀를 만나 몸을 비볐다.
“읍, 으….”
평소 같지 않은 상태라서일까.
준성의 혀는 한서를 밀어내는 법 없이 도리어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그가 혹시라도 뒤로 빠질까 봐 애가 타는 것처럼 스스로 혀를 휘감고 빨아들이다 못해, 한서의 입 안으로 머리를 내밀기도 했다.
한서는 이렇듯 적극적으로 제 입 안까지 파고드는 작은 혀를 어찌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마음 같아서는 쓸려서 아플 정도로 비벼대다가 잘근잘근 씹어먹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넋을 놓아버린 강준성을 상대로 그런 거친 짓을 했다가는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얄팍한 유리 조각처럼 위태로운 강준성을 이대로 씹어 먹었다가는 둘 다 단단히 탈이 나고 말 것이다.
한서는 정신력이 바닥까지 내려앉은 준성의 눈을 바라보다가 그의 몸을 안아 들었다. 그 순간에도 준성은 자신이 들어 올려지는지 아닌지조차 판단하지 못하는 것처럼 여전히 키스를 갈구했다.
정신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열이 잔뜩 오른 다친 몸으로 찬 바닥에 오래 주저앉아 있어서 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한서는 전신을 바들바들 떠는 준성을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게 안아 든 채 샤워실을 나섰다.
“으음…, 읍…! 흐읏….”
방으로 돌아가는 걸음걸음마다 키스에 빠져든 준성의 신음이 이어졌다. 만약 입을 떼고 있었더라면 이 걸음마다 들려오는 건 이런 야릇한 신음이 아니라 비명 같은 울음이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준성의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고 있었으니까.
방에 도착한 한서는 준성을 매트에 살포시 눕혀주며 그제야 입을 떨어뜨렸다. 계속 맞닿아 비벼져서 탐스러울 정도로 붉게 변해버린 준성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도한서…, 도한서….”
여전히 그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건 오직 한 사람의 이름뿐.
한서는 그런 준성의 얼굴에 약간의 한숨을 담아 입 맞췄다.
“자꾸 울 거야? 이러다 탈수 와.”
“도한서….”
“네 개새끼 어디 안 가니까 그만 울라고.”
준성이 흘려버린 눈물의 양을 가늠하던 한서는 물이라도 한잔 가져올 생각으로 매트에서 몸을 뗐다.
“잠깐 물 한잔 가져올…….”
“안 돼…!”
멀어지는 한서를 보고 깜짝 놀란 준성이 두 손으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진통제의 효과가 거의 사라진 왼팔이 상당한 고통을 전했음에도 준성은 필사적으로 한서의 팔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나한테서… 눈 떼지 마…. 제발…….”
벌겋게 달아오른 준성의 두 눈에는 극도의 공포와 불안감이 깃들어 있었다.
한서는 자신에게 이토록 매달리는 강준성을 보며, 뭐라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 머리를 쳐드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