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누군가의 피를 닮은 새빨간 노을이 하늘을 뒤덮던 그 시각.
강준성이 남겨준 루트를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터널 인근으로 돌아간 버스는 그곳에서 얌전히 숨어있는 인질팀을 무사히 픽업할 수 있었다.
황경오와 임유슬은 버스 안에서 각자의 가족과 손을 꼭 잡은 채로 떨어질 줄 몰랐다. 눈만 마주치면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고, 얽혀있던 손은 서로를 절대 놓지 않을 것처럼 기세를 더했다.
“그 빌어먹을 새끼들! 좀비들만 어떻게 되고 나면 내가 그놈들 죄다 고소해버릴 거야!”
남동생의 피떡 된 얼굴을 가슴 아픈 눈으로 마주하고 있던 임유슬이 왈칵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며 독기를 품었다. 이에 동생 쪽에서 눈을 내리깔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고소하고 싶어도 못 해, 누나.”
“못 하긴 왜 못 해?! 누나 친구가 유명 로펌에 있는 거 잊었어?! 내가 전부……!”
“태어난 기록도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고소해.”
그게 무슨 말이냐며 멈칫하는 유슬에게 동생이 해준 이야기는 현실감 없는 것뿐이었다.
남기혁을 포함한 그들 조직 구성원 전체는 호적도 없는 ‘버려진 자들’뿐이었다. 조직은 몇 대에 걸쳐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 이때껏 음지의 갖가지 일들을 해왔고, 그중에는 단순 잡일꾼으로 잠시 고용된 동생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의 정·재계와 연결된 가장 어두운 곳의 일들을 해결하는 것도 그들 몫이었던 경우가 많아서, 임유슬의 희망대로 고소를 진행해봤자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긴 어려워 보였다. 어찌 됐든 그들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정의되어 있었으니까.
“이런 시대에 그게 뭔…….”
B급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설정에 유슬이 얼굴을 구기며 짜증 난다는 듯이 창밖을 노려보았다.
“법으로 어떻게 안 되는 놈들이면 그냥 이런 좀비판에서 전부 뒈져버렸으면 좋겠네.”
“하하….”
누나의 쌍소리에 멋쩍은 웃음을 흘리던 동생도 그녀를 따라 창밖의 붉은 노을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버스는 탁한 피 냄새로 자욱한 거리를 지나, 휑한 벌판이나 다름없는 넓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버스는 군용 대피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하지만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질겁한 표정으로 버스에서 도통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 저게 뭐야?”
“우욱…, 시, 시체가 저렇게나…….”
군용 대피소 공터 곳곳에 널려 있는 군복 입은 시체들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 입을 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시체 대부분이 붉은 피막 덮인 눈을 부릅뜨고 있어서 그들이 좀비였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같은 사람이었던 자들이 저토록 피범벅이 되어 산재해 있다 보니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 광경을 한 번 봤던 사람이라고, 운전수가 제법 당당히 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먼저 버스를 나섰다. 주변에 움직이는 시체가 없다는 걸 확인한 서창민이 뒤이어 내렸고, 그제야 머뭇거리던 사람들도 하나둘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군용 대피소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존의 버스팀은 인질팀의 합류를 기뻐하며 그들에게 곧 구조대가 올 것이라 말했다. 정확히는 인한시장의 코드를 확인하고 그를 구출하기 위해 파견된 군대가 되겠지만, 협상 카드도 충분히 확보되어 있으니 이곳을 나가는 건 생각한 대로 될 거라 여겼다.
“그럼 이제 준성이랑 한서만 합류하면 되겠네.”
서창민이 한시름 놓으며 내뱉은 그 말에 장대욱의 어깨가 움찔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다른 일행들이 조잘거렸다.
“둘은 뭐 하느라고 안 오는 거야?”
“인질들 가뒀던 그놈들 유인하는 역할이랬어요. 아무래도 여기서 멀리 떨어뜨리고 오는 거라서 시간이 좀 걸리겠죠.”
“준성이라면 걱정 없지. 그놈들을 어디서 어떻게 따돌려야 할지 이미 머릿속에 다 구상하고 있었을걸.”
“그러고도 남죠. 미끼 역할을 하면서 저희한테 협상 아이템까지 주고 갔잖아요. 갖다준 건 도한서인가 하는 그 사람이었지만.”
“오호, 그 준성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가?”
“대단하고 말고요.”
화기애애해 보일 정도로 긴장감 없이 대화하는 일행을 보며 대욱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 그에게 소리 없이 다가온 강채이가 소매를 붙잡아 당겼다. 흠칫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던 장대욱은 다시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강채이는 장대욱을 닦달하지 않았다. 제 오빠가 언제 오느냐고 묻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불안한 감정을 공유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장대욱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눈이 마주친 대욱은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버스팀이 떠나기 전, 준성은 대욱에게 은밀히 속삭였다.
“장대욱, 명심해.”
“뭘 명심해. 난 네가 그렇게 말하고 훅 들어올 때가 제일 무서워.”
“만약 구조가 왔는데도 내가 도착하지 않거든, 강제로라도 채이 끌고 나가야 해.”
장대욱으로서는 절대 반길 수 없는 명령이었다.
눈살을 찌푸린 그가 한 소리 하기도 전에 준성이 뒤이어 속삭였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나와 도한서가 대피소에 제때 도착하지 못할 일은 없어. 하지만 그럼에도 도착하지 못했다면 뭘 뜻하는 거겠어?”
“…야, 강준성.”
“이제까지 네가 해왔던 일이잖아.”
준성이 툭툭, 대욱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어깨에 짐을 얹어주듯이.
“계산 밖의 일이 터지더라도 내 오더(Order)대로 묵묵히 움직여주는 게 장대욱 선수의 최대 장점 아니었나?”
“…….”
“이번에도 내 오더, 따라줄 거지?”
대욱은 차마 자신을 신뢰하는 강준성의 눈빛에 토를 달 수가 없었다.
그때를 회상하며, 대욱은 불안함을 애써 지워내고는 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새빨간 빛으로 가득 차버린 저 하늘 아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몸이 불덩이 같았다.
열이 나지 않는 곳이 없었고, 특히나 목과 어깨는 누군가가 핫팩 십여 개를 뭉쳐다가 지지고 있는 것처럼 뜨겁기까지 했다.
열이 너무 심해서 그런지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다. 가만히만 있어도 끙끙대는 신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으…, 으윽….”
참지 못하고 소리를 흘리자, 옆에서 서늘한 기척이 다가와 얼굴을 매만져주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조심스러운 손길에 마음 편히 얼굴을 기대었다.
‘시원해….’
그나마 정신이 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맑아진다고 해봐야 지끈거리는 머리로 뭔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도일 뿐이었지만,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했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린 강준성은 자신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도한서를 볼 수 있었다. 그의 뒤로 보이는 하얀 천장까지도.
“뭐야…, 여기 어디야…?”
한서에게 질문을 던진 준성은 그에게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제 머릿속부터 뒤적거렸다.
먹구름이 낀 것 같은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건 분명 이런 장소가 아니었다. 한서에게 축 늘어져 안긴 채로 건물을 벗어나, 도로에 주차되어 있던 차에 태워진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하지만 이후로는 차에 시동을 거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차에 타자마자 기절했던 건가.’
무의식중에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려던 준성은 왼쪽 어깨에서 확 덮쳐오는 통증에 악, 하는 비명을 질렀다.
“윽, 으으…!”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치료는 대충 했지만 완벽하진 않아. 진통제도 방금 주사해서 약 퍼질 때까지 좀 기다려야 하고.”
감정 없는 목소리로 당부한 한서가 어깨를 부여잡고 끙끙대는 준성을 바르게 눕혀주었다.
어깨의 엄청난 통증을 삼키며 누운 채로 주변을 둘러보던 준성은 금세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있었다.
“여기… 연구소에 있던 네 방 아니야?”
“맞아.”
혈액원 지하의 연구소, 그곳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도한서의 공간.
준성은 그제야 자신의 어깨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치료를 위해서인지 상체에는 아무런 옷도 없었고, 보이는 거라고는 어깨를 감싼 깔끔하고 견고한 붕대였다. 피 한 방울 배어 나오지 않은 거로 봐서는 지혈도 완벽했고, 어느 정도 치료도 되어있는 듯했다.
‘별걸 다 할 줄 아네.’
새삼 도한서가 대단해 보이던 그때.
눈을 돌리던 준성이 높다랗게 걸려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저건…….’
아무런 택도 붙어 있지 않은 팩에 가득 들어차 있는 누군가의 검붉은 혈액.
꼬리를 내린 것처럼 붉고 길게 늘어진 호스를 따라 시선을 내리니, 그 끄트머리가 오른손 손등 위에 곡선을 그리며 붙어 있다. 의료용의 새하얀 테이프로 감겨서 보이지 않는 호스의 끝에는 손끝만 움찔해도 체감되는 수혈용 바늘이 꽂혀 있었다.
저 혈액팩이 누구의 것인지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던 준성은 떨리는 눈으로 매트 옆의 은색 트레이를 바라보았다. 그 위에는 자신에게 연결된 혈액팩과 같은 것이 하나 더 놓여 있었다.
“너 미쳤어?!”
경악한 준성이 손을 뻗어 한서의 멱살을 붙잡았다. 다친 팔은 아니더라도 수혈용 바늘이 꽂혀 있는 상태라서 손등이 얼얼할 정도로 아파 왔지만, 준성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피를 얼마나 뽑아댄 거야?! 그러다 쓰러지면 어쩌려고!”
“내가 쓰러지는 게 문제인가?”
준성의 손을 아프지 않게, 그러나 완강하게 떼어낸 도한서가 무서울 정도의 차가운 눈빛을 담아 그를 압박했다.
“내 주인님이 씨발, 개새끼 눈앞에서 죽어가는데 그딴 게 대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