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화 -
“으으윽-!”
남기혁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터뜨리지 않으려고 버릇처럼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때껏 꿈속에서 수많은 고통과 죽음을 체험했다. 경험상, 아프다고 비명을 터뜨리면 터뜨릴수록 온몸의 통증이 더 생생해져서 머릿속까지 엉망이 되곤 했다. 그러니 꿈속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참고 버텨서 빠르게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야 고통에 익숙해질 수 있다.
오른쪽의 무게가 확 가벼워진 탓에 남기혁의 몸이 순간 왼쪽으로 쏠렸다. 팔이 잘려나간 단면으로 피가 마구 쏟아져 나가니, 두 다리에 힘을 줘서 버텨도 비틀거림을 어찌할 수 없어서 뒤로 물러나게 됐다.
“혀, 큽, 형님…!”
모든 장면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우석진이 동물처럼 네 발로 걷다시피 나아갔다. 오른팔을 잃은 채로 비틀거리는 남기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보니, 눈가가 삽시간에 달아오르고 잇새로는 그가 참고 있을 고통 어린 신음이 그 대신인 것처럼 흘러나왔다.
사람의 팔을 잘라냈음에도 도한서의 얼굴엔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남기혁을 조롱하는 듯한 여유로운 미소도 그대로였고, 얼굴에 튄 피를 소매로 닦아내는 행동 또한 겁먹은 기색이 일절 없다.
우석진이 보기에, 도한서라는 남자는 남기혁만큼이나 누군가를 죽이는 데에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그의 생각을 증명하듯, 도한서의 마체테가 이번엔 남기혁의 머리를 노렸다.
“형, 님!”
이젠 거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남기혁을 부르짖은 우석진이 제 목에 덜렁거리며 꽂혀 있던 잭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과다출혈을 막아서라도 조금이나마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뽑지 않고 놔뒀던 건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딴 것보다 남기혁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목에서 잭나이프를 빼내자마자 남기혁의 어깨처럼 우석진의 목에서도 피가 튀었다. 영화 같은 데서 일부러 과장되게 연출하던 분수처럼은 아니었지만, 피가 제법 묵직하게 울컥울컥 흘러내렸다.
우석진은 제 피가 잔뜩 묻은 새빨간 잭나이프로 한서의 머리를 향해 다트 던지듯 내던졌다. 조직 내에서도 사격 실력으로는 누구보다 발군이던 우석진답게, 비틀거리면서 던졌음에도 한서의 얼굴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남기혁의 머리까지 깔끔히 잘라내려던 한서는 어쩔 수 없이 마체테를 휘두르던 방향을 바꿔서 잭나이프를 튕겨내었다. 그 탓에 빠르게 균형을 잡은 남기혁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도한서!”
이를 갈던 남기혁은 마체테가 날아왔던 방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휙 고개를 돌렸다.
참 신기하게도, 세상 모든 게 탁해 보이던 제 눈이 그 사람만은 참 또렷하게도 잡아낸다. 사실은 머릿속에 하도 그려 넣어서 이젠 눈만 감아도 강준성의 모든 게 그려지기 때문이었지만, 이때만큼은 시력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처럼 그의 당황한 얼굴까지도 선명했다.
“다쳤어?!”
한서에게 달려든 강준성이 그의 몸을 급하게 여기저기 살폈다. 어둠 속에서 우석진과 싸우는 동안 입었던 한서의 여러 자상이 준성을 안달 나게 했다.
한서는 자신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해서 상처를 살피는 강준성을 바라보며 속이 간질거리다 못해 저릿저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딴 작은 상처부터 해서 자신을 일일이 걱정해주는 건 강준성이 처음이라, 바라만 봐도 사랑스러워서 여기저기 개처럼 물어대거나 핥아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어깨는 왜 이래?”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엉망이 된 강준성의 몰골을 도저히 못 본 체할 수가 없었다.
준성의 허리를 한쪽 팔로 완벽히 감아 안은 도한서가 그의 어깨를 노려보았다.
멀리서 봤을 때 어깨부터 손끝까지 온통 새빨갛기에 상처가 꽤 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당장 지혈부터 하지 않으면 언제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수준이었다. 이만한 부상을 입고 피를 철철 흘렸음에도 멀쩡히 서 있을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강준성의 정신력이 대단한 탓이라고밖에는 볼 수가 없다.
준성의 상처를 눈여겨보던 도한서의 입매가 차갑게 굳어버렸다.
좋든 싫든, 연구소에서 강제로 보거나 직접 행할 수밖에 없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양부 도지훈은 실험체의 신체를 이용한 연구 진행을 위해, 혹은 도한서의 도파민 수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서 아직 사망하지 않은 감염자를 제물로 삼았다. 잔인한 사지 절단 과정을 표정 변화 없이 관찰 및 실행해야만 했었던 도한서로서는 강준성의 부상이 보여주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도한서의 피가 싸늘히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준성은 자신보다 한참 가벼운 상처인 도한서의 자상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강준성, 어깨는 왜 이러냐고”
“별거 아니야. 그보다 넌 이게 다 뭐야? 좀비가 그랬을 리는 없고, 혹시 밖에 있던 놈들이 그랬어?”
“준성아.”
“아니면 남기혁이……!”
“주인님아.”
이름이 아닌 ‘주인님’이라고 고분고분 부르는 걸 듣고서야 고개를 든 강준성의 입술에 도한서의 말랑한 혀가 닿았다. 아랫입술에 묻어 있던 준성의 피를 사탕 빨듯이 핥아 먹은 한서가 짧게 입 맞췄다.
“네 개새끼는 아주 멀쩡하니까 진정해. 너부터 걱정해야지.”
“아, 나는…….”
“씨발, 설마하니 내가 생각만 했던 걸 진짜 하려는 새끼가 있을 줄은 몰랐지.”
“…뭐?”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강준성의 얼굴에도 간지럽게 쪽쪽 입을 맞추는 한서의 눈이 남기혁을 향했다. 자신들을 반쯤 넋 놓고 바라보던 남기혁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당장, 떨어져-!”
자리를 박찬 남기혁이 한서를 향해 달려왔다. 그는 엉망이 된 왼팔을 휘둘러, 꽉 쥔 주먹으로 한서의 얼굴을 갈겨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서에게 안겨 있던 강준성의 동작이 한발 빨랐다.
마치 이럴 걸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도한서의 손에서 자신의 마체테를 빼앗아, 몸을 돌리며 그것을 휘둘렀다.
남기혁은 주로 쓰던 오른팔을 잃어버렸고, 부상은 심각했으며, 왼팔 또한 엉망이라서 그리 위협적이진 않았다.
사실 그뿐이었다면 남기혁이 체급부터 확연히 차이가 나는 강준성의 공격에 맥없이 당할 것도 없었다. 꿈속에서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만큼 여러 잔학한 일들을 당해온 남기혁의 정신력은 가히 바위처럼 단단하기에, 어지간한 일로는 감정이 격해지는 일도 없었다.
단 하나.
강준성만이 예외였다.
유일한 ‘구원’이자 ‘현실’ 그 자체였던 강준성이 자신을 닮은 타인과 엉켜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키스를 받고 입맞춤을 허용했다. 그도 모자라, 자신의 큰 부상보다도 상대의 얄팍한 자상을 더 걱정했다.
질투가 났다.
내 건데.
내 현실인데.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나는, 너밖에 볼 수가 없는데.
망가진 눈만큼이나 엉망이 된 얼굴이 왼쪽에서 뿜어져 나온 피에 한껏 적셔졌다.
“으, 아아악-!”
남기혁은 저도 모르게 큰 비명을 터뜨렸다. 힘과 정교함이 부족해서 완전히 잘라내지는 못했지만, 그의 왼쪽 어깨에는 준성에게 입혔던 부상과 엇비슷한 깊은 상처가 남았다. 왼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이 남기혁의 뇌를 지배했다.
“준, 성아…! 으윽, 준성아아-!”
휘청거리던 남기혁이 준성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쓰러졌다. 좌우에서 튀어 오른 핏물이 남기혁의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여놓았다.
“흑, 흐으으…, 준성아…. 나 아, 아파…. 아파아아-!”
몸도 일으키지 못한 채 피 웅덩이를 기는 남기혁은 그 와중에도 오직 강준성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처럼 울부짖던 남기혁의 귀에, 그르륵거리는 핏물 끓는 소리가 들렸다.
그어, 아아-!
남기혁에게 달려들었던 두 명의 좀비 중,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바닥을 꿈틀거리기만 하던 좀비의 괴성이었다. 마침 지척에 쓰러졌던 남기혁의 흥건한 혈향(血香)에 잔뜩 취해버린 좀비는 그를 향해 무섭게 기어오고 있었다.
그 결과.
캬아아악-!
남기혁이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그의 새빨간 목덜미에 좀비의 치아가 박혀 들어갔다.
“하, 아…?”
썩은 내와 탁한 피 냄새.
사람‘이었던’ 것이 살을 씹어대는 촉감과 고통.
그 모든 걸 뒤늦게 인식한 남기혁의 외눈이 점점 커다래졌다.
꿈속에서는 어떻게 죽든 상관없었다. 제 몸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망가지고 잘려나가다가 죽어버려도 버틸 수 있었다. 여차하면 스스로 방법을 선택해, 고통이 수반되든 말든 몸을 내던져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좀비가 되는 것만은 싫었다. 비록 꿈속이라고 하더라도 죽는 그 순간까지, 죽은 후까지도 자신은 자신이길 바랐다. 그랬기에 좀비에게 물리더라도 변화가 오기 전에 직접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서 하루에 열 번도 넘는 꿈을 무한히 반복한 적도 있었다.
살아있는 자가 시체가 되어가는 그 감각.
전신의 모든 세포가 제 의지와 상관없이 날뛰다가 차례차례 삐걱거리는 듯한 괴이한 느낌.
그리고 뇌에 가해지는 어마어마한 고통과 정신을 망가뜨리는 감각은, 회귀의 대가로 ‘공포’를 지불했음에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회귀의 대가조차 없는 이 현실에서는 생생한 ‘공포’를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꿈속에서 겪어왔기 때문인지 육체적 고통이라든지 좀비의 위협 같은 건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은 꿈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남기혁에게 지금이 ‘현실’이라 알려주는 건 오직 강준성뿐이었다.
자칫 강준성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더는 보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손에 넣지 못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할 때면 꿈속과 달리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무서워졌다.
지금도 그렇다.
좀비에게 목을 물어뜯기고 있는 바로 이 순간.
남기혁이 느낀 ‘공포’는 자신이 좀비가 될 거라는 사실보다도, 더 이상 강준성을 볼 수 없다는 데에서 기인하고 있었다.