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 -
“혀, 님…, 형님…!”
기어가던 모습 그대로 충격을 받은 듯이 멈춰버린 우석진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남기혁을 불러댔다. 그럴 때마다 목에서 흐르는 흥건한 피가 무서울 정도로 주룩주룩 흘러내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형니…임…, 기혁…이… 형님….”
살면서 단 한 번도 눈물 따윈 머금어 본 적 없을 것 같은 우석진의 눈가에 물기가 서렸다. 점차 뿌옇게 변해가는 시야 속에서 유일하게 선명한 건 피로 얼룩진 남기혁의 얼굴뿐이다.
도한서나 강준성 같은 건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남기혁에게 기어간 우석진은 핏덩이와 함께 침음을 삼켰다.
고통도 전부 사라진 것처럼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남기혁의 목은 이미 끔찍할 정도로 뜯겨 나간 상태였다. 오른팔이 잘려나간 어깨와 끊어지다 만 왼쪽 어깨에서 여전히 피를 쏟아내고 있었지만, 좀비가 거칠게 뜯은 목에서 튀어나온 피는 그만한 양을 넘어설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큭, 으….”
비명은 없었다. 억지로 토해지는 핏물로 인한 쿨럭이는 소리와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신음이 전부일 뿐.
우석진은 남기혁에게 붙은 좀비의 머리채를 붙잡아 억지로 떼어냈다. 그 과정에서 괴성을 지르던 좀비가 도리어 우석진의 손목을 물어뜯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 따윈 얼마든지 뜯어먹어도 좋다는 것처럼 보였다.
좀비의 머리를 잡아끌어서 내던졌다. 두어 번 굴러서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 좀비가 고개를 내저으며 발광을 했다. 거북이가 배를 드러내며 뒤집히면 몸을 바르게 돌리기 어렵듯, 사지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그 좀비로서는 그렇게 발광을 해도 몸을 뒤집거나 다시 기어갈 수가 없는 듯했다.
“…형…님….”
남기혁에게서 좀비를 떼어놓은 우석진이 남기혁의 얼굴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기혁아….”
벌벌 떨리던 우석진의 두 손이 차마 피에 절은 남기혁의 얼굴을 감싸지 못하고 허공에 멈춰 섰다. 멍하니 뜨고 있는 남기혁의 왼쪽 눈이 그제야 석진을 향했다.
“…형….”
이때껏 이름으로 부르거나 ‘석진아’라고 부르던 남기혁이 아주 오랜 어떤 날처럼 그를 ‘형’이라 불렀다. 우석진이 그를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기혁아’라고 부르게 된 것처럼.
“나, 윽…, 외, 왼손… 좀…, 쿨럭, 도와줘….”
남기혁의 목소리는 자갈이 서로 힘없이 부딪치는 듯한 기이한 소음처럼 들려왔다. 이미 성대까지 손상이 될 정도로 잔뜩 파먹혀버려서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우석진은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구며 남기혁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싸울 때조차 꽉 쥐고 있던 손인데, 지금은 멋대로 꿈틀거리느라고 손을 쥘 수도 없을 만큼 꿈틀거리고 있다. 목을 제대로 물어뜯긴 데다가 반항도 없이 그대로 파먹혀주고 있었으니, 바이러스의 진행 속도가 빠를 만도 했다.
남기혁의 꿈틀대는 손아귀에는 여전히 값싼 라이터 하나가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그걸 내려다보던 우석진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누군가에게 직접 선물 받은 것도 아니고, 남기혁 혼자 깊은 의미를 담아서 아끼던 물건이었다. 우석진조차도 남기혁이 왜 저런 물건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강준성과 관련 있는 물건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죽을 때가 되어서야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남기혁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의 측근으로서 오래도록 곁에 있었으면서도 남기혁이 왜 강준성에게 집착하는지, 가끔 추억하듯 말하던 ‘꿈’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망가뜨려 가면서 바라마지 않던 세계의 끝이 어떠한 것인지.
‘나는 지금도 아무것도 모르겠어, 기혁아.’
백치가 된 것 같았다.
남기혁이 죽음을 앞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하지만…….’
우석진의 손이 꿈틀거리는 남기혁의 왼손을 붙잡아 그러쥐어 주었다. 그도 모자라 다시 펴질까 봐, 그의 주먹을 제 손으로 감싸주었다.
제멋대로 꿈틀거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남기혁의 입꼬리가 올라가, 미소 지었다.
“석…진이 형…. 윽, 나…, 쿨럭! 부, 부탁… 하나만 더… 들어주라….”
목소리가 점점 꺼져 들어갔다. 반면, 말하는 동안 그의 입에서 쿨럭이며 터져 나온 핏물 뱉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어느덧 남기혁의 탁한 외눈에 피가 들어차는 것을 보며, 우석진이 그의 입가 근처로 제 귀를 가져다 대었다.
“…응. 말해.”
감염된 남기혁이 금세 좀비로 변해 우석진의 귀를 물어뜯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우석진은 기꺼이 제 귀를 내어줘서라도 남기혁의 목소리를 들어 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어차피 그 역시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에 곧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좀비가 되어가는 게 확연히 보이는 남기혁과 그에게 겁도 없이 가까이 붙어 있는 우석진을 보며, 강준성은 입 안이 심히 씁쓸해지는 걸 느꼈다.
남기혁은 죽어 마땅한 인간이다.
그가 자신에게 해온 일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일들을 떠올려보면 저런 비참한 죽음 또한 타당하지 않나 싶었다. 또한, 본인이 가하려 했던 방식으로 팔이 잘리고 너덜너덜해진 상황 속에서 가장 끔찍하다고 말하던 좀비화로 끝을 맺게 된다니.
강준성으로서는 상쾌한 얼굴로 비웃어줘도 모자랄 판이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비웃음은커녕 홀가분함과 거리가 먼 찝찝한 마음만 남았다.
꿈속에서도 그랬지만, 우석진은 남기혁에게 굉장히 헌신적이고 맹목적이었다. 지금도 그는 저토록 많은 피를 흘리고 곧 죽어버릴 게 분명함에도, 끝까지 남기혁의 곁을 지키고 그의 마지막 말을 들어 주려 하고 있었다. 그만큼 남기혁이 우석진에게 있어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라는 거다.
준성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호하듯 서 있는 도한서를 올려다보았다.
남기혁과 우석진을 바라보고 있는 건 똑같았으나, 한서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무표정했다. 그러더니 본인에게 향한 시선을 눈치채고서 시선을 내려 준성을 바라본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약간의 열기를 담은 다정한 눈과 부드러운 입매를 한 채.
도한서가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해 준 강준성에게 맹목적이듯, 우석진 또한 그러하다고 생각하니 마냥 냉정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다 끝났어.’
아직 이 세계에 백신은 없다. 도한서가 있긴 하지만, 백신의 주재료일 뿐이지 백신 그 자체는 아니기에 이미 머리까지 바이러스가 퍼진 남기혁을 살리는 건 불가능하다.
남기혁의 끝은 결국 좀비가 되어서 썩어 문드러지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걸로 된 거야.’
가장 끔찍해 하던 결말로 눈을 감게 했으니 이만하면 충분한 복수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가서 둘 다 머리라도 박살 내줄까?”
죽어가는 자들이 있는 공간에서도 도한서의 냉정함은 여전했다. 그는 남기혁을 붙들고서 마지막 말이라도 들어주려는 듯한 우석진의 모습을 보고도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는 듯했다.
“됐어. 어차피 이제 곧 죽을 사람들이야.”
의학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 봐도 남기혁이든 우석진이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피를 흘렸다. 심지어 남기혁은 좀비에게 완전히 물어뜯겨 버려서 감염까지 확실시되었으니, 무조건 죽을 운명이었다.
괜히 도한서의 손에 피를 묻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 역시도.
준성은 한서의 손목을 붙잡아 끌고는 5층 입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끝났어. 이제 남기혁 같은 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남기혁도 죽고 그의 측근도 죽을 것이다. 그의 남은 부하들은 도한서가 밖에 잘 묶어놨을 테니, 위협을 당하거나 몸을 사릴 필요도 없다.
‘버스팀은 다들 잘 도착했겠지? 그러니까 도한서가 여기 있는 거겠지만. 인질들을 구출하러 간 쪽은 괜찮을까? 창민이 형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거기까지 생각하던 준성은 순간 눈앞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깊은 부상을 당한 어깨에서 피를 상당히 쏟아낸 탓에 이제는 빈혈까지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비틀거리는 준성을 한서가 얼른 붙잡아 안았다.
“어지러워?”
“…응, 조금.”
준성은 한서의 품에 기댄 채 눈을 내리깔았다. 눈에 들어온 바닥이 약간 울렁거리는 것이, 조금 더 지나면 아예 술이라도 취한 것처럼 비틀거릴 것 같다.
한서가 표정을 굳히며 준성을 앉혔다. 한쪽 끈만 남아버린 그의 백팩을 뒤져, 비상용으로 넣어둔 거즈와 붕대를 꺼냈다.
“일단 간단히라도 지혈 좀 하자.”
긴장이 풀리면서 근육이 느슨해진 탓에 어깨의 피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걸어서 1층까지 내려갔다간 그사이에 준성이 정신을 잃을 수도 있었기에, 한서는 준성의 지혈을 우선하기로 했다.
한서의 신경이 준성의 어깨에 쏠려 있던 그때.
뒤에서 낮은 괴성이 들렸다.
크아악-!
단말마의 비명을 닮은 괴성이 도한서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가 돌아보자, 입을 쩍 벌린 피투성이의 머리 하나가 날아오고 있었다.
좀비는 도한서를 공격하지 않는다. 아니, 공격할 수 없다.
그랬기에 방심했던 것일 수도 있다.
머리만 덩그러니 잘려서 날아오는 주제에 허공에서 방향을 틀 수는 없으니, 가까이 있는 강준성을 인식하고 쩍 벌린 입이 도한서에게 닿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도한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위험’을 감지했다.
좀비들이 도한서에게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건, 그가 바이러스에서 자유로운 면역자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도한서는 바이러스에게 있어, 소중한 ‘모체’일 뿐이다.
어미가 죽으면 더 이상 자신들을 낳아줄 자가 없으니, 그를 죽이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단순한 논리를 가진 바이러스들은 자연스레 모체에게 다가가길 꺼리고 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물러나기 일쑤였다. 바이러스인 자신들이 침투해서 피를 감염시켜버리면 제아무리 모체라 하더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결국은 세포 하나하나가 감염되어 죽고 만다.
즉, 도한서라 할지언정 좀비에게 물려버리면 결국은 ‘죽음’을 맞는다.
이를 알고 있던 도한서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남기혁의 머리, 아니, 좀비의 머리를 보며 섬뜩할 정도의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도한서!”
하지만 그딴 위기감보다도.
“윽!”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온 강준성이 자신을 대신해 목을 물어 뜯겨버린 지금 이 순간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